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 3일 동안 문경 선유동 정토연수원에서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청춘캠프’가 열립니다.
스님은 청춘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정토연수원 대강당에 정토회 청년특별지부 활동가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오전 10시에 청춘캠프를 시작하는 입재식을 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을 한 후 청년특별지부 지부장 박수정 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8월의 무더위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휴가를 내고 이 자리에 왔다는 것만 봐도 여러분들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2박 3일 동안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봅시다.”
이어서 정토회 전해종 대표님이 인사를 한 후 전국에서 모인 모둠별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기동부 모둠을 시작으로 경기서부, 경상남부, 경상북부, 서울남부, 서울북부, 충청전라, 행자대학원 순서로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오늘 회사에 연차를 내고 여기 왔는데, 방금 회사에서 메시지가 와서 걱정스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만나서 너무 반갑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 돕는이, 모둠장, 그룹장을 맡고 있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직장생활과 정토회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2박 3일 동안 스님과 함께 새로운 문명을 그려나갈 것을 기대하며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지난번 스님이 부탄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았던 린첸다와 님도 청춘캠프에 참석해 인사를 했습니다.
“정토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서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큰 박수로 서로를 반겼습니다.
이어서 100여 명의 청년 활동가들이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청춘캠프를 열게 된 취지를 소개하면서 정토회 활동이 갖는 비전이 무엇인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20대 청년이었던 50년 전과 지금의 시대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인간이 고뇌한다는 측면에서는 똑같은데 그 종류와 대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기후 위기와 같은 환경 이슈는 없었고, 양식이 부족한 문제와 같은 빈곤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다리 밑에 거지가 많이 살아서 아이가 울면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는데 자꾸 울면 거기 다시 돌려보낸다’ 하는 농담을 많이 했습니다.
그다음 이슈는 교육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한 반에 36명이 공부를 했는데 중학교에 진학한 사람은 6명밖에 안 됐습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중학교 가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서 늦게까지 공부를 시켜주고 그랬어요.
과거의 이슈, 지금의 이슈, 미래의 이슈
이런 시대에 살다가 산업화가 되면서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농촌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시로 간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이 아주 열악했기 때문에 노동 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또 가족을 거느린 사람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게 되면 대부분 도시 주위에 천막 또는 판자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도시 빈민들이 많이 생겨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농민, 노동자, 도시 빈민이 당시에는 가장 큰 사회적 문제였어요. 이들의 삶은 매우 열악했지만 스스로 투쟁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정의감이 있는 대학생들이 학교를 휴학하거나 자퇴하고 빈민촌에 들어가서 빈민들과 같이 살면서 빈민 운동을 하거나, 공장에 들어가서 같이 노동하면서 노동자들이 어떤 법적 권리를 가졌는지 깨우쳐 주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일부는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 운동을 하거나 농민 단체의 임원이 되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름방학이 되면 몇십 명씩 그룹을 형성하여 ‘농활’이라고 해서 농촌 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대학생들이 농사일을 도와주고, 시골길을 포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제가 청년이었을 때의 사회적인 이슈는 주로 민중 운동과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특히 민주화 운동은 약간 정치적인 성격이 있어서 바로 체포해 갔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전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와 비교했을 때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을 거의 못하고 자랐습니다.
반면에 지금 여러분들에게 닥친 가장 큰 이슈는 기후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고 접근하면 너무 막막하지만, 대신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고 접근하면 실천이 가능한 방법들을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 정토회를 창립할 때는 우리의 후손들을 걱정하면서 환경운동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환경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면서 현재 우리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민중들의 생존에 대한 요구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가 있었듯이 지금은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인간의 뇌와 정신작용을 연구해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도 몇 년 전부터 <스님의 하루>를 영문으로 발행하자는 제안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걸 매일매일 누가 다 번역하고 감수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어서 실행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챗지피티(ChatGPT)가 등장한 이후 여러 가지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나오면서 지금은 <스님의 하루>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불교적인 용어와 정토회 안에서만 사용하는 관용어도 번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하니까 정확성이 99%나 되었답니다. 굳이 전문 번역가의 감수를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된 겁니다.
