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16 두북 어르신 봄나들이
“자식이 결혼도 안 하고, 좋은 회사도 그만두고,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두북 정토수련원 근처 12개 마을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새벽 6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남원 실상사로 향했습니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진행을 못 하다가 작년 가을부터 다시 나들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두북 수련원에서는 새벽부터 부산·울산 지부에서 30여 명의 봉사자가 마을마다 어르신들을 모셔왔습니다. 어르신들 140여 명을 태운 버스 4대가 아침 7시에 남원 실상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9시 40분에 실상사에 도착했습니다. 법당을 참배하고 나오자 실상사 회주이신 도법 스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다실로 자리를 옮겨 도법스님과 주지스님, 실상사에 거주하는 스님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근황을 나눈 후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하는 사이 어르신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어르신들은 화광법사님과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고 경내에 있는 선재집으로 모이셨습니다.


스님은 차담을 마치고 나와 환하게 웃으며 어르신들을 맞이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스님을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오셨어요? 저는 서울에서 바로 내려왔습니다.”

“아이고, 스님. 오랜만이다! 몸은 건강한교?”

“부탄에 갔다가 좀 무리를 했더니 지금 좀 안 좋아요.”

“스님 보러 왔어예.”

선재집에 들어가자 이미 어르신들이 많이 앉아계셨습니다. 스님은 선재집 안을 한 바퀴 돌며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다들 오신다고 수고하셨어요!”

모든 어르신이 자리에 앉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했습니다.


이어 스님이 이곳 실상사의 회주인 도법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먼 길 오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저희가 도착한 이곳은 남원 실상사입니다. 실상사는 금산사의 말사로서 아주 오래된 통일신라 시대 절입니다. 실상사 들어봤습니까?”

“네”

“앞에 계시는 분이 도법 스님이신데요. 여기에 오랫동안 사셨고 회주로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위해서 도법 스님에게 법문을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도법 스님이 어르신들을 위해 짧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앞에 바라보이는 것은 지금은 가려져 있는데 지리산입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함께 일하는 100여 명의 대중들이 한마음으로 여러분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먼 길을 와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실상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법륜 스님에 대해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동네 사람이라 다 아는데 무슨 소개를 해요?” (웃음)

스님이 만류를 했지만 도법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이 얼마나 대단한 스님인지 잘 모르죠? 아세요?”

“네”

“그럼 잘 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서 법륜스님을 위해서 크게 박수 한 번 치시죠?”

어르신들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박수 소리를 보니까 분명한 것 같네요. 이렇게 훌륭하신 법륜 스님이 직접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실상사에 온다고 하셔서 어떻게 잘 맞이해야 하나 이런저런 걱정들을 했어요. 그런데 걱정해 봐야 별수가 없고 그냥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합니다. 실상사는 1200년 역사가 있는 절인데요, 오늘 하루만큼은 친정집에 왔다고 생각하시고 실상사를 마음껏 잘 쓰고 가십시오.

그러면 실상사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는 죄 많은 업보 중생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믿을 때 부처님은 '모두가 죄 많은 업보중생인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그렇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 많은 업보 중생이 아니라 본래 부처라고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죄 많은 업보 중생이다' 하고 생각할 때와 '나는 본래 부처다' 하고 생각할 때를 비교했을 때 어떤 게 더 좋으신가요?”

“본래 부처라고 생각할 때요.”

“실상사에서는 이걸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부로 '나는 죄 많은 업보 중생이다' 하고 잘못 알고 있었다면 단호하게 내치세요. 실상사에 다 던져버리고 가세요. 나는 내 삶을 내 마음껏 만들어 갈 수 있고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임을 확실하게 깨쳐서 본래 갖고 있던 부처를 갖고 가시길 바랍니다.

내가 본래 부처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노는 김에 염불 한다.' 하는 옛말 다 아시죠? ‘나는 본래 부처이고, 노는 김에 염불 하는 수행을 열심히 하면 만사형통이다’ 이 말을 가슴에 담고 가시면 실상사에 온 보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본래 부처니까 노는 김에 염불 하는 삶을 삽시다. 고맙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어르신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나들이를 몇 년 동안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이 많으실 테니 오늘은 마이크를 여러분께 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 얘기해 보세요. 제가 고민 상담하는 스님인 거 아시죠? 동네에 어려운 점, 개인적으로 어려운 점, 절에 와서 물어보고 싶은 점이 있으시면 누구든지 얘기해 주세요.”

