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1.24. 델리 국립박물관, 인도 교민 강연
“제가 말을 세게 한다고 남편이 불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델리로 이동해 순례객들과 함께 델리 국립박물관을 방문하고 한국문화원에서 금요즉문즉설 방송과 교민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주인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대사님과 영사님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새벽 3시 50분, 스님과 순례단은 상카시아를 떠나 델리로 출발했습니다. 버스에 탑승한 후 새벽수행과 명상을 하고 단잠에 빠졌습니다. 약 6시간을 달려 오전 9시에 델리 근처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휴게소에서 이번 순례 동안 늘 함께하며 동고동락했던 조원들과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1시간가량 더 이동하여 오전 11시 30분에 델리 국립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누어 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스님은 박물관 입구에서 먼저 도착한 사람들에게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델리 국립박물관입니다. 인도에서 유물이 많은 박물관은 캘커타의 인도 박물관과 이곳 델리 국립박물관 두 곳입니다. 불상은 캘커타 박물관에 더 많습니다. 이는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을 때 발굴한 불상들을 캘커타에 두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델리 국립박물관은 인도 문화를 종합적으로 다루다 보니 불상보다는 힌두 신상이 더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

스님은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인더스 문명, 마우리아 왕조, 쿠샨 왕조, 굽타 왕조의 불교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힌두 신상, 상아로 만든 유물, 라자스탄 전통 회화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전시실 뒤에는 영국 식민지 시기의 유물과 무굴 제국의 유물, 인도의 동전과 문자의 역사, 옷감 전시 등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에서 발견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어 참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님은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짚어가며 설명했습니다.

"인도는 서쪽으로 아라비아해와 타르사막, 동쪽으로 벵골만과 아라칸 산맥, 남쪽으로 인도양, 북쪽으로 히말라야 산맥과 힌두쿠시 산맥으로 둘러싸인 반도입니다. 이런 지형적 특징 덕분에 세계와 단절된 채 독자적인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인도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습니다. 과거에는 각 문명이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 여기는 사상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한’은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한국이라 부르지만, 외국에서는 ‘코리아’, 즉 고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인도 역시 비슷합니다. 세상에서는 인도를 ‘인디아’라고 부르는 반면,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바랏뜨’라고 부르는데, ‘바랏뜨’ 역시 ‘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 대륙은 인종과 언어의 다양성이 매우 큽니다. 원래 이 지역의 주된 민족은 흑인 계열인 드라비다족이었지만, 북쪽에서 백인 계열의 아리안족이 남하하면서 인도-유럽어족이 형성되었습니다. 티베트-미얀마 국경 지역에는 몽골계 황인종이 주로 분포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인종과 언어 덕분에 지금도 각 지역마다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스님은 인도를 단일 국가로 인식하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인도를 하나의 국가로 보는 것은 유럽을 하나의 나라로 보는 것만큼 잘못된 생각입니다. 유럽 안에는 다양한 나라가 있듯, 인도 역시 수많은 지역과 문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님은 마우리아 왕조부터 굽타 왕조, 무굴 제국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역사적 흐름을 설명하며, 불교와 힌두교의 교차점에 대해서도 다뤘습니다.

"마우리아 왕조 시절, 아쇼카왕이 인도 반도 대부분을 통일했고, 불교를 중심 사상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굽타 왕조 시대로 넘어가면서 힌두교가 부흥하며 인도의 중심 사상이 재정립되었습니다. 굽타 시대에는 계급과 성차별이 강화되며 여성 출가가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사항을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굳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인도 문화를 연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더스 문명, 마우리아 시대, 쿠샨 시대, 굽타 시대의 불상과 삐쁘라하와에서 보지 못했던 진신사리탑을 보기 위해서 왔어요. 자유롭게 둘러보시되 사진 찍다가 대열을 끊지는 마세요. 나중에 자유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인원이 많으니 한 줄로 줄지어 이동하고, 다른 관람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

설명을 마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유물을 둘러보았습니다. 관람 중 일부 전시물 앞에서는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왼쪽 무릎이 살짝 굽혀져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 조각은 부처님이 걷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실천하며 활동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 정토사회문화회관 입구에 있는 부처님 상도 이 작품을 본떠 제작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무릎이 굽혀진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짧달막해져버렸습니다.” (웃음)


진신사리 앞에서는 모두가 함께 삼배를 올리며 예를 표했습니다.

