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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어서 다소 갑작스럽게 백일출가를 지원하게 되었다는 조서호 님. 이 청년의 객기와 패기에 저도 모르게 빙긋이 미소가 지어지고, 젊은 시절 무한한 가능성에서 비롯된 방황과 번뇌에 '아, 나도 그땐 그랬지'하며 공감했습니다. 도대체 백일출가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한 번도 아니고, 재입재까지 해서 도합 이백 일의 출가 생활을 하였을까요? 그리고 과연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혼자만 알고 있기는 너무나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보시죠.
사실 내가 백일출가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전혀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시작은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이었다. 처음 깨장을 신청했을 때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상황이었고 다니고 있던 회사는 불만스러웠다.
마침 깨장에서 추가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를 받았다. ‘깨장이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기분 전환하러 한번 다녀와볼까?’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그렇게 찾아간 깨장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얼굴은 점점 환해지고 밝아지는데, 나만 혼자 뭔가 미진하고 아쉬웠다. 좋은 건 알겠는데 확 와닿지는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저렇게까지 환해지고 밝아질 정도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은 미진한 상태로 깨장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깨장을 마무리하고 나니 ‘나의 모든 것을 솔직히 내놓지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다가 마침 다음 달에 바로 백일출가 입방 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일간 했던 깨장이 좀 미진했으니 ‘백일 정도 하면 뭐라도 느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소 갑작스럽게 백일출가 입방원서를 넣었다.
‘만 배야 하면 하는 거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매일 500배 정도는 연습해야 만 배를 통과하기 수월하다’라는 안내를 가볍게 흘려들었고, 입방하는 날까지 절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백일출가 입방하는 날, 차 안에서 올바른 절 자세에 관한 영상을 처음 봤다. 그 결과 정말 힘들게 만 배를 마쳤다.
천 배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거 장난이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절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쓰러지듯 내려가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절을 해나갔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절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지?’ 하면서 짜증이 났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이미 마치고 나가셨는데, 마지막까지 남아 절하고 있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절에 익숙지 않아 엉망인 자세로 절을 하다 보니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두고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 배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그게 더 싫었기 때문이다. 내 의지로 만 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다리나 몸에 문제가 생겨서 절을 더 이상 못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 배를 다 채우거나 다리에 문제가 생겨야 지금 힘든 것이 끝날 거다’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더 몸을 일으키고 쓰러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는 악에 받쳐 만 배를 마무리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 배를 마치고 본격적인 백일출가가 시작되었다. 나의 백일출가를 돌아보면 한마디로 집착 그 자체였다. 사실 내가 백일출가를 결정할 때 가장 고민된 지점은 원하는 회사에 최종 면접까지 봤다는 기억 때문이었다. 최종 면접까지 봤으니 이 기세를 몰아서 차분히 더 실력을 쌓아서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백일 동안이나 관련 공부를 하지 못하고 수련원에서 지내는 것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할 때 브레이크를 밟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을 시작하게 되면 왠지 평생 백일출가는 해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백일 동안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취업을 백일이나 뒤로 미뤘으므로 나는 어떤 것이든 얻어서 나가야 했다. 그렇게 백일출가가 끝나갈 무렵까지 악착같이 생활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웃으라고 하면 기분이 좋든 싫든 웃었다. 물 절약을 위해 대야를 써서 샤워를 해보라고 하면 그렇게 했다. ‘걸어 다닐 때 차수1를 하고 다녀라, 해우소에서 휴지는 6칸만 사용해라, 톱밥을 사용하고 다음 사람을 위해 한 바가지를 채워놓아라’ 하는 지침부터 부정적인 마음마저 나누기를 통해 나눠보라는 것까지 ‘지켜서 뭘 해’ 하며 투덜거리면서도, 이렇게 시키는 대로 다 해야 나중에 뭐가 없을 때 할 말이 있을 것 같았고, 이렇게 해야 백일이 지났을 때 후회 없이 마칠 것 같았다. 그렇게 집착을 갖고 뭔가를 얻어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변해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나갔다.
