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9.21 해외 순회강연(22) 버지니아(Virginia)
“내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늘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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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스물두 번째 강연이 워싱턴 DC와 인접한 버지니아 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4시에 콜럼버스 법당을 나와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고창미 님과 이옥식 님이 새벽녘에 스님 일행을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6시 25분에 콜럼버스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20분을 비행하여 7시 45분에 워싱턴 볼티모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이번 해외 순회강연을 전체 총괄한 김순영 님이 꽃다발을 스님에게 전달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이곳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워싱턴 DC에 도착했습니다. 고된 일정을 무사히 소화해 낸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워싱턴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8시 30분에 워싱턴 정토회관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미팅을 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나갔습니다.

원래 전 북핵 대사를 지낸 디트러니 님을 만나려고 했으나 대사 님이 백신을 맞고 나서 몸이 너무 아프다며 오늘 만나지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새벽에 연락을 주셨지만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한 뒤에 메일을 확인하는 바람에 갑자기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인근에 있는 역사문화박물관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옆에는 워싱턴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멀리서부터 기념탑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가까이 갈수록 정말 커 보였습니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기리는 탑입니다.



워싱턴 기념탑이 위치한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중심으로 백악관, 링컨기념관, 국회의사당이 모두 가까운 곳에 일직선으로 자리해 있었습니다.

워싱턴 기념탑을 지나자 곧바로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에 도착했습니다. 박물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아주 특별한 건물 외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그들의 고통과 자유를 향한 투쟁을 전시한 곳입니다. 여러 가지 시청각 자료들을 통해 그들이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오후 2시에는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 워싱턴 타임즈(The Washington Times) 본사로 이동했습니다. 입구에 도착하자 워싱턴 타임즈 사무총장과 북핵 6자 회담 특사를 지낸 시드니 사일러(Sydney Seiler) 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먼저 신문사에서 신문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었는데 최근에 온라인화가 되면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자리를 옮겨 워싱턴타임즈 재단 이사님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남북 관계와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워싱턴타임즈 관계자들은 한반도의 긴장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며 이 상황을 스님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최근에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 구도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미국을 왕래한 지 2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전쟁이 날 것 같았지만 다시 대화가 되었고,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았다가 다시 대립이 심해졌고,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되풀이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가 잘 이루어질 때도 너무 낙관하면 안 되고, 관계가 나빠졌다고 해서 너무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대화와 갈등이 반복되면서도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 이유는 남북 관계 때문이 아니라 남북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대립이 커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남북이 처음 분단이 되었을 때와 비슷한 세력 구도가 한반도 주변에 다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긴장 고조는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게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지금 시기는 통일보다도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일단 평화를 먼저 가져오고 그다음에 통일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시기와 지난 30년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말이 6자 회담이지 5대 1 회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세계 질서는 미국 주도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적대해 왔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살 길은 미국과의 협상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압박하는 방법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도 했고, 반대로 북한을 잘 달래는 방법이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사용했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정책은 북한이 굉장히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세계가 더욱 분열되면서 북한이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협력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체제 존립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측면에서 북한에게 유리한 국면이 만들어졌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굳이 미국과의 대화에 목을 매달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 미국이 북한을 다루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금까지 사용한 당근과 채찍으로는 북한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미국이 좀 더 크게 보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계속 방치할 건가요?

그런 측면에서 저의 가장 큰 관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북한 주민들의 고통입니다. 이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매우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식량 부족, 의약품 부족 등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억압과 통제도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고통이 지난 30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더 길게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100년 동안 고통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런 고통을 계속 방치할 겁니까? 이 관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 2500만 명이나 되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그냥 외면해도 되느냐는 거죠.

둘째,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 문제입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고 그것을 확산시키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핵무기 기술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그냥 방치하고 있을 건가요? 현재 미국은 어떤 대응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미 군사 동맹의 강화를 통해 전략 자산을 남한에 배치하는 방식은 방어적 대응에 불과합니다. 북한의 핵무기 확산을 막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핵무기의 확산을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의 핵을 신속히 동결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북한의 핵을 동결시킬 수 있을까요? 최근에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시작될 조짐이 보입니다. 이 상황을 내버려 둔다면 러시아의 군사 기술이 손쉽게 북한으로 이전될 것입니다. 꼭 공식적이지 않더라도 비공식적으로도 쉽게 이전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겪었던 기술적 한계를 곧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이 가장 필요로 했던 기술인 핵추진잠수함 기술도 이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이런 기술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이전이 된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됩니다. 이것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확산을 막는 현실적인 방법

