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 10일 동안 북미 서부 지역을 순회하는 영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됩니다.
어제저녁 6시 15분에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한 스님은 10시간 30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여 현지 시각으로 오후 12시 45분에 시애틀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미국 입국 수속을 하고 공항을 나오니 해외지부 담당 묘명법사님, 국제지부 담당 법해법사님, 박근애 님이 마중을 나와주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곧바로 차를 타고 시애틀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서 차로 30분을 달리자 금방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수련원에서는 시애틀 정토회 회원들이 모여 강연 봉사자들을 위해 김밥을 싸고 물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법당을 참배하고 나자 회원들이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1년 만입니다.
“잘들 지내셨어요?”
“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시애틀 정토수련원은 미국 북서부 지역 회원들의 실천 장소로써 많은 분들이 정성을 기울여 도량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화단에 꽃도 피어 있고,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3시 20분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차로 40분을 이동하여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시애틀의 벨뷰 지역에 위치한 이스트사이드 바하이 센터(Eastside Bahá'í Center)입니다.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역할을 나누어 강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체튼(Chetan) 님, 크리스토퍼(Christopher) 님, 루하(Ruha) 님, 멕스웰( Maxwell) 님 등 영어로 진행되는 정토불교대학 과정인 ‘정토 담마 스쿨’을 졸업한 외국인들이 곳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스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한국말로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 오랜만입니다. 시애틀에서 강연을 해서 참 좋아요."
"반가워요. 한국말이 많이 늘었네요." (웃음)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대기실에서 시애틀 한인시민단체인 늘푸른연대 활동가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시애틀에는 한인시민단체가 여러 개 있는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여러 단체가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늘푸른연대에서 여러 가지 행사들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이 시애틀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활동 방향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활동가들이 강연장까지 찾아왔습니다.
먼저 스님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했습니다.
“제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설립한 단체가 세 개 있습니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요 목표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평화재단이 있습니다. 평화재단 안에는 정책 연구를 하는 평화연구원과 사회적 리더 그룹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평화교육원이 있습니다. 또 시민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행동하는 평화운동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3일에는 장수 죽림정사에 1만 명이 모여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 하고 만인평화선언을 했습니다.
둘째,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북한 난민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이들이 남한 안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사업을 하는 좋은벗들이 있습니다.
셋째,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는 JTS가 있습니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진 2019년에도 북한의 어려운 계층인 고아원과 탄광촌에 다량의 옥수수를 지원했고, 회담이 결렬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가 북한을 방문하여 분배가 잘 되었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현재까지 인도적 지원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입니다. 올해 7월 말에는 압록강 유역에 60년 만의 대홍수가 일어나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인데, 북한의 지도부가 일체 외부의 지원을 안 받는다고 선언해서 어떻게 하면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늘푸른연대 활동가들은 스님에게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다음에 시애틀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면 저희와 사전에 조율해서 일반적인 즉문즉설에서 다루기 힘든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강연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방문 계획을 알려주시면 저희가 준비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정부가 정치나 경제 정책을 잘못할 경우에는 다음 정권에서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나게 되면 만 가지가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 50년간 투쟁해서 쟁취한 민주주의도 전쟁이 나면 금방 망가질 수 있고, 국가 경제도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등 공장 몇 개만 폭파 되어도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라도 터지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 같은 큰 나라는 한 지역이 좀 부서져도 다른 지역이 남아있지만, 우리처럼 작은 나라는 전쟁이 나면 이전으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 감돌고 있는 전쟁의 위기는 꼭 막아야 합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만은 절대 안 된다’ 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입장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꾸 진보만 모여서 얘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곳 교민 사회도 진보와 보수가 분열이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미국 정치인이 볼 때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얘기가 다르니까 한반도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호소가 힘을 얻지 못해요. 물론 일부 극단적인 사람은 대화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서부터 진보와 보수가 통합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합니다. 미국 내에서 ‘한반도의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 하는 한국 사람들의 요구가 강렬하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적절히 잘 다루는 것이 미국의 이익과 대중국 방어 전략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잘 설명해야 합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큰 이익이 안 되지만, 만약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편으로 확실히 기울면 미국의 동아시아 방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만일 대만에서 분쟁이 생겼다고 가정할 때 북한이 남한과 전쟁을 일으키면 중국으로서는 매우 유리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데 만약 이 상황에서 북한이 남한과 전쟁을 일으킨다면 러시아로서는 완전히 유리하게 되는 겁니다. 예전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아주 골치 아픈 존재였는데, 지금은 북한의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이처럼 북한의 전략적 위상이 높아졌는데도 아직 미국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을 때는 북한을 고립시킬 수가 있었는데, 세계가 분열되니까 북한은 저절로 한쪽에 자기편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 양쪽에 모두 이로운 대북 정책은 무엇인가?
