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9.20 북미서부 순회강연(6) LA 클레어몬트
"척추 수술 후 인생이 힘들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북미서부 순회강연 중 여섯 번째 강연이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3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미국 서부는 한국과 시차가 16시간이 납니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 7시 30분에 맞춰서 생방송을 해야 하다 보니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에 44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습니다. 한국과 시차가 커서 이곳은 지금 새벽 3시 30분입니다. 호주에서 즉문즉설 순회 강연을 했고, 동티모르를 방문한 뒤에, 미국 시애틀로 왔습니다.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 시간에는 제가 비행 중이어서, 어쩔 수 없이 여러분과 직접 대화하지 못했습니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신에 지난주에 동티모르를 방문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동티모르를 다녀온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 보기

“동티모르에서는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산꼭대기까지 데려가서 수원지가 살아났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는데, 나오는 물의 양이 정작 우리 수도꼭지 하나에서 나오는 양보다 적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수도꼭지 하나 정도의 물만 나와도 목숨만큼 귀하게 여깁니다. 음식이 부족한 곳에서는 밥 한 숟가락도 매우 귀합니다. 옷이 귀한 곳에서는 한 벌의 옷도 그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작은 움막이라도 있는 것이 더 없는 위안이 됩니다. 아픈 사람에게는 진통제 한 알이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합니다. 물자가 부족한 곳에서는 조금의 물자가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합니다.

지구촌에 함께 산다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그러나 물자가 풍부한 곳에서는 그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물도 함부로 쓰고, 음식도 함부로 버리며, 옷도 쉽게 사서 버리고, 약도 함부로 버리는 곳에서는 물자의 소중함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물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물이 부족한 곳에 조금이라도 지원해야 하고,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굶주리는 곳에 한 줌의 쌀이라도 지원해야 합니다. 옷이 많은 사람은 헐벗은 사람들에게 한 벌이라도 지원해야 하며, 병원이 넉넉한 곳에 사는 사람은 약도 구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진통제라도 한 통 보내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이런 삶을 살아야 지구촌에서 함께 산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들은 늘 이렇게 헐벗고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각자의 신앙을 지키는 것은 바로 이런 어려운 사람을 돕는 마음을 내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신앙은 인도적 지원과 분리되어 있고, 우리의 믿음이나 철학은 작은 행동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할지 한번 성찰해 봤으면 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동생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손절을 하였는데 이런 행동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동생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인연을 끊었습니다

“동생이 십 년 째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습니다. 가족 모두 동생을 빼 오려고 했지만, 안 되어서 인연을 끊었습니다. 동생이 신경 쓰였지만, 저는 제 삶을 살기 위해 인연을 끊었습니다. 저는 걱정 없이 평범하고 온전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동생을 품을 만한 그릇이 못됩니다. 제가 인연을 끊은 것이 잘못된 행동일까요?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요?”

