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4.16. 세계를 바로 보는 눈 제 5강, 6강, 엄마수업 중국독자 방문

늘은 서초법당에서 스님의 봄 특강 <세계를 보는 눈> 5강과 6강이 있는 날입니다.

     

5강은 <민족사의 시원인 배달문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1, 2층 법당을 메워주셨습니다. 스님은 첫날보다 조금 한산해졌다며, 공부가 어렵긴 어려웠나보다 하시며 알짜배기만 남은 거냐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강의 물줄기에서 가장 긴 것이 원류이듯 우리 민족의 원류는 역사가 짧은 신라의 역사가 아닌 배달의 역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부터 배달나라까지 거슬러 하나하나 추적해주셨습니다.

     

우리 민족사도 족보를 찾아가듯 똑같이 추정해가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이름이 대한민국이잖아요. 대한민국의 이름은 대한제국에서 왔습니다. 제국은 임금이 주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해서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 운동을 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조선왕조에서 왔습니다. 조선왕조를 대한제국이라 바꾼 이유는,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나자는 국권회복운동으로 고종황제가 자주 독립국가를 선포한 것이 대한제국이었어요. 조선왕조는 고려왕조에서 왔어요. 임금의 성만 바꿔서 왕씨에서 이씨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역성혁명이라고 하잖아요. 고려왕조는 후고구려를 계승했어요. 고구려, 신라, 백제를 모두 계승한 것을 후삼국의 통일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영토는 대부분 신라를 계승했지만 역사적 정통성은 고구려를 계승하고 고구려의 본래 영토인 북방영토를 회복하려 했어요. 힘이 부족해서 이루지는 못했지만 건국정신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고려하고 조선하고는 큰 차이가 있어요. 조선은 자발적으로 한반도에 만족했죠.

 

고구려는 고주몽이 자기는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해모수는 부여를 건국한 사람이에요. 주몽은 해모수의 직계후손 쯤 됩니다. 해모수는 자기의 뿌리를 단군 조선에다 뒀어요.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지요. 단군은 자신을 배달나라 임금인 환웅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환웅은 한나라 임금인 환인의 아들이에요. 바로 환인의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게 아니고 이주해 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신시라 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했어요. 원주민한테는 이들이 하늘에서 온 천손들이었어요. 환인은 한나라의 임금이었는데 그 한나라는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시작은 한나라가 뿌리입니다. 원뿌리는 한나라에서 왔지만 인구구성으로 보면 토착세력이 주류고 이주민인 천손들이 지배계급인 거죠. 역사의 뿌리는 그렇게 잡고 있어요. 그 조상도 있었겠죠. 그러나 여기까지 밖에 알 수 없기에 민족사는 여기가 시작이에요.

     

우리나라 역사는 한나라까지 따지면 구천 삼백 년쯤 됩니다. 한나라의 33백년을 빼버리면 6천 년전. 환웅 천왕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새로운 나라, 배달나라를 세울 때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였어요. 홍익인간이란 건 이 땅에 살고 있는, 문명에 뒤쳐진 토착세력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나라를 세우는 것이지, 침략·착취하기 위해 새나라를 세운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늘에서 왔으니 인간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선진문명이 이주해 와서 후진문명인 토착세력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게 6천년 전이에요.

     

개천은 환웅천왕이 새로운 나라를 처음 열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단군 몇 년보다 개천 신시 몇 년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때 천부인 세 개를 갖고 왔어요. 청동거울, 청동검, 청동방울. 이것은 청동기를 가진 천손의 징표에요. 그렇게 해서 1600여년을 계승해서 내려오다가 배달나라 마지막 천왕 때에 부계는 천손, 모계는 토착세력(웅녀)인 단군에게로 왕위가 계승 되었습니다.”

     

