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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는 3일째 날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미국 국무부에서 아시아·태평양 부서와 한국 관련 부서 등 세 부서와 연달아 회의가 잡혀 있었습니다. 국무부는 의회에 비해 보안 검색 절차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오늘은 어제보다 더 일찍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7시 45분에 워싱턴 D.C. 남서쪽에 위치한 국무부로 출발했습니다. 국무부의 방문자 보안 검색대에 도착하니 국무부 직원이 나와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국무부 방문을 환영합니다. 모두들 스님 뵙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케빈 킴(Kevin Kim)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실로 이동했습니다. 케빈 킴 부차관보가 스님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스님, 제이슨, 김순영 박사님은 20년 넘게 한 팀으로 일하고 계시네요."
인사를 나눈 후 부차관보실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케빈 킴 부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인사이동이 많고, 국무부도 부서 개편을 진행하고 있어 매우 바쁜 시기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미국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워싱턴을 방문한 목적은 북미 간 대화가 진척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여러 사람을 만나 보니 북미 관계 개선에 실무 책임자가 케빈 님이라고 하더군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기에 북미 간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케빈 님이 많이 힘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케빈 님은 오랜 시간 동안 스님의 한반도 평화 활동과 북미 관계 개선, 북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지켜본 분이기에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빠르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칠 무렵 케빈 님이 이번에 누구를 만나러 워싱턴을 방문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케빈 님을 만나러 온 겁니다. 오늘 이렇게 회의를 했으니, 이번 방문에서 할 일은 다 마친 셈이에요. 보통 워싱턴에 오면 백악관 국가 안보 회의(NSC)를 방문했습니다. 지금 백악관에는 북미 대화를 이끌 담당자가 없으니, 케빈 님이 중심이 되어 꼭 북미 간 대화의 물꼬를 트이게 해 주세요.”
케빈 님도 노력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두 분은 약속된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북미 관계 개선과 인도적 지원 재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가을에 워싱턴 방문 때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새로 출간한 영문판 『혁명가 붓다』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어서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국무부 북한과(DPRK Unit)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북한과 담당 직원뿐만 아니라 인도적 지원 관련 부서의 직원 네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직원들은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 정부로 행정부가 교체되면서, 부서 책임자들의 인사이동이 많아 정책 결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인도적 지원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변을 들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직원들의 설명을 들어 보니 업무 특성상 법적 문제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인도적 지원 업무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곧 대북 인도적 지원이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당부하며 대화를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국무부 정보국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앞서 인도적 지원팀과 대화를 나눴던 직원은 스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다며 다음 미팅 장소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다음 회의실에 들어서니 미국 국무부 정보국 직원 다섯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앞선 미팅이 길어져 조금 늦었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국무부는 오래전부터 스님이 방문해 온 곳이라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오늘 처음 만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JTS(Join Together Society), 좋은 벗들(Good Friends), 평화재단(Peace Foundation)의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JTS는 북한 관련 인도적 지원을 해 오고 있고, 좋은 벗들은 북한 난민과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오늘의 북한 소식』을 발행해 왔습니다. 평화재단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북미 관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과 연구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이후 직원들과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무부 직원이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해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북한의 입장이 궁금하다며 대화를 재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현재 제가 아는 바로는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목매달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화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는 입장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면서 대화를 하자고 할 때는 대화에 응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격적 군사 훈련을 하면서 대화를 하자거나 경제 제재를 하면서 대화를 하자고 할 때는 대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설령 대화를 하더라도 성과가 없다는 겁니다. 즉, 보여주기 식의 대화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북한은 대화에 나설 수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이제 자신들의 생존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첫째, 5년 전에는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유엔 안보리가 분열되면서 자신들도 분열이 된 한쪽 편에 속하게 되어서 경제 제재를 더 받게 될 위험이 사라졌습니다. 둘째,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맺게 되면서 안보 문제도 보완이 되고, 군사 기술도 향상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가난하기는 하지만, 위기 상황은 면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국과의 대화에 목매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려면 5년 전과 동일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때는 북한의 입지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이라는 정책을 사용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소용이 없습니다. 북한의 국가 목표는 강하고 부유한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현재 강한 나라는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부유한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유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이런 측면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고서는 국가를 경제적으로 재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점은 그들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책은 임기 초반에 드라이브를 걸어야지 임기 말에 시작하면 끝을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것이 어떤 실무적인 접촉보다도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 외에는 누구도 이 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이어서 북한의 경제 상황,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 인권 문제 해결 방법 등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전 내내 국무부에서 세 부서와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다음 약속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기에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회관에서 준비해 온 고구마와 군밤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다음 일정은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 기업 연구소(AEI)의 정치 경제 석좌 에버스타트 박사와의 미팅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워싱턴 D.C.를 방문하지 못했고, 지난 2년간은 일정상 미국 기업 연구소를 방문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오랜만의 재회였습니다.
