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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11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7시 30분에 미국 JTS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2024년 사업 보고와 결산, 2025년 사업 계획과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한 후 이사회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백일법문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열린법회를 시작했습니다.
130여 명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정토회 회원들이 매일 아침 1시간씩 수행하는 '천일결사 수행법'을 주제로 법문을 했습니다. ‘천일결사의 목표’, ‘수행자의 자세’, ‘사홍서원’, ‘보시’, ‘봉사’ 등 각각의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수행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는 일입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수행법인 천일결사 수행법은 첫째, 계율을 청정히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참회. 둘째, 선정을 닦는 명상. 셋째, 지혜를 증득하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는 경전 독송, 이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상구보리에 해당합니다. 대승 불교는 거기에 더해서 하화중생의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그 원력의 내용이 바로 ‘정토행자의 서원’입니다. 그러면 정토행자의 서원을 이번 천일 동안에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바로 ‘천일결사자의 목표’입니다. 정토행자는 이것을 일상에서 항상 염두에 두고 수행하자는 것입니다. 천일결사의 목표는 총 열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가 모인 단체입니다. 정토회에서 어떤 활동을 함에 있어 수행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정토회에서 구호 활동을 하든, 평화 운동을 하든, 그것은 일반인이 모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모여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토행자가 정치를 한다면 수행자가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정치를 할 때는 한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수행자가 정치를 할 때는 국민의 권익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기에 사적인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는 제각기 독립된 존재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모두가 평등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다만 역할이 다를 뿐이지 평등한 관계입니다. 수행자들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남을 고용해서도 안 되고, 고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계급 차별과 성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수행자들의 모임인 상가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문밖을 나서면 누군가에게 고용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이 법 안에서 만큼은 고용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 안에서는 각자가 수행자로서 평등해야 합니다. 부부가 정토회에 왔다면 이 안에서까지 남편이라고 챙겨주고 시봉을 해 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둘 중에 한 사람은 독립된 수행자가 못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정토회에서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스님이 운전기사를 한 명 고용했다고 합시다.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스님이 스님으로 보일까요, 아니면 사장으로 보일까요? 자기의 생업과 관련된 사장으로 보이겠죠. 그렇다면 이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 부당하다고 여겨진다면 노동 쟁의를 할 수 있습니다. 법에 보장된 권리니까요. 근무 시간부터 소소한 인권 문제까지 다 제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수행자가 고용 문제로 고소를 당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관계를 그렇게 맺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만 운영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원봉사 시스템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에 비해서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라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만 단체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고려 시대나 신라 시대에는 그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계급제도를 불교 안에서도 용인했습니다. 당시에는 왕이 절에 땅을 하사하고 노동력도 하사했습니다. 노비를 주었던 겁니다. 이들을 사노(寺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절에서는 노비들이 밥을 짓고, 농사를 하고, 청소를 한 것입니다. 스님들은 그 토대 위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당시의 스님들을 수행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신 종교 지도자나 학자라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교 지도자나 학자는 사회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처님이 왕자일 때는 여러 명의 종을 거느리며 살았던 것과도 유사합니다. 말을 모는 종, 잠자리를 봐주는 종, 음식을 만드는 종, 옷을 갈아입혀 주는 종 등 여러 명의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이후에는 열반에 드실 때까지 단 한 번도 종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수행자 중에서 역할을 분담하여 아난다가 시봉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관계였기 때문에 강제로 맺어진 주종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자로서의 삶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승들의 삶은 그 모습에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 즉 사회에서 성차별과 계급 차별이 이루어질 때 그 한계를 뛰어넘어 평등성을 유지하는 수행 단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름이 알려진 고승들은 대부분이 그 당시의 제도 안에서 살았습니다. 공산주의가 되면 공산주의에 맞게 살고, 왕조 시대에는 왕조 시대에 맞게 살았던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왕조 시대에 사셨지만, 왕궁에 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식사를 대접받기는 했지만, 왕궁을 출입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래서 정토회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따라 우리가 수행자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토회가 이 원칙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죽을 때까지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죽고 나서는 조금 어려울 거예요. 왜냐하면 효율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효율을 중시하면 원칙을 지키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을 수행의 원칙을 지키면서 도저히 할 수 없다면 그 일을 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정토사회문화회관 건물을 원칙을 지키면서 운용할 수 없다면 이런 건물은 갖지 말자는 거예요. 움막 치고 살면 되지, 공연히 건물을 크게 지어서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곳에 출입하는 여러분들도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청소든 식사든 안내든 고용되어 일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천일결사의 목표 첫 번째는 나머지 아홉 개와 그 비중에 있어서 대등합니다. 나머지 아홉 개는 모두 사회적인 실천에 해당하는 내용들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천일결사의 목표 열 가지 항목이 의미하는 바를 하나씩 설명해 주었습니다.
