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두북수련원의 농장을 전체적으로 정비하기로 한 2일째 날입니다. 구름이 해를 가려서 일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에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공동체 법사단에서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많은 법사님들도 봉사자들에게 일감을 안내하기 위해 함께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울력을 어떻게 진행할지 전체적으로 살펴본 후 모란을 먼저 옮겨 심었습니다. 땅을 갈아서 새로 밭을 만들 공간에 모란과 쑥이 일부 자라고 있었습니다. 모란은 한쪽으로 옮겨 심고, 쑥은 전부 캐서 가장자리에 모았습니다.
“쑥은 캐서 그냥 두면 뿌리가 땅속으로 들어가 또 삽니다. 전부 캐서 가장자리로 모아주세요.”
스님은 모란을 하나씩 정성껏 옮겨 심었습니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부산울산지부와 대구경북지부에서 온 봉사자 60여 명이 산 윗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엉덩이 방석을 착용하고, 호미 한 자루씩 들고 여기로 올라오세요.”
산 윗밭은 윗단과 아랫단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일 나누기를 한 후 각자 맡은 구역을 향해 모둠별로 흩어졌습니다. 일부는 엉덩이 방석을 하나씩 착용하고 밭의 윗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선주 법사님이 일감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여기는 도라지 밭입니다. 줄을 맞춰 나란히 앉은 다음에 끝에서부터 풀 뽑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도라지만 빼고 나머지 풀은 전부 뽑아 주시면 됩니다.”
20여 명이 나란히 앉아서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도라지와 풀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풀밭이 되어 있었는데, 사람 손이 무섭다고 많은 인원이 함께 하니 금방 도라지만 남은 밭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
“도라지만 많이 뽑았죠? 수고하셨어요.” (웃음)
스님의 농담에 모두가 한바탕 웃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번에는 모란 밭에 난 풀을 제거했습니다. 모란이 제법 크게 자라서 풀이 덮지는 못했지만 땅에는 풀이 많았습니다. 호미로 긁어서 작은 풀도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란 밭도 모란만 남은 깔끔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모란은 대부분 꽃이 피었다 지고 난 후 왕관처럼 생긴 목단 씨방이 되어 있었는데, 일부는 씨방이 터져서 까만 씨앗이 땅에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은 풀을 뽑으며 ‘모란 동백’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모란은 벌써 지고 있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고 ♬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밭 윗단에서 봉사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스님은 아랫단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랫단에서는 거사님들이 예초기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일감을 안내했습니다.
“이 밭을 싹 정리해서 깨를 심으려고 해요. 작년에 농사팀에서 이 밭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나무를 몇 그루 심었습니다. 그래서 밭을 정리하기 전에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합니다. 먼저 가장자리는 예초기를 돌려서 풀을 없앤 다음에 웅덩이를 파 주세요. 그 자리에 나무를 옮겨 심겠습니다.”
밭에는 엄나무, 두릅나무, 매실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심겨 있었습니다. 거사님들은 나무를 옮겨 심을 수 있게 가장자리에 웅덩이를 파고, 스님은 옮겨 심을 나무를 가지치기하고 주변에 난 풀을 제거했습니다.
스님이 가지치기를 해 놓으면 거사님들이 삽으로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가장자리로 가져갔습니다.
나무를 다 옮겨 심고 나서 곧바로 밭을 갈아엎으려고 했는데, 스님은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도라지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아무리 풀밭이라 해도 도라지가 이렇게 많이 심어져 있으면 금밭이라고 할 정도예요. 캘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캔 후에 땅을 갈아엎읍시다.”
봉사자들도 스님의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윗단에서 풀 뽑기를 하고 있던 봉사자들도 전부 아랫단으로 내려와서 도라지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삽으로 도라지를 뿌리째 캐서 흙을 털고 나니 굵은 도라지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와, 굵다!”
모두가 산삼을 캔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스님과 거사님들이 삽으로 도라지를 뿌리째 캐어 놓고 지나가면, 봉사자들이 우르르 붙어서 도라지 뿌리를 다듬었습니다. 밭이 금방 도라지 생산 공장으로 변했습니다.
아까운 마음에 시작한 도라지 캐기 덕분에 밭에서 캐낸 도라지의 양이 다섯 포대가 넘었습니다.
“스님, 참 먹을 시간입니다.”
스님은 도라지를 캐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도라지 캐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데, 여러분 먼저 드세요.”
한참 동안 도라지를 더 캐다가 밭을 나왔습니다.
