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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늘 오전에는 세계 명상 포럼 2일 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관계자들과 미팅했습니다.

아침 9시가 되자 내빈들과 발표자들이 정토사회문화회관 2층 쉼터로 속속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명상과 과학에 대한 발표이다 보니, 주로 명상 관련 단체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스님은 명상 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 소개도 했습니다.


오늘 발표자 중 한 명인 뇌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님이 발표에 앞서 스님을 만나러 2층 쉼터로 왔습니다.


스님은 장동선 박사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장동선 박사는 스님과 만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2014년 즉문즉설의 질문자로 스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장 박사와 앞으로 명상 관련 연구에 함께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있으니, 어느덧 행사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발표자들과 참석자들과 함께 행사가 진행되는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착석하자, 바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오전 세션은 현장 발제와 온라인 발제가 있었습니다. 장동선 박사는 AI가 발달하고, SNS가 발달한 시기 명상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명상이 우리 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뇌과학자로서의 의견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의 발표자인 린 후앙 님은 16년간 명상 수련을 해 오며 참가자들의 변화에 대한 영상과 함께 사례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이후 온라인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각국에서 주로 명상 효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중심으로 5명의 발표가 있었고, 현장에서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치고 오전 세션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외국인 참가자들과 함께 지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남방불교 스님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며 공양 예법에 맞게 접대했습니다.


지하 식당은 내빈들과 참가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스님은 마이크를 잡고, 이번 행사를 준비한 봉사자들을 내빈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이틀 동안 식사를 준비해 주신 공양간 봉사자들의 수고에 감사드렸습니다. 많은 감사의 박수가 울려 퍼졌습니다. 내빈들도 일어나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은 행사를 진행한 분들을 소개했습니다. 안내하고, 진행하고, 영상 찍고, 사진 찍고, 사회 보고, 통역하고 접대하는 등 행사의 진행과 특히 외국 참가자들의 공항 맞이, 교통, 숙식, 접대 등을 맡아 주신 국제지부, 공동체 봉사자들을 소개하고 감사드린 후,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이 행사를 준비한다고 큰 수고를 하신 분들입니다.