오후 1시에 미국 기업 연구소에 도착하자 에버스타트 박사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It's more difficult to obtain accurate information about North Korea these days than it was in the late 1990s. It's truly wonderful and gratifying to meet with Venerable Pomnyun Sunim again during such times."
(1990년대 후반보다 요즘은 북한과 관련하여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런 시기에 다시 스님을 뵙게 되어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스님은 최근 북한의 상황을 공유하면서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현재 핵무기를 10기 보유하고 있다면, 현재 상태에서 중지를 시킬 것인지, 앞으로 50기, 100기를 갖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핵을 없애라는 요구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핵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at's a very interesting and important point. What I'm curious about is how we can make North Korea believe that the United States has no intention of attacking North Korea?"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지적입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믿도록 할 수 있을까요?)
“북미 관계 정상화를 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1년에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을 할 때 남한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 일본과 수교를 맺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대칭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 개발을 시작하게 만든 것입니다.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서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면 자연적으로 신뢰는 회복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핵 동결과 경제 제재 중단을 합의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북한의 경제 상황, 북한 인권 문제, 인도적 지원 문제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2시 30분이 되어 대화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기온이 30도를 넘고 습도도 높아 마치 한국의 한여름 같았습니다. 스님은 그늘 아래에서 제이슨 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3일간 귀한 시간을 내어 통역해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오후 4시가 넘어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낮에 일정을 마치고 회관으로 돌아온 것은, 스님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워싱턴을 찾은 이후로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식사를 한 뒤 다음 일정 전까지 잠시 쉬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부터는 평소 좋은 벗들 미국 지부와 연대해 온 한반도 평화 운동 단체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 회원들과 온라인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 말, 법륜스님을 초청해 같은 주제로 웨비나(온라인 세미나)를 기획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되었고, 이번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다시 열게 되었습니다.
이번 온라인 세미나의 주제는 ‘내면의 평화, 한반도 평화: 지속적인 사회 운동을 위한 불교의 지혜’(Peace Within, Peace For Korea: Buddhist Wisdom for Sustained Activism)입니다. 최근 급변하는 미국 사회와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한반도 평화를 향해 활동하면서 내면의 평화를 지켜갈 수 있을지 스님의 지혜를 듣고자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퀘이커교, 개신교, 가톨릭, 불교, 비종교인을 비롯해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함께했으며, 한반도 평화에 관심 있는 1세대, 2세대, 3세대 한인들과 비한인 참가자들도 다양하게 참여했습니다.
세미나는 뉴욕의 HA:N 감로교회를 이끄는 교포 2세 송슬기로 목사의 사회로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최근 북한과 한반도 정세,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바로 청중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참가자들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활발하게 질문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세미나의 마지막에는 오늘의 주제와도 연결된 질문이 나왔습니다. 한 참가자는 지속 가능한 평화 운동을 이어 가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스님의 견해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짧게 보면 성공과 실패가 있지만 길게 보면 모두 하나의 과정일 뿐” 이라며,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태도” 라고 답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이들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여전히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전문가나 활동가들조차도 점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지쳐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0년 동안 한결같이 지치지 않고 열정을 다해 활동을 이어온 스님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깊은 감동을 받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놀라워하며 스님에게 지혜를 구하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세미나를 마친 뒤 곧바로 스님은 다른 줌 회의실에 접속하여 수요 수행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미주 정토회관에 와 있습니다. 이곳 시간으로 저녁 9시입니다. 오늘 저는 미국 국무부를 방문해, 북한과 미국 간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양측의 대화가 보다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아울러 JTS에서 요청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신속히 승인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경제 상황과 외교적 입장에 대해서도 현지 전문가들과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저는 이번 미국 방문 일정을 통해 지금이 한반도의 평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각각 당선된 이 시기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모금해 주신 소중한 정성으로 북한에 인도적 지원도 시작하고, 농업 개발과 수산업 발전 등 다양한 사회 개발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휴전 협정 72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과 미국 간에 대화가 진전되어 전쟁을 끝내고 남한과 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관계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기보다는, 서로 협력하며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아끼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토회는 창립 초기부터 수행 단체로 출발했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목표도 함께 가지고 활동해 왔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즉,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지, 나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관점에 서면 결국 미움이 생기고 적대적인 태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자비와 중도의 가르침에 따라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다해야 하듯이 우리 역시 비록 힘은 미약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온라인으로 회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시누이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자비심을 가질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2년 전 제 남동생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문상은 물론이고 조의금이나 전화 한 통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큰 시누이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남편이 조의금만 전달했는데, 큰 시누이는 직접 오지 않았다며 화를 냈습니다. 그때 저는 제 동생 일이 떠올랐습니다. 정작 자신이 했던 일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위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로 사과하고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시누이의 반응에 마음이 다시 힘들어졌습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자비심을 내자 그 화살이 닿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저에게도 그 사례가 적용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비심을 낼 수 있을까요? 시누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도 저의 집착인지 궁금합니다.”
