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2.14. 인도 진달대학교, 국립 공과 대학 강연, 델리▶인천 이동
“너무 마음이 괴로울 때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 델리에 위치한 진달대학교(O.P. Jindal Global University)와 국립 공과대학(National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강연을 한 후 한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짐을 정리하고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델리에서 시방 빵집을 운영하는 이종배 님이 하루 동안 스님을 동행하며 지원해 주기 위해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숙소에서 진달대학교까지 약 두 시간이 걸리기에 서둘러 숙소를 나섰습니다. 아침 7시에 출발해 9시에 진달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진달대학교는 2009년에 설립된 인도의 사립대학으로, 인도 공과대학(IIT)이나 인도 경영대학원(IIM)과 같은 최상위 국립대학에 비해 비교적 신생 대학입니다. 그러나 법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해외 명문대와의 교류가 활발하고 교수진의 수준이 뛰어나 빠르게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강연에 앞서 9시 20분부터 10여 명의 교수님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수님들은 과학, 기후 위기, 리더십, 평화, 종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불교의 해법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내면의 평화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내면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나요?

“부처님 가르침과 내면의 평화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가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는 외적으로 드러난 사람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타인을 배려하며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오늘날의 윤리와 도덕에 해당합니다. 괴로움 없이 살아가려면 최소한 폭력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이런 기본적인 삶의 자세가 계율로 정해져 있습니다.

둘째, 마음을 고요히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들뜨거나 가라앉는 마음 상태를 경험합니다. 화를 내거나 욕심을 낼 때 마음이 들뜨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침울해지죠.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감정의 기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셋째, 무지로부터 깨어나는 것입니다. 무지 상태에서는 온갖 심리적 불안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긴장하게 되고, 어둠 속에서도 불안함을 느끼죠. 이렇게 긴장하거나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장소, 사람, 상황을 알지 못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듯, 명확하게 이해하면 긴장도 사라집니다.

정리하면 첫째, 계율을 지키고, 둘째,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셋째,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빨리어로는 각각 실라, 사마디, 반야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가르침에 따라 수행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이 고통뿐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명예를 얻고,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면 결국 괴로워질 텐데요. 그렇다면 무언가 되려는 것과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어떤 관점을 가지면 좋을까요?”

“괴로움이라는 용어가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행위를 유발하는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뜻대로 이루어지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를 우리는 행복이라 부릅니다. 반대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는데 이를 우리는 불행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해요. 즐겁다가 괴롭고, 다시 즐겁다가 괴로워지는 것이 반복됩니다. 이것이 윤회입니다. 인도의 전통 사상에서는 사람이 죽고 태어나는 것의 반복을 윤회라고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삶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즐거움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결국 괴로움으로 변합니다. 즐거움조차 괴로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즐거움마저도 괴로움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되는 것이 윤회이며, 이것이 곧 괴로움입니다.

질문자가 말한 괴로움은 즐거움의 반대 개념이지만, 즐거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도 결국 괴로움이 된다는 것이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붓다가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즐거움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된다는 의미입니다. 해탈이란 이렇게 반복되는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괴로움 없는 경지는 단순히 괴로움만 없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조차 함께 사라져 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모두 사라진 상태, 그것이 바로 고요한 상태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는 가르침은 다소 어렵게 느껴집니다.”

"저는 그런 접근 방식이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여기 문제가 있으니 이렇게 해봐라’라고 제시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아, 그렇구나’ 하고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합니다. 교수님들은 가르치려는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런 접근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려고 하면 학생들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수행을 통해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행을 안 해서 그런가?’ 하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바라보고 원인을 찾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교수님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스님의 답변을 경청했습니다. 약 1시간 40분 동안 교수님들과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은 1층 세미나실로 이동했습니다. 세미나실에는 백여 명의 학생이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을 본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지금 고뇌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질문을 해도 좋다며 가볍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약 1시간 20분 동안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힌디어로 질문을 하면 쁘리앙카 님이 통역을 하고, 영어로 질문을 하면 린첸 님이 통역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생각이 너무 복잡하게 일어나서 괴롭다며 어떻게 하면 생각을 멈출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생각이 복잡해서 괴롭습니다

“몸은 여기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잖아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즉, 생각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일어나지 않나요?”