청동기 문명을 이룩한 6천년전의 배달나라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이렇게 우리 나라의 시원은 환웅천왕이 신시를 세운 날로 잡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어 우리 민족이 역사를 잃어버린 과정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우리가 민족사의 뿌리를 잃어버린 지는 천년이 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스스로 자발적 사대를 해서 우리 문명이 중국보다 앞선다고 되어 있는 옛 고기들을 없애버렸어요. 소위 모화사상, 중국을 부모국가로 보는 것이었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스스로 옛 역사를 잃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근세에 경성제대(지금의 서울대)가 설립되면서 실증주의 역사방법론이 들어왔습니다. 역사를 유물, 유적, 사료를 근거해서 말하자는 건데, 좋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쓴 역사서는, 고구려 때 유기 백권이 있었는데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다 없어졌습니다. 고려시대 와서 일부 복원된 게 원나라 치하에 소실되고 조선시대에는 자발적 폐기를 하고 일제 시대 때 없어지고. 땅도 잃고 기록도 잃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역사를 새로 연구 복원해야 하는데 남은 거라곤 삼국유사, 삼국사기 정도 밖에 없었어요. 삼국사기는 삼국시대 이후를 기록한 것이니 당연히 고구려 이전의 부여와 단군 조선, 환웅의 배달에 대한 기록이 남은 게 없어요.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삼국시대를 말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 이전 역사를 간단하게 한 페이지, 한 줄로 정리하다보니 환인시대 3300년을 환인 한 사람으로, 환웅시대 1600여년을 환웅 한 사람으로, 단군시대 2천 년을 단군 한사람으로, 마치 3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기록을 했어요. 허황된 논리처럼 비치는데 그것은 요약정리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의 실증주의사관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가 중국 변방의 역사로 전락한 과정과 경성제대를 잇는 강단 주류사학계와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한 재야사학계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음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어 중국 만주 요하상류지역에서 1만년에서 5천년전 유물들이 대거 출토됨에 따라 전설처럼 취급받던 배달의 역사가 입증되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중국이 국가 프로젝트로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을 모두 자국의 역사로 재편한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일제시대 때 만주에서 일본 학자들이 지금의 내몽고 자치주 적봉시에 있는 홍산 아래서 수 천년 전 유물을 발견했어요. 역사기록에는 전혀 없는 거였어요. 중국인들은 고대 중국의 임금으로 3황인 복희씨, 신농씨, 황제헌원씨와 오제인 황제, 전욱, 제곡, , 순 임금을 오제라고 받들어요. 그런데 중국은 사기에 주나라까지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어요, 은나라만 해도 역사기록은 있는데 전설처럼 간주돼요. 중국 5천년 역사는 유사이전과 유사이래로 나뉘는데 황제헌원이 왕위에 오르기 전이 유사 이전입니다. 중국 만리장성 밖은 오랑캐의 땅으로 중국 영토가 아니고 역사도 아니였어요. 중국은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문명의 뿌리를 자랑하잖아요.

     

그런데 이 만리장성 북쪽 한참 넘어 요하상류 광범위한 지역에 5ㄴㅕㄴ전 유물과 유적이 엄청나게 발견되었어요. 그 시작이 적봉시 홍산부근에서 유물이 나오면서부터예요. 그래서 홍산문명이라고 이름 붙여졌어요. 그런데 이 지역에 살았던 민족은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고조선, 부여, 고구려도 있었는데 어디가 홍산문명인지는 모르고 다만 유물만 남았어요

     

70년대 후반에 중국이 개혁 개방하면서 경제력이 나아지고 이 지역 유물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80년대부터는 한두 군데가 아니고 오백여 군데에서 쏟아졌어요. 1만년 전 신석기 유물이 나오니 세계가 놀라고, 중국이 놀랐습니다. 지금 요녕성 서쪽 뉴허량 지역에서는 6000년전 무덤이 60여기 발견되었어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천년이나 앞서는 피라미드에요. 제일 큰 것은 한 변이 60미터, 높이 7. 장수왕릉 즉, 장군총보다 한 변의 길이가 두 배인 이런 거대한 적석총을 만들려면 고대국가가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발굴하다보니 신전도 발견이 되었어요. 고대문명의 핵심은 무덤과 신전이에요. 신상은 여신상인데, 손이 곰손 비슷해요.(대중웃음) 그리고 정교한 옥기 장식품이 수도 없이 나왔어요. 머리 부분이 돼지모양의 용인 저용. 곰모양인 웅용. 연대로 치면 홍산문명은 6500-5000년 전. 인더스 문명은 석기인데, 홍산문명은 옥으로 만든 아주 정교한 유물이 나옵니다. 이게 해석하기 어려워요. 어떤 사서에도 이정도 규모의 발달된 문명에 대한 얘기가 한 줄 없어요. 그러나 적어도 현재 유물만 갖고도 4천 년 전에 청동기를 제작하고 제사를 지냈고 무기로 썼음을 알 수 있어요. 중국은 일대 혼란에 빠졌어요. 중국 내륙에서도 신석기시대의 유물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홍산문명은 일만 년 전부터 삼천 년 전까지가 일정한 지역 안에서 시대순으로 연결되어서 나왔어요. 중국은 황하문명이 뿌린데, 이것은 황하문명보다 천 년 이상 앞선 것이니 황하문명이 이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요하강 상류지역의 문명을 요하문명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국가적으로 수백 명의 학자를 동원해 논리를 만들어 중화문명을 새로 썼어요. 중국 역사는 두 개의 문명 -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을 원류로 한다며 이를 중국 역사 속으로 편재하고 지금은 역사 교과서에까지 반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은 이 유물 일부를 가져와 요하문명에 대한 전시대를 시를 하고 있어요. 1문명의 서광이라 해서 신석기 유물을 전시하고, 상주시대 청동기를 진열하고, ·하화하일통(華夏一統)이라 해서 중국의 황하문명과 북쪽의 요하문명이 진정으로 하나가 됐다고 해요. 통합역사관점에서 전시를 해요.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 안에 있는 과거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 , , 고구려, 발해, 부여도 중국역사. 옛날 선비족, 티베트도 다 중국역사. 그런 관점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관점을 잡아 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고구려 문명의 두가지 특징인 피라미드식 무덤과 석성의 치가 요하문명에서 고구려보다 3천년 먼저 앞서 나타난다고 하시며, 고구려가 계승한 배달나라가 요하문명라는 근거가 된다 하셨습니다. 중국 역사에도 나오는 동이의 치우천왕 얘기도 곁들이셨습니다.

