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1.14 국립공원공단 경주 남산 순례
“직원들을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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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국립공원공단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함께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9시에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경주 남산 아래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하자 국립공원공단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모두 삼배로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라고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은 국립공원이기도 하고, 문화재도 많아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뜻깊은 곳을 국립공원공단에서 근무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순례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스님이 오늘 순례를 하게 될 코스에 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원래는 긴 코스를 잡아서 하루 종일 순례를 해보려고 계획을 했는데 오후에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조금 짧은 코스를 순례하기로 했습니다. 칠불암으로 올라가서 봉수대와 백운암을 지나 천룡사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한 후 대화 시간을 갖고 와룡사로 내려오기로 하고, 참가한 분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 한 분 자기소개를 했는데, 국립공원공단에 근무하는 분 중에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분들만 모두 모였다고 합니다.

“북한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토경전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리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통영에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일 영상으로 스님을 뵙고 있습니다.”

“계룡산에서 왔습니다. 화면에서만 보다가 직접 보니까 영광입니다.”

“태백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에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경주 남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출퇴근하면서 매일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어요.”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경주 남산에서 근무한다고요? 자기가 오늘 안내를 하면 되겠네요.” (웃음)

경주 남산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들도 모두 스님의 안내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다 함께 칠불암이 있는 골짜기인 봉화골로 향했습니다. 산을 오르기 전에 염불사지 앞에서 설명을 듣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경주 남산!”

울창한 산림 속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새소리가 들려오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넓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좋았습니다.

초입에는 오솔길처럼 오붓한 길이 이어지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경사가 커져서 조금씩 숨이 가빠졌습니다.

“잠시 쉬어 갑시다.”

중간중간 계곡 물소리를 들으니 귀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경주 남산의 문화재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칠불암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칠불암 바로 아래에 있는 대안당이 보였습니다. 대안당 마루에 앉아 약수를 떠 와 마셨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마지막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지런하게 이어지는 경사진 계단 길옆으로 대숲이 우거져 있어서 정말 멋졌습니다. 헉헉 숨을 내쉬며 오르던 스님이 옛날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칠불암에서 살 때는 여기서 물지게를 지고 저 위에 암자까지 오르내려야 했어요. 보시다시피 엄청 가파르잖아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물지게를 지고 계단을 오르면 다리가 달달 떨렸어요.”

스님이 고등학생 시절에는 물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맨몸으로 오르는 데도 힘이 들어 보였습니다.

“제가 늙긴 늙었나 봐요. 오르막길이 정말 힘드네요.”

하늘을 가린 대숲 길을 통과해서 올라가니 칠불암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커다란 바위 사면에 각각 불상이 새겨져 있고, 위쪽 바위에도 세 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고 총 일곱 개의 석불이 있어서 칠불암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스님은 먼저 가사를 수하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모두가 칠불암에 도착하자 함께 예불을 한 후 반야심경 봉독을 했습니다. 축원 기도까지 정성껏 한 후 모두 자리에 앉아 스님에게 설명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이곳 칠불암과 관련된 스님의 청년 시절 경험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기는 보시다시피 멋있는 불상이 새겨져 있지만 이와 관련된 역사 기록을 찾지 못해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무당이 굿을 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 토속 신앙과 결합해서 절이 사용되어 온 겁니다. 그러던 중에 저의 은사 스님이신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분황사 주지를 하고 계실 때 이 절을 사들여서 함께 관리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늘 이 절에 와서 기도했었습니다.

나를 깨달음으로 인도해 준 상이군인

제가 청년 시절에 경주 불국사에서 포교사로 1년 정도를 살았습니다. 경주 시내에 천마총 앞에 법장사라는 절이 하나 있었는데, 불국사에서 포교하다가 법장사로 내려와서 어린이와 중고등학생들을 포교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어느 날 법장사에서 사시 예불하고 있는데 누가 쇠망치를 갖고 문짝을 땅땅 때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이 법당에 침을 뱉거나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절을 더럽히는 일을 자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예불하는데 문을 쇠막대기로 막 두드리니까 마음에서 짜증이 일어났습니다. 끝까지 참고 기도를 해야 하는데 결국 목탁을 놓고 어떤 사람이 그러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여니까 팔이 하나 없는 상이군인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의수 기술이 부족해서 쇠갈고리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간혹 있었습니다. 쇠갈고리로 문을 두드리니까 안에서 듣기에는 문짝을 쇠막대기로 때리는 것같이 들렸던 거예요. 예불을 방해하는 사람에게 따끔하게 얘기하려고 나갔는데 팔에 쇠갈고리가 있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저절로 탁 가라앉았어요. 상이군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제가 먼저 말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 기도 중이니까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기도 마저 끝내고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와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하던 기도는 끝까지 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상이군인이 자꾸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다시 짜증이 나서 결국 목탁을 놔두고 나가서 화를 냈습니다.