둘째, 내가 생활하는 공간을 청정한 법당으로 만들어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한다.
셋째, 불교대학을 확산하여 정토행자를 양성한다.
넷째, 외국어 전법과 청년 전법을 활발하게 펼친다.
다섯째, 행복학교를 널리 열어 국민 행복도를 높인다.
여섯째,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
그리고 일곱 번째 목표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이것은 기후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에너지를 많이 쓰는 활동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것은 단순히 전기를 많이 쓰거나 자동차를 많이 타는 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물건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됩니다. 바로 이것이 기후 위기의 주범이기 때문에 정토회는 검소한 삶을 확산하고자 합니다. 주로 소비 멈춤 운동을 많이 합니다. 즉, 안 사기 운동입니다.
저도 소비 멈춤 운동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시봉하는 사람과 조금 갈등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승복이 많이 낡아서 기워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옆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스님, 옷을 새로 사는 것보다 이 옷을 깁는 게 더 힘이 들어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그전에 에너지 계산을 해봐야 되겠지만요. 물론 노동력으로 따지면 옷을 깁는 게 더 손해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노동력으로만 따질 수는 없어요. 이런 승복은 앞으로 입는 사람이 많을까요, 적을까요? 아마 입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스님이 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죽을 때까지 이 옷만 입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입을 사람이 있다면 제가 입다가 제자에게 물려주면 되는데, 지금 아무도 입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끝까지 기워 입다가 제가 죽으면 그때 끝내자 이런 생각입니다. 정토회의 소비 멈춤 운동은 이렇게 가능하면 있는 것을 그대로 쓰면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눔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지금 우리가 잘 산다는 것은, 자원의 분배가 우리에게 좀 몰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기아란 굶주림 상태를 말하고, 질병은 병이 있는데도 치료를 못하는 상황을 뜻하고, 문맹은 아이들이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등학교도 못 다니는 애들이 있을까 싶지만, 세계적으로는 그런 아이들이 많습니다.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후 350만여 명이나 되는 난민이 시리아 북쪽 지역의 난민촌에 몰려서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 있는 아이들은 10년 동안 아예 학교에 접근 자체가 안 되었는데, 그 숫자가 적게는 50만, 많게는 80만 가까이나 됩니다. 문맹 퇴치가 되려면 최소한 글을 읽고, 쓰고, 그리고 셈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글보다도 셈이 더 중요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셈을 할 줄 알아야 장사를 하든 뭘 하든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이 여덟 번째 항목에 집중을 많이 하고 있는 편입니다. 작년에는 시리아의 지진 피해 지역에 4,000명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새로 지었습니다. 돈도 적게 들이면서 학교 건물을 굉장히 잘 지었어요. 그래서 그 지역 사회에서 제일 좋은 학교가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시리아 반군이 순식간에 아사드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JTS가 시리아 정부와 협력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와 시리아는 아직 국교 관계가 없어서 얼마 전에 외교부 국장이 국교를 맺으러 시리아를 방문했는데, 시리아 외교부 장관이 한국 NGO가 자신들을 많이 도왔다고 감사 인사를 할 정도로 JTS의 활동이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도 장애인 학교와 원주민 학교를 1년에 10개씩 짓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홍수 피해 지역에도 지원하고 있고, 로힝야 난민들에게도 100만 명이 1년 반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비누 636만 개를 지원했습니다.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여러분들이 낸 보시금 대부분이 이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결식아동과 빈곤한 노인에 대한 지원, 그리고 연탄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행복학교를 졸업한 행복시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환경 운동, 평화 운동 등 여러 가지 실천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거나 해외에 구호 활동을 가거나 이런 거시적인 활동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토회가 다른 단체와도 협력한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말한 활동들을 정토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 단체 중에서도 이런 운동을 하는 곳이 있고, 기독교 단체 중에서도 이런 운동을 하는 곳이 있고, 시민 단체에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미래에 긍정적인 활동을 하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많습니다. 너의 단체, 나의 단체를 따지지 말고 서로 협력한다는 뜻입니다.
