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3 나무심기 1일째, 수행법회, 신라문화원 초청 강연
“중학생 아들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했는데...”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길가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산과 들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들녘에는 봄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봄날입니다.


오늘부터 이틀 동안은 식목일을 맞이하여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비가 오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나무를 심으러 갑시다.”

비가 많이 오는데 나무를 심어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스님이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하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정토회 회원들이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부탄을 답사하고 온 소식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봄비가 촉촉이 내려 온 대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두북 수련원에서 나무를 심을 계획이었는데 나무 심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부탄을 답사하고 어제 귀국했습니다. 부탄은 지금 농사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주로 농수로를 개선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문제, 집이 있지만 내부가 열악해서 내부 시설을 개선하는 문제, 학교 시설 보완이나 학용품, 놀이기구 등을 지원하는 문제 등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 답사하는 중입니다.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서 이번에 저만 입국했고 실무진은 부탄에 남아 계속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부탄 방문 영상을 잠시 보겠습니다.”

3월 24일부터 31일까지 6박 7일간 부탄을 답사한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 보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보신 것처럼 정말 재미있습니다. 한 실무자는 일단 마을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고 해서 다 같이 웃었습니다. 마치 우리 실무자들이 도우러 간 것이 아니라 서바이벌 게임을 하러 간 것 같았습니다. 마을에 가게도 없고,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차를 대절해 산길을 세 시간이나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일을 진행하기가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잖아요. 그곳에도 그 나름대로 고뇌가 있고 행복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혹시 외부의 바람을 몰고 와서 더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흐름을 해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일해보려 합니다.

조금만 개선하면 되는데 몰라서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부탄 사람들은 방 안에 화덕을 만들어서 요리를 하는데 굴뚝이 없어서 불을 피우면 연기가 집안에 가득 찹니다. 연기 위에 물건을 건조시킬 수 있도록 시렁을 설치했지만, 연기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그래서 열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연기는 집안에 남지 않도록 굴뚝을 설치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탄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 방식에 익숙합니다. 일단 몇 개의 샘플을 만들어서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개선이 필요하다면 도울 생각입니다.”

오늘은 지난 2월에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신규 일반회원이 되어 처음으로 수행법회에 참석한 날입니다. 스님은 신규 일반회원들을 환영한 후 정토회 회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는 정토회 회원이 살아가는 핵심 방향입니다. 이 세 가지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은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보시와 봉사가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정토회 회원은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세상의 문제를 내 문제와 분리하지 않고 함께 껴안고 가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보시하고 봉사합니다. 수행을 하는 바탕 위에 전쟁이 없는 평화를 실현합니다. 수행을 하는 바탕 위에 지구환경을 파괴하지 않도록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처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신규 회원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오늘 이렇게 마음을 내서 수행법회에 참석했더라도 다른 일이 바쁘면 흐지부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수행자라는 것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수행법회에 참석해야 해요. 마음이 좀 흐지부지됐다가도 법문을 듣고 ‘아, 내가 수행자지!’ 하고 다시 자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봉사는 꼭 외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으뜸절에서도 할 수 있고, 우리 동네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 회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도를 높이는 일을 해나갑니다. 여러분이 그런 정토회 회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정토회에서 불교대학 진행자가 많이 배출되는 상황을 보면서 학생이 없으면 내 자리도 없어지겠구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관점이 잘못된 걸까요?
  • 평소 저도 모르게 약간은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긴장된 상태에서 벗어나 좀 더 편안할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를 마친 후 스님은 비가 얼마나 오는지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오늘 나무를 심기 위해 서울에서 여광 법사님도 내려오고, 인도에서 온 보광 법사님도 출국을 하루 미루고 달려왔습니다. 인도 상카시아에서 온 김윤태, 안상희 님도 두북 수련원을 찾았습니다.

“나무 심으러 왔는데 그냥 놀 수는 없잖아요. 비를 맞으며 나무를 심어야죠.”

일단 점심식사를 하면서 비가 오는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오후 1시가 되자 비가 조금 잠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비옷을 입고 나무를 심읍시다.”

스님은 비옷을 입은 후 삽과 호미를 들고 일단 산으로 향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2년생 묘목을 양손에 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며칠 전 묘당 법사님이 묘목을 심을 곳마다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내려서 구덩이에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바가지로 물을 퍼내야겠어요.”

