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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님 : 5시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면 될 것 같아요.
리포터 : 그 말이 무슨 말인가요?
김은영 님 : 5시에 기도하려면 잠들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야 해요. 시간 가는 대로 하다 보면 습관대로 하게 돼요. 5시를 놓치면 안돼요. 기도하고 나면 정말 뿌듯해요. 정말 일어나기 싫은데, 일어나서 했을 때 ‘김은영 했다.’라는 마음이 들거든요.
리포터 : 그게 왜 그렇게 뿌듯한 거예요?
김은영 님 : 나에 대한 믿음이 쌓이더라고요. 스스로 믿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안될 때는 믿는 마음이 흐트러졌고요. 내가 나를 믿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는 알거든요. 믿음이 쌓이니깐 내가 하기 싫어도 하게 됐어요. 그러니 왜 5시에 기도하는지도 알겠더라고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였어요. 마음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 의미를 알고 나니, 5시가 '강요'가 아니라, '강조'였어요. 5시 기도는 나를 바로 서 있게 해요. 5시 기도로 ‘그동안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했구나. 그냥 막살았구나.’를 알았어요.
저는 늘 남을 의식했습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했기에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거기에는 돈 많이 벌고, 우리 가정이 행복하고, 직장의 승진 등 '나만 잘되는 욕심'이 가득했습니다. 제 진짜 마음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반들과 나누기 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나누기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나를 어떻게 볼까?’ 그렇게 눈치 보며 제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2011년 대학 동기의 전화 한 통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 친구의 권유는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저를 망설이게 하는 건 따로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 후 나누기였습니다. 나누기라는 말도 생소한데, 마음을 표현하라는 건 ‘외계어’였습니다. 하지만 법당 방석에 앉아 다른 도반이 속 시원하게 말하는 걸 보며 부러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나는 왜 안 되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일과 관련된 말은 문제없이 했습니다. 다만, 나누기만 못 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알았습니다. ‘내가 말할 사람이 없었구나.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환경이었구나. 내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저는 오빠와 여동생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엄마는 여동생만 데리고 갔고, 저는 오빠만 바라보는 할머니와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행동을 당연한 듯 받아들였습니다. 따뜻하지 못한 어른들 속에서 저는 성장했습니다. ‘왜 손녀 귀한 줄은 모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저 또한 잘해서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항상 그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긴장하고 눈치보며 살았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못마땅한 마음만 커졌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어린시절 그런 저를 이해했습니다. ‘내가 말을 못 할 만해.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어렵게 했구나. 그래서 내가 어려운 사람을 보면 과거 나를 보듯이 눈물이 났구나’
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유를 알아 오히려 기뻤습니다. 어릴 적 그런 내가 많이 안쓰러웠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계속 생겼습니다. 아무 비판 없이 온 정성을 다해서 들어줬습니다. 그래서 믿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누기할 때 못 들었으면 ‘못 들었다.’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고, 제 마음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실컷 하고 싶지만, 동시에 제 안의 저를 단속하기도 합니다. 이 기쁨에 들떠서 혹시 실수할까 봐, 순간 잘하려는 욕심을 알아차립니다.
전보다 마음 표현이 편해지니, 소임을 맡게 되면 꽤 적극적으로 합니다. 경쟁 아닌 경쟁으로, 마음의 들뜸으로, 우리 모둠과 소속 지회의 인원수에 집착합니다. 그 순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멈춥니다.
때론, 멈추지 않는 알아차림도 있습니다. 9월 23일 아도모례원 봉사 가는 날, 행사 준비 소임을 맡았습니다. 우리 모둠은 다르게 해 보고 싶은 욕심에 춤, 노래 말고 다른 걸 하자며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발전한 마음 표현이었습니다. 욕심임을 알아차렸지만, 그 욕심을 재미로 승화시켰습니다.
콩트 아이디어가 나왔고, 시나리오도 한 도반이 적어보겠다고 했습니다. 4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도반이 있는 우리 모둠은 신나게 웃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우리가 만든 것을 듣는 사람이 있고, 손뼉 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마이크를 잡고 진행도 했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본무대는 연습 때보다 조금 부족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제 마음의 자유로 다가왔습니다.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솔직히 ‘되는 건 되고, 안되는 건 안 된다.’라는 저의 알아차림에 기쁩니다. 바라보는 마음과 다독이는 마음이 같이 되면 좋겠지만, 그건 아직 어렵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 저를 알아차리는 것도 좋고, 제 안의 저를 토닥여 주는 것도, 가슴 찡하게 좋습니다. 저는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제야 저를 알아봤듯이 못마땅했던 할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늦었지만, 길러주심에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삶의 주인으로 살아보니 결과보다 제 안의 마음을 먼저 보고, 주변 사람들도 살핍니다.
우리가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가꾸면서 살고 있는가가 저에게 중요합니다. 정토회를 만나 주어진 제 삶에서 ‘저를 위해, 우리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니 참 좋습니다.
자신에 관해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좋고, 공감만으로도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는 김은영 님. 새벽 5시 기도 이야기는 저에게 찔렸던 순간이었습니다. ‘안 되는 것도 되도록 만드는구나.’ 청정한 목소리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따뜻하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허승화(경남지부 사하지회)
편집_서지영(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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