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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이 어느덧 17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회원들이 수행을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대중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14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정토회 회원들도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대중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주말에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 찬반 집회에서 보여준 분열된 국론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어떤 관점을 갖고 현 시국을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온라인에서 한 명이 질문을 하고, 현장에서 세 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경계선 지적 지능 진단을 받은 9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의 모든 행동에 자꾸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제 아이는 9살이고 경계선 지적 지능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이를 바라볼 때 자꾸 지능 장애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냥 학습이 느린 아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되는데, 아이의 지능 검사 결과가 머릿속을 맴돕니다. 솔직히 외부 시선도 신경이 쓰입니다. 엄마인 저도 가끔 아이가 동생보다 유치한 행동을 하면 지능이 낮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게 경계선 지적 지능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서 싫은 마음이 듭니다. 경계선 지적 지능을 가진 아이를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똑똑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맡은 일도 잘하고 엄마 말도 잘 들으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가 똑똑하고 인물도 좋고 건강하고 말도 잘 들으면 이웃집 아줌마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를 따지지 않는 것이 바로 엄마예요. 이웃집 아줌마라면 아이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를 따져서 자기 마음에 들면 좋아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안 좋아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입니다.
원숭이나 개와 같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새끼를 낳아서 똑똑하지 못하다고 사람처럼 내치지 않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기를 낳으면 낳은 대로 아기의 상황에 맞게 키우는 겁니다. 눈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것에 맞게끔 키우고, 귀가 안 들리면 안 들리는 것에 맞게끔 키웁니다. 또 못 걸으면 못 걷는 것에 맞게 키우고, 약간 지능이 떨어지면 그것에 맞게끔 키웁니다. 사람들은 강아지가 지능이 떨어져도 많이 키우잖아요. 그렇다면 강아지는 지능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키울까요? 사람이 아무리 지능이 떨어져도 강아지보다는 지능이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는 잘 키우면서 사람은 못 키우겠다고 해요. 더군다나 남도 아니고 내 자식이잖아요. 그 이유는 기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아줌마로서 아이를 보는 관점에 서 있는 거예요.
원래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있는 겁니다. 모든 생명 세계에 갓 태어난 아기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보살펴 줘야 합니다. 주로 부모가 보살피는데 부모가 없을 때는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보살펴야 합니다. 일정하게 성장하고 나면 보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장하기까지는 보살핌을 받아야만 새끼가 살아서 종족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모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자식을 보살피는 성향이 있는데, 이것을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고 합니다. 종족 보존의 본능은 자신의 생명보다 아기의 생명을 더 우선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다 그렇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있는 것이지, 엄마를 위해서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을 위해서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보고 싶으면 아이의 상황이 어떻든 아이를 빼앗아 와서라도 봐야 해요. 이것은 부모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불편이 있다면 그 불편을 도와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입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조급해지는 거예요. 사람이 개를 훈련할 때는 조급해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이에 대해서는 기대가 커서 열 번은 해야 익힐 수 있는 일을 세 번 해도 안 된다고 답답해합니다. 경계선 지적 지능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고 그냥 윽박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해보니까 지능이 평균보다 좀 낮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잖아요. 지능이 조금 낮으면 한 번 가르쳐 줄 것을 다섯 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눈이 안 보이는 아이는 점자로 가르치고, 귀가 안 들리는 아이는 수화로 가르쳐야 합니다. 잘 걷지 못하는 아이는 휠체어를 타도록 할지, 걷는 연습을 더 해야 할지를 진단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걷기 연습이 필요하다면 공부보다는 걷기 연습이 더 우선시돼야 합니다. 손을 사용하지 못하면 발로 손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이웃집 아줌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잘 모르면 맞춤 교육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진단을 통해서 기억력이나 학습력에 장애가 있다고 밝혀지면, 아이의 상태에 맞춰서 더 많은 연습 시간과 횟수를 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한 번 가르쳐주면 탁 아는 아이들과 자꾸 비교해서 답답해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엄마 자격이 없다면 오히려 경계선 지적 지능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시설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낫습니다.
