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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1시30분에 취침하여 오늘은 새벽 2시30분에 기상하여 짐정리를 마치고 밀린 업무 및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기도도 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습니다. 박경원 법우님댁에서 준비한 아침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8시 20분경에 Texas A&M 대학교로 출발했습니다. 바로 부시스쿨(정책학 및 국제관계대학원)로 가서 앤드류나찌오스 교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이곳에서 두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요즘 근황과 북한문제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앤드류나찌오수 교수는 북한 식량상황 및 아사사태에 대한 루머를 스님께 확인하였고, 스님께서는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 말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앤드류나찌오스교수는 현재 북한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질문했고, 스님께서는 북한의 주요관심사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가인데, 현재 미국의 입장에서는 남한정부의 의사를 존중해서 관계개선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고 있는 농업정책변화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교수님께 중국,미국,한국이 협력하여 북한을 옥죄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중국으로 귀속되게 만드는 결과가 있을 것이며, 북한은 중국말을 잘 안듣는데, 현재 굉장히 어려워지고 고립되어 있으므로 결국에는 중국에 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에 북한이 예속되면 한국은 통일되기 어렵고, 그래서 우리는 북한이 중국에 예속되기 전에 남한쪽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럴러면 미국이 너무 핵무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북한을 포용함으로써 미국의 포용정책안에서 핵문제를 풀어야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핵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북한을 중국에 밀어주게 되고, 핵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데 북한은 체제유지가 우선이라 공격할 힘이 없다고 하시면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포용정책이 필요함을 다시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교수님께 다시 워싱턴디시로 돌아가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언제 워싱턴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질문하니, 여기가 좋다고 하면서 먼저 워싱턴에서는 조그만 집에 살았고, 그때 살았던 집보다 더 싼가격에 훨씬 더 크고 좋은 맨션 같은집에서 여기서는 살 수가 있고, 하버드나 동부유명대학을 나온 학생들은 졸업후에 더 좋은 직장을 잡을려고 하는데 이곳의 학생들은 어떻게 정부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미가 이곳이 더 좋다고 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진보적인 학생들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 더 관심이 많고, 보수적인 학생들은 나라에 더 관심이 있으니 결국에는 정부는 보수적인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진보적인 학생들이 조금만 더 공익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최근에 학교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내년에 스님께서 학교를 방문하시면 한국인만이 아닌 일반학생들에게 스님께서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하여 스님께서 그렇게 하자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학생들을 위해서 점심시간에 잠깐 강연을 하기로 해서 급하게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통역은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김가영님이 자원봉사를 해주었기 때문에 스님께서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앤드류나찌오 교수님과의 미팅이 조금 늦게 끝나는 관계로 오늘 강연이 열리는 학생회관에 15분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 도착하자마자 참석자들이 크게 환영의 박수를 학생들이 치자, 오늘 행사를 준비한 불교학생회의 유재욱님은 박사과정 학생인데, 법륜스님께 칼촌이라 불리는 이곳 시골까지 오신 것에 대해서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 소개영상과 더불어 스님께서는 큰 박수와 함게 연단에 올라서 조금 전에 부시스쿨에 있는 교수님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거두절미하고 살면서 있는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고 하시면서 주제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얘기해보자고 하시면서 첫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휴스턴에서 질문을 하였던 중년여성분으로서, 미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는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데 있어서 치료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안수기도 같은 형식으로 환자회복에 도움이 되는 말을 전해드리곤 하는데, 불교에도 그런게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였고, 어떤 여학생은 지금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답도 아는데, 몸이 머리를 안 따라가서 괴롭다고 하면서 스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19살이라는 어린 여학생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뭔지 확실히 모르겠고, 지금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뭔가 하기는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분야도 2개 있는데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미국에 살지, 한국에 살지 그것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달려갈지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또한 가정주부라고 밝힌 질문자는 기러기인데, 늦게 난 아들이 있는데 우리는 취미활동 없이 공부만 한 세대여서 본인 생각에 공부 많이 해도 별거 없다 싶어 그냥 놔뒀더니 매일 컴퓨터 게임하고만 하고 만화만 보고, 심지어 주말에는 자기 취미활동만 하겠다고 하여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는지 불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공지도교수가 대개 유명한데, 자기를 싫어하는 교수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남학생이 질문하였습니다. 또한 가까운 사람중에 심한 우울증과 절망감을 겪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지 질문하는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중에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질문자는 중년 남성분으로서 몇년전에 오스틴 강연에서도 뵈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다시 스님을 만나게 되어 우선 반갑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386세대인데, 지금 20대가 저보다 더 보수적인 것인 같아서 이해가 잘 안되고 있어 제가 이렇게 기성세대가 되는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얘기를 하니 스님께서는 “20대가 보수적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회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386세대가 지금 20대의 부모들인데, 자기들은 의식이 있어놓고, 자기 자식들은 공부만 하라고 했으니 당연히 의식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386 세대의 부모세대는 그 세대는 밥먹고 사는 것이 엄청나게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산업화를 위해 열심히 했고, 덕분에 386세대는 밥은 굶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386세대의 경우에는 먹고 사는 것은 해결되었는데, 독재 문제가 있었으니 386세대는 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지금의 20대는 산업화나 민주화 운동이 별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겐 이건 그저 지나간 얘기처럼 들립니다. 문화가 달라졌고, 현재는 당면한 사회적 문제가 없으며,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서 편안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위해 자기가 투쟁해야겠다는 의식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의식이 있는 사람은 10명에 1-2명꼴 정도이며, 8명정도는 무관심합니다.
