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1.30 INEB 국제 컨퍼런스 2일째
"부처님의 삶이 그대로 참여불교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 첸나이에서 열리는 INEB 국제 컨퍼런스 2일째 날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6시 30분에 JTS 활동가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사이클론이 상륙하여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 8시에 마하발리푸람 유적지 답사를 가는 것이 공식 일정이었으나 취소되었습니다. 스님은 실내에서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았습니다.


8시 30분부터는 미얀마에서 온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제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모두가 스님의 방을 직접 찾아왔습니다.

먼저 미얀마 활동가들이 현재 미얀마의 상황이 어떠한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인터넷, 은행 서비스, 이동 및 물류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붕괴되었습니다. 군부가 민간인과 청년들을 강력히 감시하고 단속하여, 공개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량과 의약품의 반입이 차단되어 심각한 부족 상태에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20만 채 이상의 집이 불타버렸으며, 특히 중부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활동가들은 현재 미얀마는 사회 인프라 붕괴, 민간인과 청년들에 대한 탄압, 식량 및 의약품 부족, 주택 파괴 등 심각한 인도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고 호소하며 스님과 JTS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식량 지원과 임시 주거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스님과 JTS가 집이 불타버린 사람들을 위해 저렴하고 신속하게 지을 수 있는 임시 주거지를 지원해 주실 수 있을까요? 중앙에서 물자를 구입해 보내는 방식은 현재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직접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제사회나 국내 지원이 거의 닿지 않는 중부 지역 드라이 존(Dry Zone)에 식량과 임시 주거지 등 인도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스님은 현재 미얀마의 인도적 위기 상황이 과거 1990년대 중반에 고난의 강행군 시기의 북한과 비슷하다며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미얀마에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미얀마의 상황을 들으니 과거 북한에서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내부로 인도적 지원을 하려면 반드시 북한 정부와 협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지원이 허용되지 않는 국경 지역 같은 경우는 국경 변에서 비공식적으로 소규모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에서의 인도적 지원은 일부가 군대에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미얀마 역시 유사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양곤에서 물자를 구입하는 것은 JTS의 공식적인 지원이 가능하겠지만, 그 이후에 그 물자를 전달하는 부분은 현지 조직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중앙에서 물자를 구입해서 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니 지역에서 직접 구매하고 분배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에 JTS 활동가가 방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JTS의 지원 사업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JTS는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현재 미얀마 내부에서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난민을 돕는 좋은벗들이 국경 지역에서 소규모로 지원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 인도적 지원의 경우, 중국과의 국경 변에 조선족이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강 양쪽의 주민들이 친인척 관계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국경 변에서 비공식적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중국 쪽 마을마다 구호품을 준비해 두면 밤에 북한 주민들이 몰래 넘어와서 가능한 만큼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3년 만에 끝났습니다. 중국 정부가 알고 활동가들을 체포해서 추방하거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한국 활동가들은 추방만으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중국에 살던 조선족 활동가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미얀마도 국경에서 지원하려면 국경 양쪽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며칠 전에 미얀마 활동가 4명이 인도 쪽 국경 변에서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다가 국경에서 체포되었습니다.”

“태국 쪽 국경에서는 어느 정도 지원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인도와 방글라데시 쪽 국경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국경 변은 그나마 식량 사정이 낫습니다. 중부 지역에 드라이 존이 가장 어렵습니다. 집도 제일 많이 불탔고, 큰 도시마다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국경에서 그곳까지 구호품이 전달되는 게 너무 힘듭니다. 그곳 상황은 밖에 알려지지도 않았고요.”

