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북미서부 지역 순회강연 중 두 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서남부 끝단에 위치한 대도시인 밴쿠버(Vancouver)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8시에 시애틀 정토수련원을 출발해 밴쿠버로 향했습니다.
북미 대륙의 서북쪽을 관통하는 5번 고속도로를 약 2시간 정도 달리자 캐나다 국경이 나타났습니다.
국경을 지나고 1시간을 더 이동하여 10시 50분에 밴쿠버에 도착했습니다. 정토회 회원인 김현미 님의 댁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캐나다는 가을이 성큼 다가와서 날씨가 아주 쾌적하고 선선했습니다. 벌써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곳곳에 다양한 모양과 빛깔을 한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차로 50분을 이동하여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밴쿠버 도심의 포트무디(Port Moody)에 위치한 공연예술 극장인 인렛 극장(Inlet Theatre)입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참석자들을 친절하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정토회 국제지부 외 해외지부 활동가들이 협력하여 순조롭게 강연 준비가 잘 되고 있었습니다.
2백 석이 가득 찬 가운데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스님과 제이슨 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즉문즉설이라는 것은 어떤 지식적인 것을 얘기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괴로움이나 의문을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부처님과 당시의 사람들도 오늘 우리들처럼 이렇게 둘러앉아서 편안하게 대화를 했는데, 그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경전입니다. 후대에 와서 그 많은 기록물들을 학습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다 보니까 점점 지식화되고 교리화되어서 불교가 학문적으로 점점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는 어떻게 생겼는가’, ‘세계는 영원한가’ 이런 문제를 탐구하는 일종의 철학으로 일부가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당시에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침묵하셨습니다. 일상에서 내가 겪는 괴로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에 대해서 붓다는 가타부타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에 닥치게 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것이 점점 발달하게 되면서 종교가 됐습니다.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보니 죽은 뒤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죽은 뒤에라도 좀 더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종교를 더욱더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죽은 뒤에 일어나는 문제와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부분 침묵을 하셨습니다. 붓다의 관심은 ‘지금 내가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괴롭다면 그 괴로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느냐, 이것이 불교의 가장 중심 과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을 주제로 여러분과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름하여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현실에 있는 불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종교로서의 불교, 철학으로서의 불교, 그리고 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종교로서의 불교와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제외하고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불교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불교에 대해 대화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가 괴로움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느냐’, ‘나의 고뇌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느냐’ 이런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자신의 고민을 질문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7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며 공허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My question is, how do I take control of my mind? my life is empty and I can’t find the meaning and living feels I’m lost. So I was really wondering about it. Thank you.”
(제 질문은 공허함을 느낄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입니다. 저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방향을 잃은 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것이 궁금합니다.)
“원래 인생에는 아무 의미가 없고,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거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산에 사는 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만듭니다. 인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사람마다 의미 부여를 하는 가치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마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각자가 의미를 부여해서 그런 의미가 생겨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기독교 신자나 가톨릭 신부라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있다고 해야 그 의미를 갖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았다고 믿으면 조금 더 그 길을 오래갈 수 있겠지요. 만약에 불교 승려라면 이미 전생으로부터 이런 일을 하도록 사명을 부여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면 승려의 길을 꿋꿋이 갈 수가 있겠지요.
저도 스승님이 ‘너는 승려의 길을 가기 위해 태어났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과학자가 되겠다는 너의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이고,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따라서 살아야 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법명도 ‘법륜’이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제가 전생으로부터 부처님의 법을 전하라는 의미를 부여받고 이 세상에 왔을까요?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믿지 않으면 그렇게 살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스승님이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까 어차피 인생에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승려의 길을 걸어온 겁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의미라는 것은 자기가 만든 겁니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대로 살아도 되고, 심심하면 의미를 하나 만들어서 살아도 됩니다. 이것은 삶의 의미가 없어서 방황한다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토끼가 삶의 의미가 없다고 해서 방황하지는 않습니다. 방황한다는 것은 본인이 욕망을 따라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질문자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니까 그것도 좋은 일이에요. 왜냐하면 만약 필요하다면 이제 여러 가지 의미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되니까요. 선택의 폭이 넓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인생은 원래 공허한 겁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가르치잖아요? 그런 교육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스님, 저는 꿈이 없어요’ 하고 고민을 말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꿈이 없는 것은 좋은 것이다. 꿈이 분명한 사람은 그것을 달성하지 못할 때 괴로움이 생기는데, 너는 꿈이 없으니까 달성하지 못해 괴로울 일이 없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선택의 여지가 많아서 더 좋은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들의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원래 꿈은 없는 겁니다. 꿈을 가지고 싶으면 가지면 되고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인위적인 것에 너무 묶여 있습니다. 사람은 원래 이렇게 저렇게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 헤어지게도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만난 사람은 헤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헤어지는 순간이 오면 슬퍼지는 것입니다. 헤어지는 것이 나쁜 것입니까? 요즘 같이 좋은 세상에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지 않나요? 이 사람이 떠나 줘야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있잖아요. 이 사람을 밀어내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상대를 슬프게 만들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알아서 떠나 주니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헤어지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무 문제가 없는 걸 여러분들은 문제로 만들어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을까 불안을 느껴 힘듭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무의식적으로 습관이 올라오는 것을 제어하려면 어느 정도 주의를 기울이고 수행을 해야 하나요?
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어렵습니다.
예술을 공부하고 있는데 계속 공부해야 하는지 자신감이 없습니다.
스님은 환생을 믿습니까? 환생과 관련된 꿈을 자주 꿉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먼저 표현했습니다.
“I am so grateful for your wisdom and all the lectures. And can I give my child a chance to say hi to you?”
