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오디오북
오디오북-선광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

법사님은 날 때부터 법사님이지 않으셨을까? 나처럼 옆에 있는 가족에게 부대끼고 도반에게 걸리셨을까? 선광법사님의 이야기에는 우리들의 이런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자식을 귀히 여기는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나 받을 줄만 알고 살다 인생의 고비와 갈등을 수행과 봉사로 녹이고 법사가 되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28년 간의 수행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입재식에서 선광법사님
▲ 입재식에서 선광법사님

내려놓는 거라면 할 수 있겠다

정토회에 오기 전 저는 무남독녀 외딸로 오냐오냐 자라 받을 줄만 알았지 주는 법은 몰랐습니다. 그게 집에서는 허용되지만 사회에 나오니 어디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성당에 가서 성모마리아님이나 천주님께 기도를 해도 힘든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지인이 《월간정토》를 일 년간 구독해 주었습니다. 《월간정토》를 읽다가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내 생각을 내려놓고, 기대를 내려놓으면 된다.’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내려놓는 거라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월간정토》로 직접 전화를 하고 찾아갔습니다.

이후 정토회에 다니겠다고 당시 담당 신부님이셨던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 말씀드리니, "정토회가 뭐하는 곳이야?" 하셨습니다. 저는 "나를 내려놓고 뭔가도 내려놓고 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서... 거기 가면 이 힘든 마음을 내가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뭐, 가고 싶으면 가야지. 그런데 갔다가 아니면 다시 돌아와.” 하시면서 문을 딱 열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숨 쉴 구멍을 내어주셔서 정토회에 와서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하다 안 되면 다시 가면 되니까 그냥 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 덕분에 정토회에 잘 적응할 수 있어서, 전 아직도 김수환 추기경님의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인연 따라 1991년에 정토회에 왔습니다.

수행담을 풀어놓으시는 선광법사님
▲ 수행담을 풀어놓으시는 선광법사님

좋은 인연 짓게 해준 스님의 테이프

홍제동 법당 시절에는 법문 듣고 나누기가 끝나면 스님과 상담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루는 스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상담하던 날, 저는 절을 하고 앉아서 아래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왜 왔냐고 물으셨고, 저는 “그냥 들어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우물에서 바다로 나간 개구리》라는 책을 주시면서 다음 수요일까지 읽어 오라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젊어서 책을 금방 읽고 탁 덮었습니다.

그 다음 법회 때 또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 책 읽어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물으셔서 “아무 생각이 없는데요.” 했습니다. 이번에도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좋은 인연 지어 가세》라는 테이프만 주셨습니다. "스님, 다음 주에 또 올까요?" 물었더니 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스님과의 상담이 끝났습니다.

그때는 불가에서는 ‘묻지 않으면 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처음에 스님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면 “제가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어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얘기해야 하는데 “그냥 들어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하니 설하실 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 후 테이프를 계속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테이프를 듣고 저녁이 되면 자재법사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랬을 텐데, 자재법사님은 그걸 다 받아 주셨습니다. 가끔은 체면 차린다고 "법사님, 바쁘지 않으세요?" 물으면 "어, 괜찮아요." 하시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어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법사님께 “그때 전화했을 때 어떻게 그걸 다 받아 주셨어요?”하니 “어쩌겠나, 수행하겠다는데…”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이 지침이 됩니다. 집에서도 화장실에 가든 부엌에 가든 쉴 새 없이 6개월을 들었더니 테이프가 끊어졌습니다. 그제서야 법사님께 전화하는 것도 끊게 되었습니다.

2002년 유수스님과 설악산 봉정암 등반(뒤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 2002년 유수스님과 설악산 봉정암 등반(뒤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자긍심과 자존감이라는 큰 유산

어느 날, 각해 보살님께서 법당에 오셔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해보살님께서 저를 보고 "어? 수행을 제대로 안 하면 땟거리(밥)도 없겠는데?" 하셨습니다. 그때는 친정과 시댁이 부유하고 남편도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잘 다니고 있어 그 말씀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년쯤 지나 남편이 몸이 아파서 휴가를 내더니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편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쓰레기 소각로를 만드는 사업인데 소각로에서 다이옥신이 나온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회사는 부도가 났습니다. 다음 날부터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싹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정말로 땟거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힘든 고비를 견뎌내지 못해서 정토회에 절실하게 매달렸습니다. 수행이 뭔지도 모르면서 ‘수행을 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딸 셋에 아들 하나, 사 남매가 다 공부할 때였습니다. 스님께 집이 부도가 나서 돈을 벌겠다고 하니 그러라 하셨습니다. 지인이 좋은 조건으로 수영복 장사를 권해서 시작했습니다. 여름 장사라 4개월은 수영복을 팔고 나머지 기간은 정토회에서 봉사하고, 여름이 되면 다시 수영복을 팔았습니다.

장사는 제법 잘 되었습니다. 장사가 잘 되니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밤 11시쯤 정산하고 집에 오면 남편이 문을 열어주는데 얼굴이 보기 싫어 고개를 휙 돌려 버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니까 되는데 무슨 남자가 사업을 망해?'라는 생각 때문에 남편이 밉고 무시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때가 제일 힘든 시기였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성질 같아서는 남편에게 찬물이라도 확 끼얹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설프게 들은 법문이 있어 화는 내지 못하고 참고만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스님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장사를 그만두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넷이고 당장 먹을 것이 없다’ 했더니‘정토회로 들어오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남편과 관계가 나쁘면 아이들이 자존감도 없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하다. 보살이 지금 돈을 벌어서 아이들이 컸을 때 1, 2억씩 유산을 남겨주는 것보다, 아이들한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자존감을 주는 게 훨씬 더 큰 유산이다."
그 말씀을 듣고 가게로 돌아가서 두 시간 만에 장사를 정리했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선광법사님 두 번째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낭독_고정석
글,사진_인천경기서부지부 희망리포터
편집_온라인.홍보팀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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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홍

오랜만에 다시들어도 참 좋네요.
고비가 왔을때 더 정토회에 매달렸다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ㅎㅎ

2022-03-05 04:27:38

정수옥

'너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다'
이 생각으로 괴로웠던 지난날이 생각나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법사님 가신길 귀감으로 삼겠습니다.

2020-01-11 22:27:37

조서현

존경합니다 ~♡

2019-12-26 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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