"삐쁘라하와에서 발견된 진신사리입니다. “

두 차례 박물관을 안내한 후 스님은 순례단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후 3시에 금요즉문즉설 방송을 하기 위해 한국문화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 한국문화원에 도착하자 원장님과 여러 관계자들이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방송 준비에 앞서 원장님과 잠시 차담을 나누며 인도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매년 성지순례로 인도를 방문하는데, 올 때마다 정말 많은 변화가 느껴집니다. 성지도 점점 정비되어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그렇죠, 요즘 인도의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게 느껴집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온 세상이 멈춘 것 같았는데, 이제는 국제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스님은 원장님께 책을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 뒤 방송 장소로 갔습니다.

인도 시간으로 오후 4시, 한국 시간으로 저녁 7시 30분이 되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10년간 강박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힘들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강박증이 심해지면 견디는 게 너무 힘듭니다

“제가 강박증으로 10년간 약을 먹고 있는데 그 덕분에 일상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스트레스를 받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강박증이 너무 심해집니다.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하며 무엇보다 스스로 견디는 게 너무 힘듭니다. 이렇게 힘들 때 저 자신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다리를 다쳐서 깁스했다고 합시다. 그런데도 너무 달리기를 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모르겠습니다.”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한 사람이 너무 달리고 싶은데 달릴 수가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법륜스님에게 묻는다고 무슨 해결책이 나올까요? 부처님께 빈다고 무슨 해답이 나오겠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첫째, 뼈가 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은 달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갑갑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질문자에게 강박증이 있는데도 스스로 그 사실을 모른다면, 먼저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해보라고 말했을 겁니다.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강박증이라는 진단이 나면 약을 먹으라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강박증으로 인해 이미 병원에도 다니고 있고, 약도 먹고 있잖아요. 질문자는 지금 ‘나도 이제 일상생활을 하고 싶다’,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다리를 다쳤다면 불편하더라도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불편한 걸 감수해야 해요.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두 다리 모두 부러진 것보다 낫다. 죽는 것보다 낫다.’

이런 관점을 가지셔야 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병원에 다니고 있고, 전문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낫지 않는 걸 제가 갑자기 낫게 할 방법이 있겠어요?

제가 드리는 말씀의 요지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질문자는 좀 불편한 겁니다. 직장생활도 어렵고,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기가 좀 어려운 거예요. 그렇지만 더 심한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질문자는 밥도 직접 먹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일상생활도 가능한 거예요. 이 정도만 해도 괜찮다고 할 수 있어요. 병이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조건이에요. 다리가 부러졌다면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완치가 될 수 있겠지만, 강박증은 치료받는다고 해서 완치된다는 보장이 없어요. 아직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정확한 치료법이 없거든요. 지금 신경정신과에서 하는 치료는 일단 증세가 나빠지는 것을 멈추면서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정도예요. 응급치료는 가능하지만 완전히 낫게 하는 치료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이런 조건에 감사한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한 사람처럼 살 수는 없지만, 일상생활도 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장애가 있거나 더 심한 병이 있는 사람들에 비해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만약 불교 신자라면 ‘부처님 감사합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야 합니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강박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입니다. 만약 건강한 사람들처럼 살려고 하면 증세가 더 나빠질 겁니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일상생활을 좀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마음을 가지면 강박증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제가 상담도 해보고 여러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첫째, 운동을 좀 많이 해야 합니다. 특히 많이 걷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도 하시면 좋습니다. 둘째, 일을 할 때도 짧은 시간 내에 뭔가 해내야 하는 정신노동 같은 것은 피해야 합니다. 시간제한이 없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요. 그러면 점점 나아질 겁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강박증을 완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문을 드렸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면 더 심해진다고 하셔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욕심을 내면 강박증이 더 심해집니다.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그래도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꾸 감사하는 마음을 낼수록 증세가 완화됩니다. 육체적으로는 운동을 많이 하면 도움이 됩니다. 특히 하체 운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많이 걷고 절을 하면 좋습니다.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시간에 쫓기거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일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시간이 날 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입이 적어도 괜찮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살자’ 이런 마음으로 직장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내가 궁금해서 공부하는 것은 괜찮지만, 시험공부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또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병이 심해집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방송 도중 스님의 목소리가 급격히 잠겼지만, 스님은 질문자 네 명과 대화를 다 마쳤습니다. 문화원 원장님께서 주신 따뜻한 생강차 한 잔으로 몸을 추스르고 곧바로 오후 5시 30분부터는 문화원 지하 강당에서 인도 교민들과 법회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 보름 동안 400명의 대중과 함께 인도성지순례를 했습니다. 이번에 순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인도가 매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도로 사정이 나아져서 매년 이동 시간이 단축되고 있습니다. 순례를 하는 동안 외국인 순례자 숙소에서 자는데 시설이 많이 개선됐어요. 그동안은 더운 물을 구경도 못했는데 몇 군데는 태양열 발전으로 더운 물이 나오는 곳도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네팔과 인도 국경을 통과하는데 보통 6시간 걸렸는데, 이번에는 3시간 만에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델리에 사니까 인도가 원래 이런 줄 알지만, 한 30년 전에는 정말 형편없었거든요. 그때는 델리나 뭄바이만 발전하고 지방은 언제쯤 발전하나 했는데, 지금은 지방도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지도 많이 정비가 된 상태입니다. 인도 경제가 매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는 지방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현재 인도는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에 사업하러 오신 여러분들은 안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궁금한 점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는데요. 그중에 한 명은 말을 세게 한다고 남편이 불만을 갖는데, 은퇴 후에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갈등이 더 심해질까 봐 걱정이 된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제가 말을 세게 한다고 남편이 불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은퇴를 앞둔 남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편이 저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었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가니까 남편에게 말을 좀 세게 한대요. 본인이 듣기에 불편하게 말을 하고 있다고 그럽니다. 은퇴를 하면 계속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지는데, 사실 저는 남편이 불만스러워하는 말투를 고칠 자신이 없거든요. 젊을 때는 참았기 때문에 말도 예쁘게 나왔을 텐데,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까 덜 참고 마음껏 표현을 하는 것 같아요. 같이 있다 보면 더 그런 횟수가 많아질 텐데, 남편이 일도 안 하는 상황에서 와이프가 말도 세게 하면 서운할 거잖아요. 이럴 때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생활을 하면 남편도 좀 덜 불만스럽고, 저도 덜 불만스러울 수 있을까요?”

