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1.10 필리핀 방문 2일째, 막사이사이재단 방문, 수상식 리허설
“실직하고 나서 어느 곳에도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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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몬 막사이사이상 제65회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식사를 하고 8시 30분부터 필리핀 JTS 대표 이원주 님, 사무국장 향훈 법사님, 토지 담당 박시현 활동가와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JTS가 필리핀의 정부 정책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까지는 JTS가 민다나오에서 학교를 많이 지었지만, 앞으로는 필리핀의 정부 정책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재정이 좀 들더라도 필리핀 국민들의 어떤 이익을 위한 사업이라든가, 필리핀이 앞으로 발전할 것에 대비하여 미리 선도적으로 모델이 될 수 있는 사업들을 개발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하고 라몬 막사이사이 재단으로 출발했습니다. 통역을 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 에서 제이슨 님이 비행기를 타고 오늘 아침에 마닐라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라몬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제공해 준 다이아몬드 호텔로 가서 짐을 풀었습니다. 로비에 도착하니 라몬 막사이사이 재단의 국제협력 팀장 빅터 님이 로비에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닐라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스님께서 쓰신 연설문을 제가 사전에 읽을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보내주신 연설문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굉장히 직설적이면서도 영감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사님들이 제가 연설문을 미리 받았다는 걸 알고 공유해 달라고 했지만 안 된다고 했습니다. 행사 당일에 직접 들어야 더 감동적이니까요.”

빅터 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수상자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빅터 님이 수상자들을 스님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분은 2021년도에 수상하신 스티븐 먼씨(Steven Muncy)라는 분입니다. 스티븐 씨, 이 분은 2002년도에 수상하신 법륜 스님이세요.”

“반갑습니다.”

수상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옆에 있는 라몬 막사이사이 센터로 이동했습니다. 센터 앞에는 막사이사이 재단의 수잔 아판(Susan Afan) 대표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라몬 막사이사이 센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센터로 함께 들어갔습니다. 센터 앞에는 큰 벽화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1958년부터 수상하신 분들이 새겨져 있는 벽화입니다. 저기 스님도 계시네요.”

스님을 비롯하여 역대 수상자들의 모습이 벽화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습니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에도 역대 수상자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958년부터 수상하신 분들입니다. 옛날 사진은 흑백 사진입니다.”

오래된 흑백 사진에는 1962년에 수상한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는데 올해 수상자 중 한 명인 미리암 코로넬-페레르(Miriam Coronel-Ferrer) 씨를 만났습니다. 미리암 코로넬-페레르 씨는 필리핀의 첫 번째 ‘여성, 평화 및 보안에 관한 국가 행동 계획’을 작성하여 유엔 안보리에서 평화 건설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모든 단계에서 촉진시키도록 하였으며,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MILF)과 협상업무를 하는 패널에 합류하여 민다나오 분쟁 지역을 평화로운 민간 지역으로 변화하는 일에 기여하였고, 동티모르, 캄보디아 등 국경을 넘어서도 분쟁을 조정하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분은 올해 수상자입니다. 평화 운동을 이끈 분이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의 활동을 읽어보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계속해서 역대 수상자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수잔 대표님은 역대 한국 수상자를 한 명씩 알려주었습니다.

부산 지역에서의 청십자 의료봉사운동 창설을 이끈 장기려 박사님, 이용자 중심 공공도서관 운영을 위해 평생 헌신한 엄대섭 선생님,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여 농촌 일꾼을 양성하여 새마을 운동에 영향을 준 김용기 선생님 등 여러 명의 모습을 사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매년 봄가을에 나들이를 함께 하고 있는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과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애광원은 기독교 재단인데 제가 매년 지원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애광원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데리고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너무 멋집니다. 저는 수상하신 분들을 서로 연결시켜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도울 수 있도록 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역대 수상자 중에는 인도 의사도 있는데요. 그분은 아시아 사람들의 체형에 맞게 의족과 의수를 만드는 분이세요.”