정토회는 특히 외국 단체와 협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시리아에 학교를 세운 일도 돈과 아이디어는 우리가 냈지만, 학교를 지은 것은 ‘화이트 헬멧’이라고 하는 민간 구조 단체였습니다. 부탄의 경우는 정부와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탄 정부는 GDP나 GNP가 아닌 GNH(국민총행복지수)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탄에서는 정부와 협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에서는 열 가지 목표를 정해서 개인을 위한 수행과 더불어 보시와 봉사를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이것을 ‘모자이크 붓다’라고 부릅니다. 내가 부처님과 같은 인격이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부처님의 인격 한 조각은 닮을 수는 있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몇만 명이 모여서 각자가 부처님의 한 조각으로의 역할을 한다면, 개인은 부족할지라도 개개인이 모인 정토회는 마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과 같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진을 마치게 되면, 그 소감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마음 나누기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시를 합니다. ‘하루에 천 원 이상 보시하기’입니다. 천 원 이상이라는 금액은 32년 전에 결정된 거예요. 당시에는 1인당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인 사람이 전 세계에 10억 가까이나 될 때입니다. 하루에 천 원도 못 버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가 비싼 향수를 산다거나 몇 만 원짜리 밥을 먹으러 간다면 좀 양심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누군가의 생존을 위해 하루치 생활비를 먼저 보시하고 나서 나머지를 쓰도록 하자’ 하고 정한 겁니다. 내가 특별히 돈이 많거나 갑자기 돈이 생겨서 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생존에 급급한 사람의 생존비 하루치를 우리가 먼저 보시하고 각자의 삶을 살자는 겁니다. 그 외 나머지 돈으로 좋아하는 밥을 사 먹든지 옷을 사든지 하라는 얘기예요.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돈을 쓰지만 그래도 오늘 한 사람의 생존에 도움을 줬으니까 나머지 돈을 써도 된다는 면피를 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 1달러 이상 보시를 하자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돈 액수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마지막에 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일을 그냥 하기보다는, 자신이 노동한 만큼 계산해서 돈을 받고 팔아요. 그렇게 대가를 바라지 말고, 선한 일을 최소한 한 가지는 하자는 겁니다. 버스 의자에 앉아 있다가 노인이 오면 비켜 준다든지, 거리에 휴지를 하나 줍는다든지, 이렇게 사회에서 남이 하지 않는 선한 일을 의도적으로 하나씩 하다 보면 이것이 몸에 익게 됩니다. 그래서 하루 한 가지는 좋은 일을 하자는 겁니다.
봉사도 보시의 일부입니다. 자신이 노동하고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 사고파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나의 신성한 노동을 돈을 받고 팔지 않습니다. 수행자가 월급을 받아도 되느냐 안 되느냐가 핵심이 아니에요. 어떤 일을 돈벌이로 하면 수행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수행자는 농사를 지어도 돈벌이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서 함께 먹기 위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 어떤 노동도 이익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봉사는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토회에서는 단 한 명도 고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의 보시와 봉사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시간제로 봉사하는 사람도 있고, 법사님들처럼 전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봉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예요. 이것이 모여서 국내외에서 많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큰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재벌 회사의 돈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준다고 한 사람도 없었고요. 정부로부터도 돈을 받지 않습니다. 보통의 사회 단체를 보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부로부터 각종 규제와 간섭, 관리 감독을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순수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돈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정토회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이 지원하는 돈 외에는 어떤 돈도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아껴 씁니다. 결국 여러분들이 마음을 내어 조금이라도 보시하고 봉사하기 때문에 정토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많지 않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정토회가 우리 사회 안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분의 수행, 보시, 봉사 덕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우리의 영향력이 조금 더 확산이 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커질 것입니다.”
