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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은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입니다.
스님은 오전 10시부터 동지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는 동지 기도를 하기 위해 많은 대중들이 자리했습니다.
먼저 유수스님의 집전으로 동지 기도를 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다짐했습니다.
기도를 다 하고 나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다 함께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동지’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동지가 왜 지금까지 불교 안에 남아 있을까요? 이것은 수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동지 기도를 하는 의미를 수행적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말에 ‘시작이 반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시작은 제로이고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왜 시작을 반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준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것처럼 동지인 오늘부터 해가 길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날씨가 춥던 덥던 어떻게 변하든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따뜻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오늘 이후로 날씨가 더 추워집니다. 정확하게는 한 달 후가 가장 춥습니다. 이것은 인연과보의 원리로써 오늘부터 해가 점점 길어져서 지구가 데워지지만, 오늘 이전에 점점 식어온 영향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날이 점점 길어지지만 이것이 밖으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한 달 후입니다. 동지가 지나고 한 달 후가 가장 춥다는 대한입니다. 절기의 순서가 동지, 소한, 대한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소한, 대한 지나면 얼어 죽을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이 지나면 따뜻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추위는 없으니 아직 안 얼어 죽고 살아남았다면 앞으로는 얼어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옛날에는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소한, 대한이 지나면 더 이상 큰 추위가 없고, 봄을 맞이한다는 입춘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봄의 시작인 입춘을 한 해의 시작으로 잡습니다. 태양력으로 보면 동지가 한 해의 시작이고, 태음력으로 보면 입춘 전후가 한 해의 시작입니다. 봄을 맞이하고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를 담은 명절이 ‘설’입니다. 그런데 나무에 잎이 피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설을 지나고도 다시 한 달이 더 지나야 합니다. 이때 처음으로 꽃이 핍니다.
이런 자연의 이치를 수행과 비교해 본다면, 오늘 내가 마음을 내어 발심을 해서 수행을 하면 이미 동지를 지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과거에 지어 온 나의 업식으로 인해 인연의 과보가 있기 때문에 그 과보를 앞으로 계속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기도를 하지만 오늘부터 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데도 더 나빠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동지가 지나고 해는 점점 길어지는데 날씨가 더 추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옛말에 동지 후 열흘이 지나면 ‘백리 길을 걸을 때 십리를 더 간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동지 후 열흘 정도 지나면 해가 그만큼 더 길어집니다. 그러나 날씨는 더 추워지듯이, 우리가 기도 입재를 해서 정진을 하는 데도 번뇌가 더 생기고 온갖 갈등이 더 생깁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기도를 그만둡니다. 기도를 시작하고 며칠 지나 바로 좋아지면 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데, 기도를 하는 데도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니 대부분 삼일 만에 그만두던가, 열흘 만에 그만두던가, 혹은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됩니다.
그래서 적어도 설은 지나야 됩니다. 즉, 여러분들이 백일기도 입재를 하고 나서 한 달 보름 정도는 마음이 더 괴롭고 일이 더 안 되더라도 그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자연의 이치와 견주어 보면 동지 이후에 한 달 반이 지나도 따뜻해지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춥지만 더 추워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시작하고 백일이 지나면 좋아지지는 않아요. 다만 더 괴로운 일은 안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흐름은 자연의 흐름보다 기간이 더 깁니다. 동지 지나고 한 달 지나면 대한이 찾아오지만, 수행은 석 달이 지나야 대한이 지나고 입춘이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절에 들어오면 반드시 백일기도를 시킵니다. 행자들도 백일을 살게 해 보고 받습니다. 스님이 되겠다고 절에 오면 다 받는 게 아니에요. 백일 동안 밭도 메고 허드렛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다 백일 안에 도망가버립니다. 절에 올 때는 ‘받아만 주면 평생 목숨을 바쳐서 정진하겠다’ 하고 말하지만, 백일 안에 대부분 분별심을 내고 가버립니다. 그래서 일단 백일은 지나 봐야 됩니다.
