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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부터 스님께서는 일정이 있으셨습니다. 새벽 6시 30분, 7시 30분에 각각 미팅이 있었고, 미팅을 마친 후 10시 30분에는 춘천 강연이 있었습니다.
미팅이 조금 늦어진 것도 있지만, 서울시내 길이 막혀서 겨우 강연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니 오늘 강연 장소인 춘천 교육문화관 관장님께서 직접 스님을 맞이 하시면서 인사를 하셨습니다. 강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관장님과 간단히 차담을 하셨습니다.
오늘 춘천 강연은 여러 해에 걸쳐 경험이 쌓인 활동가들의 노련함과 새내기 불대생 봉사자들의 활기가 어우러져 여유와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센터를 개원한 이후 불교대학 신입생들로 북적거리게 된 춘천 정토회는 여느 해와 달리 다른 지역의 도움에 크게 기대지 않고 봉사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500석 규모의 강연장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빼곡하게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스님이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스님의 모두 발언으로 사람들이 벌써 한바탕 웃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마음이 말랑해진 듯 보였습니다. 이제 아무거나 물어보라는 스님 말씀에 첫 질문자가 일어서서 남편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말문을 뗐습니다. 흠잡을 데가 없는 남편이지만 육아에 지쳐서 부부관계를 거부하면 토라진다는 것입니다. 지나치면 그것도 큰 괴로움이라고 하며 선택 가능한 몇 가지 방법을 스님께서는 상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농담처럼 덧붙인 말씀은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던 청중도 대화가 진행될수록 차차 질문자의 고통을 이해해가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도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풀어가는 스님의 해법이 참 논리정연하고 현실적이라 느껴졌습니다.
그 다음, 심리상담을 하면서 가지게 된 고민을 이야기한 질문자에게는 스님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들려주셨습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내치지도 말고 휩쓸리지도 말고 들어주기만 하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도 도와준다는, 깨우치게 해준다는 생각 없이 강연을 다니신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묻기만 하고,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화가 날 것이라고 하시면서요.
세 번째 질문자는 스리랑카에서 11년 전에 시집왔다는 여성이었습니다. 여섯 살 먹은 아이가 정서불안, 과잉행동을 해서 미움을 받는다고 그 아이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걱정된다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상당히 유창한 한국어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연애나 결혼을 하려고 할 때 포장을 하기 마련인데 진짜 내면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고 한 청년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욕심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속고 속여야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결혼하려고 하면 속을 각오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도를 가지지 않고 친구로, 동료로 지내보면 타인의 내면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스님의 답변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속아서 하지 않았냐고, 고르고 골라서 결혼을 했으면서 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냐고 대놓고 타박을 하시는데도 청중은 모두 좋아서 깔깔 웃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자로 일어선 사람도 젊은 청년입니다.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거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도 그 명제가 옳은지,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그 다음은 분단 고착화가 더욱 심해지는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개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한 여자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일어선 나이 지긋한 남자분은 스님을 뵙고 싶어서 멀리서 첫차를 타고 왔다고, 작년 강연에서 질문을 드렸었는데 그 뒤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한 젊은 남성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지는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업장 소멸을 위한 참회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업장이 무엇인지 아는 법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설악산을 등산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처음에는 산에 오를 자신도 있고 산에 가면 좋다 해서 가는데 중간쯤 가니까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파서 못갈 것 같아요. 거기서 산 높다고, 길 험하다고, 왜 나한테 여기 가라 했냐고 불평해야 되겠어요? 거기 앉아서 나는 왜 체력이 이거밖에 안 되나 한탄을 해야 되겠어요?
산을 올라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쉬었다가 올라가면 됩니다. 쉬어가면서 꾸준히 하는 방법이 있고 체력이 딸린다 싶으면 내려오는 방법이 있어요. 신세타령 하거나 앉아서 불평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때 내려오면 실패냐? 아니에요. 반드시 올라가야 할 이유는 없어요.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도 되지만 올라가면 반드시 좋다든지 못 올라가면 나쁘다든지 인생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설악산 안 올라가도 잘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면 됩니다. 근데 중턱 가다가 내려와도 그만큼이라도 갔다 온 사람도 이 세상에는 많지 않아요.
