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3.22. 경주 유적지 답사, 감자 심기, 텃밭 가꾸기
“육아휴직 후 복직했지만, 마음이 힘듭니다.”

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는 경주 일대를 답사하고 봄 감자 심기를 하고 오후에는 봄나물 캐기와 텃밭 가꾸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 8시 30분 두북수련원을 출발해서 경주 남산 입곡 석불두를 찾아 나섰습니다. 조계종에서 경주 남산 성역화 사업으로 책자를 발간 중인데, 스님이 경주 출신이고, 경주 남산 순례를 수십 년 차 한 경험이 있어 경주 남산 유적지에 대한 감수 요청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요청받은 자료를 검토해 보니, 몇 군데 빠진 곳이 있었고, 한 곳은 모르는 유적지여서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앱 지도를 열고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지도 앱에는 유적지에 대한 표시가 없었습니다. 두북수련원에 온 김에 짬을 내서 경주 남산 답사를 했습니다.

첫 답사지는 경주 남산 입곡 석불두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이 개인 밭을 지나야 하는 곳이었고, 큰 개가 밭을 지키고 있어서 들어가기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유적지를 찾아 들어가는 길이 분명하게 나 있지 않았습니다. 답사하면서 개인 밭을 지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을 확인했습니다.

두 번째로 가 본 곳은 경주 남산 탑곡 제1사지 마애조상이 있는 곳입니다. 수십 년 차 경주 남산을 둘러보고 안내했지만, 이번 유적지는 처음 와보게 되었습니다. 유적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도로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략의 위치를 파악하고 동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동네 어르신을 만나서 길을 물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 길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여기 탑곡 부처 바위 같은 것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 있습니까? 제가 경주 출신이고, 경주 남산을 여러 번 왔다 갔는데, 여기 마애불상군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서 답사 목적으로 왔습니다.”

“저 절 뒤쪽에서 올라 가는 길이 있습니다. 유적지로 정비 된 지 몇 년 안되었어요. 여기 저희 집 뒤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동네 어르신은 본인의 집 뒤쪽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위를 가리키며, 가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은 길이 없어 보이는 산길을 먼저 앞장서서 올라갔습니다.

동네 어르신이 알려준 바위까지 왔습니다. 안내 표시판이 있었고, 바위에 새겨진 문양에 대한 그림이 있었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모가 심했습니다.

스님은 앞면, 옆면을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바위 한쪽이 유실되어 있었는데, 혹시 근처에 바위 한쪽이 떨어져 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길을 안내해준 어르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다음 유적지로 이동했습니다.

반월성 가는 길에 경주 인왕 동사지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명복을 비는 인용사(仁容寺) 터로 추정된 곳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신라의 전형적 가람배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른 신라 사찰과 비교되는 독특한 건축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인데, 스님은 여러 터를 둘러보며 그 특징들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경주 천관사지도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도당산 서쪽 기슭 논 가운데에 있는 절이고 김유신과 기생 천관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입니다. 청년 시절 술 취한 김유신이 말을 타고 갔는데, 말이 기생의 집으로 가자 김유신이 말의 목을 베었다는 김유신의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기생이 천관입니다. 말 머리를 베듯이 김유신은 천관과의 관계를 냉정하게 끊었고, 천관은 목숨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이후에 김유신이 천관이 살던 집에 천관사를 지어 명복을 빌은 곳이 천관사지입니다. 천관사지에서 여러 건물지를 둘러보았습니다.

경주 일대 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스님은 두북수련원에 도착 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앞 밭 하단에서 농사팀이 노지 감자를 심는 중이었습니다. 두북 농사팀은 어제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 교체 작업을 한 후라 감자 심기에 속도가 잘 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봄 감자 심기에 일손을 보태러 앞 밭으로 왔습니다.

스님은 준비된 씨감자를 보고 농사팀 행자에게 확인차 물었습니다.

“씨감자 크기가 이렇게 크면, 이 밭에 씨감자만 해도 엄청 많이 들어갈 텐데, 농사 지도해주는 거사님과 확인해서 진행하는 거예요?”