지금은 미국이 동아시아의 변화된 역학 관계를 인정하고 북한과 협상해야 할 때입니다. 예전에는 북한이 고립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이라는 강온 전략을 사용할 수가 있었지만, 이제 이런 방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는 핵 동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내걸어도 북한이 응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음을 인정하고 대화해야 하는데, 제가 이런 제안을 하면 아직도 ‘그러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자는 겁니까?’ 하는 식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관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미국의 관료들을 만날 때도 ‘지금 변화된 상황을 인정했을 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겠는가?’ 또는 ‘장기적으로 미·중의 경쟁에서 어떤 전략이 도움이 되겠는가?’ 이렇게 설득을 해야 합니다. 저는 승려이기 때문에 미국의 관료들을 만나기가 쉽긴 하지만 대신에 설득력이 좀 떨어져요. 저는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안을 수용하면 굉장히 도움이 될 텐데, 미국의 관료들은 ‘스님이니까 항상 좋은 소리만 한다’ 이렇게만 받아들여서 대화가 깊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적극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네, 저희 단체도 열심히 노력하고 행동하겠습니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미팅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본 후 오후 5시 정각에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현지 외국인들 2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시애틀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조금 길었습니다. 먼저 스위스에서 국제심리학회가 개최하는 죄, 죄의식, 죄책감에 대한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튀르키예, 시리아, 부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동티모르를 거쳐 이곳 미국 시애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현실에 좌절하고 괴로워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런 질문을 여러분께 던지면서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일곱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질문자는 몇 달 전에 남편을 잃었다며 슬픈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을 잃었습니다. 혼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I lost my husband a couple of months ago and I'm having a hard time figuring out who I am. And I just wanted your wisdom and how to navigate through the stress that I have is being alone and taking care of everything that I didn't have to take care of before.”
(두어 달 전에 남편을 잃고 나서 지금 저 자신에 대해 궁리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혼자가 된 외로움과 예전에는 안 해도 됐던 온갖 일들을 해야 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스님의 지혜를 듣고 싶습니다.)
“질문자는 죽은 남편을 걱정하고 있나요? 아니면 앞으로 혼자 살아갈 자신을 걱정하고 있나요?”
“Yes, I'm probably more concerned about myself right now because I believe he's on his next journey. And so for me to move on and just the closure of our relationship and for me to feel happy again and strong and handling things that I've never had to handle before.”
(네, 아마 제 자신에 대해 더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이미 다음 단계로 떠났다고 믿으니까요. 제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남편과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 제가 다시 행복하고 강해지는 것, 전에는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하는 것, 이런 문제들이요.)
“결혼 전에는 혼자 살지 않았습니까?”
“혼자 살았습니다.”
