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6.22. 중국 현지답사 2일째, 동항, 환인 오녀산성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동북아 역사기행을 재개하기 위해 중국 현지를 답사한 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단동에서 남쪽으로 1시간가량 달려 동항까지 가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단동 시내는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1시간을 달려 동항까지 도착했으나 항구로 들어가는 문은 막혀 있었습니다. 인천으로 가는 여객 터미널로 간다고 말하니 지금 한국으로 가는 배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항구도 보고 압록강 건너 한반도 최서단을 보고 싶었지만, 강가까지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할 수 없이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강변 마을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마을 끝 지점이 지도상으로 압록강을 볼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마을 끝에 거의 도착할 즈음 길 옆에 배를 수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꽤 큰 배가 여러 대 놓여 있었습니다.


배를 수리하는 곳을 지나니 강가에 모래 언덕이 있었습니다.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해 모래 언덕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모래 언덕에 오르니 전망이 좋았지만 악취가 심하게 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모래가 아니라 조개껍질이었습니다. 한쪽 편은 뜨거운 햇살을 받았는지, 속에서 발효가 되는지, 김이 많이 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조개껍질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조개껍질로 닭 모이를 주면 좋아요.”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압록강과 건너편 북한 쪽의 지형지세를 살폈습니다.

지형지세가 파악이 되자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한반도 최서단이 멀리 뒤편으로 보였습니다.

한반도 최서단은 육지를 기준으로 할 때 평안북도 룡천군 용암포읍입니다. 섬까지를 기준으로 하면 평안북도 신도군 마안도입니다. 스님의 오른쪽 뒤편 산이 신도, 그 오른쪽 작은 섬이 마안도입니다.


항구까지는 못 갔지만 다행히 한반도의 최서단 마안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개껍질 언덕 위에서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평생 살면서 조개산은 처음 보네요.”

그런데 언덕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논밭 사이로 여러 척의 배가 많이 보였습니다.


논밭 사이에서 배를 수리하는 모습도 참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조개산과 논두렁 배 공장은 새로운 차원의 세상인 듯했습니다.

땅바닥에 레일을 깔아서 배를 뭍으로 옮기고 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황금평 벌판이 나타났습니다.


황금평 벌판과 중국 사이는 압록강이 아주 작은 개천이 되어 흐르며 국경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양쪽 정부는 철조망을 쳐서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황금평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올라오니 압록강 너머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근처엔 철조망과 초소도 있었습니다.

한 무리의 북한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자세히 보니 농토로 가는 농민들처럼 보였습니다.


황금평을 지나니 넓은 압록강 줄기가 나타났습니다. 강 건너편은 한반도 육지의 최서단인 룡천군 용암포읍입니다.

압록강 하구 답사를 마치고 다시 단동으로 올라오는 길에 스님은 몇 군데 연락을 하여 북한과 무역 거래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침 단동 시내에서 북한과 무역을 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중국에 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생활 상황에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여러 가지 대화가 오갔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무역 거래는 코로나 기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국가가 필요한 물건이 거래되기도 하지만 개인이 장사의 목적으로 물건을 사들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중국에 북한 노동자들이 10만 명 정도 와 있는데 그중 5만 명이 동항 인근에 모여 있습니다. 최근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져서 한 번 귀국한 이들은 다시 나오기 위한 비자 발급이 어렵고, 북한도 현금 수입 때문에 귀국을 불허하고 있어 이들은 집으로 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오후 1시가 되었습니다. 점심이 지난 때라 손님과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한국에서 들어온 JTS 활동가가 단동역에 도착하여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단동역 광장의 모택동 주석 동상만 그대로일 뿐 도시는 새 건물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손님과 함께 북한 식당에서 냉면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JTS 활동가를 출장 장소까지 태워다 준 후 스님 일행은 다시 답사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멀리 신압록강 대교가 보였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환인의 오녀산성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은 험한 산간 지역입니다.


오후 5시가 훨씬 넘어서야 환인 외곽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환인 시내를 가로지르는 혼강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늦었지만 하지라서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환인 시내를 통과하니 고구려 첫 도읍지인 홀본산성이 멀리 창 밖으로 보였습니다. 현지에서는 오녀산성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저녁 6시가 넘었지만 홀본산성을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산성의 전면이 잘 보이는 곳이 나타나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차단기 앞에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해서 남문 주차장으로 차를 돌려 봤지만 더 이상의 길은 없었습니다. 체념하고 하산을 하려는 순간 남문 주차장 뒤편으로 산성의 가장 남쪽인 장대가 보였습니다. 장대란 장수가 성안 전체를 둘러보며 전투를 지휘하던 곳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탁월하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장대의 모습도 아주 멋있었습니다.