“지금 지진 피해를 입은 시리아에 의족과 의수가 많이 필요합니다. 지난번 지진 피해 후 제가 시리아를 방문했는데 지진과 전쟁 때문에 팔과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번 시상식이 끝나면 제가 그 분과 스님을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사진은 연도 순서대로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요. 1958년부터 시작하여 2000년 대로 넘어오자 드디어 스님의 수상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여기 스님 사진도 있네요. 21년 전입니다. 하나도 나이가 안 드셨네요.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웃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님이 민다나오에서 하고 있는 구호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2002년에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할 때 토니 대주교님이 저를 안내해 주셨어요. 그때 토니 대주교님이 저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민다나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JTS에서는 현재 민다나오에 59개의 학교를 지었습니다. 주로 무슬림 지역과 원주민 지역에 학교를 지었고, 최근에는 장애인 학교도 많이 짓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어두운 세상에 스님과 같은 분들이 빛을 밝혀 주시네요.”

지난 20년 동안 진행해 온 필리핀 민다나오 JTS사업은 바로 막사이사이상 수상이 계기였기 때문에 스님에게도 막사이사이상 수상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수잔 대표님은 막사이사이상 수상 이후에도 한결같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스님의 활동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수상자들이 348명입니다. 저희 재단에서는 그분들이 하시는 일이 잊히지 않고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상과 상금만 주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서 전 아시아에서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수상자들의 업적을 칭송하는 박물관을 만들고자 합니다. 스님의 업적을 기리는 물건들을 보내 주시면 저희가 전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둘러보고, 방송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살펴본 후 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식사 장소 앞에서 올해 수상자인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 씨를 만났습니다. 유제니오 레모스 씨는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만드는 퍼마쿨처 티모르-로로사이(PERMATIL)를 창립하여 환경 보전과 주민 복지를 위해 지역 및 원주민 문화를 통합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온 분입니다.

“이 분은 올해 수상자이신데요, 농부이십니다.”

“저도 농부예요. 지금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어요. 안 그래도 당신에게 배우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노래도 부릅니다.”

“저는 노래는 못 불러요. 축하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는 한국식, 필리핀식, 할랄(무슬림)식 뷔페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잔 아판 대표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왜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저에게 기조연설을 시켜요. 영어를 잘하는 분을 시켜야죠. 옆에 앉은 제이슨 님이 8분 연설을 통역하기 위해서 미국에서 오셨어요.” (웃음)

“역사상 최고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굉장히 중요한 행사니까요. 메시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의 연설문을 미리 읽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지금 세계에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미 한국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친숙해져 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거든요. 저도 김치와 라면을 정말 좋아해요.”

식사를 하는 도중에 달라이라마 성하의 비서인 체텐 삼두프 초카파(Testen samdup chhoekyapa) 씨를 만났습니다.

“법륜 스님을 직접 만나 뵙다니 영광입니다. 저는 티베트에서 왔습니다.”

“저도 영광입니다. 달라이 라마님의 건강은 어떠신지요?”

“아직 건강하십니다. 잘 지내십니다.”

올해 수상자인 라비 칸난(Ravi Kannan R)씨와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라비 칸난 씨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인도 아쌈 지역에서 암치료 병원(CCHRC)을 설립하여 연간 약 5,000명의 신규 환자에게 무료로 암 치료를 제공하고 있고, 약 20,000명의 빈곤층 환자에게 암 치료 및 추적 치료를 지원하고 있는 분입니다.

“축하해요. 라비 님께서 너무 좋은 일을 해서 제가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픈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수잔 아판 대표님이 오후 1시에 리허설을 가야 해서 스님이 먼저 회장님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 가져왔어요. 밥 많이 먹고 좋은 일 많이 하시라고 한국 수저를 가져왔어요.”

“와, 너무 예뻐요. 한국적 장식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 씨에게 다시 한번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하는 일을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서로 협력할 일이 있는지 앞으로 더 이야기해 봅시다.”

유제니오 씨는 자신의 노래가 담긴 CD에 사인을 해서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저서에 사인을 해서 유제니오 씨에게 선물했습니다.

복도에서 다시 라비 칸난 씨를 만났습니다. 스님은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당신은 좋은 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인도에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 많은데 너무 좋은 일을 해줘서 고마워요.”

“저 혼자서 한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해주세요. 저도 협력할 게 있으면 협력하겠습니다.”

