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3.4 백일법문 16일째, 열린법회 8강
“시간이란 본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16일째 날입니다. 밤사이 서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백일법문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10시 15분이 되어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열린법회를 시작했습니다.

100여 명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천도재’를 주제로 법문을 했습니다. 천도재 법요집의 순서대로 거불, 청혼, 착어, 진령게, 신묘장구대다라니, 고혼청, 향연청, 안좌게, 다게 등 각각의 천도 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님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천도재를 지낼 때는 먼저 불보살을 청하여 모시는 ‘거불’을 하고, 그다음에 영가를 모시는 ‘청혼’을 합니다. ‘청혼’을 할 때는 부모님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서 먼저 부모님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 일가친척, 동네 분들, 그리고 지옥 중생들, 그 외 사바세계의 모든 고통받는 중생들을 다 청합니다.

집착할 바가 없으니 한 생각을 내려놓아라.

그런 다음 착어(着語), 즉 부처님의 법문을 설합니다. 이런 의식 절차는 절마다 조금씩 다 다릅니다. 제가 설명하는 내용은 정토회에서 하는 천도 의식을 말합니다. 착어에는 주로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중심으로 모든 것은 다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고 사라진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어서 유수 스님의 염불과 목탁 소리에 맞춰 모든 대중이 함께 장엄염불을 함께 따라 했습니다.



물이 얼어 얼음 되고 얼음 녹아 물이 되듯
이 세상의 삶과 죽음은 물과 얼음 같으오니
뜬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짐이 인연이듯
중생들의 생과 사도 인연 따라 나타나니

“이런 구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집착할 바가 없으니 한 생각을 내려놓아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마음 따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때 ‘마음’이라는 말은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서 모든 시비와 분별이 일어나고,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시비와 분별이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도 다 마음 따라 일어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죄다, 죄가 아니다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내용이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법성게의 표현을 빌리자면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두터운 업장으로 인해 한번 법문을 듣는다고 해서 집착이 쉽게 놓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내용을, 표현을 달리하여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문장이 매우 깁니다. 그나마 줄인 게 이 정도입니다. 더 긴 것도 있어요.

태어나고 죽는 것은 다 괴로움이다.

신라시대에 원효 대사와 뱀 잡는 땅꾼 사이의 대화에서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 당시에도 천도 의식이 길었나 봐요. 뱀을 잡는 땅꾼은 무식하잖아요. 원효는 파계를 해서 승려의 지위를 버리고 민중 속에 들어가서 거사로 살았습니다. 그때 옆집에 뱀을 잡는 땅꾼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땅꾼이 원효를 찾아와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나와 함께 장례를 치르러 가세’하고 말해서 같이 장례를 치르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천민은 무덤을 쓰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시신을 멍석에 말아서 앞뒤로 어깨에 메고 갔습니다. 땅을 파고 시신을 구덩이에 탁 넣은 뒤 땅꾼이 ‘원효, 너는 그래도 먹물 깨나 먹지 않았느냐. 그러니 우리 어머니를 위해 염불 한 자락 해다오’ 하고 말했습니다. 파계를 하기 전의 원효 같았으면 길게 염불을 했을 텐데 상대가 땅꾼이니까 아주 짧게 했습니다.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은 괴로움이요. 죽지 말지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을 들은 땅꾼이 ‘너는 아직도 먹물을 다 못 버렸구나. 너무 기니까 좀 짧게 해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원효가 더 짧게 말했습니다.

‘생사고.’

태어나고 죽는 것은 다 괴로움이라고 한마디로 말한 겁니다. 그제야 땅꾼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원효는 깨달은 도인이니까 이렇게 짧게 줄이는 게 가능했는데, 우리들은 그런 수준이 안 되니까 이렇게 염불이 길어지는 거예요. (웃음)

일체가 다 어리석은 마음이 지은 것이다.