‘지금 기도 중이라 잠시만 기다리라는데 왜 그러십니까? 제가 당신한테 뭘 주려고 해도 요사채에 갔다 와야 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제가 언제 동냥을 달라 그랬어요?’ 이러는 거예요. 그 사람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저는 상이군인의 모습을 보고 당연히 동냥을 달라는 줄 알았던 겁니다. 상이군인이 그렇게 말하니 저도 순간 당황을 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누가 문을 두드리며 장난한다고 생각하고 와서 확인해 보니까 아니었고, 이번에는 동냥 얻으러 왔다고 생각하고 와서 확인해 보니까 아니었어요. 기도를 두 번이나 도중에 멈추고 하다 말다 했으니 그때부터는 기도를 놔두고 그분과 대화했습니다. 동냥 얻으러 온 게 아니면 뭐 하러 왔는지 물었어요. 돌아온 대답은 자기 가슴이 답답해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가슴이 답답하다는 사람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린이를 포교할 때는 재미 위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중고등학생은 불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되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계속하는 말이 ‘내가 여기서 중이 되면 어떻겠냐?’ 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포교당은 스님이 없는 채로 아이들과 학생만 가르치는 곳이어서 다른 절에 가보라고 그랬더니, 여러 절에 가봤지만 전부 다른 절로 가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러자 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물어봤더니 누가 가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누가 가보라고 했는지 물었더니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서 보여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뿌린 포교 전단이었어요. (웃음)

앞면에는 '마음이 답답한 자여! 여기로 오세요. 여기 부처님께서 마련한 좋은 안식처가 있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었고, 뒷면에는 어린이 법회와 학생 법회의 시간표가 쓰여 있었습니다. 포교한다고 시내에 전단을 뿌려놓고 막상 그걸 보고 온 사람이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는데 저는 계속 쫓아낼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돈을 좀 줘서 보내려고 했다가, 그다음에는 이곳이 포교당이니까 스님을 받는 건 안 된다고 했다가,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그 사람을 내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만든 전단을 받고 왔다고 하니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율배반적인 나를 본 거예요. 그 사람이 가고 나서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계속해서 '내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충격을 받으면 혼이 빠진다는 말처럼, 눈은 떠서 보고 있고, 귀는 열려서 들리긴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중생을 위해서 부모도 버리고, 심지어는 스승이 얘기하는 것도 안 듣고, 오직 포교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정작 내가 초대한 사람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계속 내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돈을 줘서 보낼까?’, ‘사정을 이야기해서 보낼까?’ 하면서 내보낼 궁리만 하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던 거죠. 그런 나를 돌이켜 보니까 그냥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이곳 칠불암으로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늘 여기에 와서 기도했으니까 불상 앞에 엎드렸는데, 깨고 보니까 이틀 동안 정신없이 누워있었던 겁니다. 시간이 지나 약간 정신이 들면서 느껴지는 게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부끄러워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제가 기존 승려들이나 불교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다녔거든요. 그런 이후에 법장사로 내려와 있을 때 그 일을 겪고 나니까 그 사람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도 그 사람들과 하는 짓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니까 반성이 됐습니다. 만약 제가 그 상이군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제가 갖고 있었던 이런 모순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모순이 자각된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러웠는데 한 생각 돌이키니 ‘이번 일이 나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됐구나’ 하고 알게 되어 그제야 기운을 차리게 된 거예요.

