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7시 30분부터 미주정토회 정기 이사회에 참석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2024년 사업보고와 결산, 2025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에 대해 심의하고 의결했습니다. 미주정토회 법인 이사회를 마지막으로 모든 해외 법인 이사회를 잘 마쳤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자료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활동가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봉사자들이 즉문즉설을 들으러 온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12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며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생중계에는 33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청중들과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본인이 겪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무엇이든 즉석에서 질문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입니다. 주제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부터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자친구가 종교를 가진 사람은 부담스럽다며 헤어지자고 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종교를 가진 제가 부담스럽다고 헤어지자는 남자친구, 어떡하죠?
“저는 이번에 정토경전대학을 졸업한 학생입니다. 졸업 후 꾸준히 수행 정진을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몇 년 동안 만났던 남자친구가 종교인은 부담스럽다며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원망은 없지만, 나이에 대한 초조함도 있고, 앞으로 새벽 5시 정진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듭니다. 제가 이 상황에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굉장히 좋은 얘기 같지만 사실 그게 욕심입니다. 결혼이 우선이라면 정진을 그만두고 지금 당장 그 남자에게 전화해서 ‘내가 정진을 그만뒀으니 결혼하자’라고 하면 되겠죠. 반대로 정진이 더 중요하다고 선택했다면 ‘정진을 이해해 줄 남자가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남자가 있으면 결혼하고, 그런 남자가 없으면 안 한다’ 이렇게 입장을 가지는 것이 정진입니다. 정진이 정말 중요하다면 내가 이 길을 가는 걸 이해하고 같이 살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고려해 보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법륜스님도 혼자 사는데 나라고 못 살 이유가 있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결혼을 하고 싶은 욕심과 수행을 하고 싶은 욕심 모두 붙잡고 있어요. 정진을 한다고 하니 발심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욕심이 하나 더 붙은 거예요. 남자에다가 정진이라는 욕심이 플러스 알파로 더 붙은 겁니다.
결혼이 더 중요하다면 그 남자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가 정진을 포기할 테니까 결혼하자’라고 지금 당장 전화하면 되죠. 하지만 그 관계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질문자는 알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여자가 정진한다는 이유로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한다면 그 남자의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있잖아요. 정진이 특별한 종교 활동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다면, 사실 평소에도 망설임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핑계거리가 없으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어떤 핑계를 대고 헤어질까?’ 고민하다가 마침 질문자가 정진을 하겠다고 하니 ‘나는 종교적인 거 싫어’라는 좋은 핑계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것이지 정진이 진짜 이유가 아닙니다. 이건 질문자가 직접 테스트해 보면 돼요. 지금 전화해서 ‘내가 정진을 그만둘 테니까 다시 만나자’라고 해 보세요. 그러면 또 다른 이유를 댈 겁니다. 그러니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남자친구는 정진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여섯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못다 한 질문은 저녁에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고 12시가 되어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지하 1층 공양간으로 향했습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님이 찾아오셔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지금 나라가 많이 혼란스러운데 현 시국에서 진영 갈등을 줄이고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나가려면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1시 30분에는 원로 정치인이며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덕룡 전 의원 님이 스님을 찾아와 시국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곧이어 오후 4시에도 대화 문화 아카데미 강대인 이사장님께서 찾아와 헌법개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나라가 많이 혼란스럽다 보니 스님에게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스님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나갔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시민들은 현장 접수를 하거나 질문 신청을 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유튜브에 5,100여 명이 접속하고 현장에서 12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나서 스님이 무대 위에 자리했습니다.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곧바로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여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상사가 일을 못한다고 느껴지면 무시하는 마음이 든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상사가 일을 못할 때 무시하는 마음이 듭니다
“저는 14년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저는 상사가 일을 못 한다고 느껴지면 무시하는 마음이 듭니다. 동료나 후배들은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상사들에게만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이런 무시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몇 년 후면 제가 40대가 되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싶습니다.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살아야 할까요?”
“조금만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왜냐하면 곧 질문자 밑으로 사람이 들어올 테니까요. 지금은 상사를 보며 ‘왜 저렇게밖에 못 할까?’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깨어보면 자신이 상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부하 직원에게서 멸시의 눈초리를 받기 시작하겠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거예요.
‘아! 상사도 사람이구나. 부하 직원도 사람이구나. 결국 별거 아니었네! 이제 내가 그동안의 과보를 받는구나!’