천도 의식 속에는 밀교의 진언뿐만 아니라 화엄경의 좋은 글귀까지 좋은 말은 다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가가 좋은 말을 많이 듣고 깨달으라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體唯心造

삼세의 모든 부처님 말씀의 요지를 알려면 마땅히 법의 성품을 관하라. 법의 성품을 관하면 일체가 다 마음이 지은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설화가 있습니다. 바로 원효 대사의 해골바가지 설화입니다.

원효 대사는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기 전에도 이미 화엄경을 읽고 그 내용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면 만법이 사라진다.’ 하는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체험하여 증득한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 신라에는 경전이 충분히 많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면 더 깊은 가르침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중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유학을 가는 길에 배를 기다리다 비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밤에 어두운 동굴에서 원효가 목이 말라 더듬더듬하던 중에 물그릇이 있어 그 그릇으로 물을 떠서 달게 마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지난밤에 달게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로 떠서 마신 물이었던 겁니다. 그것을 안 순간 원효는 역겨워서 마신 물을 도로 토해냈습니다. 이것은 깨달은 수준이 아니잖아요. 깨달았으면 토할 리가 없겠죠. 그러나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토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물은 어제 마신 물과 같은 물이고, 바가지도 어제의 바가지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달콤했던 물이 오늘은 왜 역겨워서 토했을까요? 그래서 바가지와 물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원효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외쳤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니 모든 법이 일어나네. 한 생각이 사라지니 모든 법이 사라지네.’

여기서 모든 법은 더럽다 혹은 깨끗하다, 옳다 혹은 그르다 하는 두 가지 법을 말하는 거예요. 이것이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경험해서 깨닫는 ‘증지(證智)’입니다. 책으로 보고 아는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오직 마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진리가 중국이나 인도에 있는 것도, 책 속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진리를 찾아 중국까지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효는 돌아온 것입니다.

영혼은 오고 감에 자재하여 걸릴 것이 없나니
영가들이시여 이 자리에 잠시 오는 것이 무슨 어려움 있겠습니까?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는 말 중에 ‘귀신같이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건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으면 ‘귀신같이 알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귀신은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까지 미리 다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제사 날짜를 바꾼다거나 장소가 바뀌었다고 귀신이 찾아오지 못할까요? 귀신은 다 알고 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제사 날짜나 장소를 바꿔도 되는지 궁금해하고, 아들이 미국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온 우주법계를 시간에 상관없이 바로 이동하는 것이 귀신입니다. 그래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천도재란 종교적인 의미에서 죽은 사람을 좋은 곳으로 보내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아설과 맞나?’ 이렇게 자꾸 비교하면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혼이 있다고 해야 천도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천도 의식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천도재의 방향은 정토종에서 추구하는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천도 의식은 밀교 의식을 주로 가져왔다고 볼 수 있고, 천도재의 법문 내용은 대부분 대승 사상인 화엄 사상과 선불교의 관점에 서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천도재를 지낼 때는 일체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풉니다. 베풀어야 한다고 해서 재는 베풀 ‘재(齋)’자를 쓰는 겁니다. 원래 불교에서는 영가에게 법을 설해서 깨우치게 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이것이 유교 문화와 만나면서 귀신에게도 공양을 올리는 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런 것은 시대의 문화와 결합이 되었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대중들은 모둠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사홍서원을 한 후 12시가 다 되어 열린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지하 1층 공양간에서 대중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에는 김성곤 전 국회의원이 찾아와서 시국 현안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많은 대화를 나눈 후 돌아갔습니다. 이어서 오후 4시에는 SBS 예능국 류지환 PD님이 찾아와서 스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손님들과 연달아 미팅을 하고 나자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열린법회 제7강을 시작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달려온 11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했습니다.

저녁 열린법회에서는 어제에 이어서 화엄경의 핵심 교의를 담고 있는 '법성게(法性偈)'를 주제로 두 번째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하나 중에 일체 있고, 많은 중에 하나 있고
하나가 곧 일체이며, 많은 것이 곧 하나다.

