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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년학교 2기 청년들 약 200여명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가을 경주워크숍이 있었습니다.
아침 9시40분쯤 스님은 전날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태종무열왕릉 앞에서 3배를 올린 뒤 본격적인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영웅들의 묘소 참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신라라는 국가의 기원부터 삼국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개괄적인 설명을 시작으로 역사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소 쌀쌀한 아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스님의 말씀에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당시 신라보다 세력이 강했던 가야는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하였고, 위기에 처한 신라는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이에 광개토대왕은 5만 군대를 보내 가야를 물리쳤습니다. 이 후 금관가야는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후기 가야의 중심은 대가야로(지금의 함양) 이동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후 가야의 세력은 약화되고 신라의 위상은 높아져갔지만 세력이 커진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무력이 아닌 협상과 합의가 이루어 졌다는 점을 스님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기존의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진골 왕족으로 인정하였고 서로의 지위를 보장해 나가면서 합의하여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신라와 가야의 통일이야기와 더불어 신라의 개혁과 개방정책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신 뒤 자리에 일어나 태종무열왕릉을 청년들과 함께 산책하시면서 다음 장소인 김유신묘를 향해 차에 올랐습니다.
장소를 이동하여 11시 에는 김유신묘에 도착했습니다.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태종무열왕을 도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은 당나라를 이땅에서 추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신라 하대에는 흥무대왕이라는 왕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김유신 묘에 대한 스님의 안내가 끝나고 동국대학교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이후 오후 1시에는 동국대학교 캠퍼스 내에 백주년기념관에서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백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리 질문을 잘 준비해온 청년들은 그동안 스님의 책 ‘새로운 백년’을 읽고 세미나 하면서 가졌던 의문들을 이 기회를 빌려 스님께 여쭤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자는 부산에서 온 청년이었습니다. 새로운 백년을 읽고 나서 무엇보다 역사 의식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최근 역사 왜곡 교과서에 대한 문제가 붉어지고 있고 요즘 일본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영토분쟁을 홍보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본의 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스님은 “외부국가 즉 제 3자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독도분쟁은 단순한 영토분쟁으로 보지만, 우리나라에게는 영토문제 그 이상입니다. 일본이 과거 한반도 침략에 대한 반성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나아가 그들의 어두운 과거를 부정하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역사왜곡의 문제입니다. 현재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일관된 자세로 우리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의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적대적인 감정싸움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일본의 행동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독립당시 우리의 힘으로 온전히 독립을 하지 못했고 이후 미-소의 힘이 한반도를 점령했기에 분단이 되었습니다.
이후 미중의 세력 갈등이 한반도에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이것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 일본의 침략에 관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내세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일본은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싶어하며 더욱이 현재 일본사회는 장기침체로 인해 극우적인 선동에 쉽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고 이것이 혐한시위로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완화와 통일된 나라가 원천적인 대응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이 협력되면 한-미-일 군사협력의 필요성이 적어지며 동북아의 긴장이 완화되며 중국과의 관계가 용이해집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악화가 된다면 전쟁위기 고조로 인한 한-미-일 군사동맹에 편재되어 중국과의 갈등이 불거질 것입니다. 이러한 긴장관계의 해소는 궁극적으로 통일을 해야 해결이 됩니다. 일본과의 분쟁에 하나하나 대응하면 결국 일본의 우파세력에 이득이 됩니다. 감정적인 대응을 할수록 결국 일본의 우파정권에 이득이 되며 일본사회에서 갈수록 독도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진정으로 패전의 멍에를 벗고 대국이 되려면 분쟁지역에 있어서 과감하게 권리주장을 포기하고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더불어 주변국가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일본이 대국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풀고 통일을 지향하면서 우리 입지를 높여 간다면 일본이 ‘한국을 잘못 건드리면 안 되겠다.‘라는 이렇게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음 질문은 스님이 책에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민족주의를 강조하시는 것 같은데 이것이 나아가 배타적 민족주의는 아니더라도 분열의 싹이 되지 않을지 민족주의라는 개념 없이 지구촌 사회라는 넒은 개념으로 평화를 추구 하는것은 어떤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는 과거 진정한 우리만의 진정한 민족독립국가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되어 있으니 통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민족을 내세워 다른 나라를 공격하자 하면 나쁜 민족 우월주의가 되지만 우리의 권리를 찾자고 하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20세기에 정리하지 못한 민족문제를 20세기식으로 해서는 안되며 21세기식, 이웃과 연대하는 민족주의 즉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이 필요하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갈등이나 문제들을 바라 봤을때, 지역별로 자치권을 확보해 줘야 합니다. 중앙권력을 줄이고 지방에 권력을 분산시켜 아래위로 서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현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사대주의나 분단 등으로 해체되어 있습니다 이를 다시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우리 민족만이 최고라는 인식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나가면서 소중한 민족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명쾌한 답변들이 오고 갔습니다. 스님의 책을 읽고 난 후, 통일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지만 통일 이후 북한주민들의 혼란이 염려되는데 어떤 대응책이 있을지, 그리고 통합의 리더십에 대한 궁금증, 통일을 위한 통일 비용에 부담이 된다는 의견 등 우리 청년들이 통일한국을 꿈꾸면서 든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습니다.