“네. 그렇다면 그냥 두면 됩니다. 아무 문제없어요.”

“하지만 생각이 너무 복잡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괴로운가요? 아니면 괜찮은가요?”

“괴롭습니다.”

“그 괴로움은 질문자 스스로 만든 걸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일으킨 걸까요?”

“제 스스로 만든 겁니다.”

“결국 질문자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하는 행동일까요? 어리석은 행동일까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어리석은 행동은 멈춰야겠죠.”

“생각을 멈추고 싶지만 무의식에서 저절로 일어나는데 어떻게 멈추죠?”

“네, 맞습니다. 생각은 잘 멈춰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두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멈출 수 없다고 하면서도 멈추려고 하고 있어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멈춰지면 멈추고, 안 멈춰지면 그냥 두면 됩니다.”

“그냥 두면 생각이 더 복잡해져요.”

“그렇다면 괴로움을 받아들이세요. 결국 스스로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니까요. 계속 그렇게 어리석게 사셔도 되지만, 그렇게 살면 질문자만 손해입니다.”

“생각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멈춰지지 않는 걸 억지로 멈추려고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생각이 계속 일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생각을 멈추려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멈추려고 해도 안 될 때는 임시방편으로 TV 채널을 돌리듯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뛰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른 활동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복잡한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요. 잠시 생각을 멈출 수는 있지만 계속 반복돼요.”