어르신들은 인생 고민을 비롯하여 궁금한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등 자유롭게 손을 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분은 자식이 좋은 회사에 다니다가 갑자기 퇴사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식이 결혼도 안 하고, 좋은 회사도 그만두고, 어떡하죠?

“올해 서른둘 인 자식이 걱정입니다. 좋은 회사에 잘 들어가서 딱 2년 다니고는 올해 4월 1일부로 퇴사를 했습니다. 더 좋은 데 가겠다는 건데 부모 입장에서는 회사는 뭐 그만하면 괜찮고 그 나이에 결혼만 하면 되겠거든요. 결혼할 상대도 있었는데 헤어져 버리고, 자기는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한다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모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 그냥 놔두어야죠.” (모두 웃음)


“저도 그냥 놔두고 있는데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그 나이 되면 결혼도 해야 하는데 저러고 있는 걸 보니까 자꾸 짜증이 올라옵니다.”

“안 보면 됩니다.”

“저도 속으로 ‘네 인생이니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고 생각은 합니다. 그래도 스님께 더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한번 물어봅니다.”

“네 인생 네 마음대로 살라는 말을 안 해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삽니다. 그냥 놔두면 돼요. 스무 살이 넘으면 성인입니다.

제비 크는 거 보셨죠? 제비가 알에서 바로 깨어 나온 새끼일 때는 어미가 작은 벌레를 물어 와서 새끼마다 돌아가면서 입에 넣어줍니다. 그런데 새끼 제비가 조금 자라서 하얀 털, 노란 털이 빠지고 까만 털이 나오기 시작할 때쯤이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그때부터는 어미 제비가 벌레를 물고 와서 새끼 입에 넣어주지 않습니다. 어미가 입에 벌레를 딱 물고 가만히 있으면 새끼가 짹짹거리며 와서 엄마 것을 뺏어 먹어요. 어미는 벌레를 새끼 입에 안 넣어주고 가만히 물고만 있습니다. 그러면 새끼가 막 몸부림을 치면서 벌레를 뺏어 먹으려다가 가끔 제비집에서 한 마리씩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때부터는 제비 새끼의 크기가 달라져요. 똑같이 자라다가 먹이를 뺏어 먹을 때부터는 좀 더 많이 뺏어 먹은 놈이 먼저 큽니다. 그보다 늦게 크는 놈도 생겨나기 시작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먼저 커서 날아가는 제비가 있고, 늦게 자란 제비는 그보다 며칠 뒤에 날아갑니다.

어미 제비가 새끼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정말 새끼를 아끼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예요. 새끼는 어미 입의 벌레를 뺏어 먹는 행동으로부터 벌레 잡는 법을 배웁니다. 어미 제비는 새끼가 나중에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그러다가 한 마리가 떨어져 죽어도 그걸 각오하고 훈련을 시켜야 새끼 제비가 커서 자기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미가 성장해 가는 새끼 제비에게 계속 벌레를 먹여주면 새끼 제비는 스스로 벌레를 잡을 수 없어요. 그러면 다 죽게 되겠죠.

사랑은 이렇게 맹목적으로 도와주는 것만 사랑이 아니에요. 아이가 어릴 때는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게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시행착오를 거듭하도록 한 발 떨어져서 지켜봐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잘못도 하고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그 시기에 필요한 사랑이에요.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때 ‘나쁜 애다’, ‘불효다’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법륜 스님이 고등학교 다니다가 절에 들어갔을 때 부모님이 보기에는 찬성할 일이었겠어요, 반대할 일이었겠어요?”

“반대할 일이요.”

“그런데 제가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제가 지금의 법륜 스님이 됐겠어요, 안 됐겠어요?

“안 됐어요.”

“그럼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게 좋아요, 안 듣는 게 좋아요?”