“동생과 인간관계를 끊고 싶으면 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신앙, 종교, 믿음, 사상, 이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이런 자유로운 사회에서 종교나 신앙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인간관계를 끊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동생과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동생도 성인이기 때문에 가족들과 관계를 끊고 싶어 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질문자도 관계를 끊고 싶다면 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저에게 바람직한 길을 물으셨기 때문에 그런 행동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미성년자가 아니라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끊는 건 개인의 권리이며 자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종교의 자유 측면에서 볼 때 그건 그다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닙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이비 종교라는 건 없습니다. 그러나 범죄 집단은 있습니다. 어떤 종교에서 성추행을 하거나 재물을 뺏는 등 범법 행위를 했다면 그건 범죄 집단으로 봐야지 사이비 종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기성 종교가 있고, 거기에서 다른 교파가 나오면서 원래 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이비라고 한다면, 그건 독선입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유대교 교리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유대교에서 보면 예수님은 사이비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구교에서 보면 신교가 사이비였습니다. 그래서 파문도 하고, 종교재판도 열었습니다. 어떤 종교에서 사회 법률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면, 그건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을 일입니다. 어떤 신흥 종교에서 기성 종교의 기본 교리나 신앙 체계에서 벗어나 다른 입장을 주장하면, 기성 종교는 신흥 종교를 사이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신흥 종교가 세력이 커지면 다시 주류가 됩니다. 그래서 그런 걸 사이비라고 쉽게 단정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범죄 집단의 성격이 있는지, 아니면 기성 종교의 신앙 체계와 다른 주장을 하는지,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누군가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 내 마음에 있다고 주장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기성 종교는 그것이 신학적으로 옳지 않다며 그를 파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사이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의 신념이나 사상, 믿음이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이건 이미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걸 사이비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범죄 집단을 사이비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고, 성추행하거나 재물을 뺏는 종교 집단을 보며 사이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건 우리 사회에 해를 끼치는 범죄 집단이지 사이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류 신앙에서 벗어난 것을 사이비라고 말하는 것과 범죄 집단을 사이비라고 말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섞여 있어서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사이비라고 하는 것보다는 주류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모든 종교가 다 기성 종교에서 분리될 때 사이비로 취급 받았습니다.

범죄 집단을 사이비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범죄는 사회적으로 멈춰야 할 행위입니다. 동생이 그곳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렀거나, 또는 그런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면, 가족과 달리 자신의 신앙을 갖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동생과의 관계를 설정하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천주교를 믿다가 불교를 믿어도 되고, 천주교를 믿다가 개신교를 믿어도 됩니다. 개신교를 믿다가 그 안의 새 종파를 믿어도 됩니다. 부모님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질문자는 동생의 신앙을 존중하며 최소한의 형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둘째를 낳을지 말지 고민입니다. 무엇을 중심에 두고 결정을 해야 할까요?

  • 여동생이 남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동생 걱정을 덜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 저는 레즈비언입니다. 어머니가 제 여자친구에게 폭언과 협박을 합니다. 너무 힘들고 숨이 막혀서 힘듭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새벽 5시가 다 되었습니다. 잠시 휴식을 한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에는 한국과 소통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12시에 점심 식사를 마친 후, LA 근교에 있는 새로운 수련장 부지를 답사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운전에 능숙한 이경택 거사님이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차는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분주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외곽으로 향했습니다.

최근 회원들로부터 LA수련원이 너무 멀어 불편하다는 의견을 많이 받았습니다. 매번 먼 거리를 오가는 부담 때문에,수련 참여율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이전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답사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도심을 벗어나 차로 한 시간을 달리자 산세가 좋고 공기가 맑은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곳이 수련장으로 사용하기에 적절할지 오후 내내 답사를 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LA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Claremont McKenna College)에 위치한 바우어 센터(Bauer Center)입니다.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제호 교수님이 강연장 섭외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녁 6시 10분에 대학에 도착하여 박제호 교수님 부부와 미팅을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연장을 사용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환담을 나눈 후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강당 입구에는 많은 봉사자들이 참석자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책을 구입하는 사람, 질문을 신청하는 사람 등 많은 미국인들이 봉사자들의 안내를 받고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CMC 대학의 캠퍼스에 해가 저물었습니다. 무대에는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모두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2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인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 하는 그 어떤 정답도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좋을 대로 살았는데 그 결과가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괴로운가?’ 하는 의문점이 발생합니다. 이때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해 가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담마 토크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이렇게 중생이 갖고 있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괴로움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담마 토크입니다.

여러분들이 사전에 어떤 질문을 준비하거나 제가 어떤 답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은 질문자와 제가 나누는 대화를 다른 사람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하면 나의 고민이 굉장히 특수한 경우 같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살이에서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함께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중반부터는 현장에서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척추 수술 후 삶이 망가져 걱정과 불안 속에 살고 있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척추 수술 후 인생이 힘들어졌습니다.