법문이 끝나고 대중들은 모둠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사홍서원을 한 후 12시가 넘어서 열린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지하 1층 공양간에서 대중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에는 국가유산청에서 관계자가 찾아와서 문화재 보존과 관련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저녁 6시에는 BTN(불교방송) 개국 3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축사를 해 달라고 요청이 와서 6층 스튜디오에서 영상 녹화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열린법회 제6강을 시작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직장을 퇴근하고 달려온 10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했습니다.
저녁반 열린법회의 강의 주제는 발우공양과 소심경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생반게(生飯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소심경 세 번째 강의로 생반게(生飯偈)를 할 차례입니다. 생반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을 만든다는 뜻이에요. 음식을 생성한다는 것이죠. 이 생반게의 내용과 가장 비슷한 내용을 기독교에서 찾는다면 바로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山上說敎)를 하실 때의 일화입니다. 그때 오천여 명의 많은 대중이 모였다고 합니다. 점심때가 됐는데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음식 준비가 제대로 안 됐어요. 간혹 빵을 가져오거나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도시락을 싸 온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음식을 싸 온 사람은 먹고, 안 싸 온 사람은 굶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잖아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태어나려면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는 옷을 주고, 병든 이에게는 약을 주고, 또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고,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과 같다. 그렇게 한 자는 최후의 심판 날 천국에 갈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리라’ 이런 설교를 하는 마당에 누구는 음식을 가져왔으니까 먹고, 또 누구는 안 가져왔으니까 굶고 하는 것은 맞지 않잖아요.
그래서 음식을 다 모았습니다. 모아 보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말하면 오병이어(五餠二魚)입니다. 이렇게 모은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그 사람이 5천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약간의 과장이 있더라도 어쨌든 모은 음식으로 모두가 다 배불리 먹고 얼마는 남았다는 거예요. 우리 속담에도 '콩 한 조각으로 열두 명이 나눠 먹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생반은 바로 이런 정신을 말하는 거예요. ‘음식이 생겨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에요.
발우에 담은 음식은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먹는 최소한의 양입니다. 이 정도조차 못 먹어서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도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내 밥 한 숟가락을 그런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헌식(獻食)이라고 합니다. 밥 한 톨이든 밥 한 숟가락이든 나눠서 모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사람들이 조금만 나누면 이 세상에 굶어 죽을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음식 생산이 부족한 문제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골고루 배분되지 않은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20년 전에 그때 벌써 우리나라에 음식 쓰레기 처리 비용이 4천억 원이 든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음식값이 아니고 처리하는 비용만도 그러한데, 실제로는 더 많이 들겠죠. 우리가 이렇게 버리는 음식이 적게 잡아도 연간 1조 원이 넘는다고 해요. 그 돈이면 북한에서 굶어 죽는 사람을 다 살리고 남는 돈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게 현실이에요. 첫 번째는 그들이 굶주리는지 몰라서 못 하고, 두 번째는 나쁜 놈이니 못 준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서 버리고, 한쪽에서는 음식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겁니다. 남한에서는 살이 찌도록 먹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난리이고, 북한에서는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불균형한 모습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면 특정인 몇 사람만 나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밥 한 숟가락 버리는 일이 지구 반대편에서 한 사람이 굶는 일과 직결됩니다. 바로 연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꼭 누군가에게 베풀지 않더라도 내가 알뜰히 먹는 것만으로도 지구 저편에 굶주린 한 사람을 살리는 행위인 거예요. 이렇게 세계는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발우공양을 하면서 절약하고 버리지 않고 먹는 것은 지구 저편의 굶어 죽는 사람에게 음식이 돌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돈이 많이 있으니까 국민들이 소비를 많이 해서 식량이 부족하면 더 많이 수입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국제적인 식량 가격이 오릅니다. 그러면 가난한 나라에서는 같은 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이 더 적어지게 됩니다. 바로 그런 문제로 더 가난한 사람이 굶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도 태풍이나 지진 피해처럼 재난이 일어나면 당장 먹을 게 없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이렇게 내가 가진 음식을 나누는 것을 생반이라고 합니다. 생반게(生飯偈)를 살펴보겠습니다.