땀을 식히며 참을 먹는 동안 스님이 오늘 긴급하게 봉사자를 모집한 경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밭에는 도라지도 심고, 모란도 심고, 나름대로 잘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재작년부터 해외 일정이 많아져서 자주 이 밭에 와 보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공동체 법사단에 이 밭을 맡겨 두었는데, 법사님들은 자기들 살기에 급급해요. 그러다 보니 2년 사이에 풀밭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울타리도 열심히 만들어 놓았는데 전부 풀로 덮여서 없어져 버렸어요. 지금 상태는 풀을 전부 다 매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밭을 묵히자니 아까워요. 그래서 밭을 트랙터로 갈아엎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알겠지만 도라지가 많습니다. 온천지가 도라지입니다. 그래서 한 두둑만 풀매기해서 도라지 밭으로 살리고, 나머지는 다 갈아엎으려고 합니다. 대신에 여러분이 도라지가 큰 것만 좀 수확을 해주세요. 오늘만 여러분이 밭을 정비하는 것을 도와주면, 이후에는 법사단이 확실하게 책임을 지고 가꾸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이제는 은퇴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농사를 시작했는데, 은퇴가 안 되네요.” (웃음)
오전 10시 20분에 참을 먹고 나서 다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도라지가 너무 많아서 법사님들이 새로 제안했습니다.
“스님, 여기 한 줄은 도라지가 너무 많아서 그냥 도라지 밭으로 쓰면 좋겠어요. 저희가 풀을 다 뽑을게요.”
“좋아요. 그럽시다.”
도라지가 너무 많아서 한 줄은 도라지 밭으로 살리기로 했습니다. 봉사자들 전부가 붙어서 도라지만 제외하고 풀을 모두 뽑았습니다.
잡초가 무성한 밭이 순식간에 도라지 밭이 되었습니다.
도라지를 캐는 작업도 활기를 더해 갔습니다. 제법 굵은 도라지를 캐내면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즐겁게 도라지를 캐고 있는 사이에 트랙터가 밭에 도착했습니다.
묘당 법사님의 지휘 하에 새로 밭 만들 공간을 나누고, 트랙터가 땅을 갈았습니다. 먼저 트랙터가 윗단으로 올라갔습니다. 트랙터가 땅을 갈고 지나가자 검붉은 흙이 뒤집히며 구수한 흙냄새가 퍼졌습니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는 봉사자들이 퇴비를 뿌렸습니다. 윗단이 새로운 밭으로 말끔하게 바뀌었습니다.
이어서 트랙터가 아랫단으로 내려왔습니다. 역시 트랙터가 땅을 갈고 지나가자 녹색 풀잎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촉촉한 흙이 드러나며 밭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자, 울력을 마치겠습니다. 두북수련원에 가서 닫는 모임을 하겠습니다.”
땅이 갈리는 모습을 본 후 스님과 봉사자들은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11시 30분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하여 오늘 농사 울력을 마무리하는 닫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백일법문 기간이라 저도 농사일을 거의 못 도와주고 있고, 농사팀에도 문제가 생기고 해서, 농장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긴급 요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100여 명이 봉사하러 와 주셨고, 오늘은 60여 명이 봉사하러 와주셨습니다. 바쁜데 와주셔서 다들 감사드립니다. 같이 일을 해보니까 좋았어요?”
“네.”
“산 윗밭에 올라가면 경치가 아주 좋습니다. 가끔은 한 번씩 도움을 요청하면 봉사 신청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산 윗밭 외에도 비닐하우스, 길밭, 고추 건조대 제작, 학교 주변 정비 등 다양한 곳에서 봉사자들이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수고한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소나무 아래에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 점심은 국수를 준비했습니다. 다들 국수 한 그릇과 수박 몇 조각을 손에 들고 자리에 앉아 맛있게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스님은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에는 텃밭에서 서울에 가져갈 채소를 수확했습니다.
채소를 한 상자 수확한 후 양삼을 시범으로 재배하기 위해 씨앗을 새로 심었습니다.
텃밭 농사일을 마치자 화광 법사님이 잠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화광 법사님이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나이도 들고 이제 힘이 많이 부족합니다. 몸이 자꾸 아프니까 두북수련원을 조금 벗어나고 싶네요.”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속가 누님을 만났는데, 나이가 팔십이 넘었는데 허리가 꼬부라진 상태에서 농사일을 다 하고 계세요. 화광 법사님은 아직 한창 일할 나이예요. (웃음)
밭이 너무 넓어서 도저히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하면, 양삼을 한번 심어 보면 좋겠어요. 실험적으로 심어 보고 관리가 쉽다고 하면 확대하는 거죠. 휴경지가 생길 때마다 환경 운동 차원에서 양삼을 계속 심으면 됩니다. 비료를 일절 안 주어도 된다고 하거든요. 실제로 그런지 한번 실험해 보면 좋겠습니다. 방법을 찾아봅시다.”
화광 법사님은 지난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어서 저축한 수익금을 모아서 스님에게 보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화광 법사님을 격려한 후 두북수련원을 나왔습니다.
저녁 6시 30분에 두북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4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밤 10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4일 청춘톡톡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분별하지 않는 법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좋다’, ‘싫다’와 같은 다양한 분별이 생기는데요. 이런 분별을 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분별하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분별하고 사는 게 인간이에요. 스님도 분별하고 살아요.”
“끝인가요?”