대야를 가져와서 구덩이에서 물을 퍼낸 후 흙을 푹신하게 덮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물을 주면서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물을 퍼내면서 나무를 심어보기는 처음이네요.”

빗물을 퍼내면서 모두가 웃었습니다. 묘목의 뿌리를 잘 펴서 곧게 세운 후 파낸 흙으로 구덩이의 3분의 2가량을 채우고, 퇴비도 함께 골고루 섞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낙엽을 덮거나 고운 흙을 조금씩 넣고 손과 발로 여러 차례 다져 주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블루베리 나무 11그루를 3단지에 심었습니다. 이곳은 3년 전에 한 번 나무를 심었던 곳인데 예초를 하면서 나무를 다치게 하는 바람에 묘목이 많이 죽었습니다. 빈 자리마다 보식을 하는 방식으로 묘목을 하나씩 심어 나갔습니다.

비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만 더 심읍시다. 블루베리는 다 심었고, 이제 4단지로 올라갑시다.”

4단지에는 자두나무 4그루와 살구나무 4그루를 심었습니다. 온 몸이 비로 젖고, 땀으로 젖었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나머지는 내일 심읍시다.”

비가 계속 내려서 내일 비가 그치면 나무를 심기로 하고 울력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함께 경주 시내로 나갔습니다. 저녁에 서라벌 문화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근처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정토회 회원이 스님 일행 모두를 식사 초대를 해서 강연을 하기 전에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강연이 열리는 서라벌 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시민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신라문화원은 경주의 특징을 살린 문화재 교육, 보존, 활용 사업을 하며 신라문화의 현대적 가치를 재창출하기 위해 활동하는 곳입니다. 오늘은 개원 31주년을 맞아 ‘서악마을 이야기’ 도서 출판 기념식과 더불어 법륜 스님의 초청 강연을 열었습니다.

스님은 대기실에 머물며 스님을 찾아오는 많은 지역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주낙영 경주시장, 김석기 국회의원, 대덕 스님들, 경주불교학생회 동문회 등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신라문화원 소개 영상을 보고 진병길 원장님이 인사말을 한 뒤 주낙영 경주 시장님의 축사를 듣고 나서 스님이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신라문화원에서 하고 있는 서악마을 가꾸기 사업과 스님이 하고 있는 부탄의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을 예로 들며 창조성이란 무엇이며, 보람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려면

“지금까지는 문화재를 가꾼다고 하면 문화재 보호에만 신경을 썼는데, 신라문화원에서는 문화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꾼다는 관점을 갖고 서악마을을 14년 동안 민간 주도로 만들어 왔습니다. 만약 정부 주도로 이 사업을 했다면 예산이 열 배는 더 들었을 겁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경주이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주에는 워낙 많은 문화재가 있고, 경주 출신 사람들이 경주를 너무나 아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도가 앞으로도 더욱 확산되기를 이 자리를 빌려서 기원을 드립니다.

서악마을 가꾸기 사업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기적인 마음이 끼어들면 자꾸 승패를 논하게 됩니다. 사업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수익이 얼마나 생겼느냐, 지원금을 얼마나 받았느냐, 자꾸 이런 생각들을 하면 그 사업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습니다. 이런 승패를 논하는 마음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이 사업을 통해 얼마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었느냐, 이 사업을 통해 얼마나 주변 환경이 좋아졌느냐, 이런 관점을 가져야 오랫동안 이 사업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익적인 관점을 가질 때 창조성이 나옵니다. 그 결과 여러분의 삶에도 더 많은 보람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남이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제가 요즘 부탄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저에게 만약 돈이 천만 원 있다면,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그들의 삶이 개선되고 그들이 기뻐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보람을 가져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그들을 위하는 일만이 아니라 내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그 일이 지속 가능합니다. 그들의 반응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그 일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남이 알아주지 않을 때 억울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이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나의 노고를 당신이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갖기 때문에 중간에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열심히 일을 했는데 스님조차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바로 어린아이 같은 생각입니다. 남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칭찬이나 대가를 바라게 됩니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참 좋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미움이나 실망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진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법을 자신의 삶 속에서 체험해 나갈 때 법의 가피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재물의 가피를 구하지 말고 법의 가피를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경주 시민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든지 즉석에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세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 중 한 명은 중학생 아들이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가족들에게 예의 없이 행동을 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중학생 아들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했는데...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했었는데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경주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어 하지만 성적이 나빠서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자꾸 자책감에 빠지는 것 같아요. 화도 많이 나는지 가족에게 못되게 굽니다. 아침에 학교에 나갈 때와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가족에게 인사도 하지 않아요. 자기가 원하는 것만 툴툴거리면서 표현하는 등 아주 예의 없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이런 아이를 가만히 봐야 하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지도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와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대화하는 태도도 좋지 않고 ‘자기를 왜 귀찮게 하느냐’라고 짜증을 냅니다. 무척 고민이 되어 스님께 질문드리게 되었습니다.”

