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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이 어느덧 10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행자로서의 삶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 30분부터 미국 좋은 벗들(Good Friends USA)과 워싱턴 정토회의 정기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이어서 8시 40분에는 캐나다 정토회 정기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2024년 사업 보고와 결산, 2025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고, 지난 1년 동안 수고한 활동가들을 격려한 후 이사회를 마쳤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많은 봉사자가 곳곳에서 대중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15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정토회 회원들도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대중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언급하며 주권자인 국민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쌍방 간에 공방이 계속되면서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큰 시각에서 보면, 먼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즉시 멈추어야 합니다. 현재 상황은 어느 쪽도 특별히 우세하지 않습니다. 얼마의 거리를 두고 서로 밀고, 밀리는 공방이 오고 가면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상호 폭격을 가하면서 많은 재물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 상태에 이른 지 1년이 넘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더 이상의 피해를 없애려면 일단 전쟁을 중단해야 합니다.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지, 누가 침공했는지를 문제 삼아 책임 전가를 하면서 계속 현 상태를 유지한다면, 피해가 눈덩이같이 불어날 것입니다.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일단 전쟁을 중지하는 것이 먼저라는 겁니다. 전쟁을 중지하고 나서 그다음에 잘잘못을 따지더라도 따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분노가 극에 치달으면 피해 상황이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도 화가 나면 위험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험 상황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상대가 칼을 들고 있는데 옷을 벗어서 배를 내밀고는 ‘찔러라, 찔러’ 이렇게 나가는 게 화가 났을 때 인간의 모습입니다. 화가 났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자기 손실을 모르고, 화가 나서 눈에 뵈는 게 없으면 닥칠 화를 모른다.’ 하고 말씀하신 겁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성냄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정심을 가져야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대화와 협상은 크게 세 가지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첫째, 서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적대적 관계에서 하는 대화입니다. 감정적으로는 서로 대화할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꼴도 보기 싫지만 대화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손실을 막기 위해서 적이라고 해도 대화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쁜 놈하고 대화를 어떻게 해!’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손실을 가중시킵니다.
둘째,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하는 대화입니다. 이때는 ‘혹시 상호 간 더 이익이 되는 일이 없을까?’ 이렇게 이익을 도모하고 탐색하면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셋째, 서로 절친한 사이에서 하는 대화입니다. 절친한 사이의 대화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더 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손실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친하기 때문에 그 손실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적대적 관계에서의 대화는 손실을 막기 위한 대화이고, 처음 만난 사람 사이의 대화는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대화이고, 절친 사이의 대화는 이익을 도모하거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관계를 맺어가는 대화입니다. 그래서 제일 큰 이익이 되는 대화는 적대적 관계에서의 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화가 제일 어려운 것도 적대적 관계에서의 대화입니다.
왜 대화가 어려울까요? 첫째, 적대적 감정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 다툴 때를 생각해 봅시다. 서로 합의하면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데, 서로 적대시해서 다투면 부부 양쪽 다 남한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됩니다. ‘남에게 줬으면 줬지, 너한테는 못 주겠다!’ 이거예요. 이렇게 적대적 관계일 때는 손실이 발생하기가 쉽습니다.
둘째, 손실을 덜 보는 것을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입니다. 이익이 특별히 더 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손실을 막는 게 이익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예요. 내가 꼭 어떤 이익을 봐야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손실을 덜 보는 것만 해도 막대한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큰 손실을 본 뒤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가정에서 살펴보면 부부의 다툼이 자녀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잘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10년이 지나서 감정이 좀 누그러들면 그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을 하게 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방하거나, 이미 일어난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익을 추구할 때 실제로 이익을 보는 것도 있지만, 손실을 덜 보는 것도 큰 이익입니다. 주식 거래에서는 큰 손실을 보는 대신에 작은 손실만 보고 마무리하는 것을 두고 ‘손절매’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도 손절매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이익을 버리고 큰 손실을 막아내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큰 손실을 볼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갈등, 정당 간의 갈등, 지지자 사이의 갈등도 국가와 국민이라고 하는 큰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막대한 손실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질서를 재편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방 관계였다 해도 지금은 다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관계를 끊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동맹국에게 바보처럼 늘 당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당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익을 찾겠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럴 때 대한민국은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내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왜 저러는지를 잘 살펴서 내가 손해를 덜 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손해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니 손해를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중차대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국내의 작은 이익을 두고 권력을 누가 가질 거냐에만 현재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시기에는 그동안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오히려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반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중지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러시아의 편을 든다며 우크라이나와 서유럽이 반발하고 있지만,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지 않고서는 전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휴전의 조건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내건다면, 휴전으로 가는 협상 과정에만 또다시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전쟁을 멈추고 봐야 합니다. 전쟁 당사자들이 기존의 주장했던 바가 무시된다 싶으니까, 한편으로 기분이 나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했던 미국으로서는 전쟁을 끌면 끌수록 손해가 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손해를 덜 보기 위해서 일단 전쟁을 멈추자는 겁니다. 나머지는 협상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입니다. 