“남편이 죽고 지금 혼자 살아가는 게 뭐가 문제예요? 혼자 사는 게 힘들면 재혼하면 되고, 그동안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게 힘들었다면 혼자 살면 편안해져서 좋잖아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Okay, if you say so. Thank you.”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스님의 한 마디만 듣고서 마음이 밝아져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어서 다음 질문자는 앞에 질문자와 반대의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1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함께 한 남편이 너무 이기적으로 보이고 지겹게 느껴지지만 남편이 아파서 곁을 떠날 수가 없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15년 동안 남편의 병간호에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It's not good right after her. My problem is kind of opposite to her. I have a sick husband. He's sick for like fifteen years and everybody comes like being nice to him but I'm kind of getting tired of him. He's become selfish. I used to feel sorry and empathy for him but lately I have been feeling tired and angry. I feel like he is selfish and does not think about me and my feelings. I'm out of my patient and I don't know what to do. Today is a good time to, I can get better answer or maybe new energy or something.”
(바로 앞 질문에 이어져서 별로 안 좋은데요. 제 문제는 앞사람과 반대의 경우 같습니다. 남편이 아픕니다. 15년 동안 아픈 상태이고, 주위에서 다들 남편에게 잘해주지만, 저는 이제 남편에게 좀 지치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기적이 됐어요. 예전에는 제가 남편에게 측은한 감정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지치고 화가 납니다. 남편은 이기적이고, 제 감정에 무관심한 것 같아요. 제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스님으로부터 좋은 조언이나 새로운 힘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건강한 남자 하고도 헤어지는 것이 요즘 사람들인데, 아픈 남자 하고야 헤어지면 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입니까?”
“Yeah, that's the problem.I can't leave him, but I'm having struggle.”
(네, 그게 문제인데요. 남편을 떠나지는 못하겠고 힘이 듭니다.)
“왜 떠날 수 없습니까?
“Because he's getting really sick. He has a brain tumor and he's going to be soon lay down and can’t move. So it's kind of hard for me. I feel like I become really bad people.”
(남편의 상태가 정말 심해지고 있으니까요. 뇌종양이 있는데 곧 누워서 못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힘들어요. 떠나면 제가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떠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떠나면 됩니다. 떠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안 떠나는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가버리면 돼요. 못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 떠나는 거예요.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이건 하느님이 명령한 것도 아니고, 전생에 지은 업보도 아니고, 사주팔자나 궁합도 아닙니다. 그냥 내가 안 떠나는 거예요.”
“But if I leave, after I leave, if my kids will be pointing at me and really mad so they don't want to see me anymore. Then what should I do?”
(그렇지만 만일 제가 떠나면, 떠난 뒤에 자식들이 저를 손가락질하고, 제게 화가 나서 더 이상 보지 않으려 할 겁니다. 그러면 어떡하죠?)
“네, 당연히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러겠죠. 아빠가 아픈데 엄마가 떠났다고 하면 엄마를 미워하게 되겠죠. 그건 당연한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병든 남편을 돌보려니 힘이 들고, 떠나려니 애들이 나를 미워할 것 같은 겁니다. 아이들의 미움을 받는 것과 병든 남편을 돌보는 것 사이에서 지금 어느 것이 더 이익이냐, 이것을 가지고 질문자가 망설이고 있는 거죠.”
“I just want to get good words or give me like an encouragement or something to stay with my husband.”
(남편 곁에 남아 있도록 좋은 말씀이나 격려 같은 것을 받고 싶습니다.)
“남편을 반드시 돌보아야 할 의무는 없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남편이 건강하고 돈이 많아도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떠나는 시대에 아픈 남편을 두고 떠나는 게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부모가 이혼하는 걸 원하는 자녀가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자녀들에 대한 생각은 안 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해 버리잖아요?
이혼을 하려고 하다가 미련이 남으면 저한테 ‘이혼을 하고 싶은데 아이들 때문에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떤 때는 ‘스님 말씀을 듣고 이혼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애들한테 너무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서 이혼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혼을 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고, 이혼을 안 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면서, 아이들 핑계를 대는 겁니다. 이혼을 하고 안 하고는 다 자기가 결정할 문제이지 아이들 핑계를 대는 것은 아이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아니에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아예 이혼할 생각을 안 해야 합니다.