미국이 이 상황을 방치한다면,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 북한과 중국의 경제 협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되어 나갈 것입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북한에 경제 제재를 가하지 않더라도 밀수 단속만 하지 않아도 북한과 중국의 경제 협력은 증대가 될 것입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해지면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덜 보는 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동안 북한의 행위는 러시아와 중국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북한을 감싸주기에는 국제 사회의 비난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행위가 러시아와 중국에 유리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집중된 관심을 북한으로 분산시킬 수가 있고요.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에 집중된 관심을 북한으로 분산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모두 감안해 보면 미국의 대북 정책이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북한의 핵 폐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핵 폐기는 현재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니까 핵 동결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현재까지는 북한의 핵 폐기와 북미 관계의 정상화가 핵 협상의 마지막 단계로 설정되어 있는데, 지금은 오히려 북미 관계의 정상화를 입구로 설정해서 북한의 핵 동결을 이끌어내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핵을 동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는 인도주의 관점과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평화의 관점에 서서 북한 문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켜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것을 미국에 간곡하게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Your idea is very good.”

(스님의 의견이 아주 좋습니다.)

북핵 6자 회담 특사를 지낸 시드니 사일러(Sydney Seiler) 님은 북핵 문제가 악화될 것을 예상했다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이를 듣고 스님은 ‘문제 해결’의 관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저는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과는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학자들은 결과를 갖고 분석합니다. 지금까지는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해결이 안 된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학자들은 또 해결이 된 원인을 분석하고자 할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분석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첫째, 2500만 명이나 되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폐기해 달라는 것입니다. 즉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미국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첫발로 내디뎌야 북한의 핵 동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Thank you. That was a very deep opinion.”

(감사합니다. 아주 깊이가 있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관심을 가져줄 것을 한 번 더 당부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강연장으로 이동했는데 잠시 시간 여유가 생겼습니다. 강연장 근처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그린 스프링 가든즈(Green Spring Gardens)라는 넓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도심 속에 다양한 꽃밭과 연못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정원 안에는 농장도 있고, 다양한 식물과 꽃도 형형색색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밤도 열리고, 감도 붉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을이 성큼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스님 강연의 통역을 해주고 있는 제이슨 님의 가족을 공원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짧게나마 자연을 만끽한 후 오후 6시에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버지니아주 북부의 애난데일(Annandale)에 위치한 코리안 커뮤니티 센터(Korean Community Center)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길 안내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강연장 옆 대기실에서 봉사자들이 준비해 준 김밥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미주희망연대 이재수 대표님이 찾아와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미주희망연대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12개 지역 진보 단체들이 참여하여 출범한 단체인데요. 최근에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며 한국 정치 변화와 미국에서 한인들의 역할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표님은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미력하나마 해외 동포들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녁 7시 정각이 되자 준비한 좌석이 빈자리 없이 가득 찼습니다.

스님이 지난 21일 동안 매일 1개 도시를 이동하며 즉문즉설 강연을 해온 여정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방금 영상에서 보셨듯이 저는 8월 말에 한국을 출발해서 9월 한 달 동안 유럽과 미국을 순회하면서 교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영어 통역으로 외국인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긴 여정이었습니다. 교민들을 위한 강연은 오늘 버지니아에서 하는 강연이 마지막이고, 내일 메릴랜드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 통역 강연을 하면 이번 해외순회강연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모두 박수)

그리고 일주일 동안 워싱턴 D.C.에 머무르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미국 조야의 많은 분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은 추석 기간이니까 스님이 한국에 가도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가야 할 집도 없잖아요. (웃음) 그래서 이번 추석 기간 동안 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뉴스에서 보았다시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인 지원을 한다고 발표하니까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기술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한반도의 군사적인 긴장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최선을 다 해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질문 신청을 했지만 두 시간 동안 13명이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국에 와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교수인데 늘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어떤 마음으로 지내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내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늘 불안합니다

“저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스타일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교수로 일을 하고 있고, 안식년을 맞아서 1년 동안 미국에 나오게 됐습니다. 운 좋게 좋은 학교에 오게 돼서 주변에 훌륭한 학자분들도 많이 만나다 보니까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좋은 성과가 나오고 실적이 날 때는 괜찮은데, 생각보다 실적이 안 나올 때는 마음이 좀 힘듭니다. 특히 좋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훌륭한 분들을 보면 위축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40대 중반이 되니까 집중력과 기억력도 떨어지는 게 느껴집니다. 제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늘 불안한데, 어떤 마음으로 지내면 좋을까요?”