“A little over a year and half ago my low back went out on me. I was working very productive. All of sudden it just stopped. 4 weeks ago I had a back surgery and it seemed to help. But my sleep has been very disrupted. While I go to sleep 3 hours and then I wake up and my mind is racing about my relationship with my wife and my job, you name it, they call it monkey brain. Just try to come up with the way to resolve that and so I can have a nice sleep. My life was ruined after the surgery.”
(1년 반 전에 척추를 다쳤습니다. 굉장히 일을 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4주 전에 수술을 받고 좀 좋아진 듯 합니다. 그런데 3시간 정도 자면 잠을 깹니다. 관계, 직업에 대한 생각이 쏟아집니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해서 잠을 잘 자고 싶습니다. 수술 후 제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수면제를 복용하시면 어떻겠습니까?”

“Yes, but they don’t work. Possibly. It would be nice to strike though without racing up about my finances so on. How can I calm my mind?”
(네, 그런데 잘 안 듣습니다. 잠을 깨면 관계, 직업에 대한 걱정이 쏟아집니다.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좀 진정시킬 수 있을까요?)

“그러면 계속 누워서 자려고 하지 말고, 잠을 깨면 일을 하다가, 졸리면 다시 자면 됩니다.”

“I could do that, but I can't sleep because I keep thinking about work-related finances, relationships, etc. How can I calm my mind?”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직장 관련한 재정과 관계 등에 대해 계속 돌아가는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평온할 수 있나요?)

“척추를 다쳐 치료를 받았으니 그 이후에 몸이나 정신에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변화가 일어났으면 그 변화를 수용해야 합니다.”

”Yes, but it’s difficult. "
(네, 하지만 어렵습니다.)

“지금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처럼 될 수 없는지를 자꾸 생각하는 것입니다. 변화된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잠이 들면 6시간을 잤다고 합시다. 그리고 하루 종일 깨어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3시간 만에 잠에서 깹니다. 그런데 또 3시간을 계속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잠이 오지 않으니까 온갖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3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나머지 3시간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다가 졸리면 다시 자면 됩니다. 잠을 왜 계속 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3시간씩 나눠서 잘 수도 있고, 3시간, 2시간, 1시간으로 나눠서 잘 수도 있습니다. 변화된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직장 생활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직장에 질문자의 상황을 공유하고 직장에 침대를 하나 갖다 놓든지 해서 1시간 정도 직장에서 잘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등 직장과 조율을 하면 됩니다. 제가 볼 때는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과거에 살아온 습관을 고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질문자가 교통사고가 나서 두 다리를 다쳤다고 합시다. 걸을 수가 없어서 휠체어를 타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산에도 오를 수 있었고, 계단도 잘 올라갔는데’ 하며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휠체어를 타고도 움직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학교에 휠체어를 타고 다닐 경사로가 없고 계단으로만 되어 있어서 오르기 어려우면 학교에 요청을 해야죠. 질문자의 사정을 설명하고 경사로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면 됩니다. 수업을 해야 하는 교실이 3층에 있으면 1층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면 되고, 3층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요청이 다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받아 들여질 수 있을 때까지는 불편을 감수하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된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 제일 낫습니다. 과거를 고집하려면 수면제를 사용해 본다든지, 명상을 해서 수면을 조정해 본다든지 해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은 해결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습관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먼저 테스트해 보고, 안 되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Yes, coming to terms and accepting is challenge."
(네, 수용하고 적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안 받아들이면 어떡할 겁니까. 다른 길이 없잖아요.”

“That’s right.”
(맞습니다.)

“변화된 상황을 안 받아들이고 자꾸 과거만 생각하면 결국 괴로움만 남습니다. 척추를 다쳐 수술을 하고 수면 시간이 바뀐 것은 내 인생에서 조그만 변화입니다. 크게 보면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고, 정신이 바른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고, 큰 물건은 못 들지만 내 몸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만 해도 좋은 일입니다.”

“Yes.”
(네.)