“요즘 자주 쓰는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딱 그런 경우예요. 질문자의 동생이 죽은 일은 시누이 입장에서는 남의 일입니다. 시누이에게는 질문자까지만 시댁 식구이지, 동생은 그 범주에 안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질문자는 당연히 동생도 가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친정의 입장입니다. 시댁에서는 질문자와 남편이 한 가족이지, 동생까지는 가족이 아니에요. 그러니 동생 일이 시댁 사람들에게는 가족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무도 챙기지 않았던 걸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시누이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은 질문자에게는 우리 가족의 일이 아니에요. 시누이까지는 가족이라 생각해도 시누이의 시아버지까지 가족이라고 보진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시누이에게는 자기 시아버지니까 당연히 가족입니다. 그래서 시누이 입장에서는 ‘어떻게 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안 올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내 동생 죽었을 때는 신경도 안 쓰더니!’라고 생각하고, 시누이는 ‘어떻게 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안 올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3자가 보기에는 똑같은 상황 같지만, 당사자의 입장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 순간 예전에 있었던 동생 일이 떠올라 분별심이 일어난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불법 주차한 걸 보고 나도 따라서 주차했는데, 나만 단속에 걸렸다고 합시다. 이럴 때는 벌금을 내고 끝내면 됩니다. 그런데 ‘왜 나만 딱지를 떼고 저 사람은 안 떼요?’ 하고 항의해 봐야 받아들여지겠어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다른 사례를 끌어와서 증명하려 한다는 거예요. 이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질문자는 자신의 방어 수단으로 남동생을 끌고 온 거예요. ‘나만 그랬나? 너도 그랬잖아!’ 하는 식입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대응 방식이 아닙니다. ‘왜 저 사람은 주차 위반 딱지를 안 떼느냐?’ ‘왜 나는 단속하고 저 사람은 봐주느냐?’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시누이는 자기 가족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질문자에게는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거예요. 또 질문자에게는 동생의 죽음이 너무나 큰 일이었지만 시누이에게는 남의 집 일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는 거예요. 이렇게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 앞에서는 누가 옳고 그르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누이가 잘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시누이가 뭐라고 하든, ‘자기 가족이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챙기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넘기면 됩니다. 그런데도 질문자가 너무 억울하다면 ‘그럼 당신은 내 동생 죽었을 때 왜 안 왔어?’하고 속 시원히 한마디해 보세요.”
“저는 무서워서 그렇게 못해요.”
“맞대응해 봐도 됩니다. ‘너만 잘했냐, 나도 잘했다.’ 하며 맞받아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행자가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그냥 보통 사람이라면 ‘뭐 까짓 거 해 보지.’ 하면서 맞대응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에요. 지금 질문자는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마음속에서는 이미 그렇게 맞서고 있는 겁니다. ‘시누이는 자기 가족이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안 가서 그랬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
“잘 알겠습니다. 형제 중에 저희에게만 연락이 안 와서 못 갔던 건데, 시누이가 그렇게 난리 치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마음을 다잡고 죄송하다고 전화를 했거든요. 그런데도 시누이는 자기 잘못을 전혀 모르는 듯해서, 오히려 제가 더 화가 났습니다. ‘내로남불이네.’ 하며 속으로 흉을 봤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시누이에게 저 역시 ‘내로남불’이었고, 결국은 같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통이 터져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마음이 가라앉고 웃음이 나옵니다. 스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맞아요. 질문자도 진짜 웃기는 행동을 한 겁니다. 자기 꼬라지는 못 보고 남의 꼬라지만 본 거예요. 성경에 ‘내 눈의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은 본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상대만 보고 나를 안 봐서 그런 겁니다. 나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결국 똑같아요. ‘나도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런데 시누이도 그럴 수 있지.’ 이렇게 이해하고 웃으면서 넘어가는 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질문을 더 받을 수가 있었지만 스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평소보다 일찍 대화를 마쳤습니다.
수행법회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원고 교정을 하고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스님은 정토회의 천일결사에서 개인의 변화는 최소 3년, 사회의 변화는 최소 30년, 즉 한 세대가 걸린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활동했던 많은 이들이 하나둘 은퇴해 가는 가운데, 스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30년 전,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세운 원(願)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일은 미국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워싱턴 D.C.를 출발하여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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