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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허명혜 님은 도반 따라 바라지장을 갔습니다. 처음 바라지장을 갈 때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던 마음이, 쑥떡을 주재료로 한 김치가 들어간 떡볶이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당혹감으로 바뀌었는데요. 과연 '김치 쑥 떡볶이'는 어떤 맛이었을까요? 바라지장 소감문이지만 공양간 사진보다 풀 뽑기 사진이 더 많은, 그래서 조금 더 신선하고 재미있는 허명혜 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회사에서 상사와의 갈등으로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습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고, 이후 찾아온 무기력증과 함께 허리 수술한 친정어머니까지 돌보느라 힘들었습니다. 결국 3개월 만에 어머니를 더 이상 돌보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죄책감에 빠져 있던 중 도반이 ‘바라지장’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동안 남편과 어머니 그늘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온 터라 혼자라면 갈 생각을 못했을 텐데 같이 가자고 하니 어린아이처럼 들뜨고 기뻤습니다.
‘바라지장’이라고 하면 공양간에서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 수련생들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대중 공양간에 배치되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숙주와 쑥떡을 주며 나물과 떡볶이를 만들라고 지시만 내릴 뿐 함께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할뿐더러 평소 친정어머니가 음식을 다 해오셨기에 굉장히 난감했습니다. 게다가 쑥떡을 주면서 김치를 넣어 떡볶이를 만들라고 하니 처음 듣는 조합이라 황당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음식을 만들고 나니 다음엔 대중들이 음식을 어떻게 평가할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대중들이 먹나 안 먹나 지켜보게 되고, 먹으라고 권유도 하게 되고, 누가 많이 먹나 살펴보게 되고, ‘내가 만든 음식 좀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남의 평가에 연연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대중들은 밥이 죽이 되어도 뭐든 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분별심 없이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대중들 덕분에 ‘나도 할 수 있구나!’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풀을 뽑는 일도 했습니다. 분별심 많은 평소의 저라면 ‘이거 하러 온 거 아닌데 왜 풀을 뽑으라고 하지?’하며 투덜거렸을 텐데 이상하게 풀 뽑기가 재미있었습니다. ‘그냥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풀을 뽑으면서 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내가 이런 걸 싫어하지 않는구나. 해보니 재밌네! 좋고 싫음과 집착을 좀 내려놔야겠구나'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각도 정리되었습니다. ‘그래,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었겠네. 그러고 보니 별거 아니었네? 내가 왜 이것 때문에 괴로웠지?’ 그렇게 힘들던 마음을 풀과 함께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바라지장은 풀 뽑기만 신청하고 싶을 만큼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깨장 촌극을 보러 간다고 할 때, 바라지 음식을 겨우 두 번 만들었을 뿐이라 수련생들에게 별로 해준 게 없다는 생각에 흔쾌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 듣는 게 괜스레 미안해서 내가 갈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서 촌극을 보니 제가 깨장 왔을 때 생각이 나서 눈물 나도록 크게 웃었습니다.
다음 날 ‘어차피 내가 풀을 뽑으면 고구마가 더 많이 수확될 것이고, 고구마가 수련생들 공양에 쓰이니 결국 풀 뽑기도 수련생들에게 다 도움이 되는 일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법이 떠올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해준 음식이 아니면 아예 먹지를 못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친구들은 제 반찬을 먹어도 저는 친구들 반찬을 못 먹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후각과 촉각이 예민합니다. 어릴 적 식사 시간에 할머니가 불경을 틀어놓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서는 밥을 못 먹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절에 가면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십니다.
이번 바라지장에 와서 밥을 먹은 것만 해도 제게는 큰 변화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연구 대상입니다. 꾸준히 수행하며 저를 만나고 저를 알아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허명혜(강원경기동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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