수련과 여러 프로그램을 거듭하면서 뭔가 알게 된 것 같았을 때는 ‘참 좋았다. 오길 잘했다. 잘해나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동안 열심히 악착같이 생활한 보람이 있다고 느꼈다. ‘잘했다, 고생했다’ 그렇게 내 백일출가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백일이 다가오면서 나는 알게 모르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제 나가서 취업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자. 백일출가를 통해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으니까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하며 서서히 정리하며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찝찝하고 미진한 점이 남아 또 뿌리 뽑으려고 남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끝 무렵에는 좋은 것만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만 보려고 할수록 뭔가 모호했다. 다른 도반님들은 ‘이제 나가서 이렇게 살면 될 것 같아요’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소감을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좋은 건 알겠고, 체험도 했는데 ‘그래서 뭐?’ 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일출가가 끝나갈수록 내 본모습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마주하기 싫었던 나의 본모습들. 질투하며 나 잘났다고 으스대는 모습, 시도 때도 없이 분별하는 나의 모습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백일출가가 끝나갈 무렵, 마치 깨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냥 나가기엔 좀 찜찜한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본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냥 나가기엔 좀 아깝다, 이런 모습들을 여기서 지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정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을 것이냐 집에 갈 것이냐 하는 선택을 미뤘다. 재입재를 결정한 도반님들과 반장님, 법사님까지 나에게 한마디씩 해주시는 말을 듣고 나서야 재입재를 결정했다. 얼떨떨했다. 백일출가 한 것도 정말 생각지 못한 일인데 그걸 마치고 재입재를하는 내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재입재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계속 걸렸던 마음들을 좀 더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특별하다는 마음, 상대를 멋대로 평가하고 질투하는 마음, 사소한 것에도 분별하는 마음, 그리고 그런 나를 봐주기 싫어하는 마음들 말이다.
무엇보다 첫 백일출가와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그런 마음들을 본격적으로 나눠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같이 재입재를 한 도반님들에게 ‘~한 것 때문에 불편하다’, ‘~한 말이 걸렸다’, ‘이런 행동들에 분별심 났다’ 하는 나누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사사건건 질투하고 평가하고 분별했다. 그렇게 나누기하면서 너무 무거웠다. ‘이렇게 나누기하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히 뭘 어떻게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마음이 나지?’ 하는 생각으로 항상 눈치를 봤다.
게다가 실컷 분별하고 짜증을 쏟아낸 도반들과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답답하게 했다. 첫 백일출가 16명 중에서 4명만 재입재를 했기 때문에 숨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마주해야 했다. 사소한 행동에서 일어났던 마음과 내가 했던 나누기가 떠올라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하게 불편했던 지점들, 짜증이 났던 지점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나의 우려와 달리 도반님들은 내 짜증과 불평을 묵묵히 들어주셨다. 오히려 분별 대마왕이라고 웃으며 받아주셨다. ‘실컷 해봐라’, ‘이제야 슬슬 본모습이 나오네’ 하시면서 말이다.