또한 특별한 사회적 의식이 없으니 누가 뭐라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동조하는 성격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 정치권에서 북한인권문제 같은 이슈를 주로 보수쪽에서 주도해서 이야기하고 진보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20대가 보수에 동조하는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보수세력화한 것으로 보일수있으나, 제가 봤을 땐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30-40대보다는 20대가 보수적 성향을 가진 것 같기는 합니다. 이렇게 20대 보수층이 늘어난 것은 사회 변화에 따른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가 볼 때 40대는 꼰대처럼 보이고, 말만 진보지 행동이 진보적인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환경문제, 국제구호, 평화, 인권문제 같은 쪽에서 실제적인 활동을 진보적으로 한다면 젊은이나 청소년들에게서 많은 동조나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 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답변을 하자, 질문자는 자기가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한 것 같다고 하면서, 스님께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386세대들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 가슴에 와 닿는데, 그렇다면 가정에서 민주적인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질문했습니다.
“민주화 학생운동이 사실 민주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독재와 싸우려면 이쪽도 비밀을 지키고 해야 하니까, 언더라고 하는 지하그룹이 따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를 주장하지만 민주화가 되지 못한 현실적 한계가 분명 있었고, 현재의 정치인들이 민주적이지 못한 행태는 거기에서 나온 것 일수도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리더십이라는게 비타협적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가능한 한 오픈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인간이라는게 살아온 습관이 있으니까, 습관대로 하다보니 지금 젊은이 세대가 봤을 때는 존경할만한 민주적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정의였어도 지금 보기엔 정의가 아닐 수 있으니,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때엔 산업화나 민주화가 필요했었고 독단적이고 소통 없는 리더십도 통했었지만, 이제는 여러 의견을 다 수용해서 넘어서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여러 의견을 통합하고 쌍방 타협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양 정치세력을 보면 보수는 이미 지나간 산업화를 다시 이야기하고 있고, 진보는 거기에 저항할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대에게 외면받고, 새로운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전해서 북한이 우리 정치를 받아들여야 할텐데, 반대로 역행하고 있는 것 같으며, 화해와 협력으로 가기보다는 선군정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국사람으로서 어떻게 함께 극복해 가겠는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공로를 각각 인정해주고,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무조건 아빠 말 들어!라고 하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부지간에도 아직은 가부장적인 것이 몸에 배어 있는데, 이런 것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성장이나 소유의 확대에 치중하기보다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서 차별을 당하면서도 또 다른 민족을 차별하는 민족입니다. 인종/민족적인 것을 뛰어넘는 자세가 필요하고, 이렇게 인식을 변화시켜야만 진보가 됩니다. 그리고 진보는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 줘야 합니다. 또한 보수는 무조건 옛날을 움켜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계승해 나가면서 점진적 변화를 해나가자는 입장을 뜻하므로 전통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는 보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의 경우에는 보수나 진보나 둘다 제대로 자리가 잡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사람은 대화가 되는 합리적보수로, 진보도 자기만 옳다는 식의 단결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타협도 하고 포용도 할 수 있는 융합하는 그런 진보적 세력이 등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가정과 학교에서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나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험과 성적에 따라 줄세우는 환경에서는 이런 훈련을 하기가 힘들고 창조적 사고를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창조라는 것은 사상적인 자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융합속에서 창조가 일어납니다. 물론 압박당하는 상황에서도 창조가 나올 수 있지만 그 효과는 미비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로 모방을 많이 했던 지난 1세기 동안에는 압축성장이 가능했지만, 이제 우리의 수준이 서구와 비슷해진 이 시점에서, 이런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은 힘듭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며, 과거처럼 미국에서 학위 받는다고 앞으로 30년 보장되는 그런 일이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질문자부터 이제 아이들을 방치하라는 것이 너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어릴때부터 가정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며 키우라는 것입니다. 가정에 힘든일이 있으면 어려운 점을 서로 이야기해서 함께 나누고, 아이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키우지 않으면 어렵게 키워도 애들이 부모의 어려움을 알지도 못하고 당연히 그렇게 된 줄 알 수도 있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니, 질문을 한 질문자가 스님께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강연을 하다 보니, 다른지역에 비해서 1시간 30분동안 짧은 강연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미국에서 한국유학생이 많은 대학중의 하나인데 약 85명정도가 강연에 참여했는데, 대부분이 유학생이었고, 한 10여분정도가 인근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이 스님을 뵙기 위해서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학생들과 강연장을 찾은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촬영도 함께 하였으며, 달라스로 출발하기 위해서 함께 뒷정리를 하고 또한 이번 행사에 자원봉사를 해주신 학생들과 기념촬영도 하고, 특히 행사장소 빌리는 것에서 부터 많은 수고를 한 유재욱 학생에게는 새로운 백년을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점심먹을 시간이 없었는데 스님께서는 달라스로 출발하기에 앞선 행사장에서 학생들이 준비해 온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휴스턴에서 함께 온 박경원 법우님과 이원자 보살님께 수고했다는 감사 인사를 드리고, 또 학생들에게도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내년에 보자고 하면서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달라스에서 우리를 태우러 오신 달라스 열린법회 한용우 거사님 차를 타고 3시가 넘어서야 달라스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스케치는 텍사스 A&M 대학교 강문정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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