“질문자가 생각할 때 아이가 정상적으로 보이나요, 아니면 약간 비정상적으로 보이나요?”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볼 때 아이는 지금 정상이 아니에요. 우선 병원에 가서 아이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아이는 지금 자기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해도 잘 안되는 상태입니다. 부모는 '왜 공부는 하지 않고 게임만 하느냐?'라고 하지만, 아이는 책을 보면 답답해져서 숨통을 트기 위해 게임이라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첫째, 신경정신과에 가서 심리적 병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병이라면 공부보다 치료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팔이 부러지거나 몸이 아픈 것은 병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신적으로 아픈 것은 병이라고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정신 좀 차려라. 너만 정신 차리면 괜찮을 텐데!'라고 말하죠. 굉장히 어리석은 말이에요.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치매도 마찬가지죠. 치매 환자를 모셔보면 진짜 힘들어요. 그래서 환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도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신에 고장이 났을 뿐이에요. 그러니 먼저 아들이 검진을 받도록 해서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 아이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모 자격이 없는 거예요. 부모들은 자꾸 '어릴 때는 머리가 좋았다'라며 과거를 생각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학원 선생을 할 때, 학부모를 만나면 대부분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는데!'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왕년에 내가!' 이런 얘기하고 똑같은 거예요.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이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좀 있어 보이면 먼저 의학적으로 점검을 해야 합니다. 신경정신과에도 가보고, 상담센터에도 가보고, 그래서 어느 정도로 심리가 불안한지 검사를 먼저 해봐야 합니다. 병이 있으면 그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병이 있는 아이에게 자꾸 성적을 논하면 안 돼요.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학교를 다니도록 하고, 학교에 다니기 힘들다고 하면 학교를 쉬고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병이 생겼을 뿐이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다리를 다쳐서 잘 못 걷는 아이에게 게으르다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신경정신과는 한 군데만 가지 말고 적어도 두 군데는 가보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도 병원을 다녀봐서 알겠지만 나에게 맞는 병원이 있고 잘 안 맞는 병원이 있잖아요. 의사가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의사마다 병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경정신과에서 검사를 하고 심리상담을 했는데도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의학적인 검진도 필요합니다. 우리 몸에 약간 균형이 깨져도 심리 불안이 일어날 수가 있거든요.

의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판명되면 아이와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를 거부하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에요.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고 본인의 의사가 뚜렷해서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겠다’, ‘나는 노동 현장에 가겠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도 이게 병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인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병이 없고, 아이가 맑은 정신으로 결정한 것이라면, 어린아이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수용해 주어야 합니다. 부처님도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집을 나가버렸잖아요. 요즘 말로 문제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윤리나 도덕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통념적으로 접근하면 해결하기 어려워요.

병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니 먼저 검진을 해 보세요. '아이가 나쁘다' 하고 바라보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불신하면 아이와 관계가 멀어집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우리 아이가 갑자기 저럴까?' 하고 곰곰이 따져봐야 합니다. 이때 성적이라는 기준은 버려야 합니다. 공부를 잘해서 뭐 해요?”

“열심히 공부하는 데 자기가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서 학교 다닐 때 자기가 만족할 만큼 성적이 나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저도 제 기대만큼 성적이 나온 적이 없어요. 누구나 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하고 살아요. 그래도 다 살아갑니다. 내가 기대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온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어요. 옛날에는 남편이 죽었다고 따라 죽으면 열녀라고 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 정신질환입니다. 열녀가 아니라 편집증이에요. 그러니까 먼저 정신 건강을 검사해야 합니다. 질환이 있으면 먼저 치료를 하고, 질환이 없으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아버지와 대화가 안 되면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상담을 받고 아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내가 심리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가 욕심에 눈이 멀어서 이런 생각을 못합니다. ‘지금 입시가 코앞인데’, ‘정신만 조금 차리면 되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눈이 어두운 사람이에요. 항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즉문즉설에서 어떤 질문자가 바람을 피웠는데 애인을 선택할지, 남편을 선택할지 모르겠다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저는 질문자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두 남자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다'라는 관점에서 보지 윤리와 도덕으로 그 사람의 고민을 평가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하면 이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입니다.

