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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5일 토요일. 전국의 청년들과 함께 하는 경주 봄 역사기행이 있는 날입니다. 법륜스님께서는 청년들과의 경주역사기행에 앞서 다음주에 있을 전국 정토불교대학의 경주남산순례 답사팀과 경주 IC앞 서라벌 광장에서 회의가 있었습니다.
오늘 답사를 하는 분들과 팀별로 코스를 설명하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곳, 길을 잘 못 들수 있는 곳, 전체가 모여서 식사하는 곳등 하나하나 점검해 주시면서 답사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스님께서는 청년들이 모이는 무열왕릉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전 9시30분, 무열왕릉 앞에서 청년들과 스님께서 만났습니다. 서울, 인천, 부천, 수원, 청주, 대전, 광주, 대구, 포항, 부산, 울산, 진주, 창원 총 13개 지역을 하나하나 언급하시면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경주역사기행은 역대 최대 인원인 376명이 참가했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행사의 취지를 세가지로 꼽으셨습니다. “첫째, 봄꽃 나들이 왔다. 둘째 경주가 역사의 도시니까 역사공부를 한다. 셋째 친목을 도모한다. 오늘 저와 산책하면서 이야기 나누어요.” 라고 말하시며 청년들에게 경주역사기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셨습니다.
오늘 돌아본 곳은 무열왕릉-김유신장군묘-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능지탑-황룡사지-분황사였습니다.
제일 먼저 간 무열왕릉은 신라 제 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의 무덤입니다. 삼국통일의 세 영웅이라고 하면 태종무열왕, 김유신, 문무대왕 세분을 주로 이야기 하는데 그 중 태종무열왕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분입니다. 법륜스님께서 삼국통일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 할 때 독일의 사례도 있지만 우리역사 속에서 가야와 신라의 합의 통일이 통일의 시너지효과를 보여준 사례이고 남북통일을 할 때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청년들은 무열왕릉에 삼배한 후 단체사진을 찍고 김유신 장군묘까지 걸어갔습니다. 스님의 표현대로 벚꽃이 오지게 핀(만발한) 자전거 길을 따라 함께 노래 부르며 걸으니 참 좋았습니다. 벚꽃 구경을 온 시민들이 법륜스님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김유신 장군묘에 도착해서 한바퀴 돌며 묘 하단에 조각된 지신상을 확인하고 묘에 삼배를 드린 뒤, 김유신 장군묘 아래에 있는 홍무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각 모둠별로 모여 스님과 사진을 찍고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천왕사지에 가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여 이동했습니다. 벚꽃 관광객이 많아 도로에 차가 많았지만 덕분에 벚꽃 가득한 도로를 실컷 구경했습니다. 사천왕사지에 도착하여 강의를 시작하니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고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참가자들은 스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천왕사는 당나라 군대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명랑법사님과 12명의 유가승들이 문두루 비법을 행하기 위해 (신과 부처의 힘을 빌리기 위해) 지은 절입니다. 결국 30만 당나라 군대가 서해에서 풍랑을 만나 수몰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사천왕사지에서 낭산 중턱으로 걸어 올라가니 선덕여왕릉이 나왔습니다. 선덕여왕은 찬란한 신라문화를 꽃 피우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신라 27대, 최초의 여성 왕입니다. 16년간 제위하며 황룡사 9층탑, 분황사, 영묘사 창건, 첨성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춘추, 김유신 등 많은 인재도 선덕여왕 때 배출된 인재입니다. 그 후 20년 뒤 그들이 통일의 주역이 된 사람들입니다. 소나무가 빽빽한 산 중턱에 호젓하게 선덕여왕릉이 있어서 산책하기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선덕여왕 드라마의 인기에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선덕여왕릉을 지나 언덕을 내려오니 능지탑이 나왔습니다. 능지탑은 문무대왕의 화장터로 문무대왕의 유언에 따라 화장 후 유골은 동해바다 대왕암에 묻고 재를 모아 이곳에 탑을 쌓았습니다. 능과 같은 탑이라 하여 능지탑이라 이름지어진 곳입니다. 이런 능지탑은 발해 외에 신라에는 이곳밖에 없다고 합니다.
마을길을 따라 능지탑에서 약 20여분간 걸어가니 너른 들판에 황룡사터가 나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초석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9층 목탑이 있었을 것을 상상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황룡사터를 지나 분황사로 가는 길에 예쁜 유채꽃이 벌써 피었습니다. 청년들은 모둠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유채꽃밭에서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단체사진을 찍으며 4월의 추억을 하나 남겼습니다.