물론 당사자가 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서라도 일단 전쟁을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5주년 되는 해입니다. 동시에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은 광복 전후로 해서 두 가지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 광복 전에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일입니다. 둘째, 광복 후에는 6·25 전쟁이 발발한 일입니다. 6·25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 살상되고 재물이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국민 상호 간에 적대적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3년이나 끌던 전쟁이 반강제적으로 멈춰졌습니다. 전쟁을 지속하겠다고 고집하는 미국의 한 장군이 면직되고, 우리나라 대통령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처럼 전쟁을 멈추는 것에 반대해서 휴전 협정문에 서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심정이 이해는 되지만, 전시 상황을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전쟁을 멈추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6.25 전쟁을 멈춘 일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일시적으로 멈추었지만, 전쟁을 종식하지 못한 채 정전 상태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큰 질곡이 되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우리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취약점으로 작용합니다. 대한민국의 번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전 상태의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동안 남북 간에 ‘7·4 남북 공동성명’을 비롯한 여러 대화와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 간의 6자 회담 및 4자 회담도 여러 번 개최되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한반도 주변 관계국 간에 합의가 가장 근접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9.19 공동성명’을 합의한 날입니다. 2005년 제4차 6자 회담 중 북핵 파기를 이끌어 당사국들이 합의한 일입니다. 그때는 북한 핵 문제만 다룬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핵 협상, 북한의 경제 성장을 위한 경제 지원과 경제 협력 문제들이 동시에 종합적으로 다뤄졌습니다. 그리고 합의까지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합의한 다음 날, 미 재무부에서 북한이 위조화폐를 찍었다고 주장하여 BDA(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 사태가 일어나니 9.19 합의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9.19 합의가 무산되자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았을 때도 전쟁 종식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어 남북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극복하려면 남북 간의 전쟁 종식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 간의 국교가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북한은 핵을 일단 동결해서 장기적으로는 폐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해 더욱더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어려움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한 결과,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또한 민주화를 위해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해서 결국 민주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안보 불안인 상황 속에서도 경제 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것은 한국 사회가 이뤄낸 큰 성과입니다. 게다가 한류라고 부르는 K-문화가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뒤섞여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우리가 이뤄낸 좋은 점을 어떻게 계승하고, 불안한 점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과의 관계에서 커다란 경제적인 손실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우리의 난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유리한 기회가 주어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손실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유리한 상황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지도자가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고, 국민이 화합해서 국가 이익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런데 현 시국은 현명하지 못한 국정운영으로 탄핵 국면이 되어 국가지도자가 부재 상태에 있고, 국민은 더욱더 분열된 상태입니다. 기회를 살리기보다는 기회를 잃을 확률이 더 높은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수행이란 내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객관적 시각을 갖고 국가가 처한 어려움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주권자로서 주권을 위임받은 대리인을 향한 관점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주권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 투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방관하고만 있으면, 대한민국은 주인 없는 나라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모두 시국을 조금 더 바르게 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에서 두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라는 말과 ‘나는 들풀 같은 존재’라는 말이 서로 모순적으로 느껴지고, 세상에 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나는 소중한 존재인가요?
중고등학교 때 키우던 반려견이 산책 중 저의 실수로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괴롭습니다. 어떻게 이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를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대중들은 모둠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1층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시국 현안에 조언을 구하는 사회 인사를 만났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3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전국의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한 가운데, 모두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법회처럼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과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언급하며 현 시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두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걸핏하면 나의 약점을 잡는데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은 제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꼭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법륜스님이 그렇게 가르치더냐? 도대체 뭘 배운 거야? 너 마음공부 하는 사람 맞아?’ 하고 비난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법륜스님께 배워서 이 정도라도 하는 거야. 마음공부를 한 덕분에 당신에게 잔소리 안 하고 이렇게 사는 거다.’ 하고 대답합니다. 남편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저는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요?”
“남편이 법륜스님을 거명할 때는 질문자한테 기분이 나쁘다는 걸까요? 법륜스님한테 기분이 나쁘다는 걸까요?”
“저한테 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사람은 기분이 나쁘면 욕설하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법륜스님을 거명하거나 ‘수행자가 왜 그러느냐’라고 말하며 감정을 표현하네요. 그 정도는 비교적 점잖은 방식에 속합니다. 남편은 ‘너 좀 잘해라. 나는 네가 마음에 안 든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당신의 말과 행동이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에요. 거기에 내가 어떻게 대답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가 하는 짓이 내 마음에 안 든다’라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거니까 그냥 ‘죄송합니다’ 이러면 됩니다. 잘하겠다는 말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
“예전에는 제가 남편에게 0을 했다면 지금은 50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잘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남편이 그럴 때마다 ‘나한테 지금 100을 요구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100을 요구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남편이 나한테 50을 요구하는 게 나를 더 인정하는 거예요? 100을 요구하는 게 나를 더 인정하는 거예요?”