질문자가 여러 번 가르쳐도 모른다고 아이에게 막 야단을 치거나 조급해하면, 아이가 심리적으로 위축이 됩니다. 아이도 덩달아 조급해지고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뭔가를 가르칠 때 열 번은 연습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가르쳐야 아이가 여덟 번 만에 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할 수가 있는 거예요. 설령 아이가 ‘엄마, 자꾸 틀려서 미안해.’ 이렇게 말하더라도 열 번 연습할 것을 여덟 번 만에 했으니까 잘한 것이라고 칭찬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열등의식을 갖지 않고 자기 존재에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경계선 지적 지능이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열등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부모가 미리 알고 대응을 해야 합니다.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연습을 더 많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의 상태를 모르면 공부 못한다고 그냥 야단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상태를 선생님이 미리 알면 야단칠 일도 칭찬해 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도 그렇게 되기가 어려운데 선생님이 잘되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안 되더라도 엄마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이런 인연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만약 이 아이가 다른 집에 태어났으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우리 집에 온 것은 나에게 잘 보살피라는 선물로 보내주셨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질문자도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이 아이가 다른 집에 태어났다면 엄마들이 무지해서 조급하게 아이를 독촉하고 윽박질렀을 텐데, 나는 수행자니까 아이의 능력과 상태에 맞게끔 보살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지능 검사에 집착하는 것도 욕심 때문일까요?”
“욕심을 부리고 있으면서 욕심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네요. 매년 검사를 해보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러나 좋아지는 징후를 찾으려고 검사하기 때문에 답답한 거예요. 우리가 정기 검사를 하는 이유는 혹시 증상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해서 하는 겁니다. 검사를 했는데 아이에게 이상이 없으면 감사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약을 먹으라고 하면 꾸준히 약을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혹시 점점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기 검사를 하는 거예요.”
“아이가 다른 것은 생각보다 잘 따라오는데 친구를 못 사귑니다. 전문 상담사한테 물어보니까 제가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가 친구를 만들 기회를 얻도록 하는 게 맞나요?”
“질문자의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질문자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니까 귀찮아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친구를 사귀고 안 사귀는지가 핵심이 아니에요. 어차피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습니다. 운동을 빠릿빠릿하게 잘해야 운동 친구가 되고, 공부를 빠릿빠릿하게 잘해야 공부 친구가 되고, 기술을 빠릿빠릿하게 익혀야 서로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옆에 느린 사람을 배려해서 빨리 갈 것을 천천히 손잡고 가면서 친구가 되는 아이는 없습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업고 가면서 친구가 되거나, 공부 못하는 사람을 가르쳐주면서 친구가 되는 일은 어른도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하물며 엄마도 귀찮아서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린 애들이 벌써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본인은 안 하면서 남에게 그렇게 하라는 얘기잖아요.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경계선 지적 지능이 있는 아이를 따돌립니다. 아이들은 잘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자기보다 못하면 ‘저리가, 이것도 모르는 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아이 같은 경우에는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습니다.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우니까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친구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 해야 자기 보호가 되잖아요. 그래서 자꾸 혼자 있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혼자 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 열 명을 만나면 그중에 한 명쯤은 자기보다 조금 어려운 친구를 보살피려는 성향이 있는 아이가 가끔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다 보면 혹시 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아이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0번이나 기회를 줬는데도 한 명도 못 사귀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10번 해서 안 되면 11번 하고, 11번 해서 안 되면 20번 하면서 혹시 그중에 인연이 맞아서 내 아이와 친구가 될 아이가 있는지 찾아보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기회 제공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일이 좀 많아지겠지요.
핵심은 질문자의 심리 기저에 귀찮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목표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연습하는 것을 기다리는 게 귀찮고, 의사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는 것도 귀찮은 거예요. 나 살기도 힘든데 경계선 지적 지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서 할 일이 더 많아지니까 귀찮다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린 거예요. 이런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막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바로 사랑이예요.
질문자의 속마음은 아이 돌보기가 귀찮은 게 핵심이에요. 귀찮은 마음이 깔려있으니까 자꾸 ‘이게 꼭 필요한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어려워도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그랬을 때 질문자도 여유가 생기고 아이도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낮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대중들은 모둠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1층 식당으로 이동하여 대중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2시에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에서 점점 고조되는 국론 분열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원로분들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도법 스님(실상사 회주)을 비롯하여 이남곡 선생님(인문운동가), 정성헌 선생님(DMZ평화생명동산), 강대인 선생님(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 조현주 선생님(상생사회 1천인선언 상임대표), 이무열 선생님(지리산연찬 운영위원장), 정웅기 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운영위원장), 임은영 님(서기, 인드라망 사무처) 등 많은 분들이 평화재단을 찾아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이남곡 선생님이 오늘 모임의 취지와 제안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에 내전이 일어날 상황이 아닌데, 지금 국론 분열이 점점 심해져서 거의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결국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개헌을 이루어내고 제7공화국을 새로 열어야 합니다. 지금 곳곳에서 개헌의 필요성이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극적인 개헌론자들과 소극적인 개헌론자들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고, 연합 정치에 대해서도 소연정을 하느냐와 대연정을 하느냐에 따라 복잡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어요. 사실은 권력 구조의 변화보다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정치 문화의 개혁입니다. 저희가 법륜스님을 찾아온 것은 이런 이유가 큽니다.”