“네, 대답을 다 했습니다. 차를 마시는 것을 예로 들어봅시다. 내가 따뜻한 차를 원할 때는 ‘차가 너무 식었다.’ 하는 분별이 일어나고, 내가 시원한 차를 원할 때는 ‘차가 너무 뜨겁다.’ 하는 분별이 생깁니다. 큰 컵을 원하면 ‘컵이 너무 작다.’ 하는 분별이 생기고, 작은 컵을 원할 때는 ‘컵이 너무 크다.’ 하고 분별하게 되지요. 이렇게 우리는 다 분별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문제는 내가 큰 컵을 원하는데 작은 컵이 주어졌을 때 괴로워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경우 주어진 대로 작은 컵을 쓰거나, 아니면 바꿔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지요. 안 바꿔 주면 그냥 작은 컵을 쓰면 되고, 정말 싫으면 내가 직접 가져오면 되지,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괴로움은 왜 생길까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만사가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예를 들어,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행동도 안 하고 불평만 한다면 괴로워지는 거예요. 바꾸고 싶으면 행동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추우면 옷을 더 껴입어야 하고, 그래도 추우면 불을 피우면 돼요. 더우면 옷을 벗고, 그래도 더우면 물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날씨가 왜 이리 더우냐!’, ‘날씨가 너무 춥다.’ 이런 불평은 부질없습니다. 그런 불평을 아무리 해 봐야 변하는 건 없어요. 상황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해나가면 됩니다. 옳으니 그르니 분별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말로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해 보세요.”
“그럼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 싫은 마음이 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싫으면 ‘당신이 하는 말을 들으니 싫네요.’ 하고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아야지 어쩌겠어요? 그런데 그게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수행이에요.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내 까르마의 문제인 것입니다. 수행이란 싫어하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나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욕심이 너무 많거나 어리석어서, 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거라는 비현실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불평하지만, 현실은 원래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저한테 와서 ‘상대 진영이 나를 비난하고 욕을 해요.’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정치하지 마세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잖아요.’라고 불만을 이야기했어요. 물론 선의의 경쟁이 좋다는 건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경쟁자를 칼로 그냥 죽여 버렸어요. 그래도 요즘은 칼로 죽이지 않고 말로 죽이잖아요. 그 정도면 양호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관점을 갖는 것이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 위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질문자가 직장 동료들이 자기 몰래 뒤에서 욕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에서 욕하는 것보다 뒤에서 욕하는 게 낫지 않느냐.’ 하고 대답했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법륜 스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하고 욕하는 게 낫겠어요? 제가 강연장을 나간 뒤에 자기들끼리 욕하는 게 더 낫겠어요? 뒤에서 욕한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욕을 안 하면 더 좋지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그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직접 면전에 대고 말하지 않고 뒤에서 말하는 예의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너무 이상적으로 보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많은 겁니다.”
“그럼 삶을 살면서 괴로워하지 않는 법이 있을까요?”
”괴로워하지 않는 법이 있는 게 아니라 괴로워하지 않으면 돼요. ‘괴로워하지 않는 법이 있나요?’ 하는 질문이야말로 무책임한 삶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괴로워하고 싶으면 괴로워하면 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괴로워하지 않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원래 괴로워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져 보세요. 구체적으로 뭐가 괴로운 일이에요? 부부가 이혼한다고 괴로울 일이에요?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서도 잘 살았잖아요. 같이 살다가 헤어지면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옛날에 혼자 살 때는 괴롭지 않았으면서, 왜 이제는 괴롭다고 할까요?
이처럼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태어날 때 돈을 갖고 태어났어요? 돈이 없는 어릴 때도 다 잘 살았잖아요.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 돈을 조금 벌어 봤고, 다시 돈이 없어진 거예요. 원래 없던 상태로 돌아간 건데, 뭐가 문제인가요?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괴로워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욕심을 내서 ‘나도 저 사람처럼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비교하니까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괴로워하지 말라는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괴롭게 살고 싶으면 그냥 괴롭게 사세요. 여성의 종아리를 만지고 싶으면 만지세요. 대신 성추행범으로 잡혀서 감옥에서 한 3년은 살아야 합니다. 감옥 가는 게 싫으면 만지고 싶어도 안 만지면 되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은 ‘만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만져요?’라고 묻습니다. 두 번만 그런 식으로 물으면 저는 그 사람에게 ‘그러면 만지고 감옥에 가세요!’ 이렇게 말해 줍니다. 만지고도 감옥에 안 가는 방법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욕심인 거예요. 저는 그런 방법은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일부 종교에서는 그런 방법이 있다고 가르치니까 여러분이 돈을 내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공부하기 싫으면 대학에 안 가면 되고, 대학에 가고 싶으면 공부하기 싫어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공부를 안 하고도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봐요. 저는 간단하게 그런 방법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래도 ‘혹시 방법이 없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그런 방법이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말해 줍니다. 또 질문이 남았어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85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반야심경 5강을 하고,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18강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7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불안한 직장생활, 농사로 바꾸면 좀 나아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