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24 부탄 답사 3일째 (랑덜비, 콤샤르, 발도)
“평생 도와달라는 언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과 함께 부탄을 답사하는 3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오늘 답사 일정을 점검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에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과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이 답사를 함께 하고 있는 부탄 정부 공무원들과 운전 기사님에게 작은 선물을 했습니다.

“고마워요. 계속 수고해 주세요.”

한국에서 가져온 티셔츠와 화장품을 선물한 후 6시 30분에 납지 치옥을 출발하여 랑덜비 치옥으로 향했습니다. 절벽을 깎아 만든 비포장도로를 4시간 동안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젬강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스님과 JTS 답사단은 트롱사에서 젬강으로 넘어왔습니다. 젬강 종각의 기획담당관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차를 마셨습니다.

지금부터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차를 바꿔 탔습니다. 밴에 실은 짐을 모두 사륜구동 차로 옮겼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본격적으로 젬강 지역의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젬강으로 넘어오자마자 30분가량을 차로 달리다가 젬강의 산림을 책임지는 담당자를 잠시 만났습니다. 먼저 스님이 젬강 지역에 온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기 위해서 지금 젬강 지역을 답사하고 있습니다. 탄소 제로의 삶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삶이 되려면, 자기가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게 자립을 해야 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탄소 배출 제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너무 열악하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먹고 입고 자는 생활은 개선이 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 지역을 답사해 보니까 하위 20퍼센트 정도는 생활이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개발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요청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젬강 지역은 94퍼센트가 산림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는 야생동물들도 정말 많습니다. 주민들이 야생동물을 죽이는 것도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민들을 만나 보니까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많이 호소했습니다. 동물만 보호하고 사람은 보호하지 않을 거냐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어요.” (웃음)

“젬강 지역에는 약초와 허브가 많기 때문에 저희 산림청에서 전문가 한 명을 동행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점은 무엇이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임업 전문가인 최원규 선생님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온 전문가분들을 소개하고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젬강의 산림 전문가 한 명을 차에 태우고 다시 가던 길을 갔습니다.

본격적으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습니다. 덜컹거리는 산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스님이 탄 차는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멈춰 버렸습니다. 수리를 하고 따라오도록 하고, 스님은 다른 차로 이동하여 다시 가던 길을 갔습니다.

납지 치옥을 출발한 지 4시간 30분이 경과하여 오전 11시에 랑덜비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랑덜비 치옥에서는 JTS 활동가들이 가장 가난한 집 하나를 선정하여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샘플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지난번 답사 때는 내부만 수리를 했는데, 오늘은 지붕과 외부까지 수리를 마친 후 준공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집에는 두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번 공사를 통해 두 가구를 명확하게 분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리본 커팅식도 왼쪽 집과 오른쪽 집 각각 따로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부탄의 전통 의식에 따라 나뭇잎에 물을 무쳐서 집에 뿌리는 의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문에 설치된 리본을 풀었습니다.

“원, 투, 쓰리!”

이 집에 살던 가족들과 JTS 답사단은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집 안에는 마을 곳곳에서 빌려온 카펫이 깔려있었습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사는 노부부 가족과 장인, 장모, 딸, 사위, 손자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집을 고치고 나서 아직 불편한 게 뭐가 있어요?”

“너무 행복합니다. 불편한 건 없습니다.”

가족들은 집이 이만큼 좋아진 것만 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박진도 교수님이 몇 가지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주요 수입원이 무엇인가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시나요?”

연세가 많으신 대가족의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낙후된 마을이라 수입원이 제한적입니다. 생강이나 옥수수를 기르는데, 생강은 병충해가 많고, 옥수수는 수확량이 많지 않아서 자급하는 정도입니다. 땅이 많은 사람은 오렌지, 카다멈을 기릅니다. 사위는 푸나카 출신인데 결혼하면서 여기에 왔습니다. 아직 온 지 얼마 안 돼서 적응하는 중이에요. 다 노인들이라 사위가 이 가족의 희망입니다. ”

노부부도 대답했습니다. 노부부는 할아버지가 76세, 할머니는 79세입니다.

“자식이 셋 있었지만 두 명은 죽었고, 한 명은 호주에 가 있는데 연락이 잘 안 됩니다. 수입은 거의 없고, 가끔씩 다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삯을 받고 있어요.”

살림을 주로 도맡고 있는 딸에게 스님이 물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부엌을 개선하니까 어때요? 만약에 이 동네에 다른 집들도 이렇게 수리하면 되겠어요? 어떤 걸 더 개선하면 좋겠어요?”

