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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상카시아에서 아쇼카 석주 기공식을 한 후 가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전에 상카시아를 떠나기 전에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초창기 교장 선생님을 했던 수레스 님이 세운 YBS 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비스킷과 미타이를 챙겨서 YBS 학교로 향했습니다. 수레스 님과 교장 선생님, 몇몇 학생들이 교문 밖에 나와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법당에 들러서 참배를 한 후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있는 운동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줄을 맞추어 앉아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스님을 환영하며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습니다.
스님이 학생들 앞에 서자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인도 국가를 부르고 삼배를 했습니다. 모두 스님을 맞이하는 예의를 정성껏 갖추었습니다.
YBS 학교 선생님이 스님을 소개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한국에서 온 스님입니다. 여러분,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나요?”
“네.”
“한국은 중국을 지나서 훨씬 더 동쪽에 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를 타면 한국에서 델리까지 8시간이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걸어서 6개월이 걸렸습니다. 옛날보다 오가는 것이 쉬워졌지만 여전히 먼 곳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과 인도는 2000년 전부터 교류가 있었습니다. 2000년 전에 인도의 한 스님과 공주가 배를 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인도에서 온 공주는 한국의 왕과 결혼을 하고, 스님은 한국에 불교를 전했습니다. 8세기와 9세기경에는 한국의 스님들이 인도의 날란다 대학에 유학을 오거나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국과 인도는 불교가 전래되는 것을 계기로 교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오늘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인도 출신 인물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알려진 분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 지금의 네팔 땅에 있는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나 지금의 비하르주 지역에 있었던 마가다국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 상카시아도 부처님의 8대 성지 가운데 한 곳입니다.
부처님 다음에 유명하신 분이 아쇼카 대왕입니다. 여러분의 학교 정문에 세워둔 높은 석주 알지요? 그 석주를 부처님의 성지마다 처음 세운 분이 아쇼카 대왕입니다. 아쇼카 대왕이 부처님의 법에 귀의한 후 불교가 전 인도,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도는 세계에서 문명이 가장 잘 발달된 나라 중의 하나였지만, 근래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 인도는 다시 부흥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10년이 지나면 아마 세계 3대 경제대국이 될 것입니다. 인도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IT 전문가들 중에는 인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앞으로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인도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불교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 내가 상카시아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자신감이 있어야 공부도 잘할 수 있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네.”
“여러분들이 3일 전에 담마센터에 와서 한국에서 온 불자들을 위해서 꽃도 걸어주고 공연도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들에게 주려고 비스킷과 미타이를 가져왔습니다.”
학생들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서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내년에 또 봅시다.”
학생들과의 만남을 마치자 수레스 님이 스님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했습니다.
수레스 님은 학교를 운영하면서 느낀 점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배우게 되니까 힘든 노동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점점 농사짓는 일이나 몸을 쓰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다 보니 기계를 다루고 물건을 고칠 줄 아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어요. 인도에 정말 필요한 교육은 어쩌면 기술학교인 것 같습니다.”
스님은 수레스 님의 말에 공감하며 이야기했습니다.
“인도뿐만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한국도 이제 10년 후에는 같은 문제가 크게 드러날 거예요. 20년 전에 둥게스와리에 기술학교를 만들어서 운영해 봤는데 2년 운영하고 어려워서 중단했어요. 일반학교는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를 알려주면 되는데 기술학교를 운영하려면 기술이 있는 선생님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과 수레스 님은 학생들의 교육 현황과 교육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깐노즈(Kannauj)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차를 타고 1시간가량 이동하여 깐노즈에 있는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깐노즈에 사는 석가족의 일원이 세계에서 제일 큰 아쇼카 석주를 건축하기 위한 기공식을 하는 날입니다. 인도의 각 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와 정치인들을 초대하는 자리였습니다. 스님은 석가족들의 활동을 30년 동안 지원하고 있고, 많은 석가족들이 스님을 존경하고 있기에 외국 스님으로는 유일하게 초청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깐노즈에 사는 석가족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절을 지었으니 준공식에 스님이 참석하시어 법문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행사장에 와보니 아쇼카 석주 건립 기공식이었습니다. 수바스 님은 스님이 이번 행사에 참석해 주시기를 여러 차례 간곡하게 요청을 했으나 행사의 취지와 내용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수바스 님의 요청을 받아들여 스님은 오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한 후 12시에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아쇼카 석주를 세우고자 하는 부부가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석가족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스님, 아시다시피 저희가 아쇼카 석주를 세우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여러 나라를 다니시고 경험이 많으시니 조언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이 하려는 일에 대해서 아직 충분한 설명을 못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왜 아쇼카 석주를 세우려고 하는 겁니까? 그리고 왜 깐노즈에 세우려고 하는 겁니까?”