새로운 백년 즉문즉설이 끝나고 다시 야외로 나가 사천왕사 터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사천왕사에 이르러 이 사찰이 세워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천왕사는 종교적으로 세워진 사찰이 아니라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호국사찰입니다.
비록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절이지만 부러진 거북이 비석받침과 주춧돌만 남은 사천왕사 터를 둘러보고 난 뒤 낭산에 있는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갔습니다. 스님은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가는 내내 선덕여왕의 지혜를 잘 엿볼 수 있는 설화들을 재미나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이후 분황사로 이동하여 간략히 모전 석탑에 관련한 설명과 함께 스님께서 이곳 분황사에서 출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황사를 잠시 둘러본 뒤 곧장 황룡사지로 향하여 당시 신라의 위세와 68m에 이르렀을 황룡사 9층목탑의 흔적이 있는 황룡사지를 청년들과 함께 거닐었습니다. 해질녘 쌀쌀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삼아 듣는 스님의 안내는 가을 역사기행의 운치를 한 층 더 깊어지게 하였습니다.
저녁 6시가 지나 숙소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서둘러 마친 뒤 법륜스님의 저녁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낮에 동국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오고간 우리사회와 통일에 관한 질문과는 달리 현재 자신이 가진 개인적인 고민들을 털어놓는 시간이었습니다.
즉문즉설을 위해 숙소의 4층 강당으로 들어서자 청년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다시 한번 스님의 인생 즉문즉설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 강당에서 이루어진 형식과는 달리 스님이 연단에서 내려와 보다 가까이 질문자와 눈동자를 맞춰가며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 갔습니다.
청년들의 웃음바다에 빠지게 했던 질문 중 하나로 대전 청년의 질문이었습니다.
스님의 책이 즉문즉설을 접하고 난 뒤 어머니로서의 역할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을 하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미래의 자녀와 나의 배우자 선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만약 미래의 배우자가 스님과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설득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스님이 평소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분들께 드리는 조언이지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설득하라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하시니 일동 웃음과 함께 박수가 터졌습니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다면 부인한테 잘하면 됩니다.”라고 덧붙이셨고 질문자는 그렇다면 육아에 있어서 남편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여쭸습니다.
스님은 재차 “아내에게 잘하세요. 아이가 생기면 아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여성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육아의 원리에 따른 것이기에 아이한테 잘하고 싶으면 곧 아이의 엄마한테 잘하면 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20대 취업준비생인 학생은 현재 취업을 준비하면서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스님은 “일단 자기 밥벌이, 즉 자기 자신의 생활이 독립되어야 하고 그 이후에 통일에 힘쓰는 단체에 작게 후원을 하든지 아니면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에 진정 통일문제에 뛰어들고자 한다면 세속적 이익을 포기하고 마치 수행자와 같이 통일일꾼으로 일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다면 재가 통일일꾼으로서 자신이 가진 일부를 보시하고 재능을 나눔으로서 도울 수 있습니다. 지금 취업준비생이라면 취업을 준비하는데 우선을 두고 그 외에 남는 시간이 있다면 조금씩 통일에 대해 공부도 해보고 통일운동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친구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며 조급한 마음과 진심으로 축하를 해줘야 하는지 대한 고민 대학전공에 대한 회의감, 밀양 송전탑 문제, 귀농을 생각중인 젊은 가장의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그에 대한 스님의 말씀은 청년들의 많은 박수와 웃음으로 따뜻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서 더 많은 질문을 하지 못해 많은 청년들이 아쉬워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지나간 즉문즉설이 끝나고 저녁 9시반 이면 입장이 마감되는 안압지를 가기 위해 부랴부랴 서둘러서 이동했습니다. 옛 신라 왕국안의 유원지인 안압지의 아름다운 야경을 청년들과 함께 걸은 후 근처에 위치한 첨성대로 향하셨습니다.
첨성대 앞 들판에서 200여명의 청년들과 스님은 둥글게 원을 만들어 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다함께 불렀습니다. 이후 청년들이 손수 준비한 스님께 드리는 청년들의 롤링페이퍼와 홍시 전달식이 있었고 스님은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놓고 봤을 때 21세기 초반에 통일을 이루고 후반에 들어서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오도록 해야 하는데 앞으로 2-30년 후에 사회에서 더 영향력이 있게 될 나이가 되는 청년들이 개인의 이익에만 집중된 일보다는 우리사회 나아가 우리민족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일에 보다 더 힘쓰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무리 말씀과 함께 스님은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청년들과 함께 역사에 대해, 인생고민에 대해, 나아가 통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스님의 정성스런 가르침과 역사, 통일에 대한 감동을 함께 가슴에 안고 갑니다.
내일은 정토불교대학생들과 함께 경주 평지순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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