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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어젯밤 한숨도 주무시지 않고 원고교정업무등을 보시고 아침 7시부터 진행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오늘 모임에서는 세월호 참사이후 우리사회는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라는 주제로 사회각계각층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부와 국민에게 요청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 바로 인천 연수구청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에 앞서 연수구청장님과 차담을 하시고는 바로 강연에 들어가셨습니다.
인천 연수구청 대강당은 희망강연 준비로 오전 7시부터 봉사자들의 활기가 가득이었습니다. 인천 정토회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이번에 새로 생긴 부평센터와 송도센터의 불대생 봉사자들의 마음이 더해져 즐거움과 활기가 두 배가 되어 보였습니다. 강연 시작보다 1시간 30분 일찍부터 사람들이 미리 와서 줄을 서 있었고, 날씨는 더웠지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봉사하는 사람들도 불평 없이 강연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둥~! 드디어 10시 30분!! 스님과 함께 희망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강당 안의 좌석뿐만 아니라 통로까지 채우고도 들어오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신 스님께서는 무대 위로 올라와서 앉으라고 하시면서 자리 없으면 스님께서 밑에 내려가서 강의 할테니 올라와서 같이 듣자고 하시면서 청중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무대에서 스님 바로 옆에 앉아 듣는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스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부러운 마음이 좀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약 850명의 사람들과 함께 스님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정 청원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에 함께 동참해줄 것을 권유하셨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다같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였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고 누구나 행복할 권리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다고 하시면서 오늘 종교를 떠나서 얘기해보자면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모두 여덟 분이 질문을 하셨는데 내용은 중국에 홀로 떨어져 있어 외로워하는 10 살배기 딸을 어떻게 달래줘야 하는지, 남편에 대한 미운 마음을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얘기를 듣고 싶은 조선족 30대 여자분, 아이들 앞에서도 거침없는 시아버지의 폭언과 폭행 때문에 힘들어하는 두 아이 엄마, 다양한 경험을 통해 꿈을 찾고 싶다는 25살 청년, 프로문화에 빠지면 왜 안 되는 것인지 그리고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출전하는 경기를 어떤 마음으로 응원해야 하는지 궁금한 불대학생의 질문에 이어 엄마, 아빠, 동생 네 식구가 꼭 다 같이 한 방에서 자기를 고집하는 딸아이가 고민인 여자분, 유약한 정신력과 자신과 맞지 않는 전공 때문에 고민인 여대생, 사회생활을 앞두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하는지 궁금한 취업자 등이었습니다.
삶의 애환이 드러나는 다양한 질문과 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은 오늘도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선물해주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하여 스님의 답변은 감동적이고 가슴에 와 닿았지만 그 중 한 가지만 여러분께 소개드릴까 합니다.
“저는 조선족 중국동포입니다. 현재 남편은 서울에서, 저는 인천에서 직장에 다니고 10살 된 딸은 중국에서 시부모님과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흩어져 살고 있는데 남편과 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선 인정도 받고 좋은데 남편은 예전과 달리 저를 보고 직설적이고 활발한 제 성격이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하면서 모든 일에 불평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미워지고 그 허전함을 술로 달래다가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쁘고 똑똑한 딸 생각을 하면 쉽게 헤어질 수는 없어서 남편을 다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살 된 딸아이가 중국에서 외로워하며 부모를 그리워하지만 돈이 없어서 데리고 올 수도 없는 처지인데 어찌 달래줘야 할까요?”
“이민 생활한다고 고생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 가서 겪는 고통과 같습니다. 자기가 죄지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이혼 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혼으로 어린 자식이 상처를 입으니 자식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이 나쁜 것입니다.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다면 잘못된 게 아니지만 자식이 사춘기라면, 부모의 책임은 자유롭게 살 것과 자식을 돌볼 책임이 반반이에요. 여성과 남성은 같은 권리가 있지만 여성에게는 자식이 있으면 엄마로서의 책임도 있는데 여자로서의 권리보다 엄마로서의 책임이 우선이에요. 세살까지는 절대적인 우선이에요. 초등학교까지는 엄마로서의 책임이 비율이 높고, 사춘기까지는 동의를 얻으면 되고, 스무살을 넘으면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자기는 아이를 몇 살에 두고 왔어요?”
“ 5살이요. 세살 넘어서까지는 제가 키웠어요.”