“부처님의 성지마다 아쇼카 석주가 있고, 아쇼카 석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성지를 의미하는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후손들에게 이곳 깐노즈에 석가족이 살았다는 흔적을 상징하는 아쇼카 석주를 남겨주고 싶습니다.”
”아쇼카 대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200년 후에 활동하신 분입니다. 아쇼카 대왕은 부처님의 법에 귀의하고 부처님을 공경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직접 순례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각 성지에 아쇼카 석주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아쇼카 석주 덕분에 ‘부처님이 이곳에서 태어나셨구나’, ‘부처님이 이곳에서 도를 이루셨구나’ 하고 부처님의 행적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이곳에 무엇을 기념하여 아쇼카석주를 세우는 것입니까?”
“지금은 작은 마을이지만 깐노즈는 예전에 수도였던 큰 도시입니다. 깐노즈 출신의 석가족이 현재 UP주의 총리로 일을 하고 있는데, 총리 임기 기간에 이 마을 출신의 석가족이 UP주의 총리까지 역임했음을 알리고 싶어서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저희들이 1 락씩 10 락씩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스님과 연결이 되면 더 큰 홍보가 되어서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을 모아 절을 짓거나 탑을 세우는 것은 스님이 할 일이 아닙니다. 스님은 불법을 가르치고 자기 수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스님들을 존경해서 재가 신자들이 탑을 세우고 기념물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보디사트바가 되면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못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물을 마시게 하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밥을 못 먹는 사람이 밥을 먹게 하는 일들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스님들은 중생을 위해서 베풀고 구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그런 활동을 하는 스님들을 위해서 보시하고 불사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역할입니다.”
대화를 하는 중에 시간이 다 되어 스님은 행사 무대로 이동했습니다. 행사장에는 마을 주민과 외지에서 초대된 인도 현지인 1500여 명이 모여 있어 무척 북적거렸습니다.
인도의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참석하는 가운데 다 함께 아쇼카 석주가 원만하게 건축되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하고, 각 종교별 방식으로 축원 기도를 한 후 스님이 축하 연설을 했습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아쇼카 석주를 세우는 기공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주관 단체의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기공식에 참여해 주신 사르나트 티벳 불교대학 학장이신 린포체 님을 비롯해서 비구 상가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시크교 등 다른 종교 지도자 여러분들도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부 관계자 여러분들도 축하해 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일일이 다 거명하지는 못하지만 오늘 이 행사에 내빈으로 참석해서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부처님께서는 2600년 전에 깨달음을 얻으시고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셨습니다. 그 후 200년 후에 아쇼카 대왕이 나오셔서 전 인도를 통일하는 대제국 마우리안 왕조를 건립하셨습니다. 아쇼카 대왕은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살상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이해한 후 부처님 법에 귀의하면서 모든 살상 행위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길을 닦고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어서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지사업이라고 부르는 일을 국가적으로 최초로 실현한 왕입니다. 아쇼카 대왕은 부처님을 공경해서 부처님이 다니신 발자취마다 기념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태어나셨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셨다' 하면서 부처님의 흔적을 기록해서 아쇼카 석주를 세웠습니다.
불교는 부처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불교가 전 세계로 퍼지는 데에는 아쇼카 대왕의 힘이 아주 컸습니다. 이 법이 전 세계로 퍼져서 제가 있는 한국까지 전해졌기 때문에 제가 부처님의 은혜를 입고 승려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는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와서 인도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인도는 아주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을 넘지 않아서 세계 3대 경제 부국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인도가 부흥하면서 부처님의 법도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아쇼카 대왕은 불법만 옹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다 보호했습니다. 그것처럼 앞으로 인도에서는 불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들도 발전할 것입니다. 인도는 다시 옛날 마우리안 왕조처럼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소비를 많이 하게 되면 지구환경이 오염됩니다. 그래서 기후 위기를 더 심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개발과 성장뿐 아니라 환경을 보전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인심이 박해지면서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럴 때 믿음의 종교만으로는 이런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여러 가지 고뇌를 해결하는 방법은 부처님 법이 가장 앞섭니다. 불교를 특정한 종교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고뇌를 해결하는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여러분도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아쇼카 석주가 우뚝 서듯이 부처님의 법이 인도에서 다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인도에 불교가 새로 시작하는 데에 이곳 깐노즈 석가족 불교인 여러분들이 가장 중심이 되어 활동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나팔 소리로 행사장은 매우 혼잡스러웠지만 스님이 법문하는 동안은 조용했습니다. 1500여 명의 인도 사람들은 스님의 축하 인사를 경청했고, 법문이 끝나자 환호하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축하 인사를 마치고 이타와로 출발했습니다. 기차 출발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습니다. 수바스 님은 스님과 일행을 집으로 초대하여 조금 쉬었다가 가기를 청했습니다. 깐노즈에서 2시간가량 이동하여 오후 4시에 이타와에 도착하자 수바스 님의 부인인 나르샤 님이 뛰어나와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나르샤 님이 안내해 주어 스님은 잠시 방 안에서 휴식한 후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수바스 님의 가족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느덧 밤 9시가 되었습니다. 수바스 님의 아들 비키 님이 운전하여 스님과 일행은 기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기차가 계속 연착되어 밤 10시 30분에 기차에 탑승했습니다.