법륜스님께서 분황사에 들어서자마자 관계자 분들의 많은 인사를 받으셨습니다. 분황사는 법륜스님께서 고등학교 때 처음 출가하시게 된 절이기도 합니다. 분황사는 원효대사의 본찰이며 가장 오래 머무셨던 절로 유명한 곳입니다. 스님께선 이곳에서 청년들에게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원효대사는 어렸을 적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나이 스물 아홉 살에 출가를 하셨습니다. 원효대사는 주아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아 ‘한 생각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지네.’ 하며 깨달음을 얻고 위해 당나라에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원효대사는 자신이 깨달은 관점에서 수많은 경전과 논장의 주석서를 써서 신라에서 가장 유명한 고승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대한대사란 분이 원효대사를 찾아와 부곡(천민들이 사는 부락)으로 데리고 가서 주모에게 가 술 한상 차려달라고 하니 원효대사는 창피함에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 때 대한대사는 “대사! 여기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두고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인가.”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불구부정이고 제법이 다 공한 것인데 실제로 부딪히니 ‘어. 아니네.’ 라고 느낀 원효대사는 내가 공부가 덜 되었구나 싶어 머리를 길러 한 절에 들어가 신분을 숨기고 부목 생활을 했습니다. 구박도 많이 당하며 부목 일을 하는 가운데 스님들의 토론에 아는 체를 했다가 결국 신분이 들통 났습니다. 그래서 야밤에 도망을 가려고 했더니 그 절에 있던 꼽추라고 천대받던 방울스님이 ‘원효 잘가게!’ 하는 거에요. 그 말에 원효대사는 크게 깨닫게 됩니다. 그 절의 모든 스님이 원효 대사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방울스님 만큼은 원효대사를 알고 있었던 거죠. 원효대사는 “여기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천민”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이해했었는데 방울스님 말을 듣곤, ‘분별을 일으키는 지금 내가 중생이구나’ 라고 딱 깨쳤다고 합니다. ‘너는 지금 네 마음을 안보고 밖을 보고 분별을 하느냐’ 라고 했던 것입니다. 깨쳐버리면 본래 구제한 중생도 없다는 게 제법이 공한 것인데, 예전에는 이론으로 깨쳤다면 이제는 체험으로 깨치게 됐습니다.
천하고 귀한 존재가 없다는 도리를 깨달은 원효가 천민마을에 친구가 되기 위해 가니 이젠 그 사람들이 원효를 위대한 원효대사라고 떠받들어 주었습니다. ‘원래 성스러움도 없고 부정한 것도 없는 것인데 왜 나를 성스럽게 생각할까?’ 그 이유는 그 유명한 원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그 유명한 원효를 버리자’ 하여 요석공주와 스캔들을 일으키자 모든 사람들이 원효를 파계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쫓겨나자 그때야 비로소 천민들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원효는 민중 속으로 들어와 민중과 함께 살았습니다. 역사 속에서 원효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지금 대부분의 절에 가면 모두 다 원효대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걸 ‘화현’ 이라고 합니다. 민중 속에서 수많은 원효로 나타났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신라의 부처’라고 칭해지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한 대학생 참가자는 ‘원효대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다’라고 소감을 밝혀 주었습니다.
분황사를 끝으로 오늘 경주역사순례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지금 경주는 벚꽃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관광객들로 거리는 차들로 가득찼습니다. 스님께서도 분황사에서 청년들의 숙소가 있는 불국사 근처로 가는데도 1시간 이상이 걸렸지만, 가는 길 내내 화창하게 핀 벚꽃 구경을 하였습니다.
숙소에서 식사 후 8시부터 강당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루 종일 경주 일대를 걷느라 피곤했을 법도 한데, 청년들은 기대되는 얼굴로 스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즉문즉설은 주로 이번에 봄 불교대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이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묻는 분,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할 때 얼굴이 자주 붉어져 고민이라는 분, 아토피 때문에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묻고, 속을 썩이는 동생에 대한 어머니의 고민을 대신 물어봐주신 분, 불교대학에 중도를 배웠는데 허무주의랑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물으신 분, 남자를 잘 만나려면 어떻게 수행해야하는지 물은 분, 자신감이 없어 사람들의 눈을 잘 못 처다보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물으신 분, 자격증 공부를 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호소하신 분, 헤어진 남자친구를 어떻게 하면 다시 붙잡을 수 있는지 방법을 물으신 분, 스님의 공부 비법을 물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분의 즉문즉설을 옮깁니다.
질문자 : “어머니께서 고등학생인 여동생이 집에도 잘 안들어오고 남자친구에게만 빠져있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하시고 스트레스를 받으십니다. 어머니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시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스님 : “내가 아끼는 시계를 갖고 있다고 합시다. 이 시계를 잃어버릴까봐 늘 전전긍긍하고 있을때 이 시계를 안 잃어버리는 것도 좋지만 잃어버리는 것도 나에겐 도움이 됩니다. 전전긍긍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주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서로 좋아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인생을 전전긍긍 하며 살게 되요. 좋아하는 건 좋은데 전전긍긍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반면에 헤어지게 되면 이별의 아픔이 있지만 전전긍긍 안 해도 되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딸이 늘 집밖에 나가 있으면 책임 안 져도 되잖아요.(웃음) 그런데 집에서 착실하게 말 들으면서 있으면 결혼 시켜야지, 이것저것 챙겨주어야지, 굉장히 일거리가 많아요.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집을 나가 주는 것이 효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게 어머니한테는 해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 딸이 집이 들어와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자기가 행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집착하는 마음이 생길 때 괴로움이 생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시간 반 동안 즉문즉설을 마치시고 법륜스님은 내일 일정을 위해 청년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셨습니다.
내일은 두북에 울력 와 있는 실무자들과 산행을 할 예정입니다.
* 이 글은 청년정토회 기획홍보팀장 박세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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