“안 듣는 게 좋습니다.” (모두 웃음)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들어야 어른이 되는 거예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게 좋은 게 아닙니다. 부모님의 말씀만 듣게 되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노예가 됩니다. 부모가 너무 알아서 다 해주면 자꾸 부모만 찾게 됩니다. 스스로 연애도 할 줄 모르고, 취직도 못 하게 되는 거예요.

요즘 ‘히키코모리’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방에 처박혀서 문밖에 안 나오고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방에 처박혀 있거나 밖에 나가서 딱 자기 용돈만 벌어 쓰고는 취직도 안 하고 집도 안 사고 결혼도 안 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한국도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되는 이유는 과잉보호해서 아이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 남자와 여자를 서로 좋아할 때 그냥 내버려 두어야 연애도 하고 울어보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야 나중에 자기가 알아서 결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어디 연애나 하느냐!’고 야단을 치면 연애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큽니다. 어릴 때부터 설거지도 하고, 방 청소도 하고, 벽에 못도 치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그런 사람들이 결혼해서 둘만 있게 되면 청소도 제대로 못 하고 밥도 할 줄 몰라서 쩔쩔매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옛날에 어렵게 살 때는 한 방에 네 명, 다섯 명이 살았기 때문에 결혼하면 적어도 월세방을 얻더라도 두 명만 살 수 있는 방을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결혼하면 환경이 더 좋아지는 셈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그렇지 않죠. 넓은 부모님 집에서 자기 방 가지고 살면서 엄마가 밥과 빨래까지 다 해주는데, 그러다 결혼을 하면 오히려 집이 작아집니다. 밥도 자기가 해야 먹을 수 있고, 청소도 자기 손으로 해야 해요.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겁니다. 경제 상황이 좋아지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에요. 우리가 가난하고 못 살 때는 장가를 못 가거나 시집을 못 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장가를 안 가거나 시집을 안 가는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됩니다. 결혼해도 자식을 안 낳는 부부가 많고요. 질문자는 세상이 이런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다면, 스님이 되든지, 혼자 살든지, 결혼하든지, 직장을 그만두든지, 취직하든지, 신경을 안 써야 해요. 제가 출가해서 절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저희 어머니가 제 멱살을 잡고 ‘집에 가자’ 해서 제가 집으로 가버렸다면 오늘날 법륜 스님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니 자식이 부모의 말을 안 들어야 잘 되는 경우도 있는거예요. 물론 저희 어머니가 이 말을 들으면 속이 터지시겠지만요. 같은 시골에 살았으니 여러분들은 우리 집에 풍파가 좀 많았던 거 알잖아요? 자식들이 감옥도 가고 겪은 일이 많아서 어머니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께 ‘어머니, 그래도 저는 어머니 속을 안 썩였잖아요’ 하고 얘기했어요. 사실 제 생각에는 제가 어머니한테 걱정을 끼친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돈을 가져갔나, 논을 팔아먹었나, 무슨 사고를 친 적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속을 썩인다, 썩인다 해도 너보다 더 어미 속을 썩인 게 어디 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절에 간 것보다 어머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일이 없었다는 거죠. 저희 어머니는 그게 제일 가슴이 아팠다고 하시니 저와는 생각이 많이 달랐던 겁니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이 어느 때에 장가를 가야 하고, 어느 때에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비 새끼가 다 자라서 날아가면 어미가 계속 따라다닙니까, 안 따라다닙니까? 제비도 어미가 새끼를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다 자란 다음에는 그냥 각자 알아서 사는 거예요. 병아리가 어릴 때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어미가 막 병아리를 품고 보호하기 위해 사람한테도 덤빕니다. 그런데 병아리가 제법 커지면 사람이 잡아먹기 위해 데려가도 어미 닭이 신경을 안 씁니다.

여러분들이 자식에 대해 너무 집착하면 자식한테도 좋을 일이 없어요. 어머니가 늘 제 생각을 하면서 운다면 제가 절에 있으면서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그러니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자기 알아서 살도록 놔두세요. 알아서 살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절로 알아서 살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자식 걱정은 잊어버리시고, 본인이나 잘 사세요.”

