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4 울산교육청 초청 강연, 나무 심기 2일째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울산교육청 초청으로 학부모를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식목일을 맞이하여 거사님들과 함께 나무를 심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막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 거사님들이 도착하여 나무를 심기 위한 도구를 챙기고 있었습니다. 평일이라 모두 직장에 연차를 내고 봉사를 하러 왔습니다. 먼저 스님이 양해를 구했습니다.

“주말도 아닌데 날짜를 잡아서 죄송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나무 심기가 늦어지니까 좀 무리해서 날짜를 잡았습니다. 모레는 제가 부탄을 가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직장에 연차를 내고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전에 강연이 있어서 오후부터 참여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거사님들은 곧바로 나무 심기 울력을 시작하고, 스님은 오전 9시에 울산교육청으로 향했습니다. 곳곳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작년 4월 새로 당선된 천창수 울산시 교육감이 두북 수련원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며 스님의 강연을 요청한 적이 있었고, 이후 작년 10월에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고, 오늘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을 요청했습니다.

강연이 열리는 울산교육청 대강당에 도착하자 천창수 교육감을 비롯하여 400여 명의 학부모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의 소개에 이어서 오전 10시에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천창수 울산시 교육감이 인사말을 한 후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여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15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딸이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다며 아빠로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요?

“11살과 6살 된 두 딸을 둔 아버지입니다. 요즘 첫째 딸이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사춘기를 맞은 딸과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질문자는 딸이 사춘기인지 어떻게 알아요? 무엇이 사춘기입니까? 우리 아이에게 사춘기가 일찍 온다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게 보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대부분 말을 안 듣는 걸 기준으로 삼는 것 같아요.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웃음)

아이가 부모 말을 안 듣기 시작하면 ‘우리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려나 보다’ 하고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한 번도 부모 말에 거역하지 않고 자란 아이는 자립적인 인간이 되기 어렵습니다. 부모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아이의 육체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정신도 독립하는 과정이 사춘기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를 따라 배웁니다. 어떤 물건을 두고 ‘이것은 뜨거우니 만지지 마라’ 하면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안 만져요. 하지만 사춘기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인이 직접 만져보고 ‘앗, 뜨거워!’ 하고 경험해 봅니다. 그제서야 ‘엄마 말이 맞네’ 합니다. 모두 자기가 직접 확인을 해야 해요.