“안식년을 미국으로 오지 말고 베트남이나 스리랑카 이런 곳에 가셨으면 오히려 좋았지 않았나 싶네요. 질문자가 안식년을 보낼 장소를 잘못 선택한 것 같습니다. 안식년은 조금 쉬기 위해 갖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안식년을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직장 일을 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번뇌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배울 게 많아서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더 잘하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얘기하는 거예요.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면 미국에 잘 온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꾸 생각하면 잘못 온 겁니다. 번뇌만 늘어날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치유법은 열심히 하는 게 아니고 질문자보다 조금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생활하는 겁니다.”

“무슨 뜻이죠?”

“학교에서 1등 하는 아이만 전국적으로 모아서 한 반을 편성하면 그 반에서도 꼴찌 하는 아이가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나옵니다.”

“학교에서 꼴찌 하는 아이만 모아서 전국적으로 한 반을 편성하면 그 반에서도 1등 하는 아이가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나옵니다.”

“그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능력 있다’ 혹은 ‘능력 없다’ 하고 평가하는 것은 절대 평가입니까, 상대 평가입니까?”

“상대 평가입니다.”

“그럼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 꼴찌 하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심히 공부를 시켜서 해결을 해야 될까요? 시골로 전학을 보내면 될까요?”

“아이의 능력과 성향을 봐서 결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늘 1등만 하는 아이들을 전국적으로 모아서 한 반을 편성하게 되면 그 속에서 꼴찌 하는 아이는 엄청난 열등 의식을 갖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꼴찌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동안 늘 1등을 하다가 꼴찌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워낙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성적이 조금 올라가다가 더 이상 안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열등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전국에서 꼴찌 하는 아이들만 모아 놓은 반으로 전학을 가면 어떻게 될까요? 놀면서도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열등 의식을 치유하는 데는 후자가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더 좋은 학교로 옮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만족할지 몰라도 자녀는 계속 열등 의식을 갖게 됩니다. 아이는 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 향상이 안 됩니다. 이런 심리를 잘 아는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가 약간 열등 의식을 가질 때 조용히 학교를 지방으로 옮겨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별로 노력을 안 하고도 1등을 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아이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부모예요.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질문자가 안식년에 동남아로 갔으면 훨씬 좋지 않았느냐 이런 말씀을 드린 겁니다. 질문자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그룹에 들어가면 내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본인 탓이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올해 제 나이가 칠십인데 텔레비전을 보다가 올림픽 경기에서 100미터를 10초에 달리는 사람을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고 합시다. 1년 연습한다고 되겠어요? 3년 연습한다고 되겠어요? 100m를 10초에 달리지 못한다고 해서 제가 열등한 존재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100미터를 달려보니 딱 25초가 나와요. 그래서 ‘3개월 노력해서 23초에 달려봐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연습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런 목표는 달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든 열등 의식은 욕심에서 빚어집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아이도 열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목표치를 너무 높이 잡으면 멀쩡한 아이도 기가 죽게 되는 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배울 게 있다면 그냥 배우면 됩니다. 전 세계에서 똑똑한 사람들만 모아 놓은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 왔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질문자보다 못하면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질문자보다 똑똑한 사람이 많아야 배울 게 있을 것 아니겠어요?

‘미국에 가면 열등 의식을 느끼고, 동남아에 가면 배울 게 없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 가면 배울 게 있어서 좋고, 동남아에 가면 내가 오히려 가르쳐 줄 수 있어서 좋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야 합니다. 할 일이 있으면 할 일이 있어서 좋고, 할 일이 없으면 한가해서 좋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할 일이 많으면 많아서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할 일이 없으면 심심해서 죽겠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인생이 이런 모습이에요.