“하나하나가 수없이 많이 모여서 일체(一切)를 이룹니다. 일체는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전체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중일(多中一)’입니다. 이 말은 이해하기가 쉽죠. 지금 법당 안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이 안에서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각각 전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다시 그 하나 가운데 전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중일체(一中一切)’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입니다.

여기서 전체 가운데 하나가 포함되어 있다는 개념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 가운데 전체가 있다는 개념은 우리의 공간 개념으로는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2차원이 아닌 3차원 공간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인식 세계는 3차원의 세계, 즉 가로, 세로, 높이로 이루어진 공간 개념 속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예로 들어 2차원과 3차원의 세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곳은 지상 14층 건물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이 건물을 내려다보면 300평 면적의 네모난 땅 하나만을 볼 수 있습니다. 가로와 세로만 있는 2차원의 세계에서는 네모난 땅 전체를 사용하려면, 법당을 짓든, 목욕탕을 짓든, 식당을 짓든, 한 개만 지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땅을 조각조각 나누어 법당, 식당, 목욕탕을 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3차원 공간에서는 이 땅 전체가 목욕탕이면서 동시에 법당이면서 동시에 식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 개가 막 섞여서 엉망이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여러 층을 지으면 층층이 법당, 식당, 목욕탕이 들어갈 수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두 같은 평면 위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목욕탕이 있는 공간이 동시에 식당이고, 식당인 동시에 법당이고, 거기에 숙소도 있어요. 한 사람이 목욕을 하는 공간에 누군가 자고 있고, 거기서 법문을 하는 사람, 밥 먹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하나 가운데 전체가 있는 겁니다.

가로와 세로만 있는 2차원의 개념에서 볼 때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저런! 막 섞여서 엉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높이 개념이 있는 3차원의 세계에서는 건물의 층마다 다른 공간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차원이 아닌 4차원 공간에서 바라보면

3차원의 공간에서 우리가 밖으로 나가려면 바닥을 뚫든지 벽이나 천장을 뚫어야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닥도 천장도 벽도 뚫지 않고 나갈 수 있을까요? 4차원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시간의 축으로 나가버리는 겁니다. 4차원의 좌표는 공간 x, y, z와 시간 t로 이루어집니다.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4차원 공간에서는 시간에 따라 층층이 다른 공간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을 따라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같은 시간의 공간밖에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시간 차원의 세계를 볼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3차원에 있다는 것은 실제로는 4차원의 세계인데 그 시간 축의 이동을 우리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시간 축으로 이동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x, y, z) 좌표는 똑같은데 (t)를 달리해서 이동하면 이 사람은 어디로 갈까요? 공중으로 올라갈까요? 옆으로 갈까요? 밑으로 내려갈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없어져 버립니다. 금방 여기 있었는데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시간 축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면, 마치 영화에서 보듯이 '펑' 하고 사라졌다가 '펑' 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4차원의 세계에서는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있는 이 장소에 동시에 숲이 있을 수도 있고, 공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건물 층층마다 다른 공간이 있듯이 시간의 축마다 다른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층층이 다른 건물인데 2차원에서는 한 개의 층밖에 못 보는 사람처럼 3차원에서는 하나의 시간 축밖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4차원도 이렇게 복잡한데 5차원은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하지만 1차원의 수직선 상에 있는 사람은 2차원이 복잡할 것이고, 2차원의 평면상에 있는 사람은 3차원이 복잡할 것입니다. 차원을 달리해서 보게 되면 하나 가운데 전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작은 먼지 하나 속에 시방세계 포함되고
세상 모든 먼지 속에 이와 같이 포함된다.

