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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30분에 취침하여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짐정리를 마치고 5시 3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다음에 숙소를 제공해주신 거사님 내외와 장희옥 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고 저희는 콜럼버스에서 어제 트로이로 저희를 태우러 온 하일숙 보살님 차를 타고 트로이를 출발했습니다. 트로이는 디트로이트 폴리탄의 외각에 위치해있어 콜럼버스로 내려가는 길에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을 들려서 얼마나 폐허가 되었는지 둘러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서니 벌써부터 폐허가 된 건물이 보입니다. 2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가 몇년만에 140만명이 빠져나가고 시에는 60만명만이 살고 있고, 대부분 흑인이라고 합니다. 도시가 파산을 했으니 대형 교회와 성당도 문이 닫혀있고, 대형빌딩들의 유리창이 깨어지고, 전기가 끊어졌는지 신호등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30년전 뉴욕맨하튼의 할렘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내를 따라 내려가자 오대호와 마주한 캐나다 국경변을 마주보는 곳은 아주 높은 GM본사건물이 휘황찬란하게 있으니 이곳이 파산한 도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잠깐 내려서 강가를 건너다 보니 호수 너머로 Casino 호텔도 보이고 평화로운 캐나다가 보입니다. 맨하튼 할렘가가 복원된 것처럼 디트로이트도 30년 후면 복원될테니 지금 우리가 초석을 한번 다져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시가 파산을 할 경우에 얼마나 황량해지는지를 보면서 다시 차를 타고 우리는 콜럼버스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오늘아침부터 갑자기 추워져서, 스님께서도 미국 와서 처음으로 스웨터를 꺼내 입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우리 다들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이 11번째 강연이니 총 25번의 강연중에 아직 일정의 반도 소화해내지 못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오하이오주의 Capital City로서 한국교민은 적으나 오하이오주립대학교(OSU)가 있어서 한국유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OSU 학생들이 콜럼버스법당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콜럼버스 법당에 도착하니 총무님과 보살님들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또 총무님과 신도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조금 이른 점심이 준비되어 함께 점심공양을 하고나서 스님께서는 12시에 달라스에 있는 라디오 코리아와 생방송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숙소에서 나오셔서 함께 내년도 100회 강연을 할 장소와 콜럼버스를 중심으로 중부지역 도시 및 대학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이 있는 7시까지 잠깐 시간이 나서 법당에 와 있는 학생 및 신도들과 함께 근처의 공원 Highbanks Metro Park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습니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산책을 하고 법당으로 돌아오셔서 다음 강연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6시 20분에 행사장으로 출발하여 행사장 First Unitarian Universalist Church of Columbus에 도착하여 자원봉사자들 및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 책을 사신 분들께 반갑게 책사인회도 잠시 가져주셨습니다.
드디어 7시 강연이 시작되고 스님께서는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제가 달라스 라디오코리아와 여기 오기 전에 12시에 잠깐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교민들에게 희망을 줄만한 무슨 메시지를 가지고 왔는지 묻길래, 저는 메시지가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바꾸지 않고서도 지금 있는 상황에서도 조금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운 길이 있다면 그것이 희망적입니다. 라디오에서 이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영주권이 없는 동포인데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여기 있기도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영주권을 받고 여기에 오는 것이 맞습니다. 여행으로 여기에 왔으면 여행이 끝나고, 공부하러 왔으면 공부가 끝나고 돌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영주권을 획득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치에 맞지 않게 욕심을 부리기 괴로울 뿐입니다.” 라고 서두를 시작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여덟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미국에 유학 온 지 6년 된 여학생은 개인적으로 한국에 있을때는 자신감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유학와서 영어도 잘해야 하는 학문이라서 그런지 영어도 원어민처럼 되지 않고 그래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감정 콘트롤도 좀 잘 안되고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고, 한분은 작년여름에 치과대학에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나 3년간 치과대학입학을 준비하면서 건강이 안좋아져서, 학교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심신의 상태가 아니라서 학교입학을 취소했더니, 1년이 지나니 우울증이 생겼고, 입학을 안한 것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동안의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몰라 현재 방황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조언을 달라고 하는분, 2000년 미국에 공부하러왔는데 몇년후에 집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지도교수가 우울증이 심하니 휴학을 하고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공부하라고 하는데, 휴학을 하면 졸업이 늦어질것 같아 그냥 다녔더니 병이 심해져서 오히려 더 늦어졌고 그러는 사이 저하고 같이 입학한 동료에 비해 10년 이상 늦어지니 후회하는 마음도 올라오고 하는데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생물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은 현재 하고 있는 실험이 동물을 죽여야 하는 실험을 해서 많이 괴로운데 어떤 마음으로 전공생활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하였고, 또 한 유학생은 유학생활을 하면서 생활이 단조롭고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갔더니 한국에서 얼마 안있다가 미국의 