(스님의 지혜와 모든 강연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 아이에게 스님께 인사하는 기회를 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가 “Hello” 하고 인사하자 스님도 “Hello” 하고 인사했습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And his name is ‘Yun’. I followed your name 5 years ago because, you saved my life. I was really in pain because I got separated when I was in pregnant. And I got suffocating in poverty and all the trauma. I was in chaos but, your wisdom saved my life and, of course, his life. I want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helping you. So I really want to ask you that what you really want to do in the future spending your life. And what is the biggest fear that you don’t want to happen so that we can tell that what kind of obey we can support that and my child, the next generation can do something for.”
(이 아이의 이름은 ‘륜’입니다. 5년 전 법륜 스님의 법명 마지막 글자를 따서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스님께서 제 인생을 구해 주셨거든요. 제가 임신했을 때 이혼하게 되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숨 막힐 것 같은 빈곤과 모든 트라우마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절망적이었지만 스님의 지혜는 저와 제 아이의 인생을 구해 주셨습니다. 제 남은 인생은 스님을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스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스님은 미래에 어떤 일을 하시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또한 스님께서 가장 염려하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있으신지요? 그래서 저희가 지켰으면 하는 것, 저희와 제 아이를 포함한 다음 세대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감사합니다. 도움을 갚는 방법은 질문자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저를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는데 아무런 부족한 점이 없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당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저는 특별히 두려워하는 일은 없지만 염려되는 일들은 좀 있습니다. 첫째, 제가 사는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이 죽고, 재물도 파손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양쪽에는 엄청난 최신 무기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재래식 무기는 남한이 우월하고, 북한에는 핵무기까지 있어요. 여러 가지 힘으로 따지면 북한이 훨씬 약하지만, 남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한에는 핵 원자력 발전소도 많이 있는데 그것이 공격받는다면 방사능 위험이 아주 커질 것입니다. 한국은 원래 자원이 없었지만, 교육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다면, 한국은 다시 일어서기가 매우 어려울 거예요. 영토가 작아서 전체적으로 파괴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쟁을 피하는 것은 상대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합니다. ‘상대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데 저는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들의 감정을 진정시켜서 어떻게 전쟁을 예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크게는 미국과 중국의 세계적인 패권 경쟁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두 개의 큰 힘이 부딪히는 주변부에서 항상 먼저 이런 분쟁이 생겨납니다. 이처럼 내외부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기후 위기에 대한 인류의 대응에 관한 문제입니다. OECD 가입국의 12억 인구가 오늘에 이르도록 무분별한 개발을 하면서 기후 위기가 초래되었는데, 이러한 개발을 문명의 발전이라고 여기고 중국과 인도가 이 길을 따라오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는 인구가 각각 14억입니다. 만약 두 나라가 현재의 서구 국가처럼 된다면 지금의 기후 위기는 3배로 증폭할 것입니다.
제가 전 세계를 다녀보면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이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고, 바닷물이 강을 따라 올라오고, 샘이 마르는 등 기후 변화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런 문제를 넘어서서 많은 부분에서 이미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요. 우리는 이제 정말 멈출 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멈추고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에게는 하나의 큰 과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류가 이것을 멈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멈추기 위해서 호소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멈추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관심은 오히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대안을 우리가 만들 것인가?’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위기가 지나간 다음에 대안이 필요할 때 인류가 따라 할 수 있는 모델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관심이 없겠지만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아, 저런 길도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모델을 좀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아직도 지구 인구의 약 10억에 가까운 사람이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있는데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과 같다’ 이렇게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 작은 자가 여섯 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첫째, 목마른 자입니다. 물이 부족한 사람들이죠. 둘째, 배고픈 자입니다. 기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셋째, 아프지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넷째. 헐벗은 사람으로 옷이 부족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섯째, 나그네가 된 자들입니다. 즉 난민들을 말합니다. 여섯 번째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입니다. 여러 가지 부당한 이유로 속박받고 있는 사람들을 말해요.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여섯 가지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직도 이 지구상에 10억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곧 하느님 또는 예수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천국의 길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복을 조금 나누어 갖는 것이 필요해요. 내가 물을 충분히 쓰고 있다면 물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물을 조금 제공해야 하고, 배부르게 먹고 있다면 배고픈 사람을 위해 밥 한술이라도 조금 내줘야 합니다. 내가 건강하거나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약을 기부해야 하고, 내가 입는 것이 충분하다면 한 벌의 옷이 없는 사람을 위해 옷을 기부를 해야 합니다. 내가 안전한 곳에 살고 있다면 집을 떠나 텐트와 길거리에서 난민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간다면 독재사회나 감옥에 갇혀서 억울하게 속박받고 있는 사람의 자유를 위해서 뭔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자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 중에 이처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을 돕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다, 지금 당장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일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자라서 이런 일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질문자들,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했던 분의 아들이 스님에게 달려와 인사를 했습니다. 아주 개구쟁이였습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이 기특했습니다. 스님이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는데도 아이는 계속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자 스님은 무대 위에서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밴쿠버!”
강연을 총괄한 김선희 님과 김현미 님에게 책을 선물해 주고, 영어 정토불교대학 과정인 정토 담마 스쿨을 졸업한 학생들과는 따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 묘명 법사님, 법해 법사님과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저녁 6시 10분에 밴쿠버를 출발하여 다시 3시간 20분을 차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해가 저물었습니다.
캐나다 국경을 지나고 밤 9시 30분에 미국 시애틀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늦은 저녁 식사를 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시애틀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후 오후에는 IT 기업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산호세에서 현지 미국인들을 위한 영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6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