스님은 농사 지도해주는 거사님과 직접 통화를 하고 확인을 한 후에, 준비된 씨감자를 심었습니다. 앞 밭에는 삶았을 때 포슬포슬한 것이 특징인 두백 감자와 일상적으로 무난하게 식재료로 사용되는 수미 감자 두 종류를 심을 예정이었습니다. 스님은 두백 씨감자를 맡아서 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잘하시니까 여기 고랑을 맡아주세요”

스님은 파종기를 고랑을 푹푹 힘 있게 찔러 넣었습니다. 스님이 땅에 파종기를 푹 찔러서 벌리면, 행자 한 명이 씨감자를 파종기 속으로 쏙 넣었습니다. 돌이 있는 고랑에는 파종기를 찔러도 푹 들어가지 않아, 스님은 긴 호미로 돌을 골라 가며 파종기를 사용했습니다.

씨감자가 들어간 자리는 농사팀 행자들이 흙으로 잘 덮어 주었습니다. 스님이 1시간 안에 3개 고랑에 씨감자를 파종기로 땅에 넣었습니다. 스님이 파종기로 씨감자를 땅에 넣어 준 덕분에 빠르게 감자를 심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점심 식사 후, 오후에 손님을 만나고 다시 오후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텃밭 가까이 있는 원추리를 잘랐습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원추리가 너무 세져서 먹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니, 오늘 원추리를 최대한 채취해서 식재료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채취한 원추리를 다듬고는 속가 누님 댁으로 가서 다양한 봄나물을 캤습니다.

원추리, 머위, 달래, 쑥 등 흙 위로 다양한 봄 나물거리들이 있었습니다. 한 바구니 봄나물을 캐서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온 후, 햇살이 누그러진 오후 4시 30분 쯤에 텃밭 가꾸기를 했습니다.

지난 겨울에 고수씨를 뿌리고 비닐을 낮게 쳐서 덮어 둔 텃밭이 있는데, 비닐을 벗겨보니 고수의 싹이 아주 작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고수 싹이 올라오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님은 상추 모종을 퍼서 고수밭에 심는 것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상추가 먼저 올라와서 따 먹고, 이후에 고수가 올라올 것이라서 상추 모종을 심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상추 모종을 펐고, 행자들은 상추 모종을 옮겨서 심었습니다.

스님은 상추 모종을 펐던 텃밭을 정리했습니다. 움푹 패인 곳의 흙을 정리하고, 빽빽이 있던 상추 모종을 하나씩 가지런히 심었습니다. 남은 흙을 텃밭에 골고루 뿌려주고, 비닐을 잘 씌워서 보온, 보습이 되도록 했습니다.

며칠 전, 상추 모종을 심었던 텃밭을 보니, 3개 고랑 중에 1개 고랑 귀퉁이 쪽의 상추 모종이 말라 있었습니다. 비닐로 덮어 둔 고랑은 물기가 촉촉이 있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부직포로 덮어 둔 고랑은 물기가 다 날아가서 상추 모종이 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고랑에 충분히 물을 주고, 이참에 비닐로 교체해서 상추 모종을 덮어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부직포 덮개를 벗겨내고, 고랑에 물을 충분히 주고, 비닐로 덮개를 만들어서 씌웠습니다.

상추 모종 심기와 물주기를 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졌습니다. 스님은 작업 도구를 정리하고 저녁 식사 후에 휴식을 취하고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전법법회에서 법문을 하고, 병원 진료가 있어 외출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전법법회를 온라인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1월 7일에 있었던 수행법회의 즉문즉설을 소개하며 오늘 ‘스님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육아휴직 후 복직했지만, 마음이 힘듭니다.