자식의 입장에서는 어른이 되려면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부모는 말을 잘 들어야 좋은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으로는 내 말을 잘 들으니까 좋을지 몰라요. 그런데 사춘기 때 부모의 말을 잘 들은 자식은 자칫 죽을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가령 부모가 ‘지금 너는 남자친구를 사귀면 안 돼!’ 이렇게 말해서 그 말을 잘 들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아이가 사춘기 때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막아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나중에 대학을 가서도 남자 친구 사귀는 걸 못합니다. 본인이 이성을 사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귀는 방법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자라나서 성인이 되면 엄마가 나서서 남자친구를 구해줘야 되고, 취직도 시켜줘야 되고, 결혼도 시켜줘야 되고, 손자까지 봐주어야 합니다. 결국 평생 자식의 뒷바라지를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가 청소년일 때는 이성 친구도 사귀고, 여러 가지 사고도 쳐보면서, 스스로 어떤 문제든 풀어보고 배워나가야 합니다. 아이가 겪는 모든 사건이 성장에 밑거름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게 좋은 일이에요. 부모가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일찍 왔다’고 할 때 그 기준을 확인해 보면 대부분 부모의 말을 안 듣기 시작한 시점을 말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말을 안 들으면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일찍 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그때 비로소 성인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원래 육체의 성장은 13세가 되면 성인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성체(成體), 즉 생식 능력이 있는 성숙한 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만약 학교 선생님이 청소년과 연애를 했다면 교사 자격은 박탈되지만 상대의 나이가 13세가 넘었기 때문에 형사처벌의 대상이 안 됩니다. 13세가 넘으면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부 나라에서는 나이를 약간 올려서 15세로 적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성인 대우를 해주는 나이는 만 나이로 19세잖아요. 그래서 13세에서 19세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청소년 문제입니다. 육체는 성인이 되었는데 정신적으로는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으니까 이 나이 때에 청소년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청소년 문제가 없었습니다. 15살이 되면 결혼을 하고 성인 대우를 해 주었기 때문에 청소년 문제 자체가 아예 생겨날 수가 없었어요. 육체는 다 성장했는데 정신적으로는 성인으로 인정을 안 해 주니까 성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15살이 된 청소년이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 사람들은 큰일이 났다고 하지만 저는 ‘아, 딸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구나’ 이렇게 봅니다. 부모도 ‘아, 우리 딸이 건강하네’ 이렇게 보고, 이미 생긴 배 속의 아이를 낳을 것인지, 낙태를 할 것인지, 입양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의 말을 안 듣는다는 기준으로 무조건 사춘기라고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사춘기는 아이가 성인이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봐주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사춘기 시절에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나가 살기 위해 하나가 죽어야 할까? 같이 사는 길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어요. 지금 청소년들이 그런 의문을 어른들에게 얘기하면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묵살해 버릴 수 있습니다. 처한 상황은 좀 다르지만 부처님도 그 질문에 대해 아무에게도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고민하고 탐구했어요. 이 의문이 바로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그저 지켜봐야 합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가 모범을 보여주며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사춘기에는 아이를 놓아두어야 합니다. 아이가 요청하면 도와주더라도 그 외에는 간섭하면 안 됩니다. 또 부모가 답답해서 아이에게 속마음을 다 말하라고 다그쳐서도 안 됩니다. 속마음을 누구에게나 다 말하고 다니면 위험하잖아요. 그렇게 잘못 훈련이 되면 안 됩니다. 숨길 것은 숨길 줄도 알아야 해요. 그렇게 이 세상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춘기에는 아이가 위험해 보이면 약간 조언을 하되 그 외에는 직접 시행착오를 거듭하도록 지켜봐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 말을 안 듣는다고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어요. 별일이 아닙니다.

남편이나 아내에게 큰소리치고, 자신의 부모도 돌보지 않고, 본인 성질대로 살고, 그러면서 아이한테는 ‘내 말을 잘 들어라’ 하면 아이는 속으로 ‘엄마는 할머니한테 잘하나?’, ‘엄마는 아빠한테 잘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입 밖으로 말을 안 할 뿐이에요.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이런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말을 잘 듣던 애가 갑자기 저항을 한다며 당황해해요. 그러나 이 저항은 그동안 아이에게 심리적인 억압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라 그동안 감춰져 있던 마음이 비로소 드러나는 거예요. 이럴 때는 아이가 버릇없이 군다며 꾸짖기보다는 ‘어떤 심리적 억압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반발을 할까’ 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 주어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살펴서 풀어주어야 해요. 그렇다고 무조건 ‘엄마가 잘못했다’ 하고 사과하라는 건 아닙니다. 부모가 잘못한 것은 없어요. 다만 성질이 좀 더러웠을 뿐이에요. (웃음)

부모가 이렇게 다가가야 아이와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연애를 했다고 야단을 치면 아이는 엄마에게 입을 닫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더 큰 사고가 터져요. 아이는 세상 누구 하고도 못할 이야기를 엄마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 내가 남자친구가 있는데 하룻밤을 잤어’ 이렇게 말하면 ‘이야, 너는 엄마보다 빨리 잤다’ 이렇게 받아주면서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약간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 조언을 해야 해요. 덜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놔두고요. 이렇게 아이와 소통을 할 수 있어야 아이가 정말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늘 파악을 할 수 있습니다. 선을 정해서 그 이하로는 허용하고, 그 이상이 되면 ‘얘야, 그 이상은 안 된다’ 하고 조절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부모가 무조건 야단을 치니까 아이들이 엄마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친구에게 얘기하거나 밖에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 아이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속을 끓이기보다는 아이와 솔직하게 소통을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저도 부모님의 말을 안 들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잘 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절에 들어갔으니 저희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그런데 부모의 말을 안 듣는 아이가 더 잘 될 때도 있습니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잘 되어 봐야 부모 수준밖에 안 되는 거예요.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부모보다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부모보다 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굉장히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아이에게 본인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하세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저 아이가 나보다 크게 되려고 저러나?’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아이가 저항을 하는 게 나쁜 일이 아닙니다. 저항이 드러나야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심리적인 억압이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가 계속 스스로 마음을 억압하며 살거나, 아이가 저항할 때 ‘어디서 엄마한테 대들어!’ 하고 다그치면 아이의 병을 키웁니다. 아이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될 상황이라면 서둘러서 전문가를 찾아가 검진을 받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다 이해를 못 해도 부모는 사랑하는 내 자식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제발 이웃집 아주머니 노릇을 하지 말고 아이에게 부모가 되어 주세요.