미래 문명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해
그래서 앞으로는 인구 수나 나라의 크기가 더 이상 경쟁의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산업혁명 때 영국이 인구 수나 영토의 크기와 상관없이 산업화를 통해 세계적 파워를 가진 것과 같이, 앞으로는 발전의 개념도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시대가 반드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일수록 정말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며, 개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국 안에서만 살면 늘 지금 당면한 이슈 속에 빠져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탄에서만 살면 부탄 안의 개발 이슈에만 빠져있을 수 있고, 또 태국에 가면 그 나라 안의 민주화 이슈에만 빠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세계 이슈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은 미국이나 유럽에 가봐도 이슈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배우는 게 별로 없어요. 유럽과 미국은 조금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중동, 부탄, 이런 나라들에 가보면 인류 문명의 이슈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 문명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지,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 때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토회를 설립한 이유도 인류 문명이 어떻게 전환되어야 하는지 그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어떤 세력을 키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걸 해결하는데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모으기도 하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모으기도 하고,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면 조직적인 대응도 하지만, 그게 정토회의 목표는 아닙니다. 100년이 지난 뒤에 다음 세대가 우리를 돌아봤을 때 ‘그들은 비교적 참 바람직하게 살았다’ 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정토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젊을 때 술을 먹고 놀면 그 순간순간은 즐겁겠지만 10년 20년 지나서 돌아보면 ‘그때 내가 참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많이 낭비했구나’ 하고 후회할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정토회에서 여러분이 하는 활동들은 그때그때는 참 고생스럽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때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기초를 정말 잘 닦았었구나’ 이렇게 평가할 수가 있을 겁니다. 꼭 고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에는 평가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정신 차렸으면’ 하고 후회가 되는 것은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무거운 짐으로 뭉쳐있게 됩니다. 젊을 때부터 조금 더 열린 자세로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출가해야 한다’, ‘봉사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열린 자세를 갖고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삶을 선택했으면 좋겠고, 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 청춘캠프의 목표는, 첫째, 여러분 개개인이 무슨 길을 가든 자기 인생의 길에 있어서 나중에 후회가 적은 삶을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둘째, 이렇게 인연 맺은 우리들이 함께 사회에 의미 있는 일들을 도모해 보자는 것입니다. 셋째, 미래를 대비하여 우리의 작은 힘을 어떤 식으로 보탤 수 있는지 고민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30년 전에 정토회를 만든 스님과 당시의 청년들이 어떠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들으면 여러분의 삶을 설계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러 취지로 모인 것이니까 움츠러들거나 걱정하거나 조심스러워하지 말고 청년답게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은 큰 박수로 스님의 말씀에 화답했습니다.
모두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밥과 국, 반찬 한 가지는 청년특별지부 출신의 선배들이 3일 동안 준비해 주기로 했습니다.
선배들이 만들어 준 밥과 국, 그리고 집에서 준비해 온 반찬으로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한 후 다시 대강당에 모여 모둠별로 사전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은 캠프에 참가하기 전, 사전에 스님의 저서인 ‘미래문명을 이끌어갈 새로운 인간’과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 두 권을 학습하고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사전 토론을 심화하여 가족, 연애, 직장, 사회, 4가지 주제로 모둠별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 다시 스님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섯 명이 손을 들고 가족, 연애, 직장, 사회를 주제로 다양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불교 공부를 할수록 연애와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며 연애와 결혼이 행복하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마음공부를 할수록 연애나 결혼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이번 청춘캠프에 오기 전에 스님이 쓴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 ‘두 사람이 만날 때 각자 보름달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되기도 힘들고, 그런 상대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혼자 살아야 할까요?