이것은 연기된 세계를 말합니다. 만약에 이 몸을 가지고 ‘나’라고 가정을 해봅시다. 내가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어서 내 몸을 이룹니다. 이 몸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는 그것이 똥이 되었든 오줌이 되었든 다시 나가게 되죠. 그것은 물이 되어 흐르고 땅의 요소가 되었다가 뿌리를 통해 저 나무로 올라갑니다. 나무는 과일을 맺고, 그 과일을 다른 사람이 먹으면 그 사람의 몸이 되었다가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기준으로 해서 내 몸뚱이만 가지고 내 몸이라 할 수 있을까요? 연결된 고리를 따라가면 천하가 다 내 몸입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알 수 있는 첫 번째 증거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고체입니다. 고체는 연결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우리가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어요. 액체도 고체만큼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확인이 됩니다. 그런데 기체의 경우는 어떤가요? 연결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파동 또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실험을 통해 연결의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가 땅과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보려면 뿌리를 딱 잘라 보면 됩니다. 죽는지 사는지를 보는 거죠. 둘의 연결점을 끊어보니 죽더라고 하면 그 둘은 연결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뿌리를 잘라내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어야 하니까요. 그러므로 나무는 땅과 뿌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뿌리를 통해서 땅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을까요? 바로 물입니다. 물을 빨아들이면서 그 속의 여러 물질을 이루는 원소가 나무로 이동해서 에너지를 공급하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간단한 실험만으로도 나무는 땅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허공과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고체와 액체로 연결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나무가 허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기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체는 손에 잡히지 않죠. 보이지 않는데 나무가 기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무를 비닐로 덮어서 공기를 차단해 보면 나무가 살까요, 죽을까요? 기체의 흐름을 차단하면 나무는 죽어버립니다.

또 나무는 태양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햇빛은 초단파, 즉 파동입니다. 파동 중에서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장파이고, 빛은 단파에 속합니다. 나무에 햇빛을 차단해 버리면 역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연결 방식은 물질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습니다.

가득 차 있는 동시에 텅 비어 있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질에서 전자를 떼어버리고 핵으로만 똘똘 뭉쳐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무게는 같은데 그 크기가 농구공만 해진다고 합니다. 금덩어리든 쇳덩어리든 어떤 물건을 소립자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우주의 허공을 보는 것만큼 텅 빈 세계로 보입니다. 소립자의 눈으로 보면 원자 역시 텅 빈 허공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그 텅 빈 것이 또 가득 차 있어요.

예를 들어,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어 크게 부풀린 다음 방 안에 계속 집어넣는 겁니다. 그러면 방 안에 고무풍선이 가득 차겠죠. 더 이상 밀어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방 안에 고무풍선을 가득 집어넣고 문을 딱 닫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방 안은 가득 찬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방 안에 있는 고무풍선들을 탕 탕 터뜨려 버리면 다시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방 안은 텅 빈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텅 빈 것으로 가득 차 있다’라는 말은 ‘가득 차 있지만 사실은 텅 비었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이고, 가득 찬 것이 텅 빈 거예요.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득 차 보이기도 하고, 텅 비어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가득 차 있는 동시에 텅 비어 있고, 텅 비어 있는 동시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작은 티끌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 있고

우리의 DNA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라는 한 사람은 약 1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포의 관점에서는 10조 개이지만, 그 10조 개의 세포를 모은 것을 가지고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구성하는 10조 개의 세포를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면 그 안에 DNA라는 것이 있고, DNA 안에는 내 몸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어요. 예를 들어내 몸의 일부를 떼어서 복제를 하면, 또 하나의 내 몸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DNA 안에 내 몸의 정보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내 몸 하나에 10조 개의 세포가 있는데, 10조 개의 세포마다 내 몸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가운데 많은 것이 있고, 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일체요, 곧 일체가 하나인 것입니다. 작은 티끌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한 개의 티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모든 티끌마다 우주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개의 작은 세포 속에 내 몸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고, 그 세포 하나만이 아니라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그러합니다.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한량없는 오랜 겁이 한순간의 생각이고
한순간의 생각이 곧 한량없는 시간이라.

이것은 시간에 대한 개념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경험하는 시간, 즉 주관적 시간에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매우 괴로우면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집니까, 짧게 느껴집니까?”

“길게 느껴져요.”

“여러분은 오래 사는 게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고통을 많이 겪으면 됩니다. 고통을 많이 겪을수록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기분이 엄청 좋을 때는 시간이 잘 가요, 안 가요?”

“시간이 잘 갑니다.”