汝等鬼神衆 我今施汝供 此食邊十方 一切鬼神供
여등귀신중(汝等鬼神衆)은 ‘너희들 귀신의 무리들아’ 이런 뜻이에요. 여기에서 귀신의 무리라는 것은 형체도 없는 그런 귀신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배고픈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금시여공(我今施汝供)은 ‘내가 지금 너희에게 공양을 베푸노니’ 하는 뜻이고,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此食邊十方 一切鬼神供)은 ‘이 음식으로 일체 법계에 두루한 귀신들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이 음식으로 온 누리에 존재하는 모든 배고픈 중생들에게 골고루 공양을 올린다는 뜻입니다. 배고픈 사람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생각을 밥을 먹을 때마다 하는 겁니다. 또한 밥 먹을 때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실천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실천한다는 말은, 평소에 조금씩 아껴서 남은 돈으로 보시한다는 거예요. 1년에 옷 세 벌 살 것을 두 벌만 산다든지, 신발 두 켤레 살 것을 한 켤레만 산다든지, 이렇게 아껴서 그 돈으로 보시하는 것입니다. 학교 없는 마을에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이 제때 배우게 한다든지, 물 없는 마을에 샘을 파서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게 한다든지, 음식이 부족한 곳에 음식을 보내줘서 배고픈 사람이 먹게 한다든지, 옷 없는 곳에 옷을 보내 준다든지,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 준다든지 하는 것이 바로 발우공양의 정신입니다.
공양을 마치면 청수로 발우를 씻고 나서 맨 끝에서부터 그 씻은 물을 한 곳에 쭉 받아옵니다. 그런데 맨 끝에서부터 받아온 청수 물이 처음 주전자에서 따를 때의 물과 똑같아야 합니다. 이 깨끗한 물인 청수를 두고 절수게(絶水偈)를 합니다. 이 발우 씻은 물은 찌꺼기가 있어도 안 되고 색깔이 누런 색이어도 안 됩니다. 하지만 초심자들이 들어오면 찌꺼기도 있고 색깔도 뿌옇습니다. 그 말은 발우가 안 깨끗하다는 거예요. 발우 씻은 청수가 깔끔하다는 것은 그릇이 깨끗하다는 걸 말해요.
이렇게 청수 물이 깨끗한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왜 그럴까요? 육도윤회하는 중생계에는 맨 밑에 지옥도가 있고, 그 위에 아귀도가 있습니다. 아귀도에는 아귀 중생이 살고 있습니다. 아귀 중생은 배가 태산만 하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다고 해서 늘 배가 고픈 중생이에요. 그 바늘구멍만 한 목구멍으로 음식이 들어가서 배를 다 채우려면 잘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아선상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바늘구멍만 한 목구멍에 음식 찌꺼기가 들어가면 딱 걸리게 되고, 그것이 불이 되어 목이 타서 괴로워하게 됩니다.
목련존자의 이야기에서도 보면, 자기 어머니가 지옥에 있는 걸 보고 아귀도로 건져 와서 음식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배고픈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들을 발로 차내고 자기 혼자 먹겠다고 입에 확 털어 넣었어요. 그랬더니 그만 목에 불이 나 버렸다고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목구멍에 걸리지 않고 술술 잘 들어가는 감로수와 같은 게 있는데, 그것이 바로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한 청수 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먹으면 아귀가 배부르게 먹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게 뭘까요?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겁니다. 음식을 버리는 일은 곧 지구 저편의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일과 같다는 얘기입니다. 옛날에는 연기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첫째, 음식의 고춧가루 하나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 발우가 그만큼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음식을 절약해서 먹어야 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어서 정식게, 삼시게, 절수게, 그리고 발우공양을 마칠 때 하는 해탈주까지 설명을 다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소심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염송(念誦)을 해보았습니다.
오늘로써 소심경 강의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음 주에는 화엄경의 핵심 요지가 담겨 있는 ‘법성게’에 대한 강의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법문이 끝나자 대중들은 모둠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1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미주정토회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오전반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사회인사들과 연달아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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