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6.29 베트남 1일째, 홍법사 방문
“불편한 점을 말하면 갈등이 생기고, 참으면 내가 힘들고,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스님은 5박 6일 동안 베트남 불교상가위원회 초청으로 호찌민에 있는 여러 사찰들을 방문하고 스님들과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일본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새벽 2시에 비행기를 타고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출발했습니다.

6시간 10분을 비행하여 베트남 현지 시간으로 오전 6시 10분에 (시차 2시간) 호찌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하늘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동도 하고 잠도 자고 일석이조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베트남에 살고 있는 정토회 회원들과 베트남 각오사의 스님, 신자들이 마중을 나와서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오도록 해서 미안해요.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차를 타고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쌀국수 식당에 들러 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원래 베트남 불교상가위원회에서는 이번 스님의 방문 기간 동안 매일 일반인을 위해 대규모의 법회를 두 번 내지 세 번씩 계획을 했지만, 방문하기 이틀 전 갑자기 베트남 정부에서 모든 법회를 취소 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베트남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정토회 회원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600년 전 부처님께서도 전법을 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세상 일에 구애를 받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대중에게 법문을 못하도록 하면 대중에게 법문만 안 하면 됩니다. 그래서 저를 초청한 사찰들은 원래 계획대로 다 방문하려고 해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었습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휴식을 하고, 11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홍법사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베트남 현지 활동가 푸엉 씨가 최근 베트남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틱 민 투에(Thich Minh Tue)’라는 인물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틱 민 투에(Thich Minh Tue)는 베트남 전역을 맨발로 걸으며 숲에서 잠을 자고 수행을 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그의 활동이 사회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순례를 중단 시켰습니다​. 대중은 SNS에서 권위적이고 부유한 승려들을 비판하며 그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불교계가 시끄러운데 법륜스님의 대중 법회를 취소한 이유도 이 문제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스님이 말했습니다.

“좋은 현상이네요.”

베트남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1시간 30분이 지나 홍법사에 도착했습니다.

홍법사(紅法寺)는 호찌민 서부에 위치한 유명한 불교 사찰로서 다양한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베트남을 방문할 때마다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홍법사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곤 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입니다.

홍법사에 도착하자 주지 스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함께 접견실로 이동하여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중들에게 법회를 열었다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참석했을 텐데 갑자기 취소가 되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계획대로 방문을 했습니다. 법회를 못하면 제가 홍법사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듣고 가면 되니까요.”

주지 스님은 홍법사에서 가르치고 있는 수행법과 경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홍법사에서는 정토삼부경인,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을 기초로 하여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에게 불교를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역과 해외에 46개의 지점이 있고, 신도는 10만 명이 넘으며, 비구 스님 300명이 공부를 하고 있는 도량입니다. 수련도 하루 코스부터 7일 코스까지 다양한 코스를 진행하는 등 베트남에서 대중 포교의 모델이 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틱 민 투에(Thich Minh Tue)가 베트남 전역을 맨발로 걸으면서 수행을 했는데 대중이 많이 따라서 정부가 이분의 순례를 중단시켜 대중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불교를 믿는 마음을 지킬 수 있는지 스님이 가르침을 좀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무슨 얘기든지 물으시면 우리는 법의 친구로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대화 시간에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차담을 마친 후 다함께 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베트남 불교의 예식에 따라 종을 치며 스님들이 줄을 지어 입장했습니다.