변화가 분명하게 오려면 백일이 지난 다음에 천일이 지나야 합니다. 내가 체감할 수 있는 진짜 봄이 오려면, 즉 정말로 꽃이 피는 춘삼월이 오려면 3년을 기다려야 됩니다. 그래서 천일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백일을 기도하면 내 꼬라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화가 많구나’, ‘내가 욕심이 많구나’, ‘내가 끈기가 없구나’ 이렇게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조금 알게 됩니다. 그렇게 천일이 지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나면 주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그전에는 내가 아무리 변했다고 느끼고 혼자서 좋아해도 옆에서 인정을 안 해줘요. 그런데 천일이 지나면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욕심이 좀 줄었네’. ‘요즘 고집이 좀 없어졌네’, ‘요즘 화를 덜 내네’ 이렇게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합니다.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내가 달라지는 모습을 조금씩 감지하게 되는 거예요. ‘쟤가 요즘 어떻게 된 거지?’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궁금증이 생길 만큼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즉 봄이 온 걸 천하가 다 알게 되는 거예요. 개나리 꽃이 피면 날씨가 아직 추워도 ‘봄이 왔네’ 하고 천하가 다 알듯이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알 정도로 변하려면 천일은 꾸준히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백일기도를 하고, 천일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스님이 되기 위해 절에 들어오면 학교처럼 책부터 공부시키는데 예전에는 공부를 먼저 안 시켰습니다. 그냥 일을 먼저 시켰습니다. 허드렛 일을 하거나,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를 하거나, 이런 일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기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참기 어렵지만,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도 참기 어려워요. 남이 알아줘야 어떤 일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직업 중에 제일 도에 근접하는 것이 농부입니다. 농부는 주로 혼자 일하잖아요. 산 위에 밭에 가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데서 혼자 일하죠. 요즘 젊은 사람은 그런 일을 못해요. 젊은 사람들은 먼지 마시고 힘들어도 친구들끼리 서로 알아주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꾸 도시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그냥 토끼 한 마리가 뛰어다니듯이 하루 종일 농사를 지어도 힘드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땅을 파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그냥 산에 가서 혼자 일하고 내려와서 밥 먹고, 또 아침에 올라가서 일하고, 이렇게 삽니다. 그런 속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또 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절에 들어와서 행자로 사는 것은 농부보다 좀 더 어려워요. 절에 사는 대중들 밑에서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밥 해가면서 욕 얻어먹어가면서 온갖 일을 하다 보면 대부분 3년 안에 도망을 가버립니다. 그래서 옛날 스님들의 이야기 중에는 도를 닦으러 절에 왔는데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고 계속 일만 시키니까 1년 기다리다 가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개중에는 3년 기다리다가 못 견디겠다고 말하고 가는데 스승이 불러서 돌아보다 깨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단순히 도를 얻기가 힘들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행이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임을 뜻합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나 저항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불법을 지식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수행에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교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번뇌가 사라지고 해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소통을 위해서 글이라는 매체가 필요한 것뿐이지 내 마음공부를 하는 데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해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해 알고, 자신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장애에 부딪힐수록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어떤 점을 극복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만약 수행하기 위해 절에서 3년을 지낸다고 할 때 좋은 조건에서 편안하게 지내면 3년이 수월하게 지나가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습니다. 어떤 장애에 부딪히게 되면 편안하게 보낸 3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장애를 겪을 때는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힘든 경험들이 나의 공부가 되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지나 놓고 나면 별일이 아닌 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조건에서 편안하게 살면 3년이 잘 지나가기는 하지만 수행적 관점에서 볼 때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습니다. 어떤 장애에 부딪히면 편안하게 보낸 시간은 아무 필요가 없게 됩니다.
마음공부를 위한 출발은 마음을 내는 일, 즉 발심(發心)입니다. 이와 같은 출발을 계절적으로 비유한다면 동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든 오늘부터는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간다!’, ‘지금까지 중생으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부처로 사는 길을 가겠다!’ 이렇게 희망을 갖는 출발점이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동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정토회는 수행자 집단이고, 복을 비는 기도는 하지 않는데, 왜 동지기도를 하느냐?’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지 기도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는 정초 기도와 비슷한 성격을 가집니다.