앞으로 12시간을 기차를 타고 가서 내일 오전에 가야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4일, 델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제가 인도에 온 지 8년 됐는데요. 제가 왜 인도에 오게 됐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많이 베풀고 살라는 것 때문에 인도에 오게 된 것 같아서 처음에는 많이 베풀며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 처음 오는 분들과 살기 힘든 분들을 많이 도와주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한테 돌아오는 것은 ‘왜 더 안 베풀어 주나’, ‘왜 더 서운하게 하나’ 이런 반응들이니까 무척 힘들었습니다. 길에서 거지한테 50루피를 주면 또 쫓아오면서 100루피를 달라고 하고, 100루피를 주면 200루피를 달라고 하고, 나중에는 제 지갑에 있는 돈이 다 털리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인도에 새로 오는 사람들이 적응하기가 힘들든 말든 그냥 내버려 두고 살아야 하는지, 상처받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처럼 베푸는 일을 계속하면서 내 마음을 혼자 다스리면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너무 힘들어서 스님께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하면 됩니다. 질문자가 이렇게 하고 싶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싶으면 저렇게 하면 돼요. 질문자가 베풀고 산다고 해서 세상이 별로 좋아지는 것도 없고, 질문자가 안 베푼다고 해서 교민 사회가 어려워지는 것도 없습니다. 질문자가 베푸는 게 좋으면 베풀고, 베푸는 게 싫으면 그만두면 돼요. ‘인도 아이들이 박시시 하면 줘야 합니까? 안 줘야 합니까?’ 하고 저한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 좋을 대로 해라.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말아라. 네가 준다고 그 아이가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네가 안 준다고 아이가 굶어 죽는 것도 아니다. 안 주고 가서 네 기분이 찝찝하면 주고, 줘 봤자 사탕이나 사 먹을 것 같다 싶으면 주지 말고, 네가 알아서 해라. 그 아이를 위해서 주는 게 아니다. 그걸 무슨 세상을 위해서 하는 일처럼 생각하지 마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동창회에서 누가 어렵다고 해서 돈을 한 번 빌려줬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친구를 도와준 것에 대해 동창들이 전부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동창들이 어려울 때 누구한테 가장 먼저 연락할까요? 돈을 주었다는 사람한테 연락을 할까요? 돈을 안 주었다는 사람한테 연락을 할까요? 당연히 돈을 주었다는 사람한테 연락할 겁니다. 그런데 돈을 안 준 사람에게는 연락해서 못 받으면 그만인데, 돈을 주었다는 사람한테 연락을 했는데 돈을 안 주면 욕을 해요. 욕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왜 쟤는 주고 나는 안 주냐고 욕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가 얼마나 도와줬는지는 모르지만, 도와줬다면 연락은 더 올 겁니다. 그리고 안 도와주면 욕을 얻어먹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 행위를 하면 이런 결과가 온다는 걸 질문자가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인도에서 학교를 30년 동안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지역 사람들이 스님을 칭찬할까요? 비난할까요? 세월이 흐르면 비난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들끼리 살 때는 저하고 아무 관계가 없었죠.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를 지어서 도와주니까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가고 싶겠죠. 그럼 ‘중학교 좀 보내주세요’ 하고 요청을 하게 되는데, 만약 제가 안 보내주면 기분이 나쁘겠죠. 처음에는 기분이 좀 나쁘겠지만 어린아이가 저를 크게 해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중학교를 보내주면 다음에는 고등학교를 가고 싶겠죠. 그런데 고등학교를 안 보내주면 욕을 하겠죠. ‘중학교 보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닙니다. ‘공부를 가르쳐 주려면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이래 가지고 취직을 할 수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시켜 주면 이제 대학을 가려고 할 겁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직이 안 되면, 취직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겠죠. 안 도와주면 비난을 하겠죠.