“만족스럽습니다. 일단 집 안에 연기가 안 나서 좋아요. 이웃집 여자들도 와서 보고 다 이렇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름에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집이 침수되거나 물이 잘 안 빠져요. 그래서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면 좋겠어요. 또 하수 시스템을 개선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지금 집집마다 나오는 하수가 그대로 산이나 강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정화 시설이 필요해 보이네요. 수로도 필요하고요.”

마지막으로 스님은 사위에게 말했습니다.

“리모델링한 집에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위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동네에 가난한 집을 리모델링할 때 많이 도와주세요.”

“Yes.”

사위는 흔쾌하게 답변했습니다. 스님은 매일 술에 취해 있던 장인에게 당부했습니다.

“이제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건강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처음에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장인어른은 술에 취해 누워있었습니다. 오늘은 또렷하고 맑은 얼굴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두 가족과 각각 기념사진을 찍은 후 12시에 랑덜비를 출발했습니다.


랑덜비 치옥에서 콤샤르 치옥으로 가는 길에 산사태가 나서 무너진 도로에 잠시 내렸습니다. 곧 우기가 되기 전에 가능한 빨리 공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여기는 땅 밑으로 큰 파이프를 묻고 그 위를 콘크리트로 덮어야 합니다. 물이 많이 흐를 때는 위로 흐르고, 평소에는 파이프로 흐르도록 하면 좋겠어요. 산사태로 무너진 곳은 흙과 돌을 퍼내고 축대를 쌓아야 합니다.”

이렇게 물이 길 위로 흘러서 진흙탕이 되거나 도로가 막히는 구간이 20여 곳이 되었습니다.

다시 울퉁불퉁한 산길을 1시간 30분 동안 달려 콤샤르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마을에서 준비해 준 점심 식사를 먹고, 곧바로 다락논 농업용 수로를 확인하러 갔습니다. 먼저 제1수원지에서 내려오는 수로를 확인했습니다.


산사태가 나서 수로가 크게 무너져 있었습니다. 게옥 책임자는 폭 1m, 깊이 65cm 수로를 1km가량 놓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은 현장을 답사해 보고 의견을 말했습니다.

“큰 물줄기는 두고, 논으로 나눠지는 수로를 시멘트로 작업하면 어떨까요? 무너져 내린 곳은 축대를 쌓고 시멘트를 바르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나 큰 물줄기는 공사를 하려면 일이 너무 커져요. 당장 이 물을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요?”

“당장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2수원지에서 내려오는 물은 아예 사용을 못하고 있습니다. 수로를 보수하는 게 필요합니다.”

수로를 따라서 주욱 내려가 보았습니다. 수원지에서 논까지는 수로가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논에서부터는 아무런 작업이 안 되어 있어서 물이 많이 유실되고 있었습니다.



농업용 수로 답사를 마치고 발도 게옥 공무원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현재 발도 게옥 자체에서 제1수원지에 대해서는 부탄 정부의 13차 5개년 계획에 파이프로 농업용 수로를 보수하는 것을 제안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사업 자체가 통과될지 아직 모르고, 예산을 받아도 바로 집행이 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었습니다.


스님이 발도 게옥의 공무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제1수원지와 제2수원지의 경작 면적이 어떻게 돼요?”

“제1수원지로 경작하는 면적은 36ac이고, 제2수원지로 경작하는 면적은 165ac입니다.”

“그러면 제2수원지도 한번 가봅시다.”

제2수원지에서 내려오는 농업용 수로의 상태도 점검해 보기로 했습니다. 촉바(마을리더)는 수로의 곳곳에 보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제2수원지를 향해 산속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길이 험했습니다. 스님은 수로부터 수원지까지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수로를 연결하고, 이쪽과 저쪽에 수문을 각각 만들어야 합니다. 물을 사용할 때는 한쪽을 잠그고 다른 한쪽을 열면, 물이 논으로 많이 내려갑니다. 물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반대로 하면 되고요. 수로를 만들고 난 다음에는 다시 무너지지 않게 돌을 쌓아 놓아야 합니다.”

수로 공사를 어떻게 할지 발도 게옥 공무원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한 후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수원지에서 내려와 5시 30분부터는 발도 게옥 사무실에서 이 지역 책임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과 발도게옥 부책임자(멍미), 행정관, 농업담당관, 젬강종각 기획담당관과 전체 농업책임자, 내각실 공무원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먼저 오늘 발도 게옥을 둘러본 소감을 나눈 후 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마을에서 모내기를 언제하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마을에서는 마른 땅에 나무를 일부 베고 불을 지른 뒤 거기다 볍씨를 뿌려 45일간 키운 후 모내기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모를 1개씩 심고, 간격을 촘촘하게 심고 있다고 했습니다. 땅을 농사 직전까지 말렸다가 모내기를 하기 직전에 물을 대려고 하니 많은 물이 필요했습니다.