     

고구려 문명의 독창성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가 무덤. 피라미드처럼 쌓는 적석총은 동아시아 지역에는 고구려를 제외하고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거란, 여진, 몽고, 선비족 아무 데도 없는데 고구려에만 있어요. 그 전에는 고인돌 형태였는데, 한반도, 만주에만 있지 남쪽에는 없습니다. 두번째는 석성에 치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에요. 치는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해서 측면도 공격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에요. 그 시기 다른 나라 성에는 그게 없어요. 이게 고구려의 독창적 문화유산이라 했는데 고구려보다도 3천년 앞서서 이 지역에서 나타납니다. ‘옛 땅을 되찾는다고 하는 다물(多勿)사상은 고구려 건국이념이에요. 이 문명이 소위 말하는 배달문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국에는 유물은 있으나 역사가 없고 우리에게는 역사는 있으나 유적, 유물이 없으니까 한·중이 함께 연구 하면 훨씬 더 전모를 빨리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혈통적으로 북방몽골계에요. 남방계하고는 인종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언어학적으로는 중국은 티벳어족, 우리는 우랄알타이어족입니다. 중국은 황하문명의 계승자, 우리는 요하문명의 계승자입니다. 요하문명이 시기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환웅시대 14대 자오지 환웅인 치우천왕은, 청동기를 제기로만 쓴 게 아니라 무기로 썼어요. 중국 사람들은 치우천왕과 싸워서 황제가 이겼다고 하지만 사실은 백전백패한 것입니다. 머리에 뿔을 달고 입에서는 불을 뿜었다고 묘사하는데, 뿔 달린 투구를 쓰고 쇠가 부딪히니까 불이 났다고 봤겠죠. 이쪽은 청동기, 저쪽은 석기문명이어서 상대가 안 되었어요.

     