“북한과 비슷한 상황이네요. 북한도 평양이나 국경 변은 그래도 좀 괜찮지만, 다른 지역은 사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국경 변처럼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고, 구호품이 평양까지 가더라도 북한 정부는 지방에 구호품을 보내는 걸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JTS, 평화재단, 좋은벗들 등 세 개의 단체입니다. 평화재단은 남한, 북한, 미국의 정부 간의 관계를 풀어 평화를 지키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주로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과 협력합니다. JTS는 공식적인 인도적 지원 업무를 합니다. 공식적으로 지원을 하려면 북한 정부와 사전 협의가 필요하고, 한국 정부의 승인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중국 국경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비공식적으로 해야 하는 지원은 좋은벗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 정부와 관계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습니다. 평화 활동에 대해서는 두 정부가 거부하지 않았지만,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남한 정부는 거부할 때가 많았습니다. 국경 변에서의 비공식적 지원은 북한 정부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중국 정부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저를 친북 인사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를 반북 인사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정치적 입장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북한 내에서 어려움을 겪든, 국경을 넘어와서 어려움을 겪든, 가리지 않고 돕는다는 관점을 갖고 활동했습니다. 현재 남한에서는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 정치적인 관점에 따라 찬성 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얀마 사람들을 돕는 일도 좀 더 연구해서 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활동한 경험으로는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더라도 모든 걸 뜻대로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들이 있어서 우리 뜻대로 다 할 수는 없어요. 제가 유엔난민기구에 가서 항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지금 미얀마 국민들이 처한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도울지는 좀 더 연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얀마 국내에서 지원하는 방법은 미얀마 상가(Sangha)와 협력하여 비정치적인 인도적 지원을 실행하는 것이 하나의 실현 가능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미얀마 상가가 결정하고 협력한다면 JTS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재정의 투명성입니다. 예산 집행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지원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국경 변에서 소규모라도 긴급한 지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봅시다.”

스님은 미얀마의 정치적 상황과 인프라 붕괴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미얀마 활동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어쨌든 계속 연구해서 방법을 찾아봅시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계속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9시 30분에는 INEB 국제 컨퍼런스 참가자 전체가 다 함께 인도 정부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사이클론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마하발리푸람 유적지 답사를 취소하고 대신에 박물관을 함께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버스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먼저 앉는 사람들이 뒷자리에 앉아 주어야 나중에 타는 사람들이 편하죠.”

10시 30분에 인도 정부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스테프가 관람 티켓을 끊어 오는 동안 버스 안에서 한참 기다렸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인도에 오면 물 먹는 하마가 아니라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가 있어요.” (웃음)

기다리는 동안 인도 INEB 이사인 고탐 님이 박물관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 박물관은 인도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박물관입니다. 제일 오래된 박물관은 캘커타에 있고, 첸나이에 있는 이 박물관은 두 번째로 오래된 박물관입니다. 1851년에 만들어졌지만 1774년부터 박물관 건립을 준비했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아르메니아의 상인이었습니다. 영국이 그 땅을 사서 국가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들을 보관했습니다. 유엔에서 작성한 문서들도 보관했습니다. 고고학 유물로도 유명하고, 화폐 유물로도 유명합니다. 불상 조각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로마 제국과 남인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 로마 제국의 유물들도 있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사용한 동전인데 그 속에 붓다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는 것도 있습니다. 불교 문학 작품들도 이 박물관에 많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티켓을 끊고 입장을 했지만, 비가 많이 내려서 박물관 내부가 정전이 되었습니다. 모두 휴대폰 불빛을 켜고 유물을 관람했습니다.


스님은 건물을 옮겨가며 차례대로 유물들을 관람했습니다. 힌두 문화를 기반으로 한 남인도 조각(South Indian Sculptures),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북인도를 통치하던 굽타(Gupta) 왕조의 유물 등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박물관 야외 정원이 물에 잠겼습니다. 참가자들은 빗물로 잠긴 건물들을 건너 다니며 고고학관, 인류학관, 청동관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남인도에서는 어떤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스님은 물을 건너다가 웅덩이에 풍덩 빠져서 옷을 다 버리고, 다리도 다쳤습니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타 무사히 행사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가사를 벗고 목욕을 한 후 상처를 치료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리랑카에서 온 앗사지 스님을 만나 내년 7월 국제화해학회 심포지엄에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초청하는 문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INEB 사무국에서 일하는 안챌리 님과 내일 열릴 심포지엄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INEB 스터디 투어를 통해 정토회를 방문한 적 있고 스리랑카에서 JTS 지원을 돕고 있는 실라난다(Ven.Silananda)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연달아 미팅을 하고 있는 가운데, 몇 년 전에 INEB 스터디 투어를 통해 정토회를 방문했던 태국의 상콤 스님과 프라윈 스님도 스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상콤 스님은 태국에서 친환경 농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스님이 직접 농장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상콤 스님은 지구 온난화를 줄이기 위해 젊은 세대를 교육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 고향은 건조한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과 함께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나무를 심고 음식도 재배하는 방법을 배우는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해 보려고 합니다.”

