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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수강생 약 60여명과 경주 역사기행이 있었습니다.
서울에는 비가 온다지만 경주는 쾌청하면서도조금은 더운 가을날씨였습니다. 오늘 경주역사기행은 법흥왕릉에서 10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실 신라의 역사는 그동안 우리가 역사책에서 바라본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스님께서 우리에게 신라의 역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얼굴에 가득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내는 스님께 청년들도 반갑게 인사를 하며 스님과 함께 역사기행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에서부터 석탈해왕, 내물왕, 지증왕등 신라왕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고대 신라의 역사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특히 23대 법흥왕에 와서 신라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법제를 편제하는 등의 개혁이 있었으며, 불교를 공인하는 개방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흥왕의 개혁· 개방 정책 뒤에는 금관가야와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금관가야와 신라는 전쟁을 통해 통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양 지도부들의 합의를 통해 통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라는 가야의 지도부를 신라의 지도부로 인정하였으며, 그들의 사상과 종교를 인정하였습니다. 우리는 금관가야와 신라와의 통합에서 현재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합니다. 통일한국은 남한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형식이 아닌 북한을 남한이 포용하는 통일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전범(典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법흥왕이 금관가야의 종교인 불교를 인정해서 금관가야가 신라로 복속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면 남한도 북한과의 통일을 위해 북한의 체제 중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인정해 주는 것이 우리의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라와 가야의 통일은 신라 발전에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야를 받아들이면서 신라의 문화가 고급화되었으며 가야의 뛰어난 인재가 신라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북한을 포용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더욱 커지게 되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며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에서 남북통일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다음 장소는 태종 무열왕인 김춘추의 왕릉이었습니다. 무열왕릉은 깨끗하게 잘 정비된 공원의 느낌이었습니다. 앞의 법흥왕릉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것 같은 분위기와는 상반된 분위기였습니다. 무열왕은 신라 29대 왕으로 27대 선덕여왕의 조카이며 통일의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다음은 김유신 장군 묘로 이동했습니다. 누구나 김유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두 가지씩 알고 있을 정도로 김유신은 위대한 인물로 우리에게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유신은 왕이 아님에도 죽은 후 흥무대왕이라고 추존을 받았으며 살아생전에도 태대각관이라는 최고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김춘추와 함께 무신으로서 삼국 통일을 이끌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수완가였습니다. 김유신 장군묘는 보존이 잘되어 있었으며 신라 후기 왕릉에서 나 볼 수 있는 12지상과 석축이 있어 그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무덤을 삥 돌면서 스님께 김유신과 김춘추와 관련된 여러 일화를 들으며 김유신, 김춘추가 살아온 삶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짚어갈 수 있었습니다.
김유신 장군묘를 돌아본 후 근처의 흥무공원의 넓은 잔디밭에서 스님과 함께 청년들은 조별로 모여서 김밥과 빵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년들은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며 경주의 이곳저곳을 다녀 허기가 졌는지 다들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변은 완연한 가을이라 이곳저곳이 단풍나무,은행나무로 아름다웠습니다. 가족 단위의 소풍을 즐기러 온 사람들도 많아 주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전이 정치와 군사적으로 통일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묘를 다녀왔다면 오후는 주로 정치적, 사상적으로 통일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묘와 장소를 둘러보았습니다.
오후 첫 코스는 사천왕사 터였습니다. 현재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터이지만 당시 신라를 침략하려던 당나라 군대를 부처님의 힘으로 퇴치하기 위해 문무왕이 세운 절입니다. 사천왕사를 지은 후 그 곳에서 명랑법사가 문두루 비법을 행하니 서해에 풍랑이 쳐서 당나라 배를 두 번이나 침몰시킨 기적을 이루게 한 곳이라고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사상세계와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사천왕사의 문두루 비법 덕분인지 당나라 군대는 신라에서 완전히 물러갔으며 신라의 완전한 삼국 통일은 신라와 당나라가 다시 화친을 맺은 676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와 같다고 하시면서 신라는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루었으나 현재 우리나라는 국방의 주권조차 온전히 우리 것이지 못한 현실을 생각 할 수 있었습니다.
사천왕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덕여왕릉이 있었습니다. 선덕여왕릉은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으나 전에 방영된 드라마 <선덕여왕> 때문에 현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선덕여왕은 신라통일의 주역인 김춘추와 김유신등을 인재로 키운 신라 최초의 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보다 더 뛰어난 지혜와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선덕여왕의 리더십은 현재 청년 리더십 아카데미의 여성 수강자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문무대왕을 화장한 화장터에 세운 탑인 능지탑을 지나 우리는 황룡사지터와 분황사로 이동했습니다.