다른 사람들은 비난을 하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비난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배웠으니까 비난도 할 줄 아는 겁니다. 아이들이 안 배웠으면 비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배웠기 때문에 항의도 할 줄 알고, 비난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학교를 짓기 시작할 때 이런 것을 예측했습니다. 도와주고 나서 좋은 소리만 들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면 ‘30년 동안 마을과 아이들을 위해서 일했는데 내 인생이 이게 뭐냐’ 하고 후회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도울 때 이런 걸 알고 도와야 합니다. 나한테 비난이 오느냐 칭찬이 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저항도 할 줄 알고, 비난도 할 줄 알도록 하자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칠까요?
제가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인도의 높은 계급 사람들은 처음에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가르쳐 주면 나중에 스님만 욕을 얻어먹을 겁니다. 그들은 의리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부려먹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배우게 되면 자기 이익도 챙길 줄 알게 되고, 뜻대로 안 되면 저항도 할 줄 아는 게 당연하죠. 학교를 지어줬으니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개중에는 여기 와서 해준 게 뭐가 있냐고 항의를 할 겁니다.’
저는 받을 결과가 예상되는 일을 한 겁니다. 그것처럼 질문자가 그렇게 남을 돕고 나서 섭섭해한다면 그것은 교민들의 문제가 아니고 자기의 문제인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그럴 바에 뭐 하러 돕느냐’ 하는 생각이 들면 돕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인도인 가정부를 들여놓고 살면, 가정부가 명절 휴가 때 집에 갔다가 안 돌아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안 오면 안 온다고 전화라도 해주지 싶어 배신감이 들지요. 그건 다 우리 기준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만약 월급을 한국 사람만큼 주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도 아이들에게 1루피를 주면 조금 있다가 또 달라고 따라옵니다. 제가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도 아이들이 정말 많이 따라다녀서 ‘방금 줬는데 왜 따라다니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다 싶어서 딱 앉아서 실험을 해봤습니다. 아이가 1루피를 달라고 하면 또 주고, 그렇게 37번 주니까 그다음에는 손을 안 내밀었습니다. 37번을 줘봐야 37루피밖에 안 되잖아요. 처음부터 100루피를 주면 안 따라왔을 텐데, 기껏 37루피 줘놓고 37번을 주었다고 성질을 내는 거죠.
인도에 와서 살려면 인도 사람들을 욕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한국에 가지 뭐 때문에 인도에서 삽니까? 인도에서 살려면 여기에 맞춰서 살아야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옛날에 LA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왜 흑인들한테 공격을 당했을까요? 돈은 흑인들에게서 벌고 살기는 백인 동네에 가서 사니까 흑인들이 기분 나쁜 겁니다. 그런 것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는 다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런 줄 알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앞에 ‘좋은 일을 하고’라는 말이 빠진 겁니다. 원래 의미는 좋은 일을 하고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고 칭찬을 받으면 칭찬으로 인해 복이 다해 버립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고 욕을 얻어먹으면 엄청난 복으로 돌아옵니다. 복 중에 최고의 복이 명이 연장되는 겁니다. 천당 가는 게 중요해요? 하루 더 사는 게 중요해요? 하루 더 사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고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 겁니다. 상대가 욕을 하면 ‘욕 좀 더 해줘. 그래야 내가 오래 살지’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마음속에 번뇌가 없어집니다. 복을 받는 게 핵심이 아닙니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면 비난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됩니다.
돈을 주니까 더 달라고 하는 겁니다. 돈을 안 주는 사람에게 누가 더 달라고 하겠습니까. 회사나 교민 사회에서 기부를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온갖 단체에서 기부를 해달라고 연락이 오게 됩니다. 돈을 주는 사람을 찾아가지 돈을 안 주는 데 누가 찾아가겠습니까. 인도 아이들도 돈을 주는 사람한테 착 달라붙는 거예요. 돈을 안 주고 그냥 가버리면 조금 따라오다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이라도 한번 붙이거나 눈길이라도 한 번 주면 십리를 따라옵니다. 그게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런 줄 알고 인도에 사시면 좋겠어요. 마음에 안 들거든 한국으로 가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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