농업 전문가인 주형로 선생님은 유기농법과 자연농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추천했습니다.

“벼도, 옥수수도 줄을 맞춰 심으면 효율이 높습니다. 모든 식물은 태양과 공기의 유통을 통해서 자라기 때문이에요. 줄을 맞추면 태양을 골고루 볼 수 있고,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생산효율이 높아집니다. 한 번에 다 바꾸려고 하지 말고 한 곳을 지정해서 실험을 해보고 소출이 높으면 차차 확대해 나가는 방식으로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충분해 보입니다. 한 번에 물을 주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물을 미리 주면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젬강의 농업담당관은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해온 방식대로 농사를 짓고 있고, 벼를 촘촘하게 심어야 잡풀이 나지 않고, 더 많이 수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모판 만들기, 모내기, 논에 물 대는 방식 등 농법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한 후 오늘 답사하고 온 도로 보수, 농업용 수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했습니다. 논의를 마치고 스님이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협력해서 할 수 있다면 JTS에서는 얼마든지 자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일이 많아져서 주민들에게 너무 무리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자는 대로 지원해 주고 싶습니다.”

이 부분은 발도 게옥 책임자들이 마을 주민들과 의논을 한 후 JTS에 다시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사이 해가 저물었습니다. 점점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녁 7시가 되어 회의를 마치고 오늘 자기로 한 콤샤르 마을의 주민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식사로 다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정전이 되어서 촛불을 켜고 밥을 먹었습니다.



밤새도록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스님과 JTS 활동가들은 촛불을 켜고 업무를 한 후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평생 도와달라는 언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북에서 태어나 살다가 2015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현재 이혼하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곧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첫째 언니가 북한에서 20년간 저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둘째 언니는 17년째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북한에 있는 가족을 챙기지도 않을뿐더러 저를 너무 힘들게 합니다. 욕설이 일상이고 언젠가는 저와 아들을 죽여버린다는 섬뜩한 말을 해서 심리상담도 받았습니다. 여러 번 인연을 끊어보려고도 했지만 마음이 쓰여서 다시 연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결심을 해도 여러 범죄와 연관되어 벌금과 빚이 있는 둘째 언니가 걱정이 돼요. 작년에는 600만 원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언니가 유방암 3기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현금 500만 원과 생활비에 사용하라고 카드를 내줬습니다. 언니는 아파트 보증금과 월세까지 지원받기를 요구합니다. 저는 북한에 있는 큰언니와 조카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둘째 언니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언니는 평생 제가 마음 편히 살지 못하도록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고, 또 제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돈 얘기를 합니다. 스님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북한에서 어렵게 한국까지 와서 제 한 몸 자립해 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북한에 있는 가족과 한국에 있는 가족까지 돌보는 어려운 일을 해왔네요. 먼저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 보내드립니다.

질문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인생살이가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다 이루며 살 수 없어요. 부모님이 오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일찍 돌아가셨죠. 첫째 언니의 가족도 한국에 왔으면 좋겠지만 오지 못하고 있죠. 둘째 언니가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았으면 좋겠지만 뜻대로 안 됩니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게 다 될 수가 없습니다.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루어지면 다행한 일이에요.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필요하다면 다시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다 좋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에요. 인생을 길게 살아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결과까지 꼭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고 해서 결과까지 꼭 나쁘다고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게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집착하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괴로움이 따릅니다. 그래서 원하는 일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남이 나한테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북한에 있는 큰언니가 자신을 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하거나 매달 몇천 달러씩 보내달라고 해요. 그렇더라도 질문자가 다 해줄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 언니가 아파트 보증금과 월세를 요구한다고 해서 질문자가 다 해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남이 나한테 원하는 일을 내가 다 해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다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대망상이에요. 자기의 현재 상태를 실제보다 턱없이 크게 평가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생각이 바로 과대망상입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정도의 일은 해주고, 못 하면 “죄송합니다”하고 끝을 맺으면 돼요.