황룡사는 원래는 궁을 세우려 했던 장소에 황색 구렁이가 나와 결국 절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창건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빈 터이지만 그래도 방대한 규모로 절의 전통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황룡사는 사면에 문이 있으며 남문에서 시작해서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있는데 이 건물들이 모두 일직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황룡사의 탑은 227척, 약 67m 로 지금의 25층 건물 높이의 9층 목탑인데, 원나라의 침공으로 소실되었으며 금당이나 강당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넓은 벌판에 있었던 과거 황룡사의 웅장한 모습을 상상하며 스님의 말씀처럼 하루빨리 황룡사가 다시 복원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룡사터에서 한 수강생이 가야금 산조를 연주해 주었는데 가야금을 역사의 현장에서 들으니 그 선율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분황사는 스님이 출가하셨던 절로 원효대사가 있었던 절이기도 합니다. 절 입구에 자리잡은 모전석탑은 벽돌을 모방해서 만든 탑으로 벽돌처럼 돌을 깎았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또한 모전석탑은 이형탑으로 비슷한 모양이 없기 때문에 원형을 복원하기가 어렵고 지금 남아있는 3층 석탑의 원 모습은 5~7층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분황사에서 오늘 경주역사기행을 모두 마무리 하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바로 스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경주역사기행에서 둘러본 신라 통일의 여운을 현실적인 입장에서 제시해주셨습니다.
신라는 원래부터 통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고 외세의 침공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 통일을 했기 때문에 민족사의 활동범위를 축소시켰다고 비판 하시면서 스님의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신라가 원대한 비전이 없었던 이유는 역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물 사상이라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지배 엘리트 계층의 건전성 때문이고, 둘째 변화된 국제 관계를 잘 이용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신라의 통일 과정에 대해 짚어주면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에 걸친 우리 민족의 역사의 흐름을 통해 우리 민족이 동북아 대륙을 제패한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긍심을 가져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의 문제를 바라볼 때도 남북한 통일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통일을 바라보는 입장은 과거의 감상론이나 당위론이 아니라 실리적인 이해관계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통일 조국이 아닌 분단 조국에서 자란 우리의 청년들은 머리로는 통일이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통일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장 동력이 거의 소진되고 있어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1인당 GNP가 2만불을 넘어서면서 저성장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주요 교역국인 미국과 일본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저출산, 고령화, 청년들의 3D 직종 기피현상 등 산재되어 있는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남북한의 통일입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북한의 개발과 더불어 동북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 결국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우리가 그 중심 국가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남북한의 통일은 군사적 대립을 막아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며 우리가 통일을 통해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고 통합하는 모습은 세계 문명의 모범이 되어 사상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시며 하지만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스님께서는 국민과 지도자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가야와 통합하기 위해 신라가 미리 가야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듯이 우리도 북한과의 통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오늘 경주역사기행을 통해 남북통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좋을지에 대한 스님의 귀한 말씀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녁식사 후 수강생들이 너도 나도 기다리던 <즉문즉설>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직장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문제 등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통일과 관련한 정치적인 부분까지 다양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새터민인 수강자가 자신이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북한에서 군복무를 했던 다른 새터민에 대해 사람들이 벽을 만들던 일을 예로 들면서 새터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느 집단이나 텃세는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기 영역에 이주민이 오면 경계하고 텃세를 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겪는 남한 사회의 텃세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도를 지나치면 당당히 그 부분에 항의를 해야 할 것이고 철회를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부러 자신이 새터민이라고 밝힐 필요는 없으나 차별이 두렵다고 해서 자신의 출신에 대해 숨기거나 속일 필요는 없으면 더구나 위축될 필요도 없습니다. 습니다.
또 다른 분은 앞서 한 강의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통일 한국에서 한국은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모습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하나요?”
스님께서는 “지금까지 아시아의 문명은 미국이나 서양의 문명을 모방하는 데만 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빠른 성장을 이루었지만 모델 국가와 그 기술이나 문화의 격차가 줄어들수록 그 성장 속도가 더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하는 문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창조력이 있는 국가는 다른 나라에서 그 문명을 배우려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구 문명을 모방하고 있지만, 과거 중국의 당송, 명청 시기의 천여년은 중국을 모방했던 것이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는 인도를 모방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모방에 익숙해져 왔기 때문에 창조가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삼성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좀 더 나은 것을 만들 수는 있어도 없던 물건을 새롭게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금 정체기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정체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양적 확대를 통해 극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 처방은 아닌 한시적 처방입니다. 방법은 통일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것은 우리가 창조력을 높여 새로운 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창조력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 사상적, 문화적, 환경적인 창조력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새로운 문명을 통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서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직장 내에서 업무를 많이 맡다보니 건강상의 문제, 사람들과의 트러블이 많아서 욕심을 덜어내고자 노력도 했는데, 다시 팀을 맡게 되니 원상태로 돌아간 것에 대한 고민을 내어 놓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에 너무 여유부리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려서 일을 할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맡긴 일에 못한다고 거절하면 자신의 역량은 더 이상 커지지 않습니다. 역량에 넘치는 여러 일을 맡다 보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자신의 역량은 늘어나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되던지, 사람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게 되던지 여러 가지 나의 역량을 높이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라며 젊을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맡은 일에 임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청년들은 스님과의 짧은 기행 속에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며, 통일 코리아의 청사진도 그려보았고, 각자의 인생 고민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강의가 마무리 되면서 오늘 경주역사기행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선운사에서 대중부 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일정입니다.
* 오늘 청년리더십아카데미(청리아) 경주역사기행은 청리아 제3기 윤보라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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