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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30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으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침예불소리에 벌떡 일어나니 벌써 5시5분이었습니다. 한용우 거사님댁에서 함께 아침예불 및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6시 1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칸사스에서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하고 난 후에 혼자서 공부를 하고 계시다는 보살님께서 새벽에 거사님 댁으로 왔는데, 어제 강연에 참석한 후에 찜질방에서 보살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아침기도를 함께 하기 위해서 왔는데, 함께 아침기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면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한 후 이번 행사를 준비한 모든 분들께 인사를 하고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달라스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8시30분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 하비공항으로 간 다음에 잭슨빌로 갈아타고 가는 노선이었는데 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못잔 꿀잠을 잤습니다. 중부시간에서 다시 동부시간으로 변하니 1시 20분에 도착예정이었으나 도착예정시간보다 약 25여분정도 빨리 잭슨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최영태 거사님이 마중나와 있어 짐을 찾아서 숙소인 김성순 총무님댁에 도착하니 1시50분정도 되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잭슨빌 정토법회 분들이 스님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한가지씩 음식을 해가지고 와서 준비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잭슨빌에 오지 않아 거의 대부분 2년만에 스님을 뵙게 되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늦은 점심으로 다함께 맛있게 공양을 하고, 스님께서는 휴식과 업무를 보시고 저도 밀린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동안에 묘덕법사님과 잭슨빌 정토회원들은 서로 수행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워싱턴이나 LA로 가서 수련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짧지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민역사가 오랜 타도시에 비해 잭슨빌은 한인 인구가 2천여명 밖에 되지 않는 관계로 정토회와 각종 부대활동이 소규모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수행은 결국 본인을 위한 것이기에 하루 중 짧은 시간이나마 일과 사람관계에서 벗어나 본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꼭 규칙적으로 가지기를 묘덕법사님께서 조언해주셨습니다. 아울러 그간 기회를 갖지 못했던 회원들에게 깨달음의 장, 불교대학, 경전반등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셨습니다.
묘덕법사님과 나누기 시간후에는 거사님들은 거사님들대로, 보살님들은 보살님들대로 서로 맡은 바 일들을 챙겨서 행사장으로 출발해서, 비록 회원은 적지만, 잭슨빌 회원들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이용해 무리없이 아주 원만하게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잭슨빌 다운타운에 위치한 에버뱅크 빌딩의 오디토리움이 오늘 스님의 강연이 있는 곳인데, 에어뱅크빌딩은 아주 높은 초고층의 빌딩으로 미국전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에서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한 강연장은 300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곳인데, 언젠가는 이곳을 가득 채우는 일을 잭슨빌 정토회원들은 수행과제로 삼아 현재 한인이 가장 적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늘 홍보하고 준비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행사장에 도착할 무렵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한차례 쏟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6시40분에 에어뱅크에 도착하니, 잭슨빌 한인회장과 인근의 올랜도 지역의 한인회 관계자, 그리고 잭슨빌 한인성당 신도대표등 몇분들이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한인들이 적은 도시까지 스님께서 오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도 멀리서 스님을 뵙기 위해서 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소나기가 와서 혹시나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2년 전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스님께서 강연을 시작하자 약 80여명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두 강연으로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수행과 참회의 마음가짐이 중요한지를 간략하게 말씀 해 주셨으며, “인생살이란 다람쥐의 삶과 같습니다. 다람쥐는 특별히 즐거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괴롭게 살면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되는 것이고, 즐겁게 살면 짐승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면 짐승수준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인 인생사, 사회적 이슈, 우주에 대한 얘기등 어떤 이야기도 좋습니다. 다만 불교 신자라고 불교 얘기 안 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시고, 기독교 신자라고 불교 이야기 한다고 싫어하지 말고 그냥 인생얘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선택만이 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질 일만이 있을 뿐이며, 옳고 그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즉문즉답이 아니고 즉문즉설이라고 하고, 좀 더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결혼 생활 10년차 아이 둘을 가진 주부께서 했는데, 육아로 인해 몸의 기력이 많이 약해져 있는데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고 애들 아빠는 빚까지 있는 상황이고, 이전에는 친정에서 많이 도와주었는데 이제는 친정 부모님도 지병이 있으셔서 편찮으신데다 한국에 나가보고 싶어도 나갈 형편이 안되어 나갈 수 도 없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이러하다 보니 이제껏 이정도 생활밖에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10년 세월이 헛된 것 같고 이런 저런 상황들로 최근엔 우울증 진단까지 받아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낼 수 있을지 다시 예전처럼 직장을 나가야 할지 스님께 도움 말씀을 부탁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남편이 생활비를 주는지 질문자에게 물으시고, 이전에는 친정에서 가끔 도와주었지만 생활비는 잘 준다고 하시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지금 빚이 있어도 굶지 않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문제, 우울증 치료가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시면서 약물 치료와 약간의 상담이 필요하다가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자기 삶이 모자란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직장 생활을 한다고 질문자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지금 애기 엄마는 예전에 직장에 다닐때 상황이 좋았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지금은 승려를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학 교수를 했다 라고 말을 하고 다닌다면 그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승려지만 내가 예전에는 잘나가는 대학교수였어, 지금 현재보다 과거에 뭐했다라고 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승려에 대한 자존감, 자신감이 없다라고 하는것과 같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식을 키우는 엄마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애 엄마만 하고 있다는 열등감을 없애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 아이 키우는 일은 도태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버지도 편찮으셔서 한국에 나가봐야 한다지만 부모님께 자주 전화 드리면 됩니다. 