“과거에 했던 걸 못하는 것에 자꾸 집착하면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자기 비하를 하게 됩니다.”

“It becomes frustrating.”
(좌절하게 됩니다.)

“과거만 생각하니까 답답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저는 허리를 다치지 않았는데도 잠을 연달아서 자지 않습니다. 보통 2시간 정도 한꺼번에 자고 나머지는 분산해서 잡니다. 비행기를 탈 때 많이 자고, 차를 탈 때 좀 잡니다. 저처럼 분산해서 자면 되잖아요. 음식도 그렇게 먹잖아요. 시간이 되면 아침, 점심, 저녁을 먹지만, 바쁠 때는 한 끼를 빼 먹을 수도 있고, 김밥 몇 개만 먹고 나중에 따로 챙겨 먹을 수도 있잖아요.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

“I don't have answer for you.”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그러니 편안하게 그냥 받아들이세요. 과거로 돌아가려고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요.”

“Yes, thank you very much.”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인도 문화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되어 있는데, 내가 가고 싶은 길과 부모가 원하는 길이 상충이 될 때 어떻게 해야 되나요?
  • 스님은 일상 생활을 할 때 언제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까?
  • 남을 도와 주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진행이 잘 안 되고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 아버지의 의심병과 치매 증상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고 괴롭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을 한 후 혼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들한테 진실하게 말해야 하나요?

마지막 질문자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 의식하게 된다며 어떻게 하면 주위의 영향을 덜 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갖고 싶습니다

“Something I have been working on recently is developing a strong conviction who I am and developing a sense of myself. I don’t want to be swayed by external events or other people. How would you recommend the best way doing this?”
(요즘에 저는 자의식과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강한 확신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밖의 사건이나 다른 사람들에 영향을 너무 받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체성이라는 게 본래 없습니다. 자기가 정체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승려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저한테 승려라는 정체성이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승려로 활동을 하다 보니 정체성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부처님의 사명이나 하느님의 사명이라는 것도 본래 없습니다. 다람쥐나 토끼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 그냥 사는 것이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길이 어디에 있겠어요? 사람도 그냥 사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에게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서 살면 자기 스스로 조금 더 만족감을 가질 수는 있겠죠. 그래서 각자가 삶의 의미를 만들고 그걸 자기 정체성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자기 정체성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면 되고, 만들고 싶지 않으면 안 만들어도 됩니다. 즉, 정체성이라는 건 본래 없습니다.

누군가 지금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모두 다 만들어진 것입니다. 본래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 살면서 형성된 거예요. 어떤 사람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일본인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중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베트남에서 자라면 베트남인의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정체성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에요. 본래는 없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을 것인지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다른 새로운 것을 정체성으로 삼을 것인지는 질문자가 선택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건 그들이 하는 말이지, 중요한 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어’, ‘아버지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선생님이 어떻게 말했어’ 하는 건 다 변명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종합해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것입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말하는 건 매우 비주체적인 자세입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내가 선택을 한 것입니다. 지금 이혼을 앞두고 있다면 나의 결정을 재고할 기회가 있습니다. 남편을 떠날 것인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계속 살 것인지를 두고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이 이렇게 했느니 저렇게 했느니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평생 그 사람에게 끌려 다니며 살게 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입니다. 모든 상황은 그냥 상황일 뿐입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절충해야 될까요?

“Follow up question. how would you balance the opinion of the loved one or people very close to you and the opinion of yourself? When you come to listening someone’s advices, you can either choose to accept it or not. How can you strike the balance, let’s say you know you have a pure intention, good intention but someone says you know I don’t think you are a good person. You hurt me in some way. You have a fundamental disagreement. How do you balance that? Because as a human being you want to be self aware or you still open or accept other’s people because we are in a co-existent society.”
(또 질문이 있습니다. 내 주위에 친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의견과 나의 의견을 어떻게 잘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충고를 할 때 어떻게 절충을 해야 될까요? 저는 좋은 의도로 했는데 받는 사람은 상처를 입습니다. 서로 근본적으로 의견이 갈릴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절충해야 될까요? 우리는 같이 살기 때문에 스스로 독립적이고 싶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고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했지만, 상대방은 그걸 다른 의도로 받아들였을 뿐이에요. 그럴 때 내가 좋은 마음으로 했다는 걸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했든, 나쁜 마음으로 했든, 그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이익이 됐느냐 안 됐느냐에 따라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예요.