실수했다고 해서 결코 낙담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인생을 지나 놓고 보면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잘된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 세운 수자타 아카데미도 그랬습니다. 캘거타에서 우유 사달라는 아기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고 나서 너무 부끄러웠는데 그 일을 반성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학교를 짓게 되었습니다.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랬어요. 압록강 변에서 굶주린 북한 아이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이웃에 있는 우리 민족을 놔두고 나는 멀리 인도에서 남을 돕는다고 하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거든요. 처음에는 동포들이 굶어 죽는다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여기고 믿지 않았습니다. 북한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만 편견이 아니라, 북한을 좋게 생각한 것도 편견이었던 거예요. 이런 저의 편견이 북한 주민이 굶어 죽고 있다는 말을 듣고도 오히려 외면하게 만든 거죠.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짓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새로 발심한 경우가 오히려 좋은 일을 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끄러운 짓을 안 하면 제일 낫죠. 그러나 설령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발심할 수 있는 기회는 있습니다.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에 너무 빠져서 주저앉기보다는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한 자기를 알고 재발심을 하는 계기로 삼으면 새로운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똥이 거름이 되는 도리이고,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줍는 도리입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나쁜 것도 좋은 것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인생을 너무 후회하고 살 게 아니에요. 실패를 했기 때문에 ‘이러면 안 된다.’ 하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잖아요. 우리는 보통 성공과 실패를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수행적 관점에서 볼 때는 두 가지 다 같은 것입니다. 성공이란 ‘이러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는 것이고, 실패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는 겁니다. 성공했든 실패를 했든 ‘알았다!’ 하는 한 가지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요. ‘이러니 되네!’ 하는 것을 알았든, ‘이러니 안 되네!’ 하는 것을 알았든, 둘 다 똑같은 거예요. 이것을 깨닫게 되면 성공했다고 들뜨거나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경전을 읽는 것만 공부가 아니고 자기 삶 속에서도 늘 이렇게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이것을 옛 스승들은 ‘회광반조’라고 말했습니다. 늘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나아가는 것이 공부입니다. 칠불암에 왔으니까 이곳에 얽힌 제 경험을 들려드렸는데, 여러분도 그런 관점을 갖고 마음공부를 해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바위에 새겨진 일곱 부처님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나니 칠불암 주지 스님이 반갑게 스님에게 인사를 올리며 일행에게 차를 내려 주었습니다. 스님과 유수 스님이 일행에게 차를 따라 주었습니다.


차를 한 모금씩 마신 후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신선암으로 가는 길은 발아래가 절벽이었습니다. 간담이 서늘해하고 있는데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절벽 위가 제가 어릴 때 참선하던 곳이에요. 옆에 큰스님이 앉아서 저를 딱 지켜보셨어요. 졸음이 와서 깜빡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래도 졸음이 왔어요. 가부좌를 안 하면 큰일 납니다.”

지켜보기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바위를 지나 작은 틈으로 걸어서 들어가니 조금 더 넓은 바위 면에 보살상이 하나 새겨져 있었습니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입니다.

“이 보살상은 참 예쁘죠? 다리 모양이 특이합니다. 그냥 의자 아래로 편안히 내려놓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걸 ‘유희좌’라고 합니다.”

더 높이 올라가니 산 아래 풍경이 정말 멋졌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시원한 바람이 부니 저절로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곧 넓은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바위 위에 올라서니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경치를 바라보며 가방에 넣어 온 간식을 먹었습니다.


간식을 먹은 후 봉화대를 지나 백운재 능선을 타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백운암을 지나 드디어 천룡사가 보였습니다.



삼층석탑을 참배하고 가건물로 지어놓은 대웅전을 참배했습니다. 도량을 둘러본 후 선당에 들어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는 동래지회 봉사자들이 잔치국수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식사를 마치고 공양간으로 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천룡사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 절은 신라 시대 때 어떤 대신이 처음 지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 기록에 보면 신라 시대 때 처음 누가 지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좀 불분명해요. 다만 남아있는 기록 중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신라가 통일 전쟁을 할 때 당나라의 공격을 받았는데, 그때 신라가 그 공격을 막아내니까 당나라 황제가 ‘신라에 도대체 뭐가 있어서 이렇게 작은 나라가 힘이 강한가?’ 하고 의아해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당나라 군대가 신라를 금방 제압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8년 동안 전쟁을 해도 못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붕구’라고 하는 신통이 있는 사람을 신라에 파견해서 조사를 좀 해보라고 했다는 얘기가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한다.

