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빨려 들어가듯 읽다가 보니 임경화 님이 명상하며 파리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이 상상되며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명상할 때 나에게도 파리나 모기가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저와 동일한 생각을 하신 분은 댓글 꼭 남겨주세요. (편집자가 눈 동그랗게 뜨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수련은 오롯이 혼자였기 때문에 방해물이 전혀 없을 거라 여기고 안심하고 명상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파리가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날 파리 한 마리가 거실에 들어온 것입니다. 명상하고 있는데 파리가 제 얼굴에 앉았습니다. 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갈 뻔했으나 그냥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파리는 얼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눈가에 앉았습니다. 날갯짓하는 건지 다리를 비비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파리는 0.000001초의 속도로 계속 움직였습니다. 마치 제 눈을 필사적으로 뜨게 해서 눈 안으로 들어올 태세였습니다.
처음엔 ‘이 일을 어쩌나? 손으로 내치나? 아니면 잠시 눈을 뜰까?’ 잠시 고민하다가 ‘가만히 내버려둬라. 그러면 저절로 진정된다’ 하시던 스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고행하실 때 아이들이 ‘돌인가?’ 하며 귓가에 나무를 쑤셔 넣고 장난을 친 일화도 생각났습니다. ‘그래, 너는 그곳에서 열심히 날갯짓하여라. 나는 내 일 하겠노라’ 하고는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호흡에 오롯이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한가한 마음으로 파리의 그 기행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파리의 행동은 정말이지 가관이었습니다. 눈가에서 날갯짓하는 것은 아주 귀여운 축에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제 볼과 귓가, 목 곳곳을 돌아다니며 간지럽히는데, 간지러운 것은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간이 움찔했습니다. 파리는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세 살 아이처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다가 어느새 어디론가 가고 없었습니다.
파리는 파리의 일을 할 뿐 제 명상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남편은 왜 그렇게 나를 괴롭히나?’ 싶어 미워하고 원망했는데, 남편은 추호도 저를 괴롭힐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남편도 남편의 업식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파리가 가고 나니 이번엔 모기 한 마리가 와서 제 팔에 앉았습니다. 제 팔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따끔거립니다. 순간 불쾌한 감정이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봐줍니다. ‘그래, 아주 아주 조금 피 한 방울 너에게 준다고 내가 어찌 되는 것이 아닌데, 그동안 그것을 못 봐주고 단번에 죽여버렸구나!’ 모기는 피를 빨아먹더니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다시 숨을 쉽니다. 죽비소리가 들립니다. 파리 때문에 호흡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으나 파리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올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 편안한 호흡을 하는 것이 명상이라면 저는 파리와 모기 덕분에 큰 공부를 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 파리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채 거실에 그대로 앉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파리가 다시 왔습니다. 이번에는 날갯짓이나 감으로 봐서는 두 마리가 온 것 같았습니다. 온 얼굴을 기어다니다가 입술에 붙었습니다. 이번에도 입술을 열어젖혀서 기어코 입안으로 들어올 태세였습니다. 간지러움을 참기 힘들었으나 파리의 움직임에 관찰자의 입장으로 서니 미워하는 마음이 안 생기고 귀엽게 보였습니다. ‘파리가 문제가 아니라 장소를 옮기지 않은 내가 잘못이었습니다. 남편이 이래서 저래서 문제가 아니라 그런 남편에 맞게 대처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었습니다. 파리가 없는 곳으로 미리 장소를 옮기면 되는 거였고, 그런 남편에 맞추어 지혜롭게 대응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장소를 방으로 옮겼습니다. 파리가 따라 들어올까봐 문을 재빠르게 닫았습니다. 선풍기를 켤 수도 없어 방은 너무 더웠습니다. 그래도 파리의 놀이터로 제 몸을 내어주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호흡하는 것은 참 경이롭습니다. 온갖 감각이 느껴집니다. 아픈 것도 느껴지고 다리 저림도 느껴지고 가려움도 느껴지고 간지러움도 느껴집니다. 다리가 저리고 아픈 통증이 올 때 ‘아, 이런 감각을 내가 느끼는구나! 살아있으니 이런 것을 느끼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얼굴에 붙어서 놀던 파리 한 마리도, 내 팔에서 피를 빨아먹던 모기 한 마리도 다 숨 쉬고 있는 생명체로구나! 내가 특별할 게 없구나! 다 같이 숨 쉬고 살아가는 똑같은 생명체구나!’ 싶어 파리와 모기에게 다정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명상 참 감사합니다. 편안하게 잘 쉬었으며 편안히 제 몸의 감각과 제 마음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큰 공부가 되어준 파리, 모기에게도 감사합니다. 이 명상을 위해서 힘써주신 지도 법사님과 스태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글_임경화(경남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28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