가 봐야 돈 받아 올 일 밖에 없잖아요. 걱정은 아버님 돌아 가실까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받을 때가 없을 까봐 걱정하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엄마 정신이 건강해야 자식이 잘됩니다. 그러니 기분전환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자식 잘 돌보고 맘을 다 잡으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외할머니와 갈등에 대해 젊은 여성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자는 “어릴때 외할머니께서 제게 애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촌들과 노는 것이 좋아 외갓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떠들고 놀때 저만 혼내시는걸 보고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외할아버지께서 좋아해주시고 사촌들과 노는 것이 좋아 놀러갔었는데 대학 4학년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고 장지에 갔을때 너는 내리지 말라는 외할머니 말씀에 상처를 받은 뒤로는 할머니에 대한 원망에 외갓집도 가지 않고 새해인사 전화도 형식적으로 하고 할머니와 접촉을 피하고 저도 할머니께 살갑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려운 가정 형편이 못마땅해 부모님을 이혼시키려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저를 임신중이었고 저 때문에 당신 딸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저를 미워하시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제 연세도 많으시고 건강도 안좋으신데 외할머니와의 사이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굳이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아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는데 3년 뒤엔 저절로 사라진다는데 굳이 수술을 해서 낫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할머니는 나름 이유가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딸이 맘에 안들면 그자식도 맘에 안들어요. 남편이 미우면 자식도 밉다라는 말처럼 사위가 맘에 안들면 그자식도 다 밉게 보이고, 그 자식을 쳐다보면 사위 생각이 나고, 지금 할머니의 마음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할머니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괴로울 정도로 미워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입니다. 인간의 피해 의식은 오래갑니다. 엄마가 언니 동생 야단칠 때 야단 맞은 우리는 생각나도 엄마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것처럼 어려서 몰라서 미워했다면 그것은 내문제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려서는 몰라서 그랬지만 커서 그것을 알고 나면 어릴때의 기억은 있지만 미움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기의 유아기 상처가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의 31살의 마음으로 그때의 상처를 치유해야 됩니다. 질문자는 사고가 7살 그때에 멈춰 있으면 본인만 힘들어요. 어릴때의 그것을 털어야 됩니다. 하지만 법문을 듣는다고 금방 털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할머니께 참회의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해보시고 할머니와의 대면이 불편하면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것이니 또 기도 하세요. 요즘은 덩치는 어른인데 마음은 자라지 않은 어린애의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세번째는 ‘해외에서 고국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라고 다소 요점이 없고 너무 범위가 넓은 얘기로 질문을 해서 질문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는데, 스님께서는 한반도 통일과 국제정세로 이어지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거의 한시간여동안 대미, 대중관계, 한반도 통일의 전망과 중요성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고, 많은 분들이 처음으로 이런 관점에서 통일이 왜 한민족, 한반도에서 지상과제일 수밖에 없는지 핵심을 집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답변 덕분인지 강연이 끝난 후에는 새로운 백년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네번째로는 세시간 운전해서 온 유학생이 여러 갈래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배운 사람들의 다소 추상적인 걱정을 스님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해주셨습니다. 고국에 있는 부모님 걱정과 유학생활중 맺는 인간관계의 어려움, 그 두 고민에 대한 답변은 간단히 본인의 지금 자리에서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 즉 공부 열심히 해라로 해결되었습니다.
다섯번째 질문자는 처음에는 다소 엉뚱하게 들리지 모르는 소리로 우리 민족의 유래와 역사에 관한 다소 파격적인 질문을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이분의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시면서, 결국에는 환인의 한나라, 환웅의 배달나라, 단군의 조선나라의 역사까지 역사기행 강좌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쭉 돌아보시며, 한민족이 다시 한단계 비상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가 결국 통일임을 세번째 질문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와 아울러 다시한번 명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처음에 스님께 역사강좌를 들었던 때가 2000년 봄이었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감동을 오늘 강연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은 지역신문 기자분이 이 좋은 말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지 못해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자로서 일부 보수신문의 글쓰기를 비판하면서도 스님께서도 좀 더 담대하게 언론보도를 대했으면 하는 애정 어린 비판도 과감하게 던지셨습니다.
오늘은 세번째, 다섯번째 질문이 통일과 우리민족의 역사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이질문은 거의 스님의 통일강연과 역사강좌 시간이 되므로 아주 길게 답변을 하여 참석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를 했는데 강연이 끝나고 나서 오히려 질문자들의 강연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았고, 새로운 백년을 사 가지고 가는 분들이 많아서 제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은 인생에 대한 즉문즉설이든, 우리 역사와 통일에 관한 것이든 어떤 것이든 참석한 분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많이 피곤한지 참석자들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많이 놓쳤습니다. 세시간 여 진행된 잭슨빌 즉문즉설 강연은 시간관계상 10시가 가까워져 마무리하였고, 이후에는 책을 구입한 분들께 책사인을 해주셨으며, 멀리서 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잭슨빌 정토법회에서는 다과회를 준비하여 함께 다과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등에 대해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나누기를 한 후에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1시 30분까지 잭슨빌을 깃점으로 플로리다 지역에서는 내년 100회 강연을 할 경우에 어느 지역에서 강연을 할지 총무님과 최영태거사님과 함께 논의를 하였습니다. 이후에 스님께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돌아와서 개인짐을 정리한 후에 2시30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듀크 대학교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강연스케치는 잭슨빌 정토법회의 허지원 보살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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