“질문자의 말속에 답이 다 있습니다. ‘내가 말을 세게 하면 남편이 직장 다닐 때보다 집에 쉬고 있을 때 더 서운할 것이다’ 하고 본인이 이미 이야기했잖아요. 서운해하지 않도록 하면 되지요.”

“그럼 제가 억울하잖아요.”

“질문자가 뭐가 억울한데요?”

“나이 들어서 남편하고 살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니까요.”

“스트레스가 있으면 ‘이런 게 스트레스입니다’ 하고 말하면 되죠. 왜 말을 세게 해요? 말을 세게 하는 이유는 참았다가 말하기 때문입니다. 화를 낼 때는 보통 한번 만에 화를 내지 않고 세 번쯤 참았다가 화를 내잖아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보자 보자 하니까!’ 이러면서 화를 냅니다. 그래서 참지 말아야 돼요. 참지 말라는 말은 한번 만에 화를 내라는 뜻이 아니고, 기분이 나쁘면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기분이 나쁘네’ 이렇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자기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가볍게 내어 놓는 겁니다. ‘네가 잘못해서 내가 이렇다’ 하고 말하는 게 아니고,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네’ 이런 식으로 말해보는 겁니다. 법륜 스님에게 ‘스님이 법문을 그 따위로 하니까 내가 기분이 나쁘지!’ 이렇게 말하면 책임이 스님한테 있잖아요. 그런데 ‘오늘 법륜 스님이 그렇게 말하니까 제 기분이 안 좋아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법륜스님도 ‘다음에는 유의해야지’ 이렇게 됩니다.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가볍게 내 마음을 내어놓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참았기 때문에 말이 세게 나오는 거예요. 안 참으면 말이 세게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이 센 것은 경상도 말투일 수도 있습니다. 고향이 어디예요?”

“부산이요.”

“남편은 고향이 어디예요?”

“부산이요.”

“같은 경상도끼리 왜 그래요? 어쨌든 경상도는 말이 좀 억셉니다. 첫째, 참지 말고 기분을 드러내는 겁니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지 말고, 내 기분을 조금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늦게 들어와!’ 이러지 말고 ‘당신이 늦게 들어오니까 좀 섭섭하네요. 보고 싶었나 봐’ 이렇게 애교 있게 말해 보세요. 특히 경상도 남자들이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경상도 남자들은 ‘여보 사랑해’ 이런 말은 근질근질해서 잘 못합니다. 상대가 못하는 건 이해를 해주더라도, 본인은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자꾸 해보세요.

둘째, 은퇴한 남자들의 심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들이 직장에 다닐 때는 자신이 돈을 벌어 오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서비스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밥 줘’, ‘신문 갖다 줘’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 30년 동안 습관이 되니까 은퇴하고 나서도 그 말이 입에 붙어서 ‘여보, 커피 한잔 타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아내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 좋죠. ‘너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은 남편이 직장 다니고 돈도 벌어 오고 하니까 좀 봐줬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남편이 직장도 안 나가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으면서 자신을 부려 먹으니까 ‘내가 노예도 아니고 육십이 넘어서도 심부름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쁩니다. 몇 번은 참다가 ‘직접 갖다 먹어라’ 하고 말하게 되죠. 그러면 남편이 ‘당신 말이 맞아! 내가 지금은 직장에 안 다니지’ 이렇게 생각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안 그래도 은퇴하고 의기소침해 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내까지 나를 무시하나’ 이렇게 반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싸움이 크게 벌어지는 거예요.