이어서 강대인 선생님도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역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분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회 원로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지금이 헌법 개정을 할 수 있는 적기라는 겁니다. 역대 대선 후보들이 헌법 개정을 이야기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막상 집권한 이후에는 단 한 명도 헌법 개정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헌법 개정은 시기가 중요합니다. 대선 전에 개헌을 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사회 원로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과에 대해서만 걱정하는데 저는 대선 이후가 더 걱정입니다.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더욱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저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방식보다도 법륜스님 같은 분이 도덕적 권위를 갖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논을 해보고 싶어요.”
정성헌 선생님도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하고 이미 내용도 다 준비가 되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신저를 누구로 할 것인가 입니다. 저는 법륜스님 같은 분들이 중심이 되어 주셔야 이 일이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현주 선생님도 의견 제시를 했습니다.
“저는 중장기적인 논의 테이블도 중요하지만, 갈등이 고조되는 위험한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임시적인 이벤트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광화문 광장에서 법륜스님이 좌장이 되어서 국회의장과 여야 중진 의원들을 앉혀 놓고 비빔밥을 같이 먹는 좌담회를 여는 겁니다.”
도법스님도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토론을 듣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자.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문화로 정립되어 갈 수 있도록 우리가 역할을 해나가면 좋겠어요. 당사자들끼리 대화해서 합의에 이를 수가 없다면,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참석한 분들 모두 보복이 악순환되는 정치 구조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국민 통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도 제안된 내용에 대해 의견을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현 상황을 보는 시각에 저도 동의합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더라도, 선거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론 분열은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왈가왈부하다가도 재판부에서 판결이 나면 승복하고, 선거에서 결과가 나오면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판 결과에도 승복하지 않고, 선거 결과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남북 분단 시기에 북한 집권세력은 소련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았고, 남한의 집권세력은 미국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국민통합을 이루어 통일을 이루자고 명분을 내건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죠. 어쩌면 지금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쪽에 편향된 세력 사이에서 국론을 통합해 보자는 노력을 해보지만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도 그 길이 바른길이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기후 위기도 해결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인간은 결국 이렇게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회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는 건 성공보다 어쩌면 다가오는 위험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게 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현재의 갈등 국면에서 헌법 개정과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모두 스님의 의견에 공감하며 다시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토론은 세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우리 선조들은 그 어렵던 조선조 말엽에 후천 개벽을 주장하며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때 왕조와 사대부들이 혹세무민한다고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자신의 백성들을 탄압하지 않았습니까? 자신들의 힘만으로 진압이 안 되니까 외세까지 끌어들여서 탄압을 했습니다. 그 결과 외세에 의해서 나라가 망하게 된 겁니다.
나라가 망한 건 우리한테 굉장히 슬픈 일이지만 그 일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바로 나라가 망함으로써 왕조와 사대부들의 기득권이 함께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백성이 주인 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할 때 어쩌면 왕조 세력의 방해로 내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라를 되찾고자 했을 때 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이 있는 지배자들은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백성들이 나라를 구하고자 3.1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나라를 민(民)이 주인이 된 대한민국으로 만들고자 했을 때 큰 반대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일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500년간 지속된 봉건적인 유산이 일제 식민지 지배 시절과 6.25 전쟁으로 인해 많이 청산되었습니다. 그 뿌리를 다 뒤집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평등한 민주 사회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식민지 지배나 전쟁이 잘된 것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위기가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본은 사회 질서는 큰 혼란이 없었지만 아직까지 봉건적인 요소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뿌리를 한 번도 뒤집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면 현재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꼭 절망적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어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기존의 세계 질서에서 해결하지 못한 80년 된 남북갈등을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해결할 수도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 질서를 허물어 버리는 이때를 기회로 삼는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유무역 체제에서 수출을 통해 꾸준히 성장을 했는데, 앞으로 기존 질서가 허물어지면 일부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손실보다는 차라리 경제적 손실을 일부 감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경제적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면 그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되,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전쟁 불안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이 위기를 새로운 나라로 도약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오물을 거름으로 활용하는 안목이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돼 있는 거겠죠. 우리의 과제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극우 세력이 등장하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이고요. 20대 남성이 우파로 전환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젊은 층 일부는 기존의 사회적 불만과 연결돼서 갈등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지도자들이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본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오히려 그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현안에 밝으신 여러분께서 원로들과 함께 이렇게 하자고 말씀하시면 제가 메신저 역할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임이 앞으로 더 확대되어 지속적인 국가 미래 비전을 만드는 일에 큰 기여를 하기 바랍니다.”