감사했다. 이런 도반님들 덕분에 참 많이 배웠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굳이 겉으로 티를 내야 할까, 굳이 나누기까지 해가면서 그렇게 말로 표현해야 할까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실천해보니 그런 마음들이 일어났을 때 자신을 탓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내놓을 수가 있고 이런 마음이 들어도 잘못된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대상을 미워하거나 탓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많이 갉아먹으며 살아왔다. 어떤 실수를 했을 때, 상대방에게 사소한 걸로 시비 분별할 때,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 들 때 매우 힘들었다. ‘나는 뭘 이런 것으로 시비 분별을 할까?’, ‘나도 아무것도 아니면서 뭐 그리 잘났다고 상대를 무시할까?’ 하면서 말이다. 내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사람 같았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상대방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겠다’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비 분별하는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다면 차라리 맘 편히 상대를 무시하고 판단했을 텐데 말이다. 상대가 이해되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이런 마음을 내는 내가 참 봐주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재입재 기간 동안 나는 끊임없이 이런 마음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나눴다. ‘별거 아니네, 그냥 하면 되는 거네, 그렇게 무겁게 생각할 것 없구나’ 하고 알아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가벼워졌고 일체의 장을 하고 난 후에는 정말 많이 가벼워졌다. 처음 백일출가했을 때도 일체의 장이 좋았다.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새로운 정보와 함께 뭔가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일체의 장에서 머리가 아팠다. 살아가면서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순간에 부딪히게 될 텐데, 그 순간마다 일체의 장에서 배웠던 것들을 마치 공식처럼 이 상황에서는 이런 사실을, 저 상황에서는 저런 사실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뭔가 새로운 수학 공식을 외우고 필요할 때마다 머릿속을 뒤적거려서 꺼내 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그 공식을 까먹지 않으려고 애써야 할 것 같았다. 계속 되뇌고 외우지 않으면 금방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것 같아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공식들이 너무 획기적이고 좋으니까 그런 걸림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망설여졌고 ‘논리적으로 말해야지’ 하면서도 내가 말하면 어떤 반박이 들어올까 예상되었고, 그 반박에 대한 반박 의견까지 그냥 생각으로만 쥐고 있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의견을 대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재입재에서 백일출가 스태프를 하며 두 번째 일체의 장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해보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이 되든 안 되든 그냥 뱉어보자’ 생각했다. 스태프로서 장에 참가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훨씬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스태프인데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 않을까, 이미 일체의 장을 한번 해봤는데 잘못 이해하면 나를 좀 답답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도 그냥 해봤다. 다른 분들이 가볍게 이해되었다는 질문에서도 내가 이해되지 않고 미진하면 계속 법사님을 붙잡고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법사님한테 계속 모르겠다고 하는 그 찰나에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냥 했다. 머릿속에서만 이렇고 저렇고, 이건 말이 되고 저건 말이 안 되고, 생각하기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답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법사님이 하시는 질문에 말문이 탁 막히더니 확 가벼워졌다. 계속 생각하고 따져보고 반박한 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면 인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또 다른 반박 거리가 떠올랐다면 의문을 제시했겠지만, 말문이 막히면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수학 공식처럼 외우고 까먹지 않으려고 애쓰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로 내 몸, 내 생각, 내 마음이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없구나!’ 그게 이해가 가는 순간 정말 많이 가벼워졌다. 누구를 시비하고 무시하는 마음이 난다고 나를 미워할 필요가 없는 거네. 부정적인 마음들이 일어났을 때 그 마음 자체를 곧 '나'로 삼으면서 왜 그렇게 부정적인 마음을 내었을까, 나의 본모습은 뭘까 하며 나를 갉아먹지 않아도 되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 실수 많은 모습, 봐주기 힘든 나의 모습이 보여도 나에게 화살을 돌릴 필요 없이 그냥 그런 면이 있구나 하고 가볍게 봐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일출가에 재입재까지 한 지금은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사소한 문제들을 신경 쓰느라 이런 모습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싫든 좋든 정말 가까이에서, 정말 세세하게 나의 모습들과 마주했다. 그렇게 마주하면서 골똘히 고민해보고 집착도 해보고 이해도 해보았다. 그러다가 이해되니 ‘내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보듬어줄 수 있게 되었다.
‘외면하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다그치는 것이 답이 아니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니 아주 편안하구나’ 하는 사실을 경험해서 참 감사하다.
여전히 놓치기도 하고 내 생각을 고집하며 시비 분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된다고 들뜨지 않을 것이며 놓치면 놓치는 대로 다시 살펴 알아차리면서 가볍게 살아보려 한다. 될 때까지
글_조서호(백일출가 45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두 손을 서로 어긋나게 걸쳐 마주 잡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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