삼국유사에는 그때 악붕구가 사천왕사에 갔을 때의 얘기도 나오고, 천룡사에 간 얘기도 나와요. 악붕구가 이곳에 와서 지세를 보더니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하고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 말에 이 절이 폐하자 신라가 망했고, 왕건이 고려를 새로 창건하자 재상 출신인 최재안 공이 은퇴를 하고 여기에 다시 천룡사를 복원했습니다. 그런데 고려 말에 이 절이 폐하자 또 고려가 망했어요. 그래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마자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제자를 보내서 다시 이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우리는 통일을 이룬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기 때문에 이런 역사 스토리를 따라서 이곳 천룡사를 한번 복원해 보려고 하는 거예요. 다른 목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천룡사를 복원하자는 거죠. 정토회는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을 했기 때문에 단순히 불교 발전을 위해서는 굳이 여기에 절을 지을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역사를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천룡사를 중창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수행하면서, 불교를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들을 편안하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책임자로서 직원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을 때 불편한 마음이 든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직원들을 평가하는 게 불편해요

“지금이 소장들이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얼마 전에 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 대한 업무 평가를 했고, 어제부터 그 결과를 직원들이 받아보고 있습니다. 연초에는 직원들 모두 함께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내보자고 했지만, 직원들에 대한 연말 평가를 다 똑같이 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규정에 따라 잘한 사람, 중간인 사람, 못한 사람으로 상대 평가를 해야 하거든요.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불만이 없지만, 결과를 안 좋게 받은 사람들은 소장 입장에서 대하기가 상당히 껄끄럽습니다. 그분들도 ‘소장이 왜 나한테 이런 평가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직원들을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한 마음입니다.”

“그런 수준이면 질문자는 소장을 안 해야지요. (모두 웃음)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가능하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원래 불교 계율에도 가능하면 남을 평가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 사람에 대해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해야 하는 검사와 판사는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닌 겁니다. 사형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수행자라면 그냥 일반직으로 일하는 게 좋지, 남을 평가해야 하는 소장 직책은 사양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또한 이런 관점도 가져야 합니다. 본인이 어쩔 수 없이 맡았든, 원해서 맡았든, 어떤 직책을 맡게 되었으면 그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장의 직책을 맡았는데 직원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팀장이 해야 할 일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해당합니다. 결혼해 놓고도 부부 생활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수행자이니까 욕락(欲樂)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일인 줄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살려면 이혼을 해야지요. 상대에 대해 배려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욕락에서 자유롭고 싶으니 이제 헤어져서 당신은 다른 분하고 결혼하고 나는 수행을 하며 살고 싶다’ 이렇게 배우자에게 말해서 합의를 해야 하는 거예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원칙만 밀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처럼 소장이 되었으면 소장의 직분을 다 해야 합니다. 본인의 마음이 불편하다고 직원 평가를 안 하거나, 다 똑같이 좋은 평가를 줘버리면, 회사에서 경영상 필요해서 만든 제도를 질문자가 외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회사에서 정해준 규정과 질문자의 경험으로 얻은 몇 가지 원칙들을 가지고 가능한 나의 주관이 덜 개입하도록 하면서 평가를 내려야 해요.

만약 결과에 대해 섭섭해하는 사람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평가를 안 좋게 내려서 미안하니까 대신에 욕이라도 실컷 해라’ 이렇게 과보를 기꺼이 받아야 해요. 질문자는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했지만, 결과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시험 결과가 나오면 시험을 잘 쳤다고 말하는 아이가 거의 없습니다. 늘 시험을 못 쳤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다들 자신이 기대한 만큼 결과가 안 나왔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너는 성적이 좋네’라고 칭찬해도 정작 본인은 전교 1등을 하려고 했는데 겨우 반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면서 만족을 못 합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사람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는 것과 그 사람의 입장을 따라가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요새 정치인들이 재판받는 것을 한번 보세요. 자신이 재판에서 이기면 ‘아직도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살아있다’라고 하고, 재판에서 지면 ‘사법부마저도 죽었다’라고 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원래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 안 되면 심리가 그렇게 되기 때문이에요. 남편에게 불만이 많은 여성은 자기 남편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 보면 남편은 그 여성이 원하는 수준의 남편이 아닐 뿐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그 남편을 버리면 다시 주워갈 다른 여성들이 많아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직원들을 평가할 때 가능한한 주관을 배제하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되 ‘나는 제대로 평가했으니 당신이 문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 직원에게 ‘자네가 보기에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부족한 게 있네’ 하고 웃으면서 넘어가야 해요. 상대 평가이니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절대 평가라면 좀 괜찮은데 상대 평가이다 보니 누구는 1등을 하고 누구는 2등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일을 하는 게 너무 불편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정토회로 와야죠. (웃음)