만약 남편이 스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제가 이렇게 답변을 했을 겁니다.

‘퇴직하자마자 다음날 아침에 가장 먼저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들어가세요. 아내가 ‘여보 왜 이래?’ 하면 ‘30년 동안 당신이 밥 해주는 거 먹고살았는데, 사실 나도 해주고 싶었지만 직장 다닌다고 못 도와줘서 미안해. 이제 내가 밥하고 청소할게. 당신은 쉬어’ 이렇게 말해 주세요. 이렇게 고개를 팍 숙여야 늙어서 이혼 안 당하고 삽니다. 푼돈 벌기 위해 돌아다니지 말고 3년은 부엌에서 복무하고, 그다음에 다시 직장을 구하든지 하세요.’

제가 은퇴를 앞둔 남자들에게는 이렇게 강하게 조언을 합니다. 남자라면 그래야 신혼부부처럼 다시 잘 지내게 됩니다.

여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은퇴하고 나면 남편의 위축감을 이해해서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부드럽게 대하고 서비스도 잘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는 잘 안 됩니다. ‘직장도 안 다니는 게 집에서 잔소리만 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서 대부분 사고를 칩니다. ‘내가 본때를 보여줘야지’ 이러면서 주식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합니다. 일확천금을 벌어서 ‘내가 이런 사람이야. 무시하지 마’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누가 ‘돈 3억만 내면 사장 자리를 주겠다’ 하고 유혹하면 아내에게 상의도 안 하고 덜렁 부도나는 회사에 투자를 해버립니다. 그래서 남편이 뭘 하겠다고 하면 아내가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여보, 30년 고생했으니 한 3년은 쉬어. 돈 없으면 라면 끓여 먹고살면 돼.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자.’

자꾸 이렇게 위로와 격려를 해줘야 남편이 퇴직하고 겪게 되는 슬럼프를 극복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해줄 만큼 평소에 잘한 꼬라지도 없는데 왜 그렇게 해주나’ 이런 생각이 들면 어쩔 수 없고요.

남자라면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들어가고, 여자라면 ‘30년 고생했으니 3년은 푹 쉬어’ 이렇게 말해주고, 서로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줘야 조급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조급하면 항상 실수를 해요. 사기꾼한테 속아 넘어가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걸 부인이 약간 잡아줘야 합니다. 그러면 은퇴하고 나서 사이가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한집에서 그 꼬라지 보고 어떻게 사나’ 이러지 말고요.”

“네, 감사합니다.”

열띤 분위기 속에서 여섯 명과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길어졌지만, 스님은 하나하나 정성껏 답하며 교민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참석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저녁 7시 40분에 서둘러 주인도 한국 대사관으로 출발했습니다. 새로 부임한 대사님이 저녁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8시가 넘어 대사관에 도착하자 대사님과 영사님들이 입구에서 스님을 맞아주었습니다.

"스님, 멀리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델리에서 교민 강연이 조금 길어져서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못 드셨을 것 같은데, 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

저녁 식사 자리에서 스님과 대사님은 인도의 역사, 문명, 국제교류, 그리고 발전 속도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사님과 영사님들은 스님의 해외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고, 수자타 아카데미, 시리아 학교 건립, 부탄의 지속 가능한 개발 사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한 영사님은 지난해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했던 경험을 나눴습니다.

"스님, 제가 작년에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물론, 마을 주민들과 마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사님께서도 꼭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스님은 이에 답하며 한류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요즘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한국 문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국격도 한층 높아졌지요. 하지만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 같은 한류 문화는 여전히 소비 중심의 성격이 강합니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한국인을 따라 하거나, 아이돌을 동경하며 문화를 즐기는 방식은 결국 소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문화가 소비를 넘어 생산적인 문화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가진 것을 나누는 문화로 나아가는 것이 한류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방향이라고 봅니다."

밤 10시 30분이 넘도록 대화가 이어지자 대사님이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성지순례를 마치셨다고 들었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사님 부부와 기념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 11시 30분이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온 스님은 원고를 교정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석가족과 수련을 하기 위해 다시 상카시아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5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5-02-03 14:00:31

김순옥

감사합니다

2025-02-03 12:11:04

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5-02-01 17:46:1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