이미 온전한 보름달 같은 두 사람이 굳이 같이 살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며 불교의 가르침에 점점 다가가고 있습니다. 마음공부를 할수록 저는 연애나 결혼과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에는 ‘결혼이 꼭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제 또래의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애와 결혼은 조금 다릅니다. 연애는 상대에 대한 호감, 즉 좋은 감정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서로 인종이나 종교, 신분이 달라도 괜찮고, 나이나 경제력 차이가 나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도 ‘국경이나 종교,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이렇게 연애는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만으로도 가능합니다. 다른 건 그리 문제 되지 않아요. 나이가 스무 살씩 차이가 나더라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결혼은 조금 달라요. 결혼은 두 사람의 공동생활을 전제로 합니다. 연애는 각자 따로 생활하면서 한 번씩 만나죠. 가끔 만나서 사랑을 나누거나, 대화하고, 취미생활도 같이 합니다. 그런데 결혼은 같이 사는 공동생활입니다. 한 방이나 한집에서 같이 사는 거예요. 이런 공동생활을 하게 되면 서로 화장실 문제나, 청소, 음식의 맛이나 요리 문제 등 여러 곳에서 각자의 성향이 부딪힙니다. 그래서 열렬한 연애 감정만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연애할 때 열렬한 감정이 생기면 마치 결혼해도 잘 살 줄 알고 결혼을 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성격 차이로 헤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결혼은 공동생활입니다. 마치 룸메이트랑 사는 것과 같아요. 룸메이트와 둘이 방을 얻어 같이 산다고 가정해 봅시다. 룸메이트와 동거하는데 그의 외모나 경제력 같은 게 중요합니까? 서로 식사 당번을 정했으면 정한 대로 하고, 청소 당번을 정했으면 그대로 하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몇 시 이후에 자기로 했다면, 그 시간에 불 끄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룸메이트로서는 제일 좋은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보통 10시에 자는데 상대가 12시까지 불 켜놓고 뭔가 하고 있다면, 또 나는 보통 아침에 늦게까지 자는데 상대가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소란하다면 그런 룸메이트와는 같이 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요즘같이 에어컨을 켜거나 겨울에 보일러를 켜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추위를 잘 타서 밤에는 에어컨을 꺼야 하는데, 상대는 잘 때도 에어컨을 켜야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는 따뜻하게 자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더운 게 힘들 수도 있습니다. 공동생활을 하면 이런 것을 서로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애할 때의 좋은 감정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런 생활을 서로 맞추지 않으면 같이 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결혼은 가족관계의 확대입니다. 부부 둘만 사는 게 아닙니다. 나는 내 배우자 한 사람만 보고 결혼하지만, 막상 결혼하면 배우자의 아버지도 내 아버지가 되고, 배우자의 어머니도 내 어머니가 됩니다. 그 사람의 형제들과도 관계가 생깁니다. 내 배우자 한 사람에게만 맞추는 것도 힘든데, 그의 가족 모두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부는 서로가 좋아서 결혼했기 때문에 상대가 돈이 좀 없어도, 신분이 낮거나, 외국인이라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은 절대 봐주지 않죠. 내 배우자처럼 그들도 내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그걸 봐줄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내가 국적이 달라도 문제가 되고, 돈이 없어도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상대의 가족들과 부딪힙니다. 결혼해서 부부끼리는 좋지만, 서로의 가족들 때문에 힘들어하다 이혼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어쩌면 부부 갈등보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그런 갈등 속에서 배우자가 내 편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처지에서는 자기 가족과의 관계 때문에 내 편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내 가족이니까요. 아무리 서로 좋아서 결혼한 부부라도 자기 가족들을 버리면서까지 내 편을 들어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해 없이 ‘나는 당신만 보고 결혼했는데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불평을 합니다. 결혼하면 이렇게 인간관계가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만약 재혼까지 한다면 훨씬 더 관계가 복잡해지겠죠? 부부 둘만 생각하면 결혼해도 문제없고, 이혼이나 재혼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사회라고 하는 인간관계에서 보면 거미줄처럼 관계가 점점 복잡해져 갑니다. 이게 결혼입니다.
이렇게 결혼은 공동생활이며 가족관계의 확대라는 걸 알고 해야 합니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혼자 살아도 미련이 없습니다. 단순히 ‘나는 마음에 드는 상대가 없어. 그냥 결혼 안 할래’ 이런 마음으로 살면 나이가 오십, 육십이 되어도 결혼에 대해 미련이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주변에 결혼으로 주저하는 사람이 있으면 빨리 결혼해 보라고 권합니다. 괜히 주저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빨리 경험해 보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생해 보면 미련이 남지 않아서 다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결혼은 안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건 말할 것도 없는 얘기입니다. 부처님 같은 경우는 왕자였으니 사회적 지위도 높았습니다. 또 경전을 보면 부인도 아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또한 부처님은 재능도 많았고, 자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출가를 하셨습니다. 수행자로 사는 것은 혼자인 것이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겁니다. 인류에게 어떤 새로운 길을 열려면 가족적 관점을 가져서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뒤에도 부처님을 부처로 보지 않고 늘 자기 아들로만 봤습니다.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에 대해서도 늘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는지, 잠은 어디서 자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지 걱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세속적 관점으로만 부처님을 봤기 때문에, 정반왕은 끝내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출가해서 스님이 되거나, 혼자 살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결혼을 반대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부처님께서 재가수행자의 길을 열어주셨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랬다면 출가수행자의 길만 전해지고 재가수행자의 길은 없었겠죠. 수행자로 살더라도 사람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가정을 이루거나 사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그가 행복하게 살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재가수행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는 꼭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계율입니다. 출가수행자가 살생할 일이 어디 있으며, 다른 사람을 헤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출가한 사람이 타인의 물건을 훔치고 성추행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출가수행자는 자기 부인도 두고 자기 물건도 다 놓고 나온 사람인데, 다른 여성을 추행하거나 타인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은 하지 않겠죠. 그래서 출가수행자에게 계율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생활에 대한 계율만 있었습니다. 오계라는 중요 계율은 원래 재가수행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 사람들과 싸울 일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주먹이 나올 가능성도 큽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익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결혼해서 살면 다른 이성에게 관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면 욕할 일도 있고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면 술 먹고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재가수행자가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은 허용하되 적어도 이 다섯 가지는 지켜야 한다며 나온 것이 오계입니다.