물론 한 번 정도는 내가 해명할 수 있어요. 상대방이 뭔가를 잘못 알았거나 정보가 부족해서 오해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나름대로 나의 입장을 해명했는 데도 상대방이 예전과 동일한 판단을 한다면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은 나와 다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존중이란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곧 사랑입니다. 이해가 없는 사랑은 폭력과 같습니다. 이건 상대방이 옳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수긍하는 것이 이해입니다. 그런 이해가 생겨나면 내 마음에 분노나 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 질문을 했는데, 이렇게 상대방을 이해하면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고, 관계가 평화롭게 유지됩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관계를 풀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눠보고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입장에 맞추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반반씩 타협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따로따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입장이라면 내가 그에게 동의를 할 때 문제해결이 쉽습니다. 내가 상대를 더 좋아하게 되면 관계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으로 상대가 나에게 맞추도록 억압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하는 것입니다. 또는 순서를 바꿔서 상대가 나에게 맞추도록 시도한 다음 그게 잘 안 되면 내가 맞추는 방법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죠.

제가 볼 때 여러분들은 이럴 때 대부분 가장 어려운 길을 가는 것 같아요. 상대방을 나에게 맞게 바꾸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맞출 것인지의 여부는 상대방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맞추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만 결정하면 되니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쉬운 길을 버리고,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수행은 가장 쉬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길은 상대방의 의견에 맞춰서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해봤는데도 안 되면 다시 논의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해보기도 전에 거부하는 것부터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권유하고 싶은 것은 가장 쉬운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괴로울 일도 없습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청중들은 먼 곳까지 와서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님에게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청중석으로 내려가 질문자들과 참석자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다시 한번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직접 소감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어보니 어땠어요?”

“아주 좋았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은 상식적이고 단순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진리는 상식입니다. "

곧이어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진행했습니다. 한 분 한 분 스님과 눈을 맞추고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질문을 안 했지만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외국인들 중에도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인생이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 신문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가볍게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기자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부모님의 기대가 매우 높아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스님이 답변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속한 문화적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에 아시아식 전통만을 고집할 수는 없지요.

우선 자신의 인생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은 아시아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다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너무 큰 부담으로만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님의 기대가 나태함을 경계하게 만들어,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도와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놀거나 잘못된 길로 빠질 때 부모님의 기대를 떠올리면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하지만 반대로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기대를 잠시 내려놓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집중해서 공부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조금 더 가볍게 공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청중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파이팅!”

강연을 총괄한 김명중 님, 한준희 님, 하동엽 님에게는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님은 숙소로 향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 법해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를 한 후 강연장을 뒷정리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에 국제지부 활동가의 날 행사에 온라인으로 참석하여 법문을 하고, 오전에는 국제지부 현지인 회원들과 온라인으로 간담회를 한 후, 저녁에는 LA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노스리지 캠퍼스(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 CSUN)에서 영어 통역으로 미국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7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10-08 16:53:05

지혜승

너무 큰 희망을 품고 시작했던일이 잘되지않아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내가 이러한 상황에 또 빠졌구나.. 어떻게 헤쳐나가야하나 마음을 또 다잡습니다. 현실을 잘 깨닫고 너무 내 삶에 큰기대와 꿈을 꾸지 않겠다고 마음을 나눠봅니다

2024-09-30 21:10:24

CACTUS

내 인생은 내 가 주인이다 모든 상황은 그냥 상황일 뿐이다. 또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9-25 23:01:5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