상콤 스님과 프라윈 스님은 지속 가능한 교육, 그리고 기후 변화 대응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에 강한 열정을 보였습니다. 스님도 적극 공감했습니다.

“오케이, 저도 생각이 똑같아요. 학생들이 직접 나무를 심고, 작물을 재배하고, 음식을 만들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이렇게 전 세계를 다니느라 아직 실행하지 못했어요.”

프라윈 스님은 스님의 건강을 염려했습니다.

”스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심장이 안 좋아서 오르막길을 가는 것도 어렵고, 무릎이 아파서 내리막길을 걷는 것도 힘들어요.”

“태국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의사가 있어요. 그곳에서 치료를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파야 제가 일을 좀 덜 하죠.”

“인류를 위해서는 스님께서 건강하셔야 합니다.” (웃음)

스님은 얼마 전 시리아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를 새로 지은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영상을 본 후 전쟁과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의 인도적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후 대화를 마쳤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6시에는 인도 INEB 이사인 고탐 님을 비롯하여 암베드카르 불교(Ambedkarite Buddhism)를 믿는 인도인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고탐 님이 암베드카르 불교의 특징과 인도에서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암베드카르 박사님께서는 ‘이 운동은 사회적인 운동인 동시에 영적인 운동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가르침에 따라 다르마를 이해하고 실천하며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대부분 달리트(불가촉천민) 계층인데 가난한 배경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교육과 훈련을 받는 데 드는 비용(식비와 숙소비 등)을 마련하는 것이 저희들의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과 억압 속에서 불교를 만나면서 삶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들은 명상과 수행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적극적으로 전법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 2,000명이 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권한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는 인도 내에서 독특한 특징입니다.”

스님이 웃으며 질문했습니다.

“고탐 님도 법사가 되었어요?”

“저도 곧 법사가 될 겁니다. 지금 법사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웃음)

이어서 스님은 사회 실천을 하는 불교인이 되려면 부처님의 일생을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적 실천을 하려면 부처님의 일생을 자세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부처님을 믿기만 하면 부처님이 신처럼 되고 사회성이나 역사성이 없어집니다. 또한 불교 사상이나 불교 교리만 공부하게 되면 철학이 되고 지식이 될 뿐 그 가르침에 사회성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발자취를 공부하게 되면 사회성과 역사성이 살아나게 됩니다. 부처님은 세상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와 역사적인 문제가 다 그대로 그의 삶에 녹아 있습니다. 그는 당시에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가 실존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지, 신이었다면 비난 받을 일이 없었을 겁니다. 비난을 받았을 때 그는 어떻게 했는지, 아이가 죽은 어머니가 울며불며 괴로워할 때 그는 어떻게 했는지, 자신의 친족인 석가족과 외가인 꼴리족이 물 때문에 서로 싸울 때 그는 어떻게 했는지, 이렇게 구체적인 삶 속에서 그가 어떤 태도를 가졌느냐를 공부해야 합니다. 이런 걸 공부하게 되면 불교가 사회 참여의 종교임을 자연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암베드카르 박사가 천민 계층이라고 차별 받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삶이 그대로 참여불교입니다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 사상에는 젠더 이슈가 없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삶에는 젠더 이슈가 있습니다. 당시에 상속은 남자에게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에 곁들인 부속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예들에게는 주인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여자도 노예와 같이 여겼기 때문에 주인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주인이고, 결혼하면 남편이 주인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남자가 아무도 없다면 그 여자는 주인 없는 사람이 되어 아무나 잡아가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출가는 남자만 가능했고,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없는 존재인 여자는 출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가를 한다는 것은 가족을 버리고 재물을 버리고 지위도 버리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남자만이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출가를 할 수가 있었고, 여성은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어머니는 부모가 돌아가셨고, 남편도 돌아가셨고, 아들과 손자도 출가했습니다. 그래서 직계 가족 중에 남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 출가를 신청했습니다. 재산도 없고, 가족도 없고, 어떤 지위도 없는, 이미 출가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도, 다만 여자라는 이유로 출가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결국 부처님은 여성의 출가를 허용했습니다. 비구니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 자기 혼자서 스스로 주인이 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게 인정해 준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노예였던 달리트 계층 또한 출가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본인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없는 노예 신분이었기 때문에 주인이 와서 데리고 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달리트 계층에게 출가를 허용했습니다. 출가했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지 더 이상 다른 누구의 노예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간 붓다의 삶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계급 문제, 성차별 문제, 평화 문제 등을 우리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불교를 사상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부처님의 일생 속에서 그가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대화했는지를 찬찬히 공부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45년 동안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모순을 접했고, 그것에 대해 그는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면 참여불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여불교란 근본불교와는 다른 새로운 불교가 아니라 참여불교야말로 근본불교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암베드카르 불교가 특정 카스트에 제한되지 않고 더 넓은 사회적, 종교적 포용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불교의 본질적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실천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암베드카르 불교는 대부분 암베드카르 출신 카스트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정치적인 운동에서는 달리트 계층의 다양한 하위 카스트가 함께 하지만, 불교 운동은 주로 암베드카르 출신 카스트에 한정되어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불교가 특정 카스트에 갇히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이것은 암베드카르 불교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단순한 정치적 해방을 넘어 전 계층과 성별을 포괄하는 종교로서 확장되어야 해요. 그러려면 달리트 계층뿐만 아니라 다른 계층, 다른 카스트, 나아가 다양한 문화권에서도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 열린 마음과 포용력을 가져야 합니다.”