동지 기도는 불교에서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전통기도 중의 하나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의미와 수행적인 의미를 모두 담아서 동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날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기도를 하며 정성을 쏟는 일은 필요한 일입니다. 아무 날짜를 정해서 해도 되죠. 하지만 동짓날은 전통문화를 살리는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자연의 모든 생명 에너지가 태양으로부터 온다는 과학적인 부분에서도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이렇게 해서 동지 기도를 하는 것이니까 ‘동짓날 기도하면 뭐 복이라도 주나’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되고, ‘동지 기도는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걸 기점으로 해서 한번 정성을 쏟는 건 필요하잖아요. 아무 날짜를 잡아서 해도 되지만, 이런 문화적인 전통을 살려서 정성을 모아보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게 별 존재가 아니고 자연의 일부이고, 또 생명 에너지의 근원이 태양에 있다고 봤기 때문에 사람들은 옛부터 태양을 숭배해 왔습니다. 단순히 그냥 허황한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봐도 조금은 일리가 있는 얘기이기 때문에 동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동짓날을 기리는 것을 무슨 빼빼로 데이, 핼러윈 데이, 이런 것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동지는 과학적으로 봐도 의미가 있고, 전통문화적으로 봐도 의미가 있습니다.
동지가 지나고 설을 지나면 꽃피는 춘삼월이 오듯이 입재하고 백일기도를 하고 천일기도를 하면 인생의 춘삼월이 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인생의 춘삼월이 오려면 3년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지만, 3년쯤 지나면 그 사이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전법회원 교육,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그리고 인도 성지순례를 갔다 옵니다, 이 정도 하면 대부분 인생의 춘삼월이 옵니다. 불법이 뭔지, 수행이 뭔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은 좀 잡힙니다. 그 이후에 정진하고 안 하고는 사실 개인의 문제예요. 스님이 하는 역할이 이때부터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초기에는 바르게 가르치고 지도해 주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옛날부터 행자 교육을 받고 스님이 될 때까지는 처음에 어떤 스승을 만나는가가 매우 중요하지만, 일단 득도하면 자기 정진은 자기가 해 나가야 합니다. 정진을 하고 깨달음을 얻은 후 반드시 스승에게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정도로 가지 않고 사도로 간다거나, 엉뚱하게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도 오늘 새로운 마음으로 동지를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본심, 나의 양심, 해탈에 대한 나의 꿈을 태양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늘은 태양이 부활하는 날입니다. 오늘을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는 날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자기를 너무 열등하게 생각하지 말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불법을 만난 것만으로도 참으로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가 있는 동지를 맞이해서 여러분 모두 새로운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잘 되고 안 되고는 그저 꾸준히 해가는 과정에 맡기고, 부처로 나아가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만 있다면 넘어지고 자빠져도 금방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앞으로 가는 게 아니고, 넘어지면 주저앉아 안 일어나거나 되돌아가 버려요.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오류를 범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가다 보면 넘어지고 자빠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장애가 생길 때 자꾸 원래대로 돌아가는 마음을 내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계율을 받고 못 지키면 참회하고 다시 그 길을 가야 하는데 ‘뭐 이런 것까지 하라 그래. 이런 것을 하지 않고도 다들 잘 살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한다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어요.
여러분은 잘못한 것을 숨기면 해결이 되는 줄 알아요. 수행자는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인간의 욕망에 끄달려서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어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그냥 덮고 가려고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에도 ‘거짓말 하지 말라’ 하고 하지 않고,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하고 가르칩니다. 닉슨 대통령이 탄핵을 받은 것도 그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을 은폐하려는 죄 때문입니다. 사건은 사실 별일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받거나 알아차렸을 때 ‘잘못했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앞으로 가면 되는데, 그걸 부끄러워하고 자꾸 숨기려고 하다 보니까 자기의 작은 자존심에 묶여 결국 해탈의 길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잘못한 것을 붙들고 괴로워하지 말고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털어낼 것은 털어내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그래야 부족한 가운데도 자유의 길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동지를 맞이해 새로운 마음으로 수행정진을 시작해 볼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어서 조상 영가들을 위한 천도재를 함께 지낸 후 모둠별로 소감 나누기를 하고 동지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는 점심 식사로 팥죽이 나왔습니다.
법회에 참석한 대중들은 팥죽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차를 타고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2시간 반을 달려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5천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밤 9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12월 23일부터 1월 1일까지는 겨울 명상 수련 및 공동체 동안거 수련이 진행됩니다. 스님은 5일 동안 명상 수련을 지도하며 대중과 함께 명상을 한 후, 다시 5일 동안 공동체 대중과 안거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이 기간 동안 '스님의 하루'도 연재를 멈추고 잠시 쉬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 갑진년 새해 아침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휴재 기간 : 12월 26일~1월 3일
▶ 다음 발행 : 1월 4일
안거는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간입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 3개월 동안 수행자들이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모여 안거를 했습니다. 그런 전통에 따라 정토회도 안거 기간에는 모든 일정을 멈추고 정진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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