참석해 주신 내외빈들께 책 선물을 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번 행사의 식사를 준비해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직접 주방에 가서 봉사 중인 봉사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점심 시간을 쪼개어 스님은 이번 행사의 한 세션의 사회를 맡았던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사무총장 무 씨를 만나서 최근 근황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계 명상 포럼의 마지막 세션이 오후 1시 30분부터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 세션은 WMDC(세계 명상의 날 위원회) 관계자들의 멤버십과 아이디어 회의를 위한 워크숍이었습니다. 앞으로 WMDC가 추구하고자 하는 일들을 잘해 나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모으는 아이디어 수렴의 장이기도 하고, 멤버십을 구축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진행은 WMDC의 실무 총괄을 맡고 있는 메기 체 님이 맡았습니다. 그룹별로 나눠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뒤에서 봉사자의 통역을 받으며 토론하는 과정을 참관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하고, 그룹별로 아이디어와 소감을 나눴습니다. 메기 체 님은 프로그램 마지막 순서로 스님께 정리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할 줄 몰라서 토론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생 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 둘 걸 그랬었나 봐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너무 어린 나이에 출가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일반 학문과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저는 명상의 본질이 ‘수행’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종교나 철학과 다릅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도 저는 대부분 당시에 수행자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인류사를 보면, 그분들의 가르침을 종교나 철학이라는 범주에서 볼 뿐, 수행이라는 범주에 놓고 보는 관점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의 관점도 아직 과거의 종교나 철학의 관점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믿음’이라는 정신작용에 기초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사를 보아도 초기 종교 지도자는 대부분 제사장이었습니다. 철학은 ‘이해와 사유’라는 정신작용을 기초로 합니다. 그래서 철학은 주로 학문이라는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수행은 ‘실천’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성인들의 가르침은 인격을 닦는 실천이었는데, 역사적으로는 주로 종교와 철학이라는 두 영역에 포함되면서 ‘수행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이 형성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세계 명상의 날을 맞아, 수행을 종교나 철학과 다른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분류해서 자리매김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토론에서 명상은 ‘초월적인 영역’과 ‘치유적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명상의 치유 효과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너무 그런 치유 효과에 치우치면 자칫 상업적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도 그런 현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요. 또한 초월적인 부분도 너무 신비주의에 치우칠 위험을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비주의는 자칫 사람들을 어리석음에 빠뜨릴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요.
현재 인류 문명은 어떤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나친 소비주의는 기후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자기만이 옳다는 고집은 지역 사회나 국가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켜 전쟁이라는 폭력 사태로 번지고 있고요. 또 인공지능이나 로봇 같은 과학 기술의 발달은 노동자들의 대량 실직이라는 큰 사회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큰 혼란에 직면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사용할 물건이 부족해서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노력해 왔고, 그래서 우리는 노동하는 인간, 이런 관점에서 문명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즉 필요한 만큼 생산을 못 해서 늘 문제가 생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산이 남아돌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필요해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를 위해서, 인간의 뇌를 자극해서 필요 없는데도 사도록 만드는 것이 홍보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광고를 보고 필요한 것 같아서 구매하고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계속 높이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사람이 생산하지 않아도 AI를 탑재한 로봇이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생산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문명에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이상 사회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일하지 않고 산다고 하면 그 삶이 어떻게 될까요? 자연계에 있는 동물들이 가축이 되어서 먹이를 먹고 사는 것하고 같지 않을까요? 이것이 어떤 삶이 될까, 우리 인류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새로운 큰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명상이 이런 것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명상의 어떤 초월 영역이라는 것은 이렇게 어떤 통찰력을 키워서 우리 인류 문명에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통찰력을 갖는 지혜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급격한 변화에 수많은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치유하는 데 명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통적으로 말하자면 지혜와 자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부분을 하나의 과제로 삼고 우리가 함께 연구해 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이 ‘세계 명상의 날 위원회(WMDC)’가 이런 우리 인류 문명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가자 박수)
“그럼, 잠시 명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좋은 명상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생각을 멈추고 다만 호흡만 합니다. 호흡을 느낍니다.”
스님은 명상 종을 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명상했습니다.

스님은 이번 행사로 한국과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방문해준 발표자들과 외국인 참가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어떻게 1박 2일 이 곳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 아니오. 잘 지냈습니다.”
“저희들이 소박한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선물의 한 종류는 벨인데, 한국말로는 풍경입니다. 바람에 의해서 소리가 납니다. 처마 밑에 달아 놓으면 좋습니다.
풍경의 소리를 들을 때, 3가지 의미를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첫 째는, 사람의 소리만 너무 듣지 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두 번째는 지식인들, 엘리트 계층의 소리만 듣지 말고, 고통 받는 민중의 소리도 들어라. 세 번째는 남의 소리만 듣지 말고,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들어라.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발표자들에게 풍경 하나씩 드립니다. 나머지 참석자들에게는 제가 쓴 『혁명가 붓다』라는 책을 드립니다.
붓다는 가치관의 혁명을 일으킨 분이라고 해서 '혁명가 붓다'라는 제목입니다. 인간이 계급 차별할 때, 평등을 주장하셨습니다. 성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출가를 허용했습니다. 불행히도 2600년 전, 붓다가 허용한 여성의 출가가 500년이 지난 후에 오히려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테라밧다에서는 여성 출가가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여성의 출가를 2600년 전에 허용했다는 것은 성 해방의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책은 한 사람으로의 붓다가 어떻게 의식 해방이라는 혁명적 관점을 가졌느냐에 대한 내용입니다."


스님은 발표자와 참가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나눠 주었습니다.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자, 단체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진심으로 서로 함께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깊은 포옹으로 표현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행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접견실로 와서 이번 행사를 주최한 WMDC(세계 명상의 날 위원회) 관계자인 묘하이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외국인 발표자들, 참석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묘하이 스님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의견과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행사하게 된다면, 어떤 부분에 대해서 보완이 되어야 하는지도 덧붙였습니다. 묘하이 스님과 1시간 정도 미팅을 했습니다.