“불교가 더 많은 계층과 문화적 배경을 아우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나가푸르에 있는 저희 센터를 방문해 주셔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저녁 7시에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곧이어 부탄 비구니 재단(BNF)의 타시 장모 박사님을 만나 부탄 지원 사업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어서 저녁 8시에는 인도 JTS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상카시아 담마센터 건축 계획을 비롯하여 인도 JTS 사업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상카시아 담마센터는 너무 크게 지으려고 욕심을 내면 나중에 관리가 어려워집니다. 적정 규모를 유지하면서 현재 인력으로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 싶어요.”

스님은 건축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필요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되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힘들지만 서로 의지하여 잘 극복해 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다들 건강은 어때요? 적응은 좀 됐나요? 인도에서 더운 여름을 잘 넘겼으니 이제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보통 10월에 오면 인도를 좋아하다가 4월쯤 되면 너무 더워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 활동가는 본인의 갱년기 증상을 언급하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갱년기를 조금 세게 앓고 있어서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갱년기라는 건 주로 할 일이 없을 때 생기는 거예요. 바쁘게 움직이면 갱년기를 느낄 틈도 없을 겁니다." (웃음)

다른 활동가는 이번 여름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하며, 내년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 여름을 보냈는데 올해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적응하는 마지막 과정 같기도 하지만, 내년이 되어야 진짜 적응이 되었는지 몸이 나빠진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다들 수고해 주세요.”

더운 나라에서 고생하는 인도 JTS 활동가들을 격려해 준 후 밤 9시가 넘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INEB 국제 컨퍼런스 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스님이 행사 전체를 마무리하는 기조 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인도 첸나이 공항을 출발하여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으로 이동한 후 모레 로힝야 난민 캠프에 비누 전달식을 하기 위해 다카에서 하룻밤을 머무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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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인류를 위해서는 스님께서 건강하셔야 합니다.” (웃음)

2025-01-07 19:07:45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12-18 06:41:07

박수원

물폭탄 싸이클론도 무섭고 물에 빠져 다리 다친 스님보니 건강 해치는거 아닌가 싶어 더 무섭습니다. 지원 하는것도 어려운 상황이 생기는구나 도 느꺘고요 북한 돕기도 남북 중국 상황에 따라 다르니 무작정 돕는것이 아닌것도 알았네요 활동가들이 어려운환경에서 건강 해칠수도 있겠다 .목숨도 위태롭구나..생각도 들고요
스님의 하루팀도 생 고생많으셨겠습니다.

2024-12-07 06: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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