둘째 언니는 이미 성인이니까 자립해서 살아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습니다. 북한에 있는 큰언니는 스스로 노력을 안 해서라기보다 현재 북한의 경제 사정상 노력해도 잘 살기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서 약간의 도움으로도 북한에 사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에 사는 둘째 언니는 정신만 차리면 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근데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것도 질문자 생각일 수 있어요. 둘째 언니의 정신 상태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민권이 있고 주민등록증이 있으면 나라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굶어 죽는다거나 병들어 죽을 때까지 방치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암 말기가 되면 죽습니다. 그건 돈이 없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둘째 언니를 ‘도와줄 거냐? 안 도와줄 거냐?’ 이렇게 고민하지 마세요. 일단 ‘언니의 삶은 언니의 삶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언니를 안 도와주더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에 언니가 죽어도 질문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어렵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형제간에 애틋한 정이 있습니다. 오히려 잘 살았으면 남남처럼 살아갈 수 있는데 어렵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게 잘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돈을 주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하면 내 마음이 편한 만큼만 주면 됩니다. 너무 많이 주면 내 마음이 불편하고 또 아예 안 줘도 내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돈을 어느 정도 줬을 때 내 마음이 편한지를 잘 살펴보세요. 만약에 언니가 천만 원을 달라고 하는데 천만 원을 다 주면 내가 돈이 없어 불편하고, 안주면 내 마음이 또 불편하잖아요. 그러면 내 형편이 되는대로 100만 원이나 200만 원 정도를 주면 됩니다. 언니한테 ‘미안해요. 돈이 이거밖에 없습니다.’ 하고 그냥 주고 말아버리면 됩니다. 달라는 만큼 다 주지는 못해도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줬기 때문에 마음은 덜 불편할 거예요.

어차피 언니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할 만큼만 하고 언니가 욕을 하든 악담을 하든 ‘언니가 힘들어서 그렇구나’ 그냥 이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걸 너무 개의치 마세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언니가 뭐라 그러든 신경을 쓰지 마세요. 언니가 만약 죽는다면 장례를 치러주면 되지 그걸 ‘내 잘못이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겠다.’ 이런 얘기하는 이유는 뭐예요? ‘돈을 더 내놔라’ 이 얘기예요. ‘너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어? 죽으면 네 마음이 아플거 아니냐? 돈 내놔. ‘이렇게 협박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에게 뭘 요구해서 자기 요구가 안 들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밥 안 먹어’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조금 더 크면 ’밥 안 먹어‘ 라고 해도 엄마가 ‘그래. 먹지 마라’ 라고 하죠. 그러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 안 해’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엄마가 ‘아이고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하면서 또 요구를 들어주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조금 더 커서 ‘공부 안 해’라고 하면 엄마가 ‘그래. 하지 마라’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러면 이제 ‘나 집 나갈 거야’ 이럽니다. 중고등학생이 집을 나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엄마가 ‘아이고 알았다. 알았다.’ 하면서 또 지는 거예요. 근데 다 큰 애가 ‘집 나갈 거야’ 이러면 엄마가 ‘그래, 나가’ 이렇게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꺼내는 말이 뭐에요? ‘나 죽을 거야. 죽어버릴 거야.’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부모는 ’자식이 죽는다.‘ 그러면 방법이 없거든요.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다 자기의 요구를 듣게 하기 위한 수단이에요. 둘째 언니도 온갖 얘기를 해도 안 되니까 마지막 수단으로 ‘내가 이렇게 죽어버리면 네가 후회할 거야’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래. 죽어라’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진짜 죽으면 질문자의 잘못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이고 언니 죽으면 안 되지. 살아야지’ 이렇게 말하고, 천만 원을 달라고 해도 백만 원만 보내주세요. ‘언니 나 돈 없어. 그래도 언니가 어렵다니까 이거라도 보내줄게. 나머지는 내가 더 줄 수가 없어’ 이렇게 말하고 편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그동안 마음고생했던 것들을 스님 앞에서 제대로 다 표현하지 못할까 봐 걱정도 했는데요. 마치 제 마음속에 다녀오신 것처럼 짚어주셔서 놀랐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언니 인생보다 제 인생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북한 사람들 도와주시는 것을 제가 유튜브로 많이 봤는데요. 저도 북한 사람으로서 정말 많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남한에 잘 정착해서 용기를 갖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 같지만 세상일은 또 몰라요. 이러다가 남북 관계에 물꼬가 트이고, 서로 오고 가고 하면 질문자가 북한에 가서 여기서 모은 돈과 기술로 가게를 열 수도 있습니다. 10년이든 20년이 지난 뒤에는 지금의 남한 사람들보다 더 잘살 수도 있어요. 인생은 모르는 거예요. 외국에서 온 사람 중에 한국에 불법 체류까지 하면서 어렵게 살다가 지금은 한국 사람보다 더 잘 사는 외국인도 있어요. 그러니까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일은 젬강 종각으로 이동하여 문화유산마을을 답사하고 젬강 주지사와 회의를 한 후, 다시 트롱사로 이동합니다. 저녁에는 트롱사 주지사와 회의를 하고 밤늦게 푸나카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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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순

감사합니다!

2024-05-01 14:12:52

풀꽃

스님 고맙습니다._()_

2024-04-29 19:06:32

임영현

일어나는 마음을 잘 살피며 지내겠습니다. 오늘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4-29 18: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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