여유로움이 좋아서 돌아왔는데, 여기가면 저기가 그립고하는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년의 대학교수님은 가족들과 약 6개월정도 떨어져 있다보니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고, 공부를 하다보니 몇가지 의문사항이 생겨서 이렇게 질문을 한다고 하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불교의 윤회사상등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부모님이 간절함이 담겼지만, 스님께서 따끔하게 혼을 낸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2002년도에 미국에 이민 왔고, 현재 20살이 된 여식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별문제도 없었고, 공부도 아주 잘하여 1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심적 부담을 느껴서 그런지 집중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대학도 현재 진학하지 않고 있으며, 양방, 한방으로 3년간 치료를 하고 있지만 좋아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도 하는데, 영적인 문제라면 애아빠로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회복될 수 있는지 스님께 질문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자식을 위해서 아버지가 존재합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자식이 존재합니까?, 아버지는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을 어떻게 찾아줄 것인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고자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옛날 능력만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안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옛날처럼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아이를 인정하고 이 아이가 이 상태로도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지 지나간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질문자는 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아이는 심리가 약합니다. 영리할지는 몰라도 정신력이 약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기대하는 짐이 무겁습니다. 공부를 할때는 가볍게 해야 합니다. 가볍게 해야 창조성이 나옵니다. 아이가 어렸을때 엄마가 정신적으로 안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첫번째로 아이의 그대로를 인정하고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요구를 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서 시간을 길게 가지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때문에 아이가 힘들었기 때문에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절도 하고 하루 10km 정도 걷고 잠을 푹 잘자고 하면 2-3년뒤에 오히려 잘 될 수도 있고 대학도 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따뜻하고 인자하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다시 아이가 조금 좋아진다고 잊어버리고 옛날처럼 대한다면 다시 증상이 반복되어 치료할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 꾸준히 치료하고 운동이나 육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잠을 푹 잘 잘수 있도록 하는게 좋다고 다시 격려해주었습니다.
오늘 오하이오는 오하이오 인근 2-3시간 걸리는 많은 지역 및, 시카고에서도 강연장을 찾아와서 질문을 하였고, 특히 멀리 켄터키 루이빌지역 및 일리노이에서 5시간을 운전해서 와서 질문했습니다. 특히 장거리에서 오신 분들의 질문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SU)가 위치해 있고, 씬씨네티대학교등도 인근에 있어서 참가자중 학생이 많았고, 질문자도 학생이 많았습니다. 유학생활속에서 참으로 힘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멀리서 다들 어려움을 가지고 스님께 질문을 하러 오는데 모두들 유튜브나 동영상을 보면서 나름대로 스님과 많이 만나고 있고, 그 가운데에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먼거리를 와서 스님께 질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오늘은 외국인 한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스님이 말씀하실때마다 빙그레 웃으시길래 한국말을 다 이해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강연이 끝난후에 스님께 와서 스님말씀 잘들었다고 하면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였습니다.
또한 지난번 유니온 신학대학교 있었던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자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가졌던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백은주교수도 스님을 뵈러 여기에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음에는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강연요청이 점점 늘어나고,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모두 스님을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모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9시45분이 되어서야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이 나고 이렇게 훌륭한 교회를 빌려주신 교회관계자 분들께 감사인사를 하시면서 10시가 되어서야 스님께서는 강당을 내려오셨습니다. 이후에는 약 30분정도 행사장을 찾은 많은 분들과 인사를 하였고, 약 30분정도 사진촬영도 하시고 책사인도 하시면서 강연장을 찾아오신 많은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하신 분들과 단체로 사진촬영을 하신 후 자원봉사하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한 후 스님께서는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자원봉사자들과 행사 후의 뒷정리를 하고, 이번 행사를 하면서 들었던 마음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 시카고 행사에 비해서 우리 식구들끼리 행사를 준비하니 일체감이 더 많았고, 좋았다고 하였으며, 비록 준비과정에 미흡한점들도 있었지만 다들 잘 행사를 치루었다고 하여,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공감나누기를 마치고 11시30분쯤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김종필 거사님,오봉산 보살님 내외분, 그리고 해외사무국식구들과 스님께서는 내년도 100회 강연을 어떻게 준비할지등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시간을 훌쩍 1시30분을 넘겼습니다.
그럼 내일 애틀란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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