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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토 불교대학생을 대상으로 경주 평지순례가 있었습니다. 어제는 청년들 약 200여명과 함께 했고 오늘은 정토 불교대학생 약 1030여명과 함께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참가한 분들은 대부분이 이번 경주순례가 처음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경주순례를 안내하시는 이유는 변방의 작은 신라가 어떻게 삼국을 통일하고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현재 우리의 과제인 남북통일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입니다.
아침 8시 30분, 전국에서 온 정토 불교대학생 1030여명과 함께한 무열왕릉에서의 입재식을 시작으로 오늘 경주 평지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토 불교대학생들은 스님의 법문에 열심히 귀 기울이기도 했고, 또 스님께서 법문을 하는 동안에도 곳곳에서 스님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무열왕의 릉을 바라보며 신라의 국가 기원부터 삼국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개괄적인 설명을 먼저 들었습니다.
B.C. 57년경에 신라는 6개 씨족으로 이뤄진 부족국가로 시작하였고,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나정(우물)에서 말울음소리가 들려 갔더니 흰말은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우물가에 붉은 알이 있어 깨어 보았더니 옥동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그 아기가 자라 18세가 되어 임금으로 추대되었다는 설화를 시작으로 신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신라 초기에는 외래문화의 영향이 적었기에 왕을 뜻하는 용어로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이라는 말을 했다가 이후 22대 지증왕 때부터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왕’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신라 17대 내물 마립간 당시에는 신라보다 가야가 훨씬 세력이 컸으며 일본에까지 나라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는 가야에서 일본으로 문명이 이동하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신라보다 앞서가던 가야는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하였고 신라는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여 광개토대왕이 5만 군대를 보내 가야를 물리쳤고, 이 후 금관가야의 세력 약화로 후기가야의 중심은 대가야(지금의 함양)로 이동하였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최대 경쟁국이었던 백제를 견제하고자 하였고 가야는 백제와 연대를 맺었기에 고구려의 공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야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력이 커진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무력이 아닌 협상과 합의가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받아들이고 가야의 신앙인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분쟁과 혈투의 통일이 아닌 우리 역사에 모범적인 합의 통합의 사례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남북통일을 이루어 나갈 때 서로가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나가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신라는 가야와의 합의통일로 인해 단순히 1+1=2가 아닌 1+1=10 혹은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신라의 영토 확장뿐만 아니라 인재등용의 폭이 넓어진 점도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와 가야의 통일이야기와 더불어 신라의 개혁과 개방정책에 관한 설명을 해주신 후 스님은 대중들과 함께 태종무열왕릉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지역별로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소인 김유신 장군묘를 향해 차에 올랐습니다.
오늘 참가한 인원이 많다보니 김유신 장군묘에서 다함께 모여 설명듣기가 어려워 흥무 공원에서 모여 김유신 장군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 당시를 다시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태종무열왕을 도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은 당시 고구려에 승리하고 신라까지 넘보는 당나라에 강력하게 저항했으며, 문무대왕을 도와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태대각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흥무대왕으로까지 추존되었다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과 1030명의 정토 불교대학생들은 줄지어 흥무공원에서 김유신 장군묘까지 걸어가면서 경치도 구경하고 스님의 말씀도 들었으며, 12지 지신상이 잘 보존되어 있는 김유신 장군묘를 참배하고 다시 사천왕사지로 이동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천왕사지에서 사천왕사가 세워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나라의 20만 대군이 신라를 침략하려 한다는 소식을 문무왕의 동생이자 김춘추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이 당나라에 유학와 있던 의상 대사에게 소식을 알리고, 의상대사가 신라에 전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신라는 당의 침략을 막기 위해 낭산 기슭에 사천왕사를 짓고 불보살과 신들의 힘을 빌려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자 사천왕사에서 명랑법사를 중심으로 문두루 비법을 펼치자 서해에서 폭풍이 일어나 당나라 20만 대군이 전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천왕사가 지어진 연유, 여기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또, 많은 대중이 이동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이곳 사천왕사에서 선덕여왕에 얽힌 일화 등을 듣기도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절이지만 이곳에서 사천왕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더 뿌듯합니다.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이곳 사천왕사지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선덕여왕릉, 능지탑을 거쳐 황룡사까지 걸어가면서 가을을 만끽하며 가다가 동요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황룡사지에서는 앞에 온 사람들이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장기자랑도 하고 잠시 흥겨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이자 스님께서는 황룡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습니다.
“황룡사 탑은 67미터 25층 건물 높이로 당시 신라의 기술로는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제의 아비지를 비롯한 200명의 기술자를 불러서 나라의 재앙을 막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황룡사도 호국사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룡사에 대해 먼저 설명해 주시면서 황룡사의 강당인 백고자에 대한 이야기, 원효대사에 얽힌 일화 등도 함께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고등학교 때 이 황룡사를 복원하기를 발원하였는데 아직까지 복원 못했다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황룡사터를 둘러본 후 오늘 경주 평지순례를 마무리 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오늘 저녁공양은 동국대 교수불자회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교수님들은 스님께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묻기도 하고 특히 지역 대학의 어려움을 이야기 했는데, 스님께서는 "이는 지방분권과 관계가 있어서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지방 분권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동국대 백주년 기념관에서의 강연에는 종단의 학교이다 보니 스님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일요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연 시작 전부터 490석이 이미 가득 찼습니다. 미리 오신 분들은 사전영상으로 스님이 출연하셨던 힐링캠프 녹화 방송을 시청 하며 가끔 담소도 나누고 웃기도 하면서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강연에 조금 늦게 오신 분들은 자리가 없어 통로에 자리를 잡고 앉기도 했습니다. 오늘 강연엔 550여명이 오셔서 스님의 강연을 경청했습니다.