“생각을 멈추고 싶다고 할 때 그 ‘싶다’가 바로 욕망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시험을 잘 보고 싶다’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어떤 것은 좋게 보고, 어떤 것은 나쁘게 보며 욕망을 가집니다. 공통점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점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없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 생각을 멈추고 싶다면 우선 멈추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TV 채널을 돌리듯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세요. 질문자의 문제는 우선 이렇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을 할 때는 어떤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코끝의 호흡만 알아차립니다. 명상을 꾸준히 하면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관심이 코끝에 집중되면서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질문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명상을 꾸준히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보통 쉬운 답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런 길은 없습니다. 제일 쉬운 방법은 그냥 두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한 가지 방법은 원인을 탐구해서 해결하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바로 ‘직관’입니다. 직관적으로 문제를 단번에 푸는 것이지요.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연습이 필요하지만,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사라집니다. 제가 여러분과 대화하며 말씀드리는 것도 바로 이 ‘문제 삼지 않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어려우신가요? 하지만 이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애인과 헤어졌어요?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시나요? 부모님은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씀이 맞다고 생각되면 헤어지면 되고, 그래도 결혼하고 싶다면 결혼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성인이니까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습니다. 부모님과 갈등이 생겨도 괜찮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려면 그 정도 대가는 치를 수 있어야 해요. 연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시험에 떨어졌나요? 괜찮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예로 들어볼까요?. 시험에 떨어졌다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 실력으로 도로에 나가면 사고 확률이 높겠죠. 그러니 떨어져도 좋은 일입니다. 연습을 더해서 다시 보면 되고, 또 불합격한다면 다시 연습하면 됩니다. 실력이 충분히 쌓여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고, 그래야 사고를 줄여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에 어떤 신이 관여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잘 생각해 보면 사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늘 이런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물론 마실 물이나 먹을 음식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좀 문제예요. 그런 경우는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그런 문제가 없어요. 생각을 멈추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멈추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그렇지만 ‘아무 문제없다’라는 관점으로 살면 그 문제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여러분 모두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사세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세상에는 공부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공부만 잘한다고 이 학교에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 부모님이 있다는 것 역시 좋은 일이에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가진 좋은 점을 생각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강연이 예상보다 30분 정도 길어졌습니다. 다음 일정인 인도 공과대학 강연이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었기에 아쉽지만 강연을 마쳐야 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 15분경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강연 시작 전 교수님들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난해 스님에게 활발히 질문했던 교수님을 비롯해 여러 교수님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1시 30분이 되어 스님은 곧바로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70여 명의 학생이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가볍게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설명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 명의 학생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너무 괴로울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너무 마음이 괴로울 때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마음이 너무 심하게 괴로울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 괴로움의 종류를 노트에 적어 보세요. 그리고 ‘이게 왜 괴로운가?’ 하고 다시 물어보세요. 처음에는 괴롭다고 느껴지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게 꼭 괴로운 일은 아니네?’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지워버리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왜 그것이 괴로운 걸까요? 원래 혼자였는데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잠시 좋았던 거잖아요. 헤어져도 결국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물론 조금 아쉽긴 하지만, 반드시 괴로울 일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헤어져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만나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만약 내가 그 사람을 버렸다면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가 떠난 것이라면 내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떠남으로써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이것을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 이건 괴로울 일이 아니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인생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습니다. 목표를 설정하든,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기준을 세우든, 그것은 모두 스스로 만든 것이며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잘 살펴보면 여러분에게 모순이 있습니다. 스스로 좋다고 선택하지만, 결과가 나쁘게 느껴지는 경우입니다. 결혼할 때는 기뻤지만 결혼생활이 괴로움이 되기도 합니다. 결혼할 때 모두의 축하를 받았지만 결국 고통을 겪기도 해요. 자식을 낳고 행복했지만, 나중에는 자식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가게를 열 때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가게를 운영하면서 괴로워합니다. 여러분도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좋아했지만, 지금 공부하면서 괴로워하잖아요. 이것이 모순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왜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될까요? 이를 연구해 보면 우리가 왜 괴로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탐구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과학자는 물질을 탐구하고, 의사는 우리의 몸을 탐구하고, 수행자는 우리의 마음을 탐구합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수행자는 아픈 마음을 치료해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자는 탐구의 관점에서 과학자와 같습니다. 다만 그 탐구의 대상이 정신 작용인 것입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도 정신 작용을 탐구하죠. 그러나 정신과 의사는 타인의 정신을 탐구하는 반면 수행자는 자기의 마음을 탐구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스스로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릅니다. 반면 정신과 의사는 타인의 정신을 탐구하기 때문에 자기의 괴로움에서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자기 마음을 탐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승려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미 두 가지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하는 길과 재가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불교에는 원래 ‘신자’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종교로 변하면서 출가 수행자는 사제나 제사장의 역할을 하며 복을 빌어주는 존재가 되었고, 재가 수행자는 복을 비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불교가 다른 종교와 차이가 없어졌지만, 본래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불교는 기도를 통해 복을 받거나, 죽은 후의 세계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자기 마음을 탐구해서 괴로움 없이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없습니다. 믿음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마음의 원리를 탐구하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를 종교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강연이라 그런지, 인도공과대학 학생들은 즉문즉설 방식에 익숙해 보였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고민을 더 편안하고 활발하게 털어놓았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하려는 학생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곧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강연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스님이 화장실을 다녀오자 화장실 앞에서 한 학생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저는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늘 공허함을 느낍니다. 무언가 부족한 것 같고,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그럼 지금 당장 저와 함께 떠날 수 있겠습니까? “

"가족만 없다면 스님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이 있어서 어렵겠습니다.“

"그건 핑계입니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이 막연하게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중심을 잡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짧은 문답이었지만, 학생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연을 마친 후, 교수님들이 스님을 배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교수님들께 책을 선물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해 준 강혜정 님에게도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번 강연 준비를 위해 일부러 한국에서 인도까지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고마워요."


오후 5시 10분에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이번 인도 일정 전체를 지원해 준 보광법사님과 쁘리앙카 님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함께한 일행이 비행기 출발 시간이 각각 달랐습니다. 스님은 각자의 탑승 수속 시작 시간을 확인한 후, 모두가 함께 출국장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히 챙겼습니다.

공항 입구에서 헤어질 줄 알았던 일행은 예상과 달리 모두 함께 출국장을 지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린첸 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달라서 스님과 공항 입구에서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함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요, 이제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늦게 들어가면 여러분 저녁 공양 시간이 늦어질 테니까요. 저녁 식사 맛있게 하세요. “

스님은 남은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 후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어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이륙했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시작된 5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내일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49

0/200

대덕

고맙습니다.

2025-02-24 15:44:15

홍숙이

안전하게 귀국하셔서 감사합니다

2025-02-20 13:53:40

지명화

고맙습니다.

2025-02-18 15: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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