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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북 정토마을 근교의 어르신들 봄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
두북 근교에서 오신 150여분의 어르신들과 봉사자 20여분이 전남 순천 송광사로 봄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출발 직전 버스 4대에 직접 오르셔 간단한 인사말씀과 오늘 하루 재미지게 놀아보자고 하시며 송광사로 출발했습니다. 봄꽃이 한창이라 차창 밖으로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어르신들의 또 하나의 봄나들이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송광사가 가까와지자 송수신기로 오늘 봄나들이를 가게 된 송광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송광사는 순천의 조계산 북쪽에 위치한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승보사찰에 해당하신다며 3보사찰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송광사는 고려시대때 16명의 국사를 배출해서 승보사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국사는 나라의 스승으로 한 절에서 한분 나기도 힘든데 열여섯 분이나 나오게 되어 승보사찰이 된 배경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나들이하기 좋다고 하시며 예년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 때문에 봄꽃들이 순서대로 피지 않고 한꺼번에 피고 지고 있다며 날씨로 인해 농사가 어떨지에 대한 염려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두북 정토마을을 출발한 버스는 약 4시간이 걸려 송광사에 도착 했습니다. 긴 시간이긴 했지만 어르신들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어르신들도 꼭 소풍 나온 어린애들 마냥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버스가 경내까지 가지 못하니 어르신들께 거동이 영 불편하신 분을 제외하곤 걸어서 올라가자고 하시며 함께 걸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걷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스님께서는 일주문 입구에 있는 송광사 안내 표지판을 친절하게 읽어 주셨습니다.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했으며,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9년간의 중창 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3개의 국보와 20개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초파일이 다가오는지라 송광사도 색색의 등들이 많이 걸려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절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의 모양이 예뻐서 유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리도 예쁘고 다리 아래 흐르는 물 속에 비친 등들도 예뻤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대웅전으로 들어가 참배하고 염불도 하고 간단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봉사자들의 안내로 어르신들께서는 질서정연하게 대웅전으로 들어 가 앞자리부터 앉으셨습니다. 자리가 정돈되자 스님께서 어르신들의 건강과 편안한 노후를 위한 축원발원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은 이어서 행복한 노후를 위한 법문도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서 보니 예전에 내가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꼭 잘한 것도 아니고 잘못했다고 한 일들이 꼭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구슬치기를 잘해 구슬을 많이 따서 보관까지 했는데, 그 시절엔 많이 따고 많이 가진 것이 잘한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남의 구슬 따 먹은 게 잘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구슬을 땄더라도 친구들에게 나눠줬다면 아마 지금쯤 스님은 어릴때부터 보통아이들과는 달랐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요?(웃음) 그리고 공부해야 할 시절에 소 풀 베러 다니고 집안일 거든 것이 그 시절엔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잘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해외 나가서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인생을 7,80은 살아야 이런 이치를 안다며 ‘살아 왔던 삶 자체가 공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진짜 귀한 걸 귀한 줄 모르고 별로 필요 없는 걸 정말 귀한 줄 잘못 알고 살아왔습니다. 다시 살아라고 하면 아마도 다 잘 살 것입니다.”라고 해서 어르신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셨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미리 좀 아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을 때가 되어야 조금 알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너무 집착해서 악착같이 죽기 살기로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하시며 편인히 노후를 맞이하시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졸업하고 저 세상에입학할 때 모든 점수의 기준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기준과는 좀 다릅니다. 이 세상 살 때에는 손해 안보고 이익만 보려고 했고, 집도 크게 넓히고, 옷도 좋은 것 입어야 잘 사는 것 같지만 저 세상 갈 때는 손해도 좀 보고 옆에서 ‘에이, 바보야’하는 소리를 좀 들어야 점수가 잘나옵니다. 저 세상 입학 점수가 좋으려면 악착같이 살지 말고 마음을 좀 후하고 너그럽게 가지면서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영감님과 같이 사시는 분들은 잔소리도 좀 그만하시고 영감님들도 마누라 이제 그만 부려 먹어야 합니다.”라고 하자 법당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다음 생을 위해 너그럽고 후한 마음을 내어 베풀며 행복하게 사는 게 지금 편안하게 노후를 맞이하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자식들 걱정도 그만 하시고, 자식들을 위해서 논, 밭 팔아 주지 말고, 집을 잡혀 돈 빌려주지도 말고 고향을 지키며 자식들이 나중에 돌아 올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고, 자식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라며 자식들에 집착말고 편안히 노후를 맞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의 세계에 대해 해학적으로 풀어주시는 스님의 지혜가 어르신들의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습니다.
“항상 살아 있는 것에 고맙다 생각하시고, 과식과 과음도 줄이시고, 농사일도 너무 과로해서 하지 말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십시오.”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대웅전을 나와 왼쪽 박물관으로 들어가시며 스님은 송광사에는 유명한 것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비사리구시와 몇 백개를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 그릇(능견난사), 그리고 향나무라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비사리구시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며 구경을 하십니다.
그리고 송광사에는 탑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절터가 물 위에 뜬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무거운 돌탑이나 석등이 있으면 절터가 무너진다하여 탑을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송광사에 또 하나 없는 것이 ‘풍경’인데 참선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없다고 합니다. 역시 승보사찰로서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스님과 어르신들은 사찰 여기저기를 둘러보시고 대웅전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의 미소가 봄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워 보입니다.
스님께선 점심공양을 위해 어르신들과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점심으로 비빔밥을 드시고 스님께선 헤어지기 아쉬우신지 주변에 앉아서 소화도 시키고 쉬실만한 공간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셔서 마침 식당 앞에 넓은 평상이 있어 어른신들과 모여 나들이에 빠질 수 없는 노래부르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을별로 가수들 나와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하시니 각 마을별로 나오신 어르신들은 농사 지으시면서 언제 그렇게 노래를 배우셨는지 구성진 노래가락에 편안함 마저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활천에서 오신 어르신 한분은 노래 대신 어려운 불교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설법해주시고 이렇게 우리와 가까이 해 주신 스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의 흥에 겨운 노래자랑이 끝나자 스님께선 내년을 기약하며 마무리 인사를 하셨습니다. 늘 농사일과 자식들 걱정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마음에도 오늘은 봄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래 봅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서울에서 강의가 있기 때문에 송광사에서 서울로 향하셨고, 어르신들은 두북으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을 전하시며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두북 어르신 봄 나들이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순천 법당에서 어르신들의 순례를 도와 드리기 위해 봉사자 11분이 참석해주셔서 행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세계를 보는 눈 5, 6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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