“기본적인 역할은 다 했어요. 세 살 때 까지는 내 인생은 없고,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만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보다 아이를 위해 아이 대신 내가 죽어도 된다는 각오로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아이가 세 살이 지나도 내 인생보다 아이를 더 중요시 해야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닌다면 가능한 아이를 돌봐야 합니다. 자식이 없으면 여기 와서 따로 살아도 괜찮지만 자식이 있으니까 자식을 최우선으로 소중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먹고 살만하면 기본도리를 하고 돈을 벌어야지요. 아이를 여기 한국으로 데리고 오든지, 아니면 중국으로 가서 애를 키우든지, 중학교를 보내놓고 오든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렵게 사는데 부부가 협력하고 살아도 외로운데 지금 떨어져 산다고 했잖아요. 착한 남편이 왜 성질이 변했을까요? 그건 남편이 부인한테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자기보다 남편이 어깨에 힘도 주고 더 잘 나갈 수 있었는데, 한국에 오면 중국에서 뭘 했다고 해도 안 알아줍니다. 중국사람들이 한국 와서 대부분 하는 일이 식당일이나 청소등, 막노동 일이 많은데 이런 일은 남자보다 여자와 아이들이 빨리 적응하기 때문에 유리합니다. 자기는 한국사회에서 적응이 쉬운데, 남편은 적응을 잘 못하니까 남편이 볼 때 자기가 밀리는 것 같아서 다른 남자가 있지 않겠나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생겨 부인에게 오히려 우격다짐을 하고 큰소리만 치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남편을 불쌍하게 여겨야 합니다. ‘기가 죽어서 사는구나, 아내인 나라도 남편 기를 세워 줘야겠다, 적응하기 힘들지요?’ 하면서 격려도 하고, 내가 기대려고 하지 말고 큰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껴안아 줘야 해요. 열등의식 때문에 부인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까 마음을 헤아려줘야 기가 살아요.
아니면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괜찮아지는데, 돈맛이 들었으니까 돌아가기가 어렵지요. 초기에 한국에서 벌어서 중국에 돌아가서 알뜰하게 쓰는 사람은 유리했는데, 지금은 중국의 물가가 올라서 큰 돈이 안되니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떠돌이처럼 계속 살게 돼요.
남편이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더 노력을 해봐요. 주말에 남편이랑 하루 쉬면서 만나고,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만나는 횟수를 늘려야 돼요. 집에서 부처님을 부르면서 ‘저는 행복합니다. 저는 복 받았습니다’ 하고 감사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외롭죠? 힘들죠? 제가 뒷바라지를 잘 할게요’ 하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꼬라지를 보면 기분이 확 나쁘다가, 다시 마음이 좋아지지요. 이민생활을 하면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이지만, 그들은 멸시한다,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생깁니다. 못사는 동생에게 잘사는 형이 제사 지낸 후에 떡을 싸주면 먹을 것 없을까봐 싸주나 싶고, 안 싸주면 자기들이 다 먹나 싶어 기분 나쁜 게 사람심리예요. 그래서 항상 줄 때도 존중하면서 줘야 합니다. 우리는 주는 입장이라서 그 심정을 잘 몰라요. 정부가 세월호 가족에게 열심히 해도 마음이 안 통하는 건 그런 것입니다. 자기도 남편에게 말 100번보다 아무 말 없이 꼭 껴안아주고 힘들지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는 게 남자가 살 것 같을 겁니다.”
스님의 답변에 조선족 여자분은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했으며 청중들은 우레 같은 박수로 답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열기로 강연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즉문즉설이 끝났습니다.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며, 지금 행복해야한다고 인사하시는 스님의 마지막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렇게 인천 연수구청 희망강연을 마치신 스님은 다음 일정을 위해 발길을 재촉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평화재단으로 와서 2번의 미팅을 가진 후 저녁 강연이 있는 김포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을 위한 김포 아트홀 1층 접수처에서는 ‘통일이 되면 우리 모두 상상해봐요’ 스티커 붙이기 행사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도 같이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릴 듯 흐린 날씨에 후덥지근한 기온에도 오후 5시부터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벌써 많은 분들이 강당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자원봉사자분들께서 몇 번의 리허설을 하고 나자 아직 강연 시작이 한 시간이나 남았음에도 1,2층 자리는 빼곡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 강연을 시작하신 스님께서는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즉문즉답이 아니라 즉설이라고 하시며 이러한 인생의 질문을 함께 생각해보면서 나누는 깨달음에 대한 얘기, 진리의 얘기가 설법,설교 라고 하셨습니다.