수상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오후 1시에 다시 호텔로 이동하여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저녁에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해야 해서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호텔은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다른 장소를 찾아보았습니다. 이원주 대표님이 마침 막사이사이 재단 6층에 정토회 회원 이규초 님이 운영하는 회사가 있다고 알려주어서 그곳 사무실에 가서 생방송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테스트를 해보니 인터넷이 빨라서 이곳에서 방송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 30분이 되어 내일 시상식이 열리는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The Metropolitan Theater Manila)으로 이동했습니다.


극장에 도착하니 올해 수상자들과 스텝들이 분주히 리허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처음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차례대로 리허설을 해보았습니다.






행사 식순 그대로 리허설을 하다 보니 2시간이 꼬박 걸렸습니다. 리허설을 마치고 5시 10분에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기 위해 다시 막사이사이 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길이 막혀 생방송 20분 전에 겨우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모두가 퇴근을 한 뒤에도 사무실에는 이규초 사장님의 조카 분이 남아서 방송을 도와주었습니다.

빠르게 방송 준비를 하고 6시 30분에 가까스로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저녁 7시 30분이었습니다. 55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필리핀 마닐라에 와 있습니다. 내일 2023년 막사이사이상 시상식이 있습니다. 이 상은 아시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번 시상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게 되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다가 실직을 하게 된 분인데, 실직 이후 어느 곳에도 적응을 못 하고 있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실직하고 나서 어느 곳에도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다가 4년 전에 사고를 냈습니다. 그 사고로 실직하고 이제 나이가 오십 가까이 되었습니다. 조종사로 일할 때는 혼자 나가서 살았지만, 지금은 부모님께 얹혀살고 있습니다. 집안일을 하면서 눈을 낮추어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아 도전했습니다. 사고 이력 때문에 더 이상 조종사로 일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지만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두려운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결국 저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 공황장애가 온 것처럼 굉장히 무서워집니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 가서 약을 타 먹고 나면 좀 나아집니다. 병원에서는 분리 불안과 우울증이 있다면서 약만 계속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혼자 남겨지는 상황이 가장 무섭습니다.”

“그 사고로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이 박탈됐습니까?”

“자격증은 유지하고 있지만 이쪽 계통이 좁아서 이력서를 보면 사고 이력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취업이 안 됩니다.”

“사고 이력을 숨길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요즘 중소 항공사도 많고 소방 헬기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그걸 이력서에 적어서 지원해 볼 수 있잖아요. 사고경력이 있으면 어떤 곳에서도 취직이 안 된다는 거예요?”

“네, 무사고 경력 증명서를 같이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에 사고 기록이 남습니다.”

“그럼 현재 조종사 업계에서는 질문자가 재취업을 할 수 없다고 보시는 거예요?”

“네, 해외에서도 사고 이력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꼭 조종사만 하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조종사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굳이 따진다면 무인 드론 관련 직업을 해볼 수 있습니다. 드론을 가르치는 교관 자격을 취득하면 관련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드론 관련 직종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군사용이든, 상업용이든, 촬영용이든, 지금 빠른 속도로 수요가 늘고 있어요. 드론 관련 자격증을 따서 일을 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드론 관련 직종은 비행기 조종사와 다르게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드론 조종사를 실제로 직업으로 삼기에는 힘들고, 대부분 회사 일과 겸직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요즘 시골에서도 농약을 드론으로 뿌립니다. 그 수요가 앞으로 많아질 거예요. 만약 질문자처럼 조종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 그 직업을 가지면 일반인이 하는 것보다 더 유리합니까?”

“예, 제가 더 빨리 배웁니다.”

“그러면 그걸 배워서 직접 조종하거나 사람들에게 가르치면 되겠네요. 그것만으로 생활비가 부족하다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좀 더 하고요.”

“네, 굳이 밥벌이를 하자면 그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갖고 있는 심리적 불안을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질문자가 원래 불안 심리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 사고를 통해서 불안 심리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심리적 불안이 질문자에게는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어요. 더 이상 조종사로 취업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살지?’ 하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불안증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약간 불안하더라도 그렇게 두려울 만큼 불안감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예, 저희 어머니가 다른 분들보다 불안증이 많으셨고, 저도 그 영향으로 불안함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병원은 계속 다니고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약을 먹고, 불안하지 않으면 약을 안 먹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해요.”