이 배달문명의 일파가 동쪽으로 옮겨가서 만주, 요동, 평양까지 온 것이고, 서쪽으로 내려간 게 은나라입니다. 은나라는 한족이 아니라 동이족입니다. 은나라가 멸망할 때 백이숙제의 죽음과 기자등 일부 신하들의 조선 귀환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이렇게 고도로 앞선 문명이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하문명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주변 문명에 의해 역전되는지를 말씀하시며, 영원히 앞서는 문명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부흥할 수 있는 첫 단계는 통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자긍심을 가져야 하고, 어쩌면 지금 부흥할 가능성도 있어요. 첫 단계가 통일입니다. 민주화,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건 굉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통일해서 통일된 한국이 일본,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든다면 세계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이고 동아시아의 중심이 한국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강대국이 된다는 과거 개념과 다릅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이 사회의 여러 현상을 보면 자칫 정체와 몰락의 길로 갈 수도 있다며, 배달문명의 후예라는 긍지를 가지고 통일의 비전을 꿈꾸고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문명의 원류는 배달문명, 유물로는 요하문명입니다. 유물의 유사성과 역사와 지역을 보면 중국 문명의 아류가 될 수 없습니다. 인류 문명사의 첫 뿌리를 계승한 문명의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가 작지만 당나라와 버금하는 문화예술을 꽃 피운 것은 본래 문명의 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긍심을 갖고 조금만 방향을 잘 잡는다면 새로운 문명의 선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사의 뿌리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오후 2시에는 스님의 책 엄마수업을 중국어판으로 출판한 중국성시출판사와 중국언론 Sina(시나)에서 기자 2, 독자 이벤트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인 아기 엄마 5명과 관계자등 10명이 평화재단을 방문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엄마수업이 중국어판으로 출판되면서 중국에서도 스님의 즉문즉설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성시출판사에서는 엄마수업 독자들에게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여기에 수상자로 선정된 분들이 저자와의 만남을 위해 한국까지 찾아 온 것입니다. 중국인 아기 엄마들은 평소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이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육아 과정에서 부부가 어떻게 분담하고 협조해야 하는지, 조부모님과 교육관에 있어서 세대 차가 있어 충돌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화가 날 때는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 해야 하는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리 지도를 할 때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 아이를 정신적으로 부유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장 여성은 직장과 육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피아노를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중독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중국인 엄마들의 고민이나 한국인 엄마들의 고민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즉문즉설 강연하실 때와 똑같이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아이의 행복을 위해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을 아주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문답은 2시간 30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되었습니다. 통역이 빠르게 오가면서 중국인 아기 엄마들의 얼굴도 점점 더 밝아져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국경을 뛰어 넘어 중국인들의 삶에도 바로 적용되는 감동적인 현장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국경, 인종을 뛰어 넘어 두루 적용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엄마의 역할에 대해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기뻐하면서 살면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에게 문제가 안 생기도록 예방하라는 것이고요. 둘째,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더라도 아이를 탓하지 말고 자기를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개선이 됩니다. 인생 고통의 절반은 자식 문제입니다. 아기가 어릴 때 처음에 좀 정성을 기울이면 나중에 아이가 커서 고생을 안 하게 됩니다. 자식을 둔 엄마가 내가 아이 하나 낳아서 잘 키웠다이렇게 자랑스러워 해야지요. ‘아이고, 내가 저 놈 새끼 왜 낳았노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불행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 이렇게 책을 낸 것입니다.”  

     