그러니 직원 평가에 대해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평가 결과가 안 좋은 사람들에 대해 질문자가 밥이라도 사며 위로를 하세요.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설마 나한테 안 좋은 평가를 하겠나?’ 하고 있다가 결과가 달라서 실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질문자는 ‘상대 평가라서 다 좋은 평가를 해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 하면서 무마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질문자의 심리를 보면, 직원 업무 평가를 하다 보니 마치 자신이 사장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사장이 아니잖아요. 사장이 시킨 일을 수행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미안해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직원들의 마음은 이해해야 합니다. 결정은 위에서 하고 질문자는 대행할 뿐이라고 해도 직원들의 눈에 일차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질문자이니까요. 불교의 핵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신도들의 눈에 일차적으로 보이는 것은 스님입니다. 스님이 잘하면 불교도 좋아 보이고, 스님이 못하면 불교도 나쁘게 보이지요. 사실은 내 눈에 보이는 스님과 불교는 아무 관계가 없을 수가 있는데도 중생에게는 당장 눈앞에 있는 스님이 곧 불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직책을 가졌으면 어느 정도는 욕을 들어야 합니다. 다 좋은 일만 생기면 누구나 다 소장을 하겠지요. 죄의식을 갖지는 말되 직원들의 아픔은 이해해 주세요. 질문자처럼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난 규정대로 했어. 문제가 있으면 고발해’ 하면서 뻔뻔하게 굴어도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규정대로 했나 안 했나에 영향을 받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실력과 관계없이 자기가 되고 싶은데 안 됐기 때문에 힘들고 괴롭고 미운 거예요. 그런 마음은 받아줘야 합니다. 법륜 스님은 인사 담당자가 아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당신 마음을 바꿔라.’ 하고 말할 수 있지만, 질문자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치고 정토회 회원이 되면 매주 수행법회를 들을 수 있고, 각종 행사와 수련에도 참여하실 수 있잖아요. 정토회원은 종교가 달라도, 종파가 달라도 참여할 수 있어요. 그렇게 정토회와 연결 고리를 하나라도 걸어 놓는 게 좋습니다. 연결 고리를 걸어 놓아야 이런저런 일이 있을 때 참가할 자격이 되니까요. 그렇게 해서 자주 만납시다.

은퇴하셔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제가 지금 부탄 왕과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의논하고 있는데 그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해외에 나가서 기여하실 수 있는 일도 많이 생길 겁니다. 요즘 환경보호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고, 부탄에서도 산림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여러분들의 재능을 국내외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으니까, 현직에 계실 때는 현직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은퇴하시면 저와 함께 세상을 위한 봉사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도 하루 종일 안내를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저희가 기여한 것도 별로 없는데 정성껏 식사를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화 시간을 마치고 앞마당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개인별로도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올라갈 때는 제가 똥차였는데, 내려갈 때는 똥차가 아닙니다. 빨리 내려가겠습니다.” (웃음)




날이 추워져서 빠른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천룡사에서 와룡사까지 내려가는 길은 몇 년 전만 해도 길이 닦여 있지 않아 위험한 구간이 많았는데, 국립공원공단에서 공사를 잘해준 덕분에 안전한 구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오후 5시가 넘었습니다. 벌써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스님은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1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이동한 후, 오전에는 병원에서 눈 수술을 하고, 오후에는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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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행복

감사합니다.

2023-11-21 10:23:00

드림하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에 너무 빠져서 주저앉기보다는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한 자기를 알고 재발심을 하는 계기로 삼으면 새로운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똥이 거름이 되는 도리이고,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줍는 도리입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나쁜 것도 좋은 것이 됩니다."

2023-11-19 12:14:30

김민주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기사올려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환경과에서 일할수 있길 발원합니다

2023-11-19 10: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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