서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자, 스님은 단출하게 짐을 챙겨서 저녁 6시 30분경, 두북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님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밤 10시경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경주 일대를 답사하고 농사 울력을 할 예정입니다.

지난 수행법회 때 진행되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하며 ‘스님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불법에 세간을 떠난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시에 수행이란 세간의 끄달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하는데 두 말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은 이 속세를 어디까지는 수용하고 어디서부터는 경계해야 할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준을 알고 싶습니다”
“칼이 날카로울수록 도구로서는 효율적이지만 손을 베일 확률이 높아 위험 부담도 큽니다. 요즘은 톱과 같은 공구가 전동화되어 자동으로 잘 잘라줍니다. 일반 톱을 쓰다 다치면 조금 베는 정도지만, 전동 공구는 손가락을 날릴 수도 있을 만큼 크게 다칠 확률이 높습니다. 즉 효율이 높으면 위험도 그만큼 커집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누군가가 나를 많이 도와줘서 행복하다면 그것은 좋다고만 볼 수 없고 그만큼 위험도 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도와주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늘 차를 태워주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굉장히 불편해집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운전하면 타인에게 덜 의지하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인 하나님, 부처님, 부모님, 아내나 남편이 있으면 조건이 좋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지할 대상이 없어진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 고통을 겪을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살고 있다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고통은 찾아올 수 없습니다. 어떤 대상이 없어져도 조금 불편할 뿐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세상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습니다.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내나 남편, 돈, 지위, 집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혼자 숲 속에서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산다면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거나 고뇌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세속을 떠난다는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모두가 세속을 떠나 산속에서 혼자 산다면 별로 괴로울 일이 없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면 좋은 점이 있지만 의지할 대상이 없어졌을 때의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살 때 남편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고, 그 돈에 너무 의지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보통 세상에서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나 돈에 과하게 집착하게 됩니다. 세상에 의지하려는 대상을 다 버리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의지심의 정도를 줄여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세속에 있어도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 세상을 떠나라거나 다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되 그러지 못하더라도 집착을 놓는다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질문자가 만약 직장에 다니더라도 직장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돈을 벌어도 돈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며 연애를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있어도 세상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일찍 죽는다는 말을 들어서 그동안 부지런히 살면서도 40세나 50세쯤 되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사는 게 보너스, 즉 덤이 되었습니다.
덤으로 살면 사는 것이 좀 자유롭습니다. 덤으로 사니까 내일 죽어도 괜찮고 모레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죽을 필요도 없고 죽음을 매일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살 만큼 살았으니 더 살게 되면 계속 일을 하고, 죽는다고 해도 억울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덤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누가 보너스를 주면 좋은 일이고 안 줘도 그만인 것처럼 우리가 덤으로 산다는 말은 세상에 집착을 좀 놓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소소한 것에 조금 덜 연연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살다 보면 연연하는 순간이 올 때도 있지만 크게 보면 덜 집착하기 때문에 삶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님. 그러면 이제 세간을 떠난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저희가 속세 속에서 살기 때문에 완전히 세간을 저버릴 수는 없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모든 고뇌는 우리의 무지로부터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또한 고뇌가 있는 그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고뇌가 없는 곳이라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들이 고뇌하는 속에 있기 때문에 설해진 것이지 중생이 고뇌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이 설법할 이유도 없습니다. 즉문즉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다 깨달아서 스님에게 물을 게 없다면 즉문즉설 법문이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고민거리는 크게 보면 모두 별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지금 세상일에 집착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니 스님이 괴로움의 원인이 집착에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이고, 여러분은 ‘아! 그러네, 별일 아니네!’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떠나 깊은 산속에만 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뇌가 있는 바로 그곳에 고뇌로부터 벗어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안이 있기 때문에 밖에 있다는 말씀인 거죠?
“꼭 그렇게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넘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길이 있다고 할 때, 그렇다면 일단 넘어져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넘어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일어나면 되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넘어져야 한다, 안 넘어져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안 넘어지도록 조심하되 넘어진다고 해서 실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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