이어서 중국 검색 포털 사이트 Sina닷컴에서 나온 기자 2명이 각각 스님에게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 기자분은 스님께 스님은 남성이시고 출가를 하셨는데 어떻게 아이 교육에 관한 책을 내실 생각을 하셨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이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까 중국인 기자 입장에서는 많이 생소했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기자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충분히 공감이 가신 듯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너무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스님한테 수백 수천명이 상담을 하다 보니까 그 내용의 일부를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책을 내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아이 문제에 대한 수백 수천명의 상담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 중의 일부를 책으로 출판하면 도움이 되겠다 해서 그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 것입니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주려 하다보니까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기자 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중국에서 오신 손님들에게 단주를 손에 걸어주시고 손수건과 열쇠고리를 한분 한분에게 선물하면서 중국어판 엄마수업 책에 사인도 각각 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과 함께한 시간을 만족해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대화한 내용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Sina 포털에 기사로 소개된다고 합니다. 중국인 분들과 인사를 다 마치니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강의 준비를 위해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저녁 730분부터는 세계를 바로 보는 눈(세계관)’ 6인생이란주제로 강의를 하셨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역사적 존재입니다. 사회적 존재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공간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관되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연관 속에서 나의 존재가 확인이 됩니다. 또 역사적 존재란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끝없이 연관되어져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 하나 개인의 삶의 시작 뿐 아니라 부모,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나의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씨족사입니다. , 씨족이 부족을 이루고 부족이 부족 연맹을 이루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므로 민족의 역사 소위 민족사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의 민족이 강대국에 의해 지배를 받거나 분열, 일시적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통합되는 모습 등의 여러 민족의 역사를 인류문명사라 합니다. 이런 인류 문화사, 인류 문명사는 결국은 생명의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역사는 결국 물질의 역사 속에 들어 있습니다. 물질의 역사라는 것이 결국은 우주의 기원, 우주의 역사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나를 좀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 나의 근원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우주의 역사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주의 역사, 또는 물질의 근원에 관한 문제로서 물질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물질의 근원을 추구해 보면 물질은 아주 미세한 존재들의 끝없는 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근원으로 가면 입자라고 할 수 없는 물질 아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세물질들의 고도한 결합이 이뤄지면서 결국은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 분자, 고분자에 이르고, 더 나아가서는 결국 물질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갖는 작동 원리를 갖는 것을 생명이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진화 가운데에서 인간종이 출현하게 되고 신석기부터를 인류문명사로 일컫는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적인 인간종의 진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문명사가 시작되면서부터의 인간종의 변화 발전은, 컴퓨터에 비유하였을 때 하드웨어적인 발전은 거의 없이 빠른 속도로 소프트웨어가 개발된 상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생물학적인 변화 보다는 정신적인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생명 작용이 물질에 토대를 두고 있듯이 정신작용 역시 생명작용에 근거를 두고서 계속 진화해온 것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첫 방법이 촉각입니다. 감촉에 의해서 정보를 알게 됩니다. 사물을 인식하는 여타 감각으로 미각, 후각, 청각, 시각이 있습니다. 촉각은 주로 고체를 감지하며 미각은 액체, 후각은 기체, 청각은 장파, 시각은 단파를 감지함으로써 정보를 수집하여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물을 인식한다, 안다 하는 것은 결국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세포, 뉴런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인간의 뇌에 여러 정보를 전달하고 저장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뇌에 대해서 연구한다는 것은 우주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만큼이나 연구할 거리가 많고 복잡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물학적인 고도의 진화에 기초하여 정신작용이 일어나지만 인간의 정신작용은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물질작용 및 생명작용에 반하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작용이나 생명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생명현상의 핵심은 자기 생명을 유지 하는 것과 종을 유지 하는 것에이기에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물질대사와 복제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배가 고프면 먹으려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이면 먹이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작용으로 인하여 배가 고파도 남에게 배려하기도 하고, 배가 불러도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소위 일반 짐승과 다르게 선심과 악심이 있으며 이는 정신작용의 모습입니다. 과거에는 정신작용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정신작용은 몸과 별개다.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신의 영역이다 등과 같은 오해가 많았습니다. 또 반대로 오늘날 과학이 발달함으로 인해 물질에 대한 연구가 정신현상까지 모두 설명해줄 것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물질작용, 생명작용, 정신작용 각각 개념적인 구분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세 가지가 결합된 총체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울증의 경우에도 물질적인 투약만으로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것도 온전하지 않으며 정신질환으로서 순수한 정신적인 상담만으로 접근하는 것도 온전한 방법이 아닙니다. 자율신경에 변화가 일어나면 신진대사의 분비가 일어나서 결국 안정을 가져오는 물질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측면도 있고, 이 뿐 아니라 주위 환경에 의한 정신작용의 습관에 의해 정신심리학적인 작용으로 큰 영향을 받는 측면도 있으며 아직 어느 한 가지가 주효하다고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의 원인을 살펴본다고 하였을 때, 화를 잘내는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태어나면서 받은 것으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는 반면에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어린 시절의 경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습관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UCLA 의과대학에서의 발표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와 학대받은 아이의 뇌크기가 월등하게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즉 부모의 극심한 스트레스는 자녀의 뇌 성장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전적인 면보다는 생후 경험하는 의식적인 면에서의 영향을 강조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안다고 할 때에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아 아는 것, 이 다섯 가지 감각 외에 6번째 인식의 방법이 바로 사고입니다. 뇌에서 생각하고 종합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가보지도 않고, 눈으로 보지도 않고, 어떠한 원리를 생각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 이것을 의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찰력이라고도 하고 지혜라고도 합니다. 이는 시공간이나 부분적인 것을 뛰어넘어 어떤 사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하며,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삶은 물질작용, 생명작용, 정신작용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꼭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공부만을 할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 삶에 대하여 자발적인 공부를 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이번에 공부한 여섯 가지 내용에 대한 책을 꼭 읽어보아야 합니다. 물질 현상, 생명 현상, 인간종, 인류 문명, 민족사, 나 자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돈과 지위, 권력에 대한 추구보다도 기본 인격, 기본 인식의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대중들의 지성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수행을 통해 기본 인격을 닦아나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전 인구의 1%만이라도 이러한 사람들이 생긴다면  사회 전체의 부정적인 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법하고 만일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듣느라 스님 강의가 끝나고 나서야 2시간이 훌쩍 지났음을 알았을 만큼 모두들 스님 특강에 대한 감사함과 기쁨,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우리 자신 인생의 희망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미래의 희망이 되고자 하는 부푼 꿈에 대한 벅찬 마음과 함께 그동안 스님 특강을 함께 들었던 도반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느라 서로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

     

내일은 중국내 빈곤층에 대한 지원,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중국 방문 일정이 있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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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존재가 상호연관맺고 있어 다른 존재의 도움으로 살아가고있는것이며 인간의 인식은 제한되어 있으나 불교는 이것을 넘어서는 홍익인간 재세이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고 하늘의 이치를 세상에 실현하는 우리민족의 건국이념과 같음을 알것같습니다..세계관 강의 감사합니다.스님 건강을 기원합니다.*^^*

2014-04-19 14:15:04

주디

스님, 감사합니다.

2014-04-18 12:07:37

깨다리

동영상보듯 써주신분덕분입니당()

2014-04-18 09: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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