지금은 남편을 두고 떠나는 게 유리한 것 같은데, 나중을 생각해 보니 더 불리할 것 같다는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 사이에서 질문자가 지금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상황에서 그래도 여기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내가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자기 관점이 먼저 잡혀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Actually I want to stay next to him. But I'm just having a hard time. So, I need some good words. Or give me encouragement or something. Yeah, ha ha. I never thought about leaving him you know but it's kind of a story going weird.”
(사실 남편 곁에 있고 싶은데, 힘들어서 응원의 말씀이나 격려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남편을 떠날 생각은 없었어요. 얘기가 좀 이상해지네요.)
“아니에요. 대화가 잘 흘러가고 있어요. (웃음) 그럼 제가 질문자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질문자는 건강할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아플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이 잘 이루어질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내가 몸이 불편해서 움직이기 어려울 때 남편이나 애들이 빨리 집에 오는 것을 기다리게 될까요? 내가 편안하게 집에서 TV도 보고 몸도 마음도 아주 편할 때 밖에 나간 사람을 빨리 들어오기를 기다리게 될까요?
질문자는 지금 건강하고, 남편은 아픕니다. 남편은 집에서 질문자의 도움이 필요해서 빨리 왔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질문자는 돈 번다고 바쁩니다. 그러면 누가 짜증을 많이 내게 될까요? 남편이 자기한테 짜증을 많이 낼까요? 자기가 남편한테 짜증을 많이 낼까요? 원리적으로 봤을 때 아픈 사람이 짜증을 많이 낼 것 같아요? 건강한 사람이 짜증을 많이 낼 것 같아요?”
“Yeah, sick people.”
(네, 아픈 사람이요.)
”한번 더 바꿔서 질문해 볼게요. 질문자는 자기가 아파 누워서 남편한테 짜증을 내는 게 좋아요? 자기는 건강해서 남편을 돌보면서 남편의 짜증 받는 게 좋아요?”
“Second.”
(후자요.)
“그래요. 그렇다면 남편이 짜증 내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남편의 처지가 되는 것보다는 내 위치가 낫습니다. 남편을 떠나지는 않겠다고 하는 전제 하에서 보면 지금 질문자의 처지가 남편보다 좋은데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아무리 남편이 짜증을 내도 ‘아이고, 내가 안 아픈 게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야죠.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내가 나가서 돈도 벌고 간호도 해주고 애도 돌보는데, 남편은 나를 알아주지도 않고 나만 보면 짜증을 낸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힘들죠. 만약 남편이 ’ 당신이 아파서 누워 있고,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돈 벌고 당신 간호도 해줄 테니 바꾸자' 이렇게 말하면 바꿀 자신이 있어요?”
“No. But right now he's kind of a kid. He's not adult anymore.”
(아니요. 하지만 지금 남편은 어린애 같아요. 더 이상 어른이 아닙니다.)
“몸이 아프면 애가 된다니까요. 어린애라는 게 뭐예요?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하는 게 어린애입니다. 아픈 사람은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합니다. 노인도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하니까 어린애 같이 됩니다. 나이가 어린 것만 어린애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하면 다 어린애예요. 그럴 때마다 ‘그래도 내가 안 아픈 게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That's not enough for me. I'm at the bottom right now. So I thank you, anyway. Yeah."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지금 완전 바닥이거든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지금 힘든 것만 생각해서 남편을 떠날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생각을 바꿔보세요. 이 상태가 1년이 갈지 2년이 갈지 3년 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남편이 오랫동안 아프면 남아 있는 걸 후회하게 되고, 남편이 빨리 죽으면 떠난 걸 후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을 ‘남편이 오래 살면 살수록 좋다’ 이렇게 한번 바꿔 보세요. 그렇게 해서 남아 있는 쪽을 선택해 보세요.
