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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백두산 서편의 한 호텔에서 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백두산 북편 장백폭포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짐을 챙겨 싣고 또 새로운 하루를 위해 버스 3대가 나란히 서로 간격을 맞추어 가며 출발을 했습니다.
스님은 2호차에 타셔서, 내려서 직접 유적지를 가지 못하는 곳은 버스 안에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앞차는 조금 천천히 가 주세요. 여러분 오른편 3시 방향을 보세요. 멀리 마을이 보이죠?” 하면서
가는 곳곳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스님과 인도에 같이 가게 되면, 스님은 전생에 인도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스님과 중국엘 같이 와 보니, 스님은 전생에 중국에서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소하게까지 당시의 유적지며 역사의 현장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감동스럽습니다.
5시 30분경 이도백하에 도착했습니다. 이도백하는 미인송이 유명합니다.
소나무가 커 가면서 바깥 껍질이 벗겨지고, 색깔이 여자의 살갗처럼 변한다고 미인송이라 한다 합니다.
그리고 뻗은 가지에는 오목 오목하게 솔잎이 달려 있어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길 양 옆에 뻗어 있는 미인송에 대해서도 스님은 잊지 않고 설명을 해 주십니다.
이도백하의 고려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곳이라 이제는 스님을 보고 반겨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식당 밖에서 장사를 하는 분은 스님께 반가이 인사를 하며 스님과 친구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식사를 마칠 시간쯤에는 부인도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가 직접 꺾어서 말린
고사리, 더덕이라며 시중에 파는 것과 다른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스님께 선물을 드립니다.
농약치지 않은 좋은 것이라며 장뇌삼 스무 뿌리도 같이 주면서 싱글벙글합니다.
스님도 고맙다며 ‘새로운 100년’과 ‘깨달음’ 책 한 권씩을 부부 이름을 적어서
직접 사인해서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 다들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백두산 북편으로 향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백폭포는 장관이었습니다.
폭포 물양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곳 저 곳 공사 중이라 폭포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놔서 손도 한 번 담그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스님과 개인 사진을 찍지 못해서,
장백폭포 앞에서 참자가 한 사람 한 사람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햇살이 뜨거워 금새 스님 머리가 발갛게 됩니다.
장백폭포에서 소천지까지 자작나무 숲 속으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자작나무 껍질에다가 사랑 고백을 하면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진답니다.” 하며 웃으며
자작나무 숲 산책을 했습니다.
소천지에는 산과 하늘이 다 들어와 있었습니다. 작은 연못이 아름다웠습니다.
연못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녹연담으로 갔습니다. 폭포와 연못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비룡폭포를 보면서 장엄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에 조금 남아 있었는데,
녹연담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아쉬움이 날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비취색 연못과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장백 폭포는 장엄하고 선이 굵은 아버지의 느낌이라면,
녹연담은 가까이서 언제라도 어리광부리며 다가갈 수 있는 엄마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소형버스를 타고 지하삼림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삼림 입구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산책로로 왕복 3km가 되었는데, 이 곳도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쯤에 있는 원통형인 동천폭포도 있었는데 계곡물이 모두 용암에 갈라진 틈바구니로 있었는데
흘러서 지하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동천폭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지하삼림을 만나게 됩니다.
“스님. 지하삼림이 뭐예요? 무슨 뜻이예요?”하고 참가자 한 분이 묻습니다.
“가보면 알지요.” 하면서 스님이 지하삼림으로 먼저 걸음을 옮깁니다.
지하삼림은 땅속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몰이 된 곳에 숲이 형성된 곳을 주변 절벽에서 보면
마치 땅 아래 숲이 있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김홍신 소설가가 ‘대발해’를 쓰면서 이 곳 지하삼림에서 대조영이 군사를 훈련시겼다고 썼지요.”하면서
지하삼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지하삼림에서부터 몇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삭발하면, 비 떨어지는 것을 제일 먼저 알지.” 하면서 웃으시는 스님.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다시 고려 식당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화룡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압록강과 만났는데, 오늘은 두만강과 만났습니다.
두만강 상류의 물은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하는
우리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와는 너무 다르게, 흙빛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무산철광이 생기고 나서 두만강 물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무산철광 위로는 물이 맑아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는데, 이 곳은 무산철광 때문에 저 강 바닥 한 번 보세요.
강바닥에 검게 쌓여 있는 것들이 보이죠?”
정말 강물도 흑빛이고, 강바닥에 검은 흙들이 침전되어 쌓여있습니다.
“저 쪽 산을 보세요. 노천 철광입니다. 노천에서 저렇게 파내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많은 철광을 지금은 모두 중국에서 수출을 하는데 계속 실어나르는 차를 보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 철도가 개통이 되면 더 많은 철광석이 수출이 되겠죠.
어제 본 통화제철소에 산처럼 쌓인 그 철광석이 모두 이곳에서 가져간 것입니다 ”
두만강을 뒤로 하고, 화룡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스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내일 독립운동 전적지를 돌아보기전에 중국 동북지방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대종교 3인묘, 일송정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항일독립운동부대의 첫 무장전투였습니다.그 이전에는 무기를 들고 일제와
싸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봉오동 전투의 큰 승리는 일제의 군대를 무장으로 물리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준 것입니다. 그런 기세를 타고 승리를 하니 기세가 좋았습니다.
두 전투는 군사적인 면에서 조선이 독립하는데 큰 변수라고는 볼 수 없었으나
1919년 국민적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이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실패로 끝나자 좌절감 속에 있던
상황 속에서 이러한 무장투쟁의 승리는 당시 조선민중들에게 엄청난 희망이 되었습니다.”
암담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독립운동을 해 나갔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평화로움과 번영이 있음을 우리는 늘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내일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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