“그래서 시간이 잘 갈 때를 표현할 때 ‘십 년이 하루 같이 지나갔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십 년이 하루 같이 가는 게 좋은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일주일만 살다 죽으려고요? (웃음)

그런데 고생을 많이 해서 힘들면 ‘일각이 여삼추’라고 하죠. 짧은 순간이 3년 같다는 뜻입니다. 하루가 3년 같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3년 치 경험을 하루 만에 다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젊을 때 고생을 피하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젊을 때 놀면 아무 일도 한 것 없이 시간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니 젊을 때는 일부러 돈을 주고서라도 고생을 경험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중도’에 맞지가 않잖아요. 그러나 주어진 조건에서 마주해야 하는 고생을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안 자면서까지 명상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명상 시간에는 잠을 자지는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웃음)

시간이란 본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와 같이 시간도 절대치가 아닙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시간이란 본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변화의 속도를 측정한 것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변화하기 때문에 시간이란 개념이 생기는 것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시간이란 개념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애초에 안 되는 겁니다. 변화의 속도를 측정한 것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산소의 원자핵은 8개의 양성자와 8개의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거리는 엄청나게 짧은 거리입니다. 학교 다닐 때 전자기력이 무엇인지 배웠죠? 두 전하 q1과 q2 사이의 거리가 r일 때 두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력 F는 쿨롱 법칙에 의해 F = k(q₁q₂)/r² 입니다. 두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력의 크기는 두 전하의 곱에 비례하고, 그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리(r)가 제로에 가까우면 F가 무한대가 되어서 서로 붙어 있을 수가 없고 파괴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붙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전자기력이 아닌 다른 힘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핵력이라고 합니다.

이 핵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게 중간자입니다. (–)전기를 띤 파이(π) 중간자가 중성자에서 튀어나오면, 마이너스가 하나 튀어나오니까 플러스가 됩니다. 그래서 중성자가 양성자가 되고, 그게 양성자에 붙게 되면 중성자가 되는 거예요. 중성자가 따로 있고, 양성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양성자가 중성자가 되고, 중성자가 양성자가 됩니다. 이런 변화가 얼마나 빨리 일어나느냐 하면 10의 –23승 초 만에 일어납니다. 그 힘으로 원자핵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10의 –23승 초에 비하면 1초는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입니다.

인간의 한 생에 해당하는 100년 남짓한 세월도 우주에서 태양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시간과 비교하면 1초보다 더 짧은 시간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찰나에 불과해요. 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시간은 우주의 시간과 비교하면 전자가 하나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시간 축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차원을 달리해서 바라보면 우리의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할 수가 있습니다.”

스님은 계속해서 법성게의 구절 하나씩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처음 발심 했을 때가 바른 깨침 이룬 때요
생사 번뇌 열반 모두 항상 함께 조화롭다.

“여러분이 처음 발심을 해서 10년, 20년, 30년을 계속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으면 그것이 정각(正覺)입니다. 초발심은 시작이고, 정각을 이룬 것은 끝입니다. 그래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은 ‘시작이 곧 끝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뜻입니다. 무시무종의 관점에서 보면 초발심이 곧 정각을 이룬 때인 것입니다.

생사열반상공화(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는 초발심과 정각이 둘이 아닌 것처럼 생사 번뇌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처음 발심했을 때가 곧 정각을 이룬 때이고, 생사 번뇌가 있는 중생의 세계가 곧 열반의 세계입니다. 즉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것입니다.”

법문이 끝나자, 대중들은 모둠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17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설법전에서 주간반 수행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종교·시민사회 원로분들이 찾아와서 시국 현안에 대해 의논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7

0/200

지명화

고맙습니다. 귀한 법문 잘 들었습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조금씩이라도 이해하게 되어 다행이고,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물리공부도 해야 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을 계속하다 보면 불교의 이론과 겹치는 부분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올라오네요

2025-03-07 09:34:38

하니

감사합니다 스님

2025-03-07 09:33:14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

2025-03-07 09:25:2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