수행자라면, 첫째, 폭력으로 어떤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되 남에게 손해를 끼칠 정도로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셋째, 내 즐거움을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넷째, 말로도 남을 괴롭히면 안 됩니다. 다섯째, 술이나 마약을 먹고 취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를 계율로 금하셨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본다면 이 오계는 모두 법률적으로 범죄에 속합니다. 오늘날 폭력이나 살인은 모두 범죄에 해당하잖아요. 옛날에는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것을 범죄로 보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때리는 것도 마찬가지고, 주인이 하인을 때리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도 모두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봤습니다. 심지어 주인이 자기 노비를 죽이는 것도 주인의 권한으로 봤습니다. 이것은 아이의 주인이 부모이며,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고, 노비의 주인은 양반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노비에게 어떻게 해도 별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600년 전에 살았던 부처님은 당시에 어떤 이유로든 남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당시와 비교하면 오늘날 우리들은 계율을 지키기가 쉽습니다. 그게 범죄 행위에 해당하니까요. 오계를 지킨다는 건 법 없이도 그런 나쁜 행위는 스스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재가수행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남자라는 반쪽과 여자라는 반쪽 둘이 만나 완전한 동그라미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연애나 결혼이 행복하려면 혼자서도 온전한 원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이 각자 온전한 원이 되어 합하면 가운데 금이 없어요. 이게 수행자의 결혼입니다. 그런데 반원 둘이 합해서 원을 이루면 가운데 금이 생깁니다. 이러면 한 명이 죽거나 이혼하게 되면 다시 반원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다시 새 반쪽을 찾게 돼요. 그래서 재가수행자는 결혼을 해도 좋지만 가능하면 온전한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그래야 어떤 경우라도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애초에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한 원이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의 동물 대부분은 자기 혼자 삽니다. 작은 곤충도 혼자 살고, 하늘의 새도 혼자 삽니다. 다람쥐도 혼자 삽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왜 혼자 살 수 없을까요? 혼자 살 수 없다면 그는 스스로 생명이기를 포기했다고 봐야 합니다. 동물 중에도 펭귄처럼 짝을 지어 사는 동물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독립적으로 삽니다. 자기 종을 번식할 때는 잠시 같이 살지만, 번식이 끝나면 다시 독립적인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독립적으로 산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또 독립적인 사람 두 명이 같이 살면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이런 걸 ‘혼자 살아도 좋고, 둘이 살아도 좋다’ 하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을 자꾸 반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혼자 살면 외롭고, 둘이 살면 귀찮아지니까 헤어지고 만나는 것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경전대 학생들에게 일반회원 권유를 어떤 관점에서 해야 할까요? 학생들이 수행을 계속 이어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음을 감안해서라도 새로운 사람에게 소임을 주는 게 좋을까요, 일의 효율성을 위해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만 일을 주는 게 좋을까요?
백일출가를 한 이후에 어떤 관점과 방법으로 수행을 이어가야 할까요?