먼저 질문하신 두 분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힘들어서 괴로워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종가집 막내딸로 자라면서 소외되고 방치된 것 같고 늘 눈치 보며 살았는데 결혼해서 시댁과의 관계가 어렵고 매사 예민해서 고민이라는 분과 엄마와의 관계 문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고등학생의 질문이었습니다. 다음 이어진 질문들은 깨달음의 길에서 법륜스님처럼 지혜를 얻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분, 깨달음을 얻은 후 실천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스님처럼 잘 실천 할 수 있는지를 여쭈어 보는 분이었습니다. 곧이어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 힘들어하며 스님께 질문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데 결혼을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시는 분, 일년에 세 번이나 회사를 옮겼는데 다시 새로운 회사의 입사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고민 하시는분이 있는가 하면 한 회사에 28년째 다니고 있어 재미가 없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재미나게 사는 방법을 좀 알고 싶은 분까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고민들이 스님께 질문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의 근기 따라 일화와 비유를 들어 가면서 쉽고 재미있게 답을 이어 가셨습니다.
그 중 한 분은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나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서 장사하면서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힘은 돈의 힘이라고 여기며 돈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을 엄마에게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엄마처럼 돈에 집착하고 돈을 악착같이 모아 결혼도 하고 살았는데 근래에 사기를 당해 모아두었던 돈을 다 잃게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 하시며 스님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여쭈었습니다.
질문을 다 들으신 스님께서는 “남 줄려고 악착 같이 모았네요.(웃음) 모을 때는 모으는 재미가 있고 내가 최선을 다해 모으는 것입니다. 모아둔 재산을 누가 가져가서 쓰던 크게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모으는 그 자세에서 성장한 것이지 모아놓은 돈 그 액수를 누군가가 질문자에게 준다고 해서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적으로 보면 빚 갚았다 생각하고 놓아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없어진 것이잖아요? 찾을 수 있나요? (아니요) 찾을 수 없으면 놓아버리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마음을 편히 먹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하니 질문자는 다시 “그렇게 살려고 마음을 먹는데 하루에도 수백번씩 수천번씩 생각이 납니다.” 라며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다시 쉽게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 잃었다 하지만 아직도 질문자에게는 좋은 조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면서 계속 괴로워하면 계속 괴로움이 더 일어나서 성격도 버리고 사람을 의심하는 병도 생기고 건강도 헤치고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부처님 말씀을 빌리면 ‘제 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처럼 돈을 잃어버린 제 1의 화살은 어쩔 수 없이 날아와 맞았지만 그다음의 화살은 내가 나에게 쏘아 나에게 손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나를 해쳤는데 다음에는 자신이 스스로를 헤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질문자가 많은 노력을 했다면 뭐가 남아 있겠어요? 경험은 쌓여 있겠죠. 여러분들 똥 누고 뒤도 안돌아 본다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시죠? (네) 왜 똥을 누고 뒤도 안돌아 볼까요? 똥 만드는데 얼마나 노력하는데요. 온갖 반찬 맛있게 만들어서 이걸 꼭꼭 씹어서 먹고 소화시키고 하루 지나서 노란 똥을 힘들게 만들어 놓고는 그걸 주워 가야지 그걸 누고 왜 그냥 갑니까? 근데 우리는 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죠. 똥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필요한 에너지는 다 뽑아쓰고 똥은 찌꺼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뒤도 안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버는 과정에서 질문자의 역량이 커지고 돈은 남은 찌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질문자가 돈에 집착하는 것은 지금 찌꺼기에 연연하고 있는 겁니다. 거름하려고 놓아뒀는데, 이웃집 개가 와서 먹어 버리면 그래 또 누면되지 하면 되는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에 모두 함께 크게 웃었습니다. 질문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의 말씀을 듣다가 마지막 말씀을 듣고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답변과 더불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놓고 살아라는 말은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다만 할뿐이다’ 라는 말입니다. 인과를 믿으면 다만 할 뿐인 것입니다. 과보는 저절로 오는 것이니까요. 과보에 연연하는 건 인과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복은 안 지어놓고 복은 받겠다고 합니다. 죄는 지었으면 기꺼이 받아야 되고 빚을 졌으면 갚아야 됩니다. 죄를 지어놓고 안받을려고 피하고 발버둥 치고 그러니 불행한 것입니다. 수행자는 인과를 믿고 인연의 과보를 기꺼이 받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 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지은 인연의 공덕은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원하는 때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불교 신자라면 불법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불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교 신자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법에 귀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1의 화살은 맞아도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라고 외우면서도 제2의 화살을 자초하면서 괴로워하는 건 불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제 1의 화살은 안맞으면 좋지만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2,3,4로 나아가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받으려면 받고, 안받을려고 하면 안받아도 되는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길을 가다가 벽돌이 떨어졌다고해서 늘 벽돌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건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다니다가 떨어져 맞았다면 빨리 병원가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치료한 뒤에는 전에도 맞았는데 또 맞을까봐 하늘 쳐다보고 다녀야 됩니까? 또 맞으면 병원에 가면 됩니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있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빅수 치고 웃다가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습니다. 재미 있으면서도 유익하기까지 한 이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함께 하신 참가자 분들과 봉사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여수와 광주, 전주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 오늘 동국대 강연은 대구의 권명순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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