그리고 항상 ‘아픈 사람이 더 힘들다. 그래도 하루라도 더 살면 애들한테 좋은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말기가 되면 통증이 심합니다. 그래서 짜증을 많이 냅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여보, 힘들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좀 더 살아 주세요’ 이렇게 말해보세요. 질문자가 아무리 힘들어도 통증을 견디고 있는 남편보다 더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망설여지면 떠나세요. 길이 있다면 그 길밖에 없습니다. 첫째,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면서 자기를 위로하는 길이 있고, 둘째, 이 힘듦으로 인해 자기가 괴로워하는 길이 있습니다. 괴로워하면서 살래? 가볍게 살래? 이 길밖에 선택이 없습니다. 떠나는 길을 제외하면요.”
“Okay.”
(네, 알겠습니다.)
“힘든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힘들면 떠나면 되는데 왜 못 떠날까요? 떠나지 않는 것도 자기 선택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선택했으면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럴 때 괴로워하면서 사는 길이 있고, 괴롭지 않으면서 사는 길이 있습니다. 이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할 거냐만 남았습니다. 괴롭지 않은 길은 바로 아픈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밖에 나가서 열심히 힘들게 일하더라도 그가 짜증을 내면 그가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에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꺼이 ‘여보, 많이 기다렸죠?’ 이렇게 위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가 싫으면 떠나면 됩니다.”
“Yes. Thank you.”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얼굴에 웃음을 활짝 머금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이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조직이 사회의 평화에 기여하고, 어떤 조직이 사회의 평화에 장애가 되는 걸까요?
명상이 어떻게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얻게 해 주나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으로 경전을 공부하는 것과 명상을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고통은 나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미국에서는 어린 학생들도 총기 사고의 위험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되는데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까요?
자녀에 대한 애정과 훈육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자립하는 삶과 남을 돕는 삶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특별한 교리가 아니고 괴로움이 있는 상태에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대화입니다. 그것을 인도말로 ‘니르바나’라고 합니다. 수행의 목표는 니르바나에 이르는 겁니다.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거나 무슨 복을 받는 것이 수행의 목표가 아닙니다. 불교는 여러분들이 살아 있을 동안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자기를 괴롭히는 데 대부분 쓰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삶을 못 살아서 늘 남한테 도움을 요청합니다. 신과 부처님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합니다.
스스로 자립하고 남을 돕는 수행자의 길
자연계를 보십시오. 작은 벌레도 자기가 살아갑니다. 토끼와 다람쥐도 다 자기 삶을 삽니다. 예외는 오직 어릴 때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더 이상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자기 스스로 살고도 에너지가 남습니다. 그런 남는 에너지를 모아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스스로 자립하면서 조금이라도 남을 돕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친 후 저녁 7시 20분부터 무대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참석자들은 사인을 받으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인회를 하는 동안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스님의 유튜브를 듣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덕분에 힘든 유학 생활을 잘 견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외국인은 작년에 강의를 듣고 올해도 또 들으러 왔다며 부처님이 그려진 족자를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
“Thanks to your lecture, a lot of the suffering I had has disappeared. Thank you.”
(스님의 강연 덕분에 제가 가진 괴로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시애틀!”
스님은 강연을 총괄한 김효경 님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어요.”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인도가 고향인 체튼 님이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I also want to volunteer in India and Bhutan.”
(스님, 저도 인도와 부탄에서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봉사하면 좋지요. 연락을 주세요.”
인사를 나누고 강연장을 출발하여 다시 수련원에 도착하자 저녁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곧바로 강연을 하다 보니 몸이 무척 고단했습니다. 스님은 늦은 저녁 식사를 한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캐나다 국경을 지나 밴쿠버로 이동하여 오후에는 북미서부 순회 두 번째 강연을 현지 외국인들을 위해 한 후 저녁에는 다시 시애틀 수련원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