삶에 있어서 돈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리고 미래의 경제 체제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는지 스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한 후 오후 4시부터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이번 시간은 정토회를 설립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에 대해 스님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스님이 청년 시절에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여러 가지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보살의 마음을 내고 스님처럼 꾸준히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 내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청년들은 레크리에이션과 노래 공연 시간을 가졌고, 스님은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기 위해 문경 정토수련원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생방송에 4,3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한 후 질문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전에 4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피해를 입고 분노와 자책감에 잠을 못 자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분노와 자책감에 너무 괴롭습니다
“저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큰돈을 잃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 집의 가장으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경기 불황에 높은 금리와 물가로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주식과 재테크에 뛰어들었지만 오히려 빚만 더욱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에 매우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대환대출을 통해 조금이라도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은행의 전화를 받고 그 말대로 행동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쪽에서 시키는 대로 거금을 현금으로 인출해 기존 대출금을 상환할 목적으로 은행연합회 소속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에게 돈을 넘겼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고, 다음날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수거책을 잡아도 현금 회수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날 이후로 저는 회사생활, 식사, 잠자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 같은 인간이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분노, 미움, 원망이 가득하고, 없는 형편에 또 돈을 빌린 행동에 대해 친어머니에게 미안함과 죄송함이 큽니다. 남에게 말도 못 하는 창피함, 억울함, 어리석음 등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에 맴돌아서 몸도 아프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빨리 이 사실을 잊고 평정심을 되찾아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우선은 고발을 해보세요. 물론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경찰이나 검찰에 고발을 하세요. 내 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삼자에게 새로운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질문자가 협력하는 게 필요합니다. 특히 현금을 주고받는 경우에는 영수증도 없고 아무 증거가 없기 때문에 돈을 돌려받기는 어렵습니다.”
“확인증이라고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것도 가짜였습니다.”
“현금을 주는 경우에는 거의 돌려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첫째, 학습비라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1억 원을 잃어버렸으면 어쩔 뻔했나. 이 정도만 잃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지금 필요합니다.
둘째, 아내를 만나서 한번 물어보세요. '보탬도 못되고 빚만 지게 되어 미안합니다. 그래서 제가 죽는 게 낫나요, 그래도 살아있는 게 낫나요? 죽는 게 낫다고 하시면 그냥 죽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물어보면 아내가 뭐라 그럴까요? '돈을 잃어서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살아있는 게 좋다' 하고 말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 인간아, 너 같은 인간은 죽는 게 낫다' 하고 말할까요?”
“처음에는 저한테 왜 이렇게 멍청했냐고 막 욕을 했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사건은 발생이 되었고, 저도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다시 돈을 벌어서 빚을 갚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니 죽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질문자가 죽어버리면 남편도 잃고, 아이 아빠도 잃고, 생활비도 못 받게 돼요. 질문자가 정말 미안하다면, 부인한테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애들한테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열심히 돈 벌어서 조금씩이라도 빚을 갚아야 됩니다. 질문자가 속아서 돈을 엉뚱한 데 갖다 버려놓고 죽기까지 하면 그 손실은 아무 죄 없는 아내가 다 입게 되잖아요. 질문자의 무책임한 태도의 결과로 아내는 남편도 잃고 돈도 잃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질문자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오히려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야 됩니다.
'미안해. 내가 순간적으로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이걸 학습비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한 순간에 돈 벌려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할게. 투자니 뭐니 이런 짓도 안 할게.'
요즘 투자가 어디 있어요? 대부분 투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의 심리도 투기하는 심리이지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아내에게 '이제 노름판에는 손을 끊겠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은 질문자의 투기 심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입니다. 이 사건을 정말 죽다가 살아날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야 해요. 투자든 주식이든 이미 진행된 건 그만 따지고, 앞으로는 직장생활을 성실히 해서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세요. 이 문제에 자꾸 집착을 하면 질문자는 다시 사기당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잃은 돈을 한꺼번에 벌고 싶은 욕심 때문에 또 누군가의 얘기에 솔깃해지고, 결국 악순환에 접어들게 됩니다. 지금은 집을 날린 것도 아니고 가족이 죽은 것도 아니니까 여기서 정신을 차리는 게 필요해요.
질문자가 죽는 건 자기 목숨이니까 자기 자유이지만, 질문자가 죽는다는 건 손실을 부인한테 떠넘기는 거예요. 부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질문자로 인해서 손실을 떠안게 됩니다. 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남편도 잃고, 돈도 잃고, 빚만 남게 되잖아요. 질문자가 부인한테 그렇게 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하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예요.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앞으로는 좀 더 유의하고 살아야겠다. 부인한테 더 잘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스님 말씀은 이해를 했는데, 지금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막 몰려듭니다.”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을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렇게 자꾸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단을 만드는 겁니다.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 다시는 안 하겠다. 앞으로 정신 차려 살겠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자꾸 잔머리 굴리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거예요.”