강연 시작에서 즉문즉설 강연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열어놓은 자리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짧은 말씀 뒤에 관중들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삶이 비관적이며 맘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다 무엇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지 두렵다고 하는 20대의 젊은 남성분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단 전문가에게 약을 처방받고 도움을 받으라고 충고하신 뒤 두 번째로 ‘저는 편안합니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하고 되뇌이며 절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아버지와 오빠에게로 이어지는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자라나 그 영향으로 세상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모든 관계에서 중도 하차를 하게 된다는 젊은 여성분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결혼 했느냐고 물었고 하지 않았다는 대답에 태어나서 제일 잘 한거라고 하시면서 스님도 제일 잘한 게 결혼 안한 거라고 하시며 가벼운 웃음을 이끌어 내시어 질문자의 긴장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족 간의 폭행을 참는 것은 자비로운 것이 아니라며 이런 문제는 내 형제,부모라도 신고를 해서 바로잡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
7억의 돈을 들였다가 사기를 당해 3억짜리 땅과 조경수 몇그루만 남았다면서 그 조경수까지 가려가는 자신을 속인 사기꾼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한 중년여성의 질문에는 지금 천금을 잃어버리고 동전 한 닢을 가지고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타박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질문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울음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이던 질문자는 위로도 하고 농담도 하고 질타도 하시는 스님의 말씀에 차차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아들과 남편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걱정하는 한 어머니셨습니다. 남편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이 편했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 아들도 남편과 시아버지 같은 관계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부불화로 아내가 남편을 미워하면 아들 또한 이 미움의 영향을 받아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니 ‘애와 남편의 갈등이다’ 하지 말고 ‘내 잘못이다’하고 남편에게 참회의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당신을 미워했더니 과보를 받네요’ 하고 108배 참회기도를 하고 아이에게는 ‘그래서 니가 힘들구나‘ 하는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야한다고 들려주셨습니다.
그 뒤로도 노름에 빠져 빚을 만드는 남편 때문에 18년을 마음 고생한다는 중년 여성의 질문에는 18년을 노름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이 고집이 센지, 18년을 듣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잔소리하는 질문자가 고집이 세냐고 질문을 던지신 스님께서는 고치려고 하면 나만 힘드니 남편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나를 고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타박을 하시고도 박수를 받자 웃으시면서
“저는 이렇게 맨날 야단쳐주고 박수를 받아요. 내가 왜 야단치고도 박수 받는지 아세요? 내가 돈을 안받고 상담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돈받고 상담을 하면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떨어져요.” 라고 농담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보기에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게임을 한다는 대학생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질문에는 20살이 넘었으면 자식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시며 잘 관찰해서 정신질환의 기미가 보이면 치료해주고 그렇지 않는다면 더 이상 자식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여행업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최근 세월호 사건과 경기침체 때문에 회사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말에 스님께서는 6개월 정도 손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질문자가 “좀 더 앞당길 순 없나요?”라고 되묻자 “아이가 죽고도 사는데 6개월 정도도 못 참아요?”라며 스님께서 말씀하셨고 바로 질문자 분은 “참회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지금은 사람들이 웃다가도 웃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가지는 그런 시기입니다.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좋은 대한민국 만들기 운동도 해야겠지만, 아직 12명 실종자도 있는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서명운동도 하면서 기다려줘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저런 많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6개월을 비우고 기다리면서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기회에 마음공부를 하던지 좋은 여행상품을 개발하던지 직원들 교육을 시키던지 하면서 기다리면 재앙이 복이 됩니다. 이때 정비를 했기 때문에 회사가 더 탄탄해질 수 있습니다.”라며 지금의 나쁜 상황을 좋은 상황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질문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마무리 하시면서 “지금 여러분들이 어떤 경험을 했던,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던 간에 지금 이순간 살아있지 않나요?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인생은 대성공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행복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지난 일을 생각하면서 괴로워 하면 꿈 속에 사는 인간, 영화보고 사는 인간이 되어 불행해집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긍정 위에 통증도 있고, 빚도 갚고, 술먹고 노름하는 남편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긍정을 바탕으로 나아가면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는 것이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해야 합니다. 애 키우는 것도 행복해야하고 직장 다니는 것도 재밌어야 합니다. 짐승들을 보면 놀이와 운동과 노동이 하나입니다. 노동 따로 하고, 놀이 따로 하니 노동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악을 쓰고 놀게 됩니다. 노동을 놀이처럼 즐겁게 하면 따로 스트레스 안받으니 24시간 놀고 24시간 일하는 것입니다. 삶을 가볍게 생각하고 사십시오,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끝으로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전혀 새로운 시선과 마음으로 보도록 깨달음의 눈을 열어주시는 스님의 명쾌한 강연은 언제나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십니다. 늘 행복하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스님은 그 말 그대로 열정을 가지시고 놀이로 노동으로 운동으로 행복하게 일을 해나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1층 뒤모임 장소로 모인 일산, 파주, 안양, 부천, 인천 법당 자원봉사자들은 스님의 격려를 들으며 한껏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힘을 불어넣어주신 스님은 강연 중 내리기 시작한 비속으로 또 총총히 떠나셨습니다.
오늘로서 희망세상 만들기 봄강좌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내일은 청년포럼, 청년학교 졸업식이 대전에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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