여러분은 어떻게 스님이 장가도 안 가고 아이도 안 키워봤는데 저런 걸 다 아나 싶을 거예요. 어떤 사람은 스님이 뭐든 척 보면 안다고 하면서 신비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혹시 몰래 장가를 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는 사실 큰 차이가 없어요. 다만 그 관계가 부부 관계냐, 부모 자식 관계냐, 친구 관계냐, 사업 관계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심리가 작용하는 기본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응용은 여러분처럼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더 잘합니다. 큰 틀에서 원리를 알았다면 이제는 직접 ‘우리 아이가 왜 갑자기 말을 안 듣지?’ 하고 연구를 해야 해요. 이렇게도 시도해 보고 저렇게도 시도해 보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대해야 하는구나’, ‘아이들은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알아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너무 내 의도대로 움직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노예가 됩니다. 때로는 아이의 의견에 대해 ‘그래, 그럴 수 있겠다’ 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아이의 의견을 때로는 받아들이고, 때로는 제지를 해야 아이도 규칙을 지킵니다. 무엇이든 다 지키라고 하면 결국 반발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딱 잘라서 제어를 해주어야 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성질을 내며 싸우지는 마세요. 싸워봤자 어차피 부모는 아이에게 집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열다섯 명과 차례대로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식목일 기념으로 나무를 심는 행사가 있어서 아침부터 두북 정토수련원에 봉사자들이 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무를 심으러 가야 해서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학부모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그 해법은 무엇인지 함께 모색해 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은 두 시간 동안 지혜를 나누어준 스님에게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교육청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서둘러 차에 올라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과 함께 나무를 심기 위해 아침부터 대구경북, 부산울산 두 지부에서 거사님들 12명이 모였습니다. 평일이라 모두 직장에 연차를 내고 왔습니다. 거사님들은 오전 울력을 마치고 라면을 끓여서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거사님들과 함께 라면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스님이 부탄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금 여성 실무자 여섯 명이 부탄에 남아서 집을 수리하기 위해 샘플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부탄에는 시골에도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전기 드릴, 전기 대패, 온갖 기계를 챙겨 가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고 기계가 있으니까 남자가 꼭 필요하지는 않아요. 앞으로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큰일입니다. 왜냐하면 쓸모가 없거든요.

할머니들하고 이야기해 보면 영감 죽고 혼자 살아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답니다. 밥 차려줘야지 온갖 것을 챙겨줘야 하는데 안 그래도 되니까요. 노인정에 가봐도 할머니들이 영감 오는 것을 싫어해요. 영감은 밥을 따로 차려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돈 벌어 줄 때를 제외하고는 남자들은 고려장을 해야 할지 몰라요. 그러니 남자들은 은퇴하면 이제 목에 힘을 빼야 밥이라도 얻어먹고 살 수 있어요.” (웃음)

“남자들은 정년퇴직하고 나면 개털이 됩니다.”

“다들 은퇴하면 어떻게 살래요?”

“스님 따라 부탄으로 봉사나 하러 가야겠습니다.” (웃음)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오후 1시에 나무 심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일나누기를 했습니다. 몇몇 거사님들은 덩굴로 뒤덮인 곳에서 덩굴과 잔가지를 쳐내는 일을 하고, 몇몇 거사님들은 스님과 함께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산 위에는 총 일곱 개의 평평한 땅이 있습니다. 모두 덩굴로 뒤덮인 정글 같은 땅이었는데 스님과 거사님들의 손길로 밭이 되고 과수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래쪽 1단지와 2단지는 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 3단지에는 나무 60여 그루를 심었고, 4단지와 5단지에는 8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몇몇 나무에서는 이제 꽃이 피고 싹이 트고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한 달 전에 잔가지를 쳐내어 새로 정비한 1단지와 2단지가 있습니다.