불평하는 것도 좌절하는 것도 욕심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 치다 안 되면 그만두면 되지, 왜 좌절을 해요? 인생이 공무원 되는 것밖에 없나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시험 떨어지면 좌절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무조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불평하거나 자기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서 좌절하지요. 좌절할 것도 없고 계속 하면 되고, 안 되면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자기가 문제가 되는 걸 가지고 정진을 하는 거예요. ‘나는 뭐가 문제입니까?’ 이런 거는 없어요. 자기가 여섯 시에 못 일어난다 하면 이걸 해결할 과제로 삼으면, 이게 수행의 과제가 되는 거고, 내가 얘기하면 사람들이 잔소리라고 하고 듣기 싫어한다면 말하고 싶더라도 앞으로는 안 해야 되지요. 그러면 이게 과제가 됩니다. 문제를 삼으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문제라고 삼는가에 따라서 그걸 가지고 수행을 하는 것이고, 내 업장을 녹인다는 것은 내가 문제 삼는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지, 내가 가진 모든 습관을 바꾼다 그런 건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을 바꿔야 된다, 안 바꿔도 된다 하는 것은 조건에 따라 달라요. 자기가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하면 기존 습관의 저항이 따라요. 그때 포기하지 말고 이겨내야 합니다. 못 이겨내면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됩니다. 자기에게 과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예요. 수용하고 과보를 받든지, 과보를 받기 싫으면 그 습관을 바꾸든지.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우고 일찍 죽든지 오래 살려면 담배를 끊든지.
자기가 자기 삶에서 뭘 문제로 삼는지 보고 그걸 과제로 삼아서 업장 소멸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어서 너무 빡빡하게 무거운 짐 진 듯이 살지 말고 지금 행복하라는 당부 말씀으로 그 어느 때보다 유쾌하고도 진지한 분위기의 즉문즉설이 끝을 맺었습니다.
스님에게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선 사람들도, 모금함에 소복소복 쌓여가는 만 원짜리를 바라보는 봉사자들도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정리가 끝난 뒤 봉사자들은 강연장 맞은편의 냉면집으로 향했습니다. 저녁반 직장인 보살님이 오늘 강연에서 봉사를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덜기 위해 점심을 쏘겠다 했다지요. 음식점 사장님이 방금 스님 강연을 듣고 왔다며 봉사자들을 반겼습니다. 예년처럼 남양주나 원주, 분당 등지에서 지원 나온 봉사자들이 서둘러 빠져 나가고 춘천 도반들 열 명 남짓이 도란도란 점심을 먹겠거니 예상했는데, 가서 보니 서른 명은 훨씬 넘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오늘 점심을 쏘기로 한 보살님의 지갑을 걱정하면서도 부쩍 늘어난 춘천정토의 도반들이 든든하여 다들 뿌듯해 했다 합니다.
스님께서는 춘천 강연을 마치고 강릉 강연을 위해 강릉으로 향하셨습니다. 강릉으로 가는 길에 백담사를 들러 산책을 하고 가려고 했으나 강연장을 나서서 조금 가다보니 비가 쏟아져서 천천히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스치고 지나간 빗방울은 강연장인 단오문화회관 앞의 잔디뜰과 소나무를 싱그럽게 씻어주었습니다. 솔향의 도시인 강릉의 저녁 기운은 맑고 은은하여 스님을 맞이하는 정성스런 손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스님의 삶에 대한 명쾌한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분들이 일찍부터 강연장에 오시기 시작하여 강연이 시작되자 강연장 1, 2층이 가득차고 계단에도 앉으신 분들이 가득하여 700여 명의 많은 분들이 재밌고 유익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에 들어오기 전부터 욕을 얻어 먹었다고 하시면서 ‘어떤 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자리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다음에는 장소를 좀 큰 거 얻으라고 하더라.’ 많은 분들이 오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돌려 전하시면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남자 대학생의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 성공하지 않은 인생이지만 지금도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한 45세의 똑똑한 아주머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면서 살아온 부모의 업을 내 성질을 못 받아내고 있는 나를 통해 보면서 어떻게 하면 내 대에서 그 업을 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손수 운전하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함께 타고 있던 장모님과 아내가 죽게 되었는데 그 울분과 자책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질문하신 아저씨,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현재에 집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걱정이라는 여대생, 경찰 공무원 시험에 두 번 실패했는데 이제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 25세의 여성 취업준비생, 건강이 안 좋아서 시골에서 살다가 시내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남편의 건강이 안 좋아서 다시 시내에서 시골로 가려고 하는데 어른들의 말이 예전에 살던 집으로 다시 가는 것이 아니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 아주머니, 질문이 너무 많은데 줄이고 줄여서 네 가지를 가지고 왔는데 세 가지만 하겠다고 떼를 쓰다가 결국 두 개의 질문으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스님께서 만족하면 성공한 삶이라고 하셨는데 살인·폭행한 사람도 만족하면 되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한 교육학 전공인 남자 대학생, 모두 8명의 질문으로 주어진 시간보다 30분 길어진 9시 30분이 되어서야 겨우 마쳤습니다. 질문이 좋고 스님께서 질문자가 깨달을 때까지 충분히 대화를 나누어 주셔서 더욱 재미있고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마지막 질문이었던 만족한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답을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잘사는 대한민국이 되었지만 국민들은 더욱 빈곤감을 느끼면서 행복지수가 OECD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인 우리나라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풀어 가야할 지를 잘 말씀해 주셔서 강연을 들은 분들의 마음에 닿았다고 하신 이야기입니다.