질문자는 자꾸 어떤 목표나 답을 정해놓고 접근하니까 아들과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먼저 아들과 정신과에 가서 검사를 하고, 이상이 있으면 치료를 받고, 이상이 없으면 전문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의 강연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네!”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예전에 잘했다고 생각한 게 지금 돌아보면 잘한 게 아니고, 예전에 못 했다고 생각한 게 지금 돌아보면 못 한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떻게 인생을 살든 다 자기가 좋을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순이 있어요. 다들 자기가 좋을 대로 살았는데 결과가 안 좋습니다. 이건 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에 누가 여러분의 목에 칼을 대거나 총을 대고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내놓으라고 해서 빼앗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밤에 잠도 안 오고 억울하겠지요. 그런데 ‘정말 뺏겼을까?’ 하고 조금만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너무너무 아끼는 물건이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목숨하고 그 물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선택하고 물건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명한 선택이에요, 잘못된 선택이에요?”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왜 뺏겼다고 생각해요? 집에 돌아와서도 ‘잘 선택했다!’ 이렇게 생각해야지요. 만약 어떤 여성에게 괴한이 칼을 들이대고 목숨하고 성하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목숨을 선택해야죠.”

“목숨을 선택했다면 나는 선택을 잘한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고발을 해서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순간순간을 자기가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누가 여러분을 이렇게 만든 게 아닙니다. 선택하고 선택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엄청나게 화가 나서 화를 막 내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너 지금 화를 안 낸다면 부처 된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부처고 뭐고 필요 없어!’ 이렇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누군가가 몇십억을 주면서 ‘너 이 돈을 포기하면 부처 된다’라고 한다면 아마 여러분은 ‘에잇! 나는 부처 되기 싫다. 돈이 더 낫다’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렇게 순간순간 자기가 좋은 걸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아무도 여러분들을 여기까지 내몬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 나름대로 잘 선택한 거예요. 내 나름대로는 잘한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보니까 조금 잘못한 것 같다면, 지금까지 잘못한 것에 대한 과보는 달게 받고, 앞으로는 손해날 일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부처의 길을 간다고 생각하고 빙긋 웃으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변화가 오는데 대부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성질대로 살지요. 여러분은 까르마가 반응하는 대로 살아가잖아요. 그러면서 부처가 되려고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자신의 수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에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길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변화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이 뭐 별것 있나?’ 하고 생각한다면 성질대로 살면 됩니다. 대신 더 높은 것을 기대하지는 말고요.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 중에 그래도 제일 괜찮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지 않았나요? ‘이보다 더 좋은 사람 있었는데!’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선택하지 않은 거잖아요.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제일 괜찮은 사람을 선택한 겁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안 괜찮죠?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른 사람을 선택해도 그 눈에 더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나오는 겁니다. 키가 크다거나 인물이 잘생겼다는 어떤 한 면만 보고 선택하고, 생활 문제라든지 다른 면을 고려하지 않은 내 어리석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혼했기 때문에 헤어지지 말라는 게 아니라 미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선택했고 결과가 이러니까 내 잘못을 인정하라는 거지요. 주식을 사서 떨어졌다고 주식을 미워하면 안 되잖아요. 손해를 보고 팔아버리든지, 오를 때까지 기다리든지, 나의 선택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남에 의해서 조종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육조단경에 ‘법화경에 굴림을 당하지 말고 내가 법화경을 굴려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늘 세상의 경계 따라 굴림을 당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다’ 하는 관점을 가진다면 우리는 붓다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여러분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살아간다면 불평불만도 좀 줄어들고, 지금보다는 삶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해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사홍서원으로 초청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신라문화원 관계자들을 격려한 후 밤 10시가 넘어서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울산교육청 초청으로 학부모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거사님들과 함께 나무 심기 울력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7

0/200

명덕

감사합니다 선택한 과보 잘 받겠습니다

2024-04-13 07:27:51

노태현

공부, 성적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있음을 배웁니다

2024-04-10 13:23:25

임영현

관습 윤리 통념이 아닌 그가 처한 지금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는 글을 읽고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4-10 06: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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