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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동북아 역사기행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종일 답사를 했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저녁 7시 40분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했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다 되었습니다. 원고 교정 업무를 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스님의하루팀이 동행하지 못해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29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경전 강의 3강을 하고,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3강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21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만 딱 한 가지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그 순간 미안하다고 인정하고 사과해 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아서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아내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지만, 가족이기에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매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낍니다. 아내가 실수했을 때 제가 지적하면, 본인이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자가 아내의 실수를 굳이 지적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그런 생각은 해보신 적 있나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아내가 잘못했을 때 질문자가 지적하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인정하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아내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질문자와 다르니까요. 서로 다를 뿐인데 질문자가 ‘네가 잘못했어’ 하고 지적하면, 부인은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고 반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건가요?”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면서요? 그런데 질문자가 부인을 지적하는 건 모순이잖아요.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가 이미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잖아요? 맞아요.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릅니다. 부인은 질문자와 달라요. 그런데 질문자가 부인을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처음부터 질문자가 잘못 보고 있었던 거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을 지적하니까 부인은 ‘왜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느냐?’ 하면서 반발하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그래!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르지. 내가 서로 다른 걸 옳고 그름으로 잘못 봤구나. 미안해!’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결국 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라는 건가요?"
“질문자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아내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의 문제예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문제만큼은 인정이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큰 사고가 났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인정하지만, 작은 실수는 지적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청소 문제로 사람들을 자주 지적했어요. 누군가 큰 물통을 방에 쏟으면 ‘그래, 실수할 수 있어’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걸레질하면서 바닥에 물방울 몇 개 떨어뜨리는 건 꼭 문제를 삼아서 야단을 쳤어요. 그러면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저에게 ‘큰 실수는 그냥 넘어가시면서 왜 작은 것에는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세요?’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왜 야단을 쳤을까요? 큰 실수는 어쩔 수 없지만 작은 실수는 조금만 주의하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 생각에 제가 집착하다 보니까 사소한 것을 따졌던 겁니다.
누군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으면 ‘너 여기 봐라. 먼지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느냐?’ 하고 지적했습니다. ‘빗자루질을 할 때 먼지가 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하면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바닥에 먼지가 많으면 빗자루에 물을 한번 적셔서 탁탁 털고 쓸어야 해’ 하고 가르치기도 했어요.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서 그런 겁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 중에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대신해 주거나, 로봇이 청소하는 환경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래서 빨래도 해본 적이 없고, 밥을 지어본 적도 없습니다. 일을 해본 적이 있어야 ‘제대로 한다’, ‘잘못한다’ 하는 기준이 생기는데,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건지조차 모르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어른들이 보면 ‘어떻게 스무 살이 넘었는데 방 청소도 제대로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처지에서는 ‘청소하라고 해서 했는데 뭐가 문제야?’ 이런 생각이 들어섭니다.
제가 인도에서 건물을 지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창문을 넣으려면 그 크기에 맞게 벽돌을 쌓아야 하는데 노동자들이 그냥 대충 쌓습니다. 그래서 벽을 세우고 창문을 끼우려고 하니까 크기가 안 맞아서 안 들어가는 거예요. 결국 망치로 다시 벽을 깼습니다. 줄을 맞춰서 필요한 만큼만 깨야 하는데 그냥 막 부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창문을 넣었더니 이번에는 공간이 비어요. 그래서 또 빈 곳에 시멘트를 채웁니다.
천장에 페인트를 칠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바닥이 대리석이라서 무언가를 덮고 페인트를 칠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페인트가 떨어져서 그대로 굳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닦으라고 했더니, 칼로 긁어냈습니다. 바닥은 깨끗해졌지만, 대리석에 흠집이 다 나버렸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게 왜 문제인지 전혀 모릅니다. 대리석 바닥에 페인트가 묻든, 흠집이 나든, 자기들이 살아온 집보다 훨씬 깨끗하니까요. 제가 여러 번 문제라고 지적해도 그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임금을 받아야 하니까 제가 잘못을 지적하면 무조건 수긍을 했어요. 만약 반발을 할 수 있었다면 ‘이 정도면 충분한데, 뭐가 문제야?’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계속 생겼어요. 한국 사람들은 두세 번 얘기해서 안 되면 화를 내는 편입니다. 이렇게 일을 하라고 알려준 후 다른 일을 보고 돌아오면, 또 다른 방식으로 공사를 해놓았어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됐습니다. ‘분명히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해 놨어요?’ 이렇게 반응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려준 대로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았겠어요? 안 되니까 그렇게 살았겠죠. 그래서 시골 노동자들이 일하는 방식을 고치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옆에 붙어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가르쳐야 고쳐졌어요. 뭐가 문제인지조차 잘 모르니까요. 제가 설명하면 알아들었다고는 해요. 하지만 이런 건 단순히 설명한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고, 무의식적인 습관도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자라면서 부모님이 하시는 걸 어느 정도 본 게 있잖아요? 지금 중장년층은 직접 농사를 짓진 않았어도 부모님이 농사짓는 걸 어깨너머로 보며 자랐고, 직접 집을 짓지는 않았어도 어릴 때 본 경험이 있어서 급하면 뭐라도 해볼 수가 있어요. 처음에는 서툴러도 몇 번 해보면 익숙해집니다. 어릴 때 본 경험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다릅니다. 그런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두세 번 반복해서 가르쳐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말합니다. 내가 보기엔 분명히 틀린 것 같지만 상대가 볼 때는 맞을 수 있습니다. 경험과 습관이 서로 비슷하면 지적을 받았을 때 인정할 수가 있지만, 경험과 습관이 많이 다르면 ‘그게 뭐가 문제야?’ 하는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질문자는 ‘아내가 잘못했으면 그냥 인정하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이런 부분에서 아내는 나와 완전히 다르구나’ 하고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단순히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해요.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은 조찬 모임을 할 때 스님이 밥을 차려도 ‘하나님 아버지,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스님이 직접 밥을 차렸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스님을 시켜서 음식을 마련했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믿는 겁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나쁜 일은 사탄이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사유체계는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걸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차이를 따지고 들면 같이 일할 수가 없어요. 비록 스님이 밥을 차렸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멘!’ 하고 함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들과 같이 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요.
마찬가지로 질문자의 문제도 수행적인 관점에서 보면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먼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질문자라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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