홀본산성을 뒤로하고 혼강변을 따라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뒤편으로 보이는 환인댐이 산성과 함께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환인으로 들어와 동북아 역사기행을 20여 년 가량 함께 해 온 여행사 직원 분을 만나 같이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최근에 찾아오는 여행단의 규모, 빈도, 코스, 증감 추이, 중국 정부의 여행객에 대한 방침, 규제의 강화 여부 등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한중 관계의 경색으로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여행 분위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오녀산성 일대가 중국 정부의 국가급 보호 유적지로 승급이 되어 정부 차원의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동북아 역사기행을 재개할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될지 점검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여행사 사장님과 헤어진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월 통일의병대회에서 질문자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맞서 싸운 의병들의 마음의 작용과 원리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그러한 의병들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구성하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단체 내 분열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의병 단체의 선두에 있었던 지도자들의 전략과 전술은 어떠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여러 나라의 역사를 보면 다양한 곳에서 의병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접한 역사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만큼 의병이 나라를 구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나라는 매우 드뭅니다. 이렇게 보면 의병은 우리 역사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하나의 국민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웅 시대와 단군 시대와 같이 우리 민족이 동북아 지역에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시기에는 나라를 잃는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그만큼 나라를 잃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나라를 처음으로 잃게 됩니다. 우선 나라를 잃었다는 말은 국가 리더들의 지도력이 부족했음을 뜻합니다. 뭔가 나라 경영에 문제가 있었으니까 나라를 잃는 일이 발생했겠죠. 지도자들이 반성하고 단결해서 나라를 되찾는 데 충분히 활동을 하지도 못하고 역량도 부족할 때, 일반 백성들이 일어나서 최초로 나라 되찾기 운동을 한 것이 바로 다물군입니다. 최초의 의병인 다물군의 후예들이 모여서 세운 나라가 바로 고구려입니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그 후로는 고구려가 멸망할 때 고구려 부흥군이 나왔고, 고려가 위기에 처할 때 의병이 나왔고, 조선 시대에도 의병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의병 활동의 정신은 꾸준히 계승되어 오늘까지 내려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군도 의병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 봉기하는 군사적 성격의 운동에는 크게 반군과 의병, 이렇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라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월급도 주고 지위도 주면서 키우는 군대를 관군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군대는 모두 관군에 들어갑니다.

반군은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정권을 잡기 위해서 관군의 반대편에 서서 싸우는 군대입니다. 반군이 전쟁에서 이기면 바로 국가 권력을 장악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거나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게 되지만, 관군에게 지면 반군은 바로 역적이 됩니다. 이성계가 반정을 했을 때 싸움에서 졌다면 역적이 되었을 텐데, 이겼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의병은 반군이 아닙니다. 의병은 정부군(관군)이나 반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의병은 정부가 아무리 잘못해도 우리 정부군과 싸우고자 일어난 군대가 아닙니다. 외세와 싸우기 위해 조직된 군대입니다. 오로지 외세와 싸우고자 일어나는 조직이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군에 대해서만 봉기합니다. 따라서 의병과 반군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의병은 비용도 자기가 내고, 옷도 자기 옷을 입고, 무기도 자기가 마련하고, 식량도 자기가 마련해서, 오로지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뜻으로 일어나는 군대입니다.

이러한 의병은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흔한 조직은 아니죠. 왜냐하면 지위도 주고, 무기도 주고, 돈도 주고, 식량도 주는 관군도 전세가 기울면 자기 목숨을 잃을까 싶어서 전쟁 중에 도망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세가 불리할 때 아무것도 주는 것 없이, 자기 스스로 전장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이것은 인간 정신 현상의 특이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명 작용과 정신 작용이 둘 다 있는데, 육체와 관계된 생명 작용에서 보면, 자기 목숨이 위험할 때 도망을 가는 게 생존 본능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신 작용에는 그렇지 않은 작용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모성애입니다.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가 위험에 처할 때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새끼를 살리려고 자기가 대신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것도 사실 종족 보존의 본능과 비슷합니다.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돌보는 것, 나라를 지키는 것도 모성애와 유사한 정신 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인들의 모습을 봐도 전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인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기도 하잖아요. 누군가 전 국민을 사랑하면 국민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수 있고,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가문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도 일종의 모성애와 같은 정신 작용입니다.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개별 생명을 지키기 위한 생존 본능이라면, 모성애의 기본 바탕은 종족 보존의 본능입니다. 이러한 종족 보존의 본능이 있어야 생명의 종(種)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의병 활동을 할 수 있는 정신 작용도 아마 이러한 뿌리에서 유래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을 넓게 가지면 이러한 정신 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음을 좁게 가지면 자기만 살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마음을 넓게 가지면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마음을 일으켜서 의병에 참가했다고 해도 그 마음이 항상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도 아이를 보살피는 마음이 있지만, 아이를 때리거나 갖다 버리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하는 것처럼 마음이라는 게 항상 한 게 아닙니다. 마음은 늘 죽 끓듯이 변하기 때문에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일어납니다. 의병들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까 모성 본능이 일어나서 의병군에 참여했지만, 그 안에서 지위를 가지고 다투거나 이익을 두고 다툴 일이 있을 때는 아이와 엄마가 싸우듯이 또 싸우게 됩니다. 그 와중에 분열이 일어나서 망하기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처음에 마음을 한 번 냈다고 해서 그 마음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기투합을 끝까지 잘해서 나라를 잘 지킨 경우도 있고, 중간에 분열되어서 파멸된 경우도 있고, 그 결과는 여러 갈래로 나타나지만 처음에 참여한 동기는 순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첫 동기가 순수하다고 해도 자기가 권력을 갖겠다는 욕심을 내다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도 모두 인간의 정신 작용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의병은 순수한 동기로 참여했기 때문에 전투에 나가면 두려움이 없어서 아주 뛰어난 역량을 발휘합니다. 반면, 잘 훈련된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데는 부족함이 많아서 때로는 성과에 비해 희생이 많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울 때는 희생이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의병의 마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오늘 명쾌한 답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통일의병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올바른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집안으로 이동하여 국동대혈, 천추묘, 서대묘, 환도산성,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5호 묘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연길로 이동하여 옛날 북한 난민 돕기를 함께 한 분들을 접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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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이것은 인간 정신 현상의 특이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중 대표적인 예가 모성애입니다.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가 위험에 처할 때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새끼를 살리려고 자기가 대신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2024-07-02 11:37:07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7-02 06:31:57

김민주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용을 읽으니 참 유익하고 감동적입니다

2024-06-29 11: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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