이렇게 반성하게 될 겁니다. 질문자는 ‘상사는 적어도 나보다 많이 알아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많이 안다고 해서 상사가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많이 알아서 상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사의 역할은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 경영이란 조직을 운영하고 여러 사람의 역할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는 게 부족하더라도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몰라’ 주지 스님이 있었습니다. 보통 절에 사람들이 많이 오려면 스님이 법문도 잘하고 염불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물론 그렇게 하면 사람이 많이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신도들이 법문을 요청하면 ‘나는 법문 할 줄 모른다’라고 하시며 훌륭한 스님들을 초청해서 법문을 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법문을 하는 게 아니라, 법문을 잘하는 스님이 있다면 누구든 초청해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했어요. 염불을 부탁받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은 염불도 할 줄 모른다고 하면서, 천도재를 지낼 일이 생기면 염불을 잘하는 스님을 모셔 와 진행하도록 했어요. 그런데도 절이 잘 운영되었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해서 경영을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더욱 열린 자세로 운영할 수 있었던 거예요. 법문을 잘하는 스님이 있으면 초청해서 법문을 듣게 하고, 염불을 잘하는 스님이 있으면 초청해서 천도재를 지내도록 한 거죠. 그 덕분에 그곳 신도들은 다양한 스님들의 법문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비용은 주지 스님이 내는 게 아니라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서 해결했어요. 그 스님의 별명이 ‘몰라 스님’이었어요. 무슨 질문을 해도 ‘몰라’라고 대답하셨거든요. ‘난 아무것도 몰라. 자기들이 알아서 해’ 이러셨음에도 절이 잘 운영되었습니다.
어떤 절은 상주 스님이 없는데도 운영이 잘 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공양주 보살님이 운영하시던 절이었어요. 사실상 그분이 절의 주인이었지만 오직 공양주 역할만 했지 주인 행세를 하지 않았어요. 다만 절을 찾는 신도나 손님들에게 밥을 잘 차려드렸습니다. 법문이 필요할 때는 스님들을 초청했고, 염불이 필요할 때도 스님들을 모셔서 진행했습니다. 자신은 부엌에서 밥만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놀았어요. 그런데도 절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저마다 재주가 있습니다. 꼭 뭔가를 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자처럼 ‘상사가 나보다 잘해야 한다’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만약 상사가 질문자보다 일을 더 잘한다면 질문자는 영원히 그 자리를 맡을 기회가 없습니다. 오히려 상사가 질문자보다 일을 못하면 좋은 일이에요. 질문자가 앞으로 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부하 직원이 똑똑하고 일을 잘하면 좋은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상위 관리자가 보기에는 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맡기고 싶어 하니까요. 그래서 부하가 일을 못 한다고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에요. 그래야 내가 팀장 역할을 계속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제가 미국에 가서 가게를 운영하는 교포들과 즉문즉설을 해보면 다른 나라에서 온 직원들이 말도 잘 못 알아듣고 여러 번 가르쳐줘도 일을 제대로 못 한다며 힘들어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일 잘하고 똑똑하면 왜 당신 밑에서 일하겠어요? 금방 배우고 나가서 자기 가게를 차리겠죠.’
직원들이 일을 못하기 때문에 내가 사장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 이민자들이 사장을 하려면 그런 직원들이 있어야 가능해요. 세상살이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의 생각도 잘못된 겁니다. 상사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잘 알 수는 없어요. 모르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럴 때는 겸손하게 ‘팀장님, 제가 보기에 이건 이런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면 됩니다. ‘팀장이 되어서 그것도 모르나?’라고 지적하는 것은 질문자의 처지에서 할 일이 아니라 상위 책임자나 사장이 할 일입니다. 질문자는 사장이 아니잖아요. 사장이 아닌데 사장인 줄 착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어떤 직원이 실수해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더라도 그건 사장이 책임질 일이지 질문자가 책임질 일이 아닙니다. 동료 중에 게으름 피우는 사람이 있어도 그건 질문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그건 질문자의 업무가 아니니까요. 만약 질문자가 팀장이 되어서 팀원 관리 업무가 생기면 그때는 관여할 일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불법 행위가 아니라면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정토회와 같은 수행 공동체에서는 도반들끼리 서로를 위해 탁마(琢磨)할 필요가 있지만, 일반 회사에서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동료에 대한 간섭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사장인 줄 착각해서 나오는 행동에 불과합니다. 다만, 누군가 불법 행위를 한다면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관여할 수는 있습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대강당에 모인 청중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정토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은 106주년 삼일절입니다. 오전에는 이웃 종교인 분들과 함께 삼일절 특별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제17차 통일의병대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하여 통일의병들을 위해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