“100을 요구하는 거요.”
“남편이 질문자를 너무 잘 봐서 그런 겁니다. 질문자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아예 기대도 안 해요. 기대를 안 하면 질문자한테 불평도 안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기만 해도 다행이다.’, ‘밥 해 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할 테니까요. 우리가 강아지에게 ‘너는 나를 따라다닌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왜 말을 못 해?’ 이런 얘기를 안 하잖아요. 말 못 하는 줄 아니까 기대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남편이 질문자에게 기대가 크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평소에 너무 잘해서 생긴 문제예요. 결혼 초에 남편에게 너무 잘해 주었기 때문에 그때를 기준으로 삼아서 ‘왜 요새는 못 하느냐?’ 이렇게 반응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만날 때부터 너무 잘하면 안 돼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너무 잘하면 처음에는 칭찬받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피곤해져요. 무슨 일을 맡겨도 잘한다는 기대를 하게 되니까, 뭐든지 맡기고 그게 뜻대로 안 되면 자꾸 나무라는 겁니다. 그래서 ‘왜 못하는 애는 놔두고, 잘하는 나만 자꾸 문제 삼나?’ 하며 억울해하지만, 사실 이것은 자기가 만든 문제예요. 자업자득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저도 주위 사람들에게 몇 번 일을 시켜보고 잘하면 그 사람에게만 자꾸 일을 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기대만큼 제대로 못 하면 나무라는 말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물론 질문자가 조금 기분 나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남편이 질문자에 대한 기대가 커서 생긴 문제예요. 상대방이 나한테 기대가 큰 건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이에요?”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돼요. 지금 잘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더 잘해요? 내가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더 잘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상대방의 기대에 내가 못 미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당신 기대에 못 미쳐서 죄송합니다’ 이러면 돼요. 상대가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자기 기준에 안 맞을 뿐이에요. 아내가 절에 다니고 수행한다고 하니까 내가 욕을 좀 해도 살랑살랑 웃어 넘어갈 줄 알았는데 이전과 똑같은 거예요. 본인이 건드리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아니, 수행자가 왜 화를 내?’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거예요. 그런 말은 그냥 듣고 넘어가면 됩니다. 일일이 대꾸하는 건 질문자가 반발심을 갖고 항변하는 겁니다. ‘네가 마음에 안 든다’라고 했을 뿐인데 ‘왜 나만 문제냐, 너는 문제 아니냐?’라고 항변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럴 때는 ‘죄송합니다. 기대를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 금방 해결이 됩니다. ‘예쁘게 여겨줘서 감사합니다.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해 주시네요’ 하고 말하다 보면 질문자도 웃게 돼요. 그러면 남편이 ‘아이고,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말은 잘하네’ 하고 말하면서 피식 웃을 겁니다. 그러면 서로 기분은 나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로 좋으니까 결혼하지 않았어요?”
“네, 지금도 부부 사이는 괜찮습니다.”
“자꾸 남편을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남편한테 어떻게 대답하면 입을 콱 다물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건 남편한테 질문자가 이기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질문자가 져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위에서 큰소리치면서 폼을 잡고 싶은데, 질문자가 수행한다고 하니까 심리적으로 밀리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힘으로 질문자를 누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질문자가 좀 밟혀주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안 생겨요. 남이 그렇게 말하면 문제가 있겠지만, 서로 좋아서 결혼한 사람이 이쁘다고 그러는 거잖아요? 아내가 이쁘긴 이쁜데 남편 입장에서는 너무 기가 센 것 처럼 느껴져서 기죽지 않으려고 반발하는 겁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좀 맞춰주세요.”
“시댁 문제로 다툴 때 남편이 그렇게 반응을 자주 하거든요. 스님 말씀처럼 자기가 저한테 밀린다고 느낄 때나 시댁 문제로 이야기할 때 남편이 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아내가 너무 똑똑하거나 너무 도덕적이면 한편으로는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리적으로 위축감을 느낍니다. 아내한테 말할 때도 조심해야 하거든요. 상대가 나를 인간같이 안 보는 것 같아서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는 겁니다. 아내가 수행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만만치가 않은 거예요. 그럴 때 심리적으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시비를 거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숙여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부부끼리 잘 지낸다고 자랑하러 나왔어요? 왜 혼자 사는 스님한테 와서 자랑하고 그래요? 혹시 스님이 부러워할까 싶어서 질문했어요? 그런 거 갖고 저는 안 부러워합니다.” (웃음)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대중들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11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미국 JTS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후 ‘천일결사 수행법’을 주제로 열린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국가유산청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BTN 개국 30주년 인터뷰 영상을 녹화하고, 저녁에는 ‘소심경’을 주제로 열린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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