“3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였습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막상 제 현실이 되니 정신이 안 차려질 만큼 괴로웠습니다. 특히 기존 업무와 다른 단순한 업무에 배치되면서 의욕 상실과 허탈감이 컸고, 전체 직원의 연봉 관리와 보상 관련 업무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제가 평가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화도 났습니다.
다행히 정토회에서 배운 알아차리기 연습하면서 초반에 심각했던 괴로움과 우울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많이 힘듭니다.
이렇게 괴로운 상태로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지, 아니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듭니다. 그런 부분에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정토회 활동을 하는 게 더 중요하겠다, 혹은 직장을 그만두고 내 아이디어를 갖고 자영업을 하는 게 더 중요하겠다 할 때, 여기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선택이기 때문에 설령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니는 직장에 불만이 있어서, 화가 나서 그만둔다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이 직장에서 불만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제가 듣기에는 그건 질문자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젊은 여성 직장인과 관련해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일까요?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을 때, 제가 늘 ‘최소한 3년은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아이의 심리가 안정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입장에서는 3년을 비워놓을 수가 없습니다. 회사의 업무 효율, 경제 효율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입장에서 충돌이 생깁니다.

옛날에는 여성이 임신하게 되면, 또는 결혼하게 되면 직장을 그만두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항공사에 있는 승무원은 임신하고 직장에 다닐 수가 없잖아요. 요즘은 나이 드신 여성들도 승무원 일을 하는 분이 있지만, 옛날에는 결혼하기 전 처녀, 총각들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고, 사회 인식도 바뀌었습니다. 결혼해도 직장에 다닐 수가 있습니다.

육아휴직도 처음에는 6개월만 줬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사회적 요구가 있었고, 육아휴직 기간이 1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런데 1년 이상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직장을 그만둬야 해요. 그래서 대부분 경력 단절이 일어납니다.

5년, 1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해서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다른 직장에 갈 때는 과거의 경력을 살리지 못합니다. 원래 다니던 직장이 아닌 다른 직장에 가야 되고, 다른 직장에서도 신입으로 처음 들어가듯이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고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전문직을 잘 안 줍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이런 불공정한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런 문제로 여성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자녀를 안 가지게 되면서 출산율도 매우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기를 낳으면 1년은 본인이 직접 돌보다가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직장에 다니게 됩니다. 여성 한 개인이 볼 때는 아이를 다른 사람이 돌보고 본인은 직장에 다니니까 경력 단절이 안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사회적으로 보면 여성 누군가가 어린애를 돌봐야 한다는 것은 변화가 없는 일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육아휴직으로 1년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1년 그 이상이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질문자는 제가 제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3년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꿈의 직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그만큼 좋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3년 육아 휴직하는 동안, 질문자가 했던 그 업무를 회사 입장에서 볼 때 그대로 질문자에게 줄 수가 있을까요? 질문자가 자리를 비운 3년 동안, 그 자리를 아무도 배정하지 않고 그대로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다시 출근하면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을 옮겨야 하는데 그 직장에서 경력 단절을 안 시키고 유지시켜 준 것만 해도 사실 큰 혜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휴직 전 그 자리를 요구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효율이 떨어지고 운영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래 자리로 복귀하면 개인적으로 좋긴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어려우니 3년이 지난 뒤에도 직장에서 그대로 복직을 시켜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있던 부서는 현재 다른 사람이 일을 하기 때문에 질문자는 다른 부서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부서가 주어지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면 사회가 많이 변해서 그 자리에 복귀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경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3년을 비워놓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3년간 누군가가 임시직으로 일을 했다면 질문자가 복귀하는 동시에 그 임시 직원은 직장을 나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나는 좋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니던 직장에 복직된 것만으로 어느 정도 만족을 할 줄 알고 어느 부서에 가든 어떤 직위에 가든 너무 욕심부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동하는 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불만 때문에 이동하는 건 수행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더 좋은 일이 있거나,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옮기는 것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그동안 지속적으로 퇴사 권유를 받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복직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복직하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음속에 자리한 불안감 때문에 결국 복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원이라는 이름을 놓지 못하고 결국 복직을 하게 되면서 심리적 불안감이 더 많이 커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른 일도 하고 싶고 아이들도 돌보고 싶은데,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 때문에 회사를 놓지 못하고 매여 있는 현실이 괴로웠습니다."

"우선 복직을 해서 일을 하면서 결정을 해보세요.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게 더 의미가 있겠다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거나 자영업을 해보는 게 더 의미가 있겠다 싶으면 조금 더 심사숙고해서 그때 결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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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관

고맙습니다...

2026-03-25 08:03:54

박영일

감사합니다.

2026-03-25 08:00:47

김대영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6-03-25 07: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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