단기적으로는 국민 통합을 위해 당장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함께 행동을 하기로 하고,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 나가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7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전국의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한 가운데, 모두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두 명은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현장에서도 두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점쟁이가 딸이 대학시험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고,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질 것이라고 하니까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며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점을 보십니다. 딸이 고3일 때 점을 보니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질 거니까 조상을 달래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실력이 안 되면 떨어지는 거지, 무슨 조상을 안 달래준다고 떨어지겠냐며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딸이 대학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재수할 때도 점을 봤더니 조상을 달래줘야지 안 그러면 손녀가 바라는 대학에 못 갈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딸이 원하는 대학에 못 가고 점수에 맞춰서 갔습니다. 올해 초에 엄마가 또 그 점쟁이한테 점을 봤는데, 저희 부부 운이 너무 안 좋다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원래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고, 동갑내기라 다툼이 잦은 편입니다. 딸 대학 시험 때도 점쟁이 말대로 되었고, 부부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 아니라서 점쟁이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수행자로서 점쟁이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점쟁이의 말을 듣고 불안하다면, 그냥 점쟁이에게 돈을 좀 주면 됩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돈을 좀 주자니 돈이 아깝고, 무시하자니 불안한 거예요.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해요.
조상을 달래주면 딸한테 좋다니까 점쟁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보시를 좀 하면 돼요. 그런데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딸이 대학 시험에 떨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공부를 못했거나, 실력에 비해 좋은 대학을 가려고 욕심을 냈거나입니다. 시험 성적에 비해서 한두 단계 아래에 있는 대학에 지원하면 떨어질 확률이 낮아요. 반대로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성적에 비해 높은 대학에 지원하면 떨어질 확률이 높아요.
점쟁이의 말을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믿을만하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질문자의 심리가 불안한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점쟁이는 직업적으로 점 보러 오는 사람의 불안한 심리를 읽는 겁니다. 점 보러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불안해서 가는 거잖아요. 점쟁이 입장에서는 대학 시험에 떨어진다고 말해놓고 합격을 하더라도 책임질 일이 없어요. 떨어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떨어지면 점쟁이의 말이 맞는 게 되는 거고요. 그런데 합격할 것이라고 했는데 떨어지면 왜 떨어졌냐고 항의를 합니다. 그래서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자니 불안하다면 돈을 주면 됩니다. ‘내가 지금 욕심을 내서 불안하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지는 질문자가 선택하면 됩니다.
부부 사이 갈등은 조상이 노여워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서로 자기를 고집하니까 생기는 일입니다. 점쟁이한테 주는 돈이 아까우면 남편에게 좀 맞추면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점쟁이한테 돈을 좀 갖다주든가요.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결국 자기 문제라는 거예요. 점쟁이의 문제도 아니고, 어머니의 문제도 아니고, 바로 질문자의 문제입니다.
어떤 부부가 저를 찾아와서 ‘스님, 우리 부부는 전생에 어떤 관계였을까요?’ 이렇게 물으면 제가 ‘전생에 원수였지’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스님은 그걸 어떻게 잘 아세요?’ 이렇게 말해요. 스님이 용한 게 아니에요. 부부가 사이가 좋으면 저한테 와서 전생을 물어볼까요? 사이가 나쁘니까 저한테 와서 묻는 거예요.
우리가 천도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적 관점에서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도리를 깨닫는 것이 수행이기 때문에 굳이 재(齋)를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늘 섭섭함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재를 지내는 게 위로가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점쟁이의 말이 진짜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어요. 점쟁이의 말은 믿음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돈을 주고 위로를 받든지 본인이 선택하는 거예요. 돈을 줬는데도 대학에 떨어지거나 부부가 이혼한다면 돈을 줘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돈을 좀 주고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면 그것으로 돈이 아까울 리도 없고요.
질문자가 점쟁이에게 돈을 안 주겠다고 결정했다면, 딸이 대학에 떨어졌을 때 돈을 안 줘서 떨어졌다고 후회하지 말고 일어난 과보를 그냥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어차피 떨어질 거라서 떨어진 거지, 그 점쟁이가 떨어진다고 해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지은 인연에 대한 과보를 받으면 되는데, 자꾸 과보를 피해 가려고 하니까 점쟁이의 말에 자꾸 휘둘리는 거예요. 자신의 문제이지 점쟁이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얘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대중들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18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천도재’를 주제로 열린법회 마지막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과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법성게’를 주제로 열린법회 마지막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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