스님과 향존 법사님은 5단지에 올라가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예초기를 돌리다가 나무가 상해서 죽은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오늘은 빈자리를 보충해서 심기로 했습니다.

5단지에는 대추나무 일곱 그루를 심기로 했습니다. 며칠 전 포클레인으로 구덩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파 놓았습니다. 구덩이마다 먼저 퇴비를 한 삽씩 넣어주었습니다. 어제 비가 와서 땅이 촉촉했습니다. 물은 따로 주지 않고 바로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구덩이가 너무 커서 흙을 묻기 위해 삽질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려서 구덩이에 빗물이 가득 고여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삽으로 물을 퍼낸 다음에 나무를 심어야 했습니다. 거사님들이 웃으며 한 마디씩 했습니다.

“내 평생 물을 퍼내면서 나무를 심어보기는 처음이네요.”

구덩이 안 쪽에 퇴비와 부드러운 흙을 섞은 다음 묘목을 먼저 세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긁어온 부엽토를 덮어주었습니다. 그 위에 흙을 한 번 더 덮어주고 다음 구덩이로 이동했습니다.

구덩이가 하나씩 메워져 나갔습니다.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는 사람을 피해 폴짝폴짝 뛰어다녔습니다.

거사님들은 새로 정비한 1단지와 2단지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1단지에는 감나무 21그루를 새로 심었습니다. 2단지에는 밤나무 31그루를 새로 심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 그 많던 구덩이가 순식간에 메워졌습니다.

스님은 나무를 심으면서 산속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난 두릅, 오가피, 엄나무를 비롯하여 원추리나물까지 다양한 산나물을 발견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두릅을 땄습니다.

야생에서 3미터가 넘게 자란 두릅나무는 도저히 손으로 새순을 딸 수가 없었습니다. 낫으로 가지를 쳐서 새순을 땄습니다.

어제 26그루, 오늘 59그루, 총 85그루의 나무를 모두 심고 오후 4시에 나무 심기를 마쳤습니다.

"자, 이제 정리하고 갑시다. "

사용한 연장을 챙겨 산을 내려와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각자 돌아가며 오늘 함께 일하며 느낀 점을 가볍게 이야기했습니다.

“물을 퍼내고 나무를 심어본 건 생전 처음입니다.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꽃피는 춘사월에 여행을 가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니까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스님과 멀리 떨어져서 일하다 보니까 조금 한가해서 좋았습니다.” (웃음)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도반들을 직접 만나서 함께 일을 하니까 참 좋았습니다.”

“나무를 잘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고 나서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나무를 심었으니까 가끔씩 와서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의논하면서 일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구덩이를 크게 파라고 부탁했던 이유는 예초를 할 때 자꾸 나무를 상하게 해서 그랬습니다. 예초기를 돌리는 사람이 나무를 안 다치게 할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자꾸 나무 가까이까지 날을 대는데 그러다가 나무가 상했어요. 그래서 2년 전에 심은 나무 중에 절반 이상이 죽었습니다. 구덩이를 크게 파면 아무래도 주변에 풀뿌리를 다 걷어내게 되니까 예초를 할 때 편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랬더니 구덩이가 너무 커서 흙으로 메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흙이 물에 젖어서 꽤 무거웠어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무도 함께 심고, 깨끗하게 정비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주말에 날짜를 잡아서 여러분의 생계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사용한 도구를 정리하고 나니 4시 30분이 넘었습니다. 거사님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스님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문경 봉암사로 이동하여 서암 큰스님 열반 21주기 추모 다례재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서울로 이동하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부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만나 로힝야 난민 지원 사업에 대해 의논을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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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감사합니다
새벽 아이로 고민하며 스님의 글이 힘이되었습니다.

2024-04-30 05:11:37

명덕

감사합니다

2024-04-13 07:42:59

임영현

저희 자녀가 저보다 훨씬 대인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넓고 이해심도 깊은 아이를 저의 눈높이로 본 어리석음을 돌이켜 보고 참회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희 자녀에게 깊이 고개숙여 참회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04-11 22: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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