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받은 도움을 되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인기영 님은 선박의 기관사라는 조금은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직업 탓에 그만 우울증이 생기게 되었고, 이를 벗어날 방법을 찾다가 결국 정토회에 인연이 닿았다고 합니다. 꾸준히 수행하면서도 별다른 효과를 못 느끼다가 '깨달음의 장'에서 붙잡고 있던 생각의 고리를 끊게 되었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보리수 소임을 하면서부터는 부모님과의 관계는 물론 직장 내 인간관계도 좋아졌다고 하시는데요. 도대체 어떤 신통방통한 비결이 있길래 이런 눈부신 성과가 나오게 되었을까요?

저는 선박의 기관사입니다

저는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인선의 선박 기관부에서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기관사는 배의 엔진과 보일러 그리고 갑판의 기계장치와 전기설비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검사하고 보수하는 일을 합니다.

배가 출항하면 24시간 쉬지 않고 기계가 돌아가고, 상황을 알리는 알람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것이 배 위의 일상입니다. 그런 배를 타는 일이 저는 참 싫었습니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해외를 다니다가 국내선을 타게 되었고, 상선에서 일하다가 예인선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일이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능력보다 빠른 승진으로 인한 불안감 때문인지 배를 탈 때마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늘 예민해졌습니다. 동료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싫어서 모른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저의 기준에 맞춰 동료들에게 다소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배에서는 언제든 위기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기에 그에 맞춰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배 위의 생활로 인해 그만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무력감이 생기고 글씨가 흩어져 보이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약을 먹지 않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교회에도 가고 글 쓰는 카페에도 가입하고, 미술치료와 운동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순간의 개운함이 있었을 뿐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채널에 닿았습니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안산 법당’을 제 발로 찾아갔는데, 그때가 2014년이었습니다.

사회문화회관 둘러보며 보리수 도반들께 전기 강의 중(안전모 쓴 이가 인기영 님)
▲ 사회문화회관 둘러보며 보리수 도반들께 전기 강의 중(안전모 쓴 이가 인기영 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법당에 함께 다니던 다른 도반들에 비해서 저는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니면서도 2년이 넘어가도록 별다른 수행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질 즈음 법륜스님의 “무슨 일이든 3년은 참으며 해보라”는 법문을 들었고, 그간 갖은 이유로 미뤄두었던 ‘깨달음의 장’을 마침내 가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그동안 붙잡고 있던 생각의 고리가 탁 끊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안다 싶었던 것이 다 생각이었고, 정작 제 마음을 알지 못해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했을 때, 내가 들은 말은 상대가 한 말이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그리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눈물로 아버지를 미워하던 마음이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깨달음의 장 마지막 날 저녁, 보수법사님이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 손잡아 일으켜 주고 다친 데는 없는지 살펴봐주면서, 왜 자기 자신이 넘어질 땐 짜증 내고 화를 내는 걸까요? 자신에게 상처 주지 말고 사랑해주면 좋겠어요.”

기계실 발전기 팽창 탱크 청소(왼쪽이 인기영 님)
▲ 기계실 발전기 팽창 탱크 청소(왼쪽이 인기영 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미워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생 때 누나와 함께 어버이날을 맞아, 문방구에서 6,000원짜리 카네이션을 샀던 일로 아버지께 혼이 나서 환불했던 기억은 있지만, 자식들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당시 사업 실패와 연달아 큰아버지로부터 사기까지 당하자, 아버지는 매일 화가 나 있었고, 술을 마시면 가족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어린 저를 앉혀 놓고 사기 안 당하는 방법이나 남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를 반복해서 일러주곤 하셨습니다.