시민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법회는 취소가 되었지만, 사찰 내에 거주하는 스님들과 신자들이 모여 법담을 나누는 것은 허용이 되기 때문에 간소하게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당에 약 300여 명의 스님과 불자들이 법복을 갖춰입고 가지런히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모두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 모임이 갑자기 변경이 된 이유와 관련하여 부처님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얘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어느 나라에 아주 얼굴이 예쁜 부잣집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왕자들과 부유한 남자들이 그 여자와 결혼하려고 줄을 섰습니다. 줄을 선 사람이 많다 보니 누가 더 잘나 보이는 것이 딱히 없어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고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이 이 나라에 오시게 되어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고 보니 왕자들과 부자들은 다 고만고만하고 별로 눈에 안 들어왔는데, 유독 부처님만 남자 중의 남자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생각은 없어지고 매일 부처님께 찾아가서 설법을 듣고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쫓겨 다니느냐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이 자기에게도 친절하게 대하지만 자기보다 얼굴도 못났고 나이도 많고 가난한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너무 섭섭했어요. 자기는 굉장히 정성을 들여서 부처님을 대했는데, 부처님이 자기한테만 친절한 게 아니었던 겁니다. 모든 사람 중에 자기도 그냥 한 명일 뿐이었어요. 그래서 여인의 부처님을 향한 마음은 점점 식어갔고,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부처님의 법문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웃 나라의 왕자에게 청혼이 들어 왔어요. 그 왕자에게 시집을 가고 3년이 지나자 그 왕자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왕후가 되었습니다. 이제 부처님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속세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 여인이 시집을 간 그 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 어느 날 이 여인이 궁 안에서 산책을 하다가 궁녀들끼리 기뻐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까 궁녀 가운데 한 명이 왕궁 밖으로 나갔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너무 기뻐서 자기 친구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궁녀들도 기뻐했습니다. 부처님은 자기가 옛날에 좋아했던 분인데 하찮은 궁녀들이 마치 부처님이 자기 사람인 것처럼 기뻐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남편인 왕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궁 안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왕이 ‘나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궁 안에 사는 사람들이 당신이 주인이 아니고 저 성 밖에 있는 어떤 수행자를 주인으로 섬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당신이 가서 한번 보세요.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당신 이야기는 안 하고 전부 성 밖의 어떤 수행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떡하면 좋겠느냐?’

‘그 수행자의 이야기를 듣지 못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왕이 칙령을 내려서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도 못하게 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다음날 아침에 걸식을 하는데 밥을 얻지 못하니까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 이 나라에서는 우리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로 갑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다른 나라로 갔는데 또 이러면 어떡하겠느냐?’

‘그럼 또 다른 나라를 갑시다.’

‘그럼 그 나라에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겠느냐?’

‘그럼 또 다른 나라로 가죠.’

이렇게 문답이 오가자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네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쫓겨 다니느냐?’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이 부처님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공양을 올리든 안 올리든, 칭찬하든 비난하든, 거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부처님은 그들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다만 앞으로 갈 뿐입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부처님의 제자는 바깥 환경에 따라서 어떤 일을 중단시키지 않습니다. 물이 흐르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잠시 멈춥니다. 또 웅덩이가 가득 차면 넘쳐 흐릅니다. 이렇게 다만 흐를 뿐입니다. 그것처럼 부처님도 어떤 장애로 중단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법회를 열려고 했을 때도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중단을 해야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대화를 나누면 됩니다. 사람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혼자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일 수도 있고, 저런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그냥 할 뿐입니다. 오늘 법회를 이렇게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모두 큰 박수로 대답했습니다.

다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수행자는 외부의 어떤 장애나 방해가 있더라도 거기에 굴복하거나 중단하지 않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날씨가 더우면 옷 하나 더 벗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가면 됩니다. 여러분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 길을 갈 때 어떤 경우에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만 앞으로 갈 뿐입니다. 그렇게 수행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여섯 명이 자신의 고뇌를 이야기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불편한 점을 말하면 갈등이 생기고, 참으면 내가 힘들고, 어떡하죠?

“불교에서는 자비심으로 말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개선해야 할 어떤 잘못된 상황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럴 때 저는 어떻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자비심으로 참아야 할까요? 늘 고민하게 됩니다. 참으면 개선이 안 될 것 같고, 말하면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네요. 질문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고민을 하게 됩니까?

“친구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때 조언을 해주어야 할지, 아니면 무시하고 넘어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말을 해주면 갈등이 생기고, 참으면 내가 힘들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친구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불편했다면 그것은 질문자의 문제입니다. 그 친구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질문자의 문제로 보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관도 다르고, 생활 습관도 다르며, 취미도 다릅니다. 질문자와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 그들은 단지 나와 다를 뿐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보며 화가 나거나 불편해지는 것은 ‘상대가 틀렸다’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 하는 것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그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겠다’ 하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상대가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선 내가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에 불편함을 없애는 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만약 개선할 점이 있다면 상대를 위해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를 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한 조언이기 때문에 그가 고치지 않더라도 그건 그의 몫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언하는 나도 편합니다. 또, 그가 개선하지 않더라도 불편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어떤 모습을 보고 내가 불편하다면 그건 나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내가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를 위해 어떤 얘기든 해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고, 상대를 위해 행동하는 것을 ‘자비심’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합시다. 그런 그를 보며 내가 불편하다면 그건 나의 문제입니다. 이때 ‘저 친구는 목소리가 좀 큰 편이구나’ 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이렇게 그를 보며 내 마음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동시에 ‘큰 목소리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니 조금 목소리를 낮추는 게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목소리 좀 큰 것 같아요. 조금 낮추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불편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목소리를 좀 낮추라고 말하면 거기에는 화와 짜증이 묻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가 반발하게 되어서 말다툼으로 번질 확률이 높습니다.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언제든지 개선을 위해 행동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절대 세상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일을 보고 겪더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즉, 평정심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세상을 위해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화가 없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평화롭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디사트바는 세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만, 마음에 화나 미움이 없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자비심으로 한다’ 하는 말의 뜻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빌고 싶은 소원이 있어서 절에 가는데, 막상 절에 오면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탐진치 삼독에 형태가 있나요?