“이제 이 일을 깨끗이 잊고 다시 잘 살아나가야 할 텐데, 저도 이런 일을 처음 겪다 보니 미안함, 원망 등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막 몰려들어서 한숨이 나오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건강이 나빠지면 누구 손해예요?”
“저만 손해죠.”
“또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잖아요. 돈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자기 건강을 해치는 짓까지 하고 있잖아요. 돈을 잃었으면 건강이라도 잃지 말아야 현명한 사람입니다.
‘내가 욕심에 눈이 어두워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죽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게 나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부인하고 애들한테 남편과 아빠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잘 자고 잘 먹고 남편 역할과 아빠 역할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말은 쉬운데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도 면피하려는 태도예요. 불쌍하게 보여서 동정을 받으려 하거나, 죽어서 면피를 하려는 건 모두 잔꾀를 부리는 행동이에요. 잘못했으면 무릎 딱 꿇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끝내야 되는데 '그놈이 사기를 치는 걸 몰랐습니다. 내가 죽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직도 정신을 안 차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요.”
“그러면 제가 다 잊고 그냥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면 되는 걸까요?”
“잊을 게 뭐 있어요? 그냥 학습비라고 생각해야지요.
'내가 바보같이 사기를 당해서 돈을 잃었으니까 앞으로는 정신을 차려야 되겠다. 만약 1억을 잃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이 정도만 잃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손실을 인정한 다음, 이 일이 꼭 나쁜 상황만은 아니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걸 질문자가 발견하면 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생활을 안 하면 뭐 할래요? 죽을래요? 비정상적인 생활을 계속할래요? 술 마시고 잠만 잘래요? 그럼 병원비만 더 들고 술값만 더 들뿐입니다. 그런 구질구질한 얘기는 이제 그만하세요. 이제는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이런 짓은 그만하고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월급 받아서 사세요. 부인이 하는 집안일도 잘 도와주면서 생활을 하고요.
질문자가 만약 돈 좀 벌었으면 어떻게 살았겠어요? 부인한테 큰소리치고, 그 돈 갖고 술이나 먹으러 다니고, 자기 잘난 척만 많이 했을 거예요. 이번 기회에 자기가 별로 잘난 인간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잖아요. 지금부터 부인한테 잘하면서 정신 차리고 살면, 부인이 처음에는 좀 기분이 나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화위복이 됩니다. 이왕 일어난 일이니까 전화위복으로 삼아보면 좋겠습니다. 돈 잃고 괴로워서 스님한테 질문했는데 야단만 맞았죠?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제 인생에서 큰 결점이 생겼지만 하루빨리 극복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다시 평정심을 갖고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면서 친어머니한테 좀 더 잘하겠습니다. 제가 가장이다 보니 좀 더 돈을 벌어서 풍요롭게 살려고 욕심을 내었다가 일이 잘못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으로 직장생활 하면서 살겠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내 말 안 듣고 계속 딴짓하다가 크게 한번 당해야 정신 차리겠다' 생각했을 텐데 이제 크게 한번 당했으니까 정신을 차리세요. 친어머니한테 돈으로는 못 갚더라도 대신 친절하고 싹싹하게 서비스를 잘해서 갚으면 됩니다. 천금보다도 말 한마디가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꼭 돈으로 다 갚아야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부인도 직장을 다닌다니까 둘이 착실하게 생활하는 게 좋습니다. 질문자는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단기 투자를 해서 돈 벌 수준이 안 되는구나’ 하고 알았잖아요. 보이스피싱에 속는 수준 갖고 무슨 투자를 하겠어요? 그러니 이번 일을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하고 손을 끊는 계기로 삼으면 전화위복이 됩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직원이 저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후 저를 욕하는 것도 듣고 나니 증오하는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남편과 냉전 중인 상황이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 한 집에서 사는 게 좋을지, 따로 살며 아이에게 이 모습을 안 보여주는 것이 좋을지 궁금합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의식 없이 쓰러지고 나서 거동도, 말도 못 하게 되어 희귀 난치성 질환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법문을 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청춘캠프 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오후에는 ‘자기실현과 사회 실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국제자원활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