“네, 약을 계속 먹고는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약을 주시는 것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지 아무 말씀을 안 하십니다.”

“사실 현대 의학에서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비행기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생겼다면 심리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서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원래 질문자가 심리적 불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고로 인해 불안감이 더 심해진 것이라면 약물 치료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래 본인이 좀 심리적 불안이 있었는데 사고가 나서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옛날에는 심리적 불안이 없었는데 이 사고가 나고부터 불안감이 심화된 것이라고 보세요?”

“저는 원래 불안증이 있었습니다.”

“원래 불안증이 있었다면 그런 심리 상태로는 사고를 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종사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형 사고를 낼 위험이 높기 때문이에요.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서가 아니라 심리 불안으로 인해 비행기를 조종하다가 갑자기 공황장애가 생겨서 비행기를 통째로 몰고 떨어진 경우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치료를 꾸준히 받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다음으로 조금 도움이 되는 것은 매일 108배 절을 하는 거예요. 만약 질문자가 교회에 다닌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 은혜로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하고 기도해야 하고, 만약 절에 다닌다면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는 부처님 은혜 속에서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종교가 없다면 절을 하면서 ‘저는 편안합니다.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자기 암시를 계속해야 합니다. 약간 땀이 날 정도로 천천히 매일 절을 하면 치료에 조금 도움이 됩니다. 물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심리 불안을 어느 정도 치료하면 어머님이 돌아가셔도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이 세상 천하만물이 다 어미가 죽어도 새끼들은 잘 살아가잖아요. 벌레도 어미가 죽고 나서 새끼가 잘 살고, 제비도 어미가 죽고 나서 새끼가 잘 살고, 다람쥐도 어미가 죽고 나서 새끼가 잘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부모님 없이 왜 못 살겠어요? 그래서 이 문제는 본인의 정신질환 때문에 생긴 문제이지 어머니가 죽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혼자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원래 천하만물이 다 혼자 삽니다. 스님도 혼자 살잖아요. 부처님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같이 살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산다고 못 살 일은 없다는 겁니다. 자연계에 있는 생명들은 대부분 다 혼자 삽니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잠깐 교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혼자 삽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혼자 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고, 정신 질환 때문에 불안한 거예요. 병원에서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기도를 하다 보면 조금씩 좋아질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계속 먹고, ‘감사합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저는 이대로 좋습니다’ 하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108배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눈을 낮춰 몸은 좀 힘들더라도 심리적으로는 편안한 일을 찾아서 해보겠습니다.”

“질문자처럼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은 가급적 신경을 덜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상태가 더 악화됩니다. 농사를 짓는 것처럼 생각을 적게 하는 단순 노동을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몸이 피곤해서 저녁에 푹 쓰러져 자야 할 정도로 많이 걷고 많이 일하면 빨리 치료가 됩니다.

비행기 조종사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입니다. 질문자처럼 불안증이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직업울 갖지 말았어야 해요. 이런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충분히 자신에 대한 진단을 했어야 합니다. ‘조종사는 처음부터 내 건강에 맞지 않는 직업이었다’ 하고 생각해야 미련이 떨어집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저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낼 때가 있을 정도로 예민한 성격인데, 아기를 가져도 될지 고민이 됩니다. 아이를 가지면 저를 닮지 않을까요?

  • 친구와 싸운 일, 사기를 당한 일, 과거의 나쁜 기억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용서를 하고 저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

  • 육식과 채식 둘 다 장단점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육식의 단점에 대해서만 말씀하셔서 듣는 사람이 채식을 해야 한다는 치우친 의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고 나니 마쳐야 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닫는 인사를 하자 실시간 채팅창에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댓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대부분 해외 일정 중에도 약속한 시간에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은 늦은 시간까지 방송을 할 수 있게 사무실을 지켜 준 정토회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건물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제65회 라몬 막사이사이상 시상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점심에 주필리핀 한국대사님과 오찬을 하고, 오후에는 시상식에 참가하여 기조연설을 하고, 저녁에는 수상자들과 만찬을 함께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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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감사합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2023-11-18 11:11:18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3-11-16 09:13:09

드림하이

“저는 노래도 부릅니다.”

“저는 노래는 못 불러요. 축하합니다.”


***^ㅁ^***

2023-11-15 17: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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