“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개인적인 고민뿐 아니라 농촌에 대한 고민도 꺼내놓았습니다.

  • 300평 미만이면 영농 보조금을 못 받아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떡하죠?

  • 4대 외동아들에게 산소를 없애서 무거운 짐을 넘겨주고 싶지 않은데, 산소를 그대로 두면 자연적으로 없어지는 걸까요?

  • 큰 절에 가는 게 좋은지, 작은 절에 가는 게 좋은지 고민입니다. 여러 절에 인연을 두어도 괜찮나요?

  • 실상사 주위에 귀농한 사람들이 많은데, 두북 수련원 주위 마을도 공동체 마을을 가꾸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제 농사지을 사람이 없습니다. 좋은 해결책이 없을까요?

  • 아들의 몸무게가 100kg가 넘고 살이 너무 쪄서 걱정입니다.

  • 울산에 사는 농민들을 위해서도 한번 강연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스님께서 바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스님이 간단하게 공지를 했습니다.

“나가서 산책하시고 밥 준비가 다 됐다고 부르면 오세요. 점심을 여기서 먹은 후 좀 노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사이 봉사자들은 분주히 어르신들의 식사를 차렸습니다.




스님은 공양간으로 가서 음식을 준비해 준 실상사 관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곧 식사 준비를 마치고 12시가 되어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식당이 좁아서 70대 이상 어르신은 식당에서 드시고, 70대 이하 어르신은 야외 천막 아래에서 식사하셨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이 푸짐하게 점심을 드실 수 있도록 계속 음식을 날랐습니다.


스님은 얼른 공양을 마치고 식당 안과 밖을 돌며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많이 잡수세요.”

“아이고, 고맙데이.”


스님은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도법스님과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다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식사를 마치고 12시 50분부터 다시 선재집에 모여 여흥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1시가 넘어 선재집으로 가자 어르신들이 마이크를 잡고 한창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뒤편에 앉아 박수를 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웃다가도 한 세상이고

울다가도 한 세상인데

욕심 내봐야 소용없잖아

가지고 갈 것 하나 없는데♬”

사회자는 스님에게도 노래를 한 곡 해줄 것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오늘 여기 제 동창이 세 명 왔습니다. 다 함께 노래 한 곡 하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청으로 세 분이 나왔습니다.

“우리 넷이 초등학교 6년을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절에 들어가서 노래에 ‘노’자도 모릅니다. (웃음) 염불 밖에 안 나오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밖에 몰라요.”

스님과 동창생들은 초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스님의 마이크를 받아 어르신들은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르신들은 마음을 다해 노래했습니다. 박자가 틀려도, 음정이 틀려도 가사 속에 세월이 녹아 그대로 명곡이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 뒤에 신청하신 분들은 1절만 불렀습니다.



아쉽지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2시가 되어 선재집 밖으로 나와 다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도법스님이 제안한 구호 ‘피어라!’를 외치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하나, 둘, 셋, 피어라!”

새벽부터 수고한 봉사자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사진을 찍고 어르신들을 모시고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스님은 버스 앞으로 가서 어르신들이 모두 버스에 타기를 기다렸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손을 흔들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어르신들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을 태운 네 대의 버스가 모두 떠나고 스님은 도법스님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덕분에 어르신들 나들이를 잘 마쳤습니다.”

곧바로 서울로 출발해 3시간 30분을 달렸습니다.

저녁 6시 30분에 서울에 도착한 후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곧바로 7시부터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부탄 비구니재단 사무총장 타시 박사님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지난 부탄 방문 시에 논의를 해야 했는데 답사 일정으로 논의를 못 하고 와서 온라인으로 급히 회의를 열었습니다.

현재 부탄 정부와 MOU를 체결하기 전에 결정해야 할 내용들에 대해 사전 토론을 충분히 한 후 저녁 8시 3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을 보고 실내에서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한 후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한 후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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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숙

스님 이 부처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

2024-04-23 12:18:24

임영현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걸림없이 사는 삶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제비의 지혜처럼 자녀들을 양육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4-22 08:31:2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4-22 06: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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