“스님께서 만족하면서 살면 된다고 하셨는데 살인하거나 폭행하는 사람을 바르게 산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스님께서는 “바르게 산다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게 되면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사형당하지 않고 감옥에서라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 처벌에 대해 만족하면 그것 또한 이 현실에서 그 사람의 행복입니다.” 라고 하시니 질문자는 다시 “어느 정도 기준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없으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혼자 살면 기준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같이 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같이 살면 협력과 경쟁이라는 양 측면이 있습니다. 하루에 토끼를 나도 한 마리 잡고 상대도 한 마리 잡을 수 있는데 둘이 협력해서 세 마리를 잡게 되면 이익입니다. 그런데 잡은 세 마리를 내 입장에서는 다 갖고 싶고, 상대도 세 마리를 다 갖고 싶어 하면 분배를 가지고 경쟁하게 됩니다.
분배에는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기게 됩니다. 내가 세 마리를 가질 수도 있고, 두 마리, 한 마리 또는 한 마리도 안 가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세 마리를 갖는 것이 나에게 현재 최고의 이익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한 마리도 못 가지니까 다음날부터 협력을 안 하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 당장은 이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이익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손해를 줄 뿐 아니라 나에게도 손해입니다. 이것을 과욕, 탐욕이라고 합니다. 탐욕은 버려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규제를 해야 합니다.
내가 한 마리도 못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날 내가 협력을 안하게 됩니다. 내가 한 마리를 가지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기본적 욕구이며 권리에 속합니다. 권리는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같이 사는 세상에는 보장해 주어야 할 권리가 있고, 규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 사회에서의 경쟁은 한 마리에서 두 마리 사이에서 누가 더 가질 것이냐에 대한 것입니다. 그 날 그 사람의 기여도에 따라 1.2마리나 1.8마리를 가지거나, 1.3마리나 1.7마리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때 자기가 더 갖고 싶은 마음을 욕망이라고 합니다. 욕망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공동체 사회는 서로간의 소득격차가 덜 나도록 제도적으로 마련해 줘야 합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상대적 빈곤감이 크게 느껴집니다. 나 혼자 잡아서 한 마리를 가져가도 협력했을 때 상대가 두 마리를 가져가면 손해는 아니지만 기분은 나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먹고 사는데 문제는 없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많아서입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면 제도적으로 빈부격차를 줄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윤리가 있습니다. 내가 살 권리가 있지만, 남을 해칠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마라고 합니다.
내가 이익을 볼 권리는 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칠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빼앗거나 훔치지 마라고 합니다.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지만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마라고 합니다.
나는 말할 권리는 있지만 남을 말로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속이거나 욕설을 하지 마라고 합니다.
나는 술을 먹을 권리는 있지만 술을 먹고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하지 마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남과 같이 살 때 누구나 다 지켜야 할 윤리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공동체 전체가 손해입니다. 어릴 때부터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걸 지켜줘야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이것은 나를 속박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 지킬 때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학교 폭력의 핵심은 때리고, 빼앗고, 성추행과 욕설입니다. 규범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수업 시간에 자거나 조는 것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안 주며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것은 야단쳐서는 안 되고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 다섯 가지는 잘못된 행동으로 규제해 주어야 합니다.” 고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답을 들은 질문자는 스님께서 사회적 관점에서 큰 틀로 말씀해 주셔서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들이 어떤 것은 지키고 버려야 하는지, 사회는 어떻게 제도적으로 규제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게 된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많은 분들의 얼굴에는 소중한 금요일 저녁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만족감과 내가 살아온 평범한 일상들이 소비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자랑스럽고 화안한 웃음으로 빛났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의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말이 가장 좋았다며 밝게 웃는 웃음과 3학년 여중생이 스님의 희망 세상 만들기 현수막을 보고 아빠가 함께 가자고 해서 왔다고 하는 부녀의 행복한 동행을 보면서 스님께서 어린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행복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서울로 향하셨습니다.
내일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동문회, 여성리더십 아카데미 동문회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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