  • 베트남 청년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한국 청년들은 불교를 믿는지 궁금합니다.

  • 한국 불교에는 어떤 종파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스님은 어떤 종파에 소속되어 있나요?

  • 스님은 매일 어떤 방식으로 수행을 하나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마지막 질문에 대해 대답하며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여러분들이 수행자라면 스트레스가 없어야 합니다. 즉, 근심이나 걱정, 미움이나 원망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이 있구나!’ 하고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이런 감정이 왜 생겼을까?’ 하고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이것에 무지했구나!’, ‘내가 이런 것에 집착했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그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붓다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늘 알아차리고 살펴야 합니다. 다른 말로는 ‘깨어있기’라고도 표현합니다.

건강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건강하다’ 하는 표현을 씁니까? 무거운 걸 들거나 빨리 달리는 사람을 보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합니까? 아니면 키가 크거나 근육이 많은 사람을 보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나요? 건강하다는 것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가 성인이든 어린아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그에게 어떤 병이 없다면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도 같습니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할까요? 즐거움은 행복이 아닙니다.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으면 거기엔 반드시 괴로움이 따릅니다. 이것을 ‘윤회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행복, 즉 ‘니르바나’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기초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왔습니다. 선불교에서는 참선을 합니다. 테라밧다에서는 위빠사나를 합니다. 염불이나 주력, 독경 같은 방법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핵심은 ‘알아차림’ 또는 ‘깨어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에 깨어있어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또 설상 놓치더라도 다시 알아차려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참석한 스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장소를 이동하여 홍법사에서 마련해 준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김치도 준비했습니다. 드셔보세요”

“고맙습니다.”

식사를 하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법회가 취소된 게 좋은 일이에요. 덕분에 제가 한가해졌어요.”

푸엉 님이 죄송한 마음을 계속 내비쳤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이시고 에너지가 넘치시는데 이렇게 돼서 죄송해요.”

“덕분에 한가하게 저녁도 먹잖아요. 앞으로 한달 동안 10개국을 다녀야 하는데, 베트남에서라도 좀 한가해야죠.”

“도쿄에서 오늘 새벽 2시에 출발하셨다면서요. 중생을 위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중생을 위해서가 아니고 내가 좋아서 그냥 하는 거예요.”

법회를 들은 소감도 나누었습니다.

“불법은 원래 어려운 것인데,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셔서 너무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원래 부처님이 쉽게 얘기했어요. 나중에 후대의 학자들이 자꾸 어렵게 설명해서 많이 어려워진 겁니다.”

식사를 마치고 주지 스님은 법당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 공부를 할 수 있게 곳곳에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법당을 둘러보고 나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다음에 베트남에 오실 때는 더욱 한가하게 오셔서 저희 절에서 꼭 하루를 자고 가주십시오.”

“다음에 한국에 오시면 제가 먹여주고 재워줄게요.”

인사를 나눈 후 저녁 6시에 홍법사를 나왔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20분을 달리며 호찌민 시내를 지났습니다. 퇴근길에는 도로마다 오토바이 행렬이 펼쳐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운전을 해준 기사님에게 스님의 베트남어 번역 책을 선물한 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녁에는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하고,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베트남의 테라밧다 사찰인 푸옥손 사원을 방문하여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꽝덕사원으로 이동하여 베트남 불교중앙승가위원회의 부사무총장님을 만난 후 제2사무국에서 하안거 중인 스님들을 위해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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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7-04 05:49:03

이은영

항상 너무 쉬운 비유로 그 순간만이라도 딱 깨치게 해주시는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2024-07-03 18:58:17

오드리

베트남에서 계획하셨던 즉문즉설이 취소되었지만..스님께서 방문하신 이유에 대해서..부처님 얘기를 통해 이해가 잘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스님..수행관점은 무유정법과 일체유심조.

2024-07-03 14: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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