학창 시절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현실에서 벗어나 공상의 세계로 도망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하소연을 많이 하셨고 그래서 저는 집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등록금이 싸고 기숙사가 무료로 제공되는 해양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뒤 의식주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법문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집안일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겼더니, 몇 달 만에 부모님이 저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가 다 풀리지는 않았으나 예전처럼 가시 돋친 말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싸움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 삶이 괴로웠던 것은 작은 일도 크게 부풀려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겪은 일을 아들은 겪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남을 의심하라고 가르치셨지만, 그 의심의 잣대를 아버지에게로 겨눴으니 이 또한 스스로 괴로움에 빠진 꼴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저는 사고를 미리 대비하는 조심성을 기를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직 생활을 하고 있으니, 똥이 거름이 되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음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연등달기 구조대 보강 작업 중(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인기영 님)
▲ 연등달기 구조대 보강 작업 중(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인기영 님)

봉사하러 왔다가 오히려 얻어가는 보리수 소임

월광법사님과 유경호 법우의 추천으로 보리수 3기에 입재했습니다. 선박에서는 주로 기계를 다루지만, 보리수에서는 전기과를 선택했습니다. 전기 다루는 법을 배워볼 요량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실무보다 표현 방법이나 의사 전달법들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각자 할 일이 정해져 있으니 굳이 말을 안 해도 되고 보고 할 일도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 보리수에서는 소소한 일도 일일이 보고해야 하고 그에 따른 의사 표현도 해야 합니다. 보고할 때도 전달을 받는 사람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 의견이 있을 때는 절충이 될 때까지 서로 소통해야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표현력이 늘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소통을 꽤 잘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배를 탔을 때 사람들이 저에게 쉽게 말을 못 걸었던 것 같습니다. 껄끄러운 마음에 미적거리다 보고가 늦어지고 사소한 고장도 감추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큰 사고가 되어 책임질 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를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리수에서 배웠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도 합의되지 않은 상황을 밀어붙이면 충돌이 생기고, 뒤에 참회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규칙 하나를 정하더라도 회의하고 평가를 거쳐서 바꿔 가는 정토회의 의결 방식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과 회사에서도 이 방법을 적용해봤습니다. 이제는 외출할 때 엄마가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시면 바로 대답이 나오고, 회사에서 질문을 자주 받아도 귀찮아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으니 인간관계가 절로 좋아졌습니다.

일수행 논의 중(오른쪽이 인기영 님)
▲ 일수행 논의 중(오른쪽이 인기영 님)

신뢰가 쌓였기에 가능한 일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잘 끌리는 제 마음과 결혼에 대한 고민을 법사님께 질문했습니다. 법사님은 하루에 500배를 1년간 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리수 담당인 또 다른 법사님은 ‘결혼은 제가 합니다. 모든 선택은 제가 합니다’라는 명심문을 주셨습니다.

이틀 일하고 이틀 쉬는 4교대 근무의 일상에서, 일과 봉사까지 있는 날은 500배를 마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200배를 하고 오후에 300배로 나눠서 하기도 하고, 자기 전까지 끝마치지 못하는 날에는 압박감이 심해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기도문이 ‘자고 싶습니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500배를 마치고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에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이제는 잠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려서 다른 어떤 생각도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그 시기에도 배의 기계에서 고장이 일어나고, 동료와 싸우기도 하고, 정토회 도반과 갈등도 있었지만, 이 모든 문제는 500배 절을 하는 문제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혼에 대한 저의 고민은 끝이 났습니다. 해결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고민을 안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매일 300배를 하고 있습니다. 추운 날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매일 합니다. 여전히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지만, 감기에 걸려도 하고 배가 아파도 그저 묵묵히 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따라가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것은, 지나고 보면 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신뢰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뢰가 쌓이도록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받은 것을 되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1월호에 수록된 인기영 님의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_인기영 님(광명지회 보리수3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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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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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원

5백배 말만 들어도 힘드네요
108배도 저는 힘들면 쉬다보니요
제 아들도 해양대 나와서 지금은 공무원
엄마가 자식을 부담스러워 하고 독립 하라고 맨날 그래서 고등때부터 기숙사 라고 원망하면서 인연 끊었어요
저는 성인되어 독립해준것에 감사하며 십니다 저도 제 친정엄마를 평생 원망했어요 이렇게 가난하면 낳지말지.하고요 20살되면 독립 .이 좋은듯해요

2024-08-13 07:19:23

견오행

늘함께합니다.감사합니다.()()()

2024-08-12 10:11:43

무구의

잘 읽었습니다. 감동적이네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8-11 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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