노력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을 할 때 우리는 ‘열심히 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게임에 미쳤다’ 혹은 ‘만화책에 미쳤다’ 이렇게 말합니다. 본인이 좋아서 하나에 집중하면 ‘미쳤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하기 싫은 공부를 미래를 위해서 억지로 하면 ‘열심히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식으로 열심히 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왜 행복 지수가 낮고 스트레스가 많은가 하면 열심히 해서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해서 그래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인생은 불행합니다.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열심히 안 합니다. 모든 일을 놀이 삼아 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일도 오랫동안 하고, 어떨 때는 잠도 안 자고 합니다. 원래 노는 것은 밤새우면서 놀아도 재미가 있잖아요. 그래서 밤샘 공부는 못 해도 밤새워 놀 수는 있는 겁니다.

이렇게 놀이 삼아 하는 마음을 내면 ‘열심히’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놀이 삼아 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이 사람은 이렇게 하네?’, ‘저 사람은 재주가 좋네?’ 이렇게 사람을 알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재주를 보고 ‘나도 저 사람처럼 노래를 잘해야지’, ‘나도 저 사람처럼 운동을 잘해야지’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것은 욕심이에요. 욕심을 내면 열등의식을 갖게 되고, 몸도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안식년은 쉬면서 놀라는 취지에서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미국은 자연환경이 아주 좋잖아요. 요세미티 공원에도 가보고, 그랜드캐니언도 가보고, 옐로 스톤도 가보고, 알래스카도 가보세요. 돈이 없으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다니면 됩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 살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은 바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려면 한국에서 살지 무엇하러 미국까지 와서 열심히 살려고 합니까? 미국 같이 넓은 나라에서는 높은 지위를 가질 필요도 없고, 돈을 많이 벌 필요도 없고, 그냥 적당하게 일하고 적당하게 생활하면서 여유를 갖고 사는 게 제일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여유를 가지면서 살고 싶어도 주위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그렇게 못 살잖아요. 그러나 미국에 오면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청바지를 입고 다니든, 맨발로 다니든, 머리를 산발해서 다니든, 아무도 신경을 안 써요. 소 닭 쳐다보듯이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자유롭고 좋습니까? 미국에 왔으면 미국의 장점을 만끽하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죽기 살기로 하려고 해요?

한국에서 죽기 살기로 일했으면 여기서는 좀 쉬세요. 미국에서는 열심히 하는 마음을 좀 내려놓고 여유 있는 마음을 좀 배워보면 어떻겠나 싶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와서도 열심히 삽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성공하지만 반대로 정신적인 행복 지수는 매우 낮습니다. 집만 크고 차만 좋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 그러면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미국에 오래 살았는데 아직도 문화적 차이가 적응이 안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아이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켜보지만 건성으로 공부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될까요?

  • 남자친구의 가족이 종교를 강요하고, 거짓 소문까지 내니 결혼이 망설여집니다. 거짓 소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상처가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일시적으로 극복이 되지만 괴로움이 반복됩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사고방식이 점점 굳어져 고집불통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는 일도 점점 없어져 갑니다. 어떻게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을까요?

  • 이혼한 남편이 17년 만에 다시 돌아와 재결합을 하자고 했습니다. 며칠 같이 살아보니 힘든 점이 생깁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직원 중 한 명이 근무 태만으로 징계를 받고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듭니다. 상사와 직원들 사이에 있는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후회가 되고, 나에 대한 원망도 생겨 너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후회를 떨쳐낼 수 있을까요?

  •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을 합니다. 욕심이라는 것도 알지만 욕심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조언을 해주십시오.

  • 한국 정치를 보면 여당과 야당의 편 가르기가 너무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립과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청중들은 두 시간 동안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곧바로 무대에서 책 사인회를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청중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버지니아!”

버지니아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스님은 차를 타고 다시 워싱턴 정토회관으로 돌아온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에 금요즉문즉설 생방송을 한 후 워싱턴 DC에서 미국 조야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과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이번 해외 순회강연의 마지막 순서로 메릴랜드주에서 영어 통역으로 미국인을 위해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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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윤

전 세계 곳곳에 한반도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계신 스님께, 그리고 강연장 대여, 준비 등 갖은 노력을 쏟아주신 봉사자 분들께도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2023-10-12 14:16:27

티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스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2023-09-26 01:30:29

신해숙

메릴랜드주의 강연도 기대합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안식년에 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미국을 여행하며 만난 문화공간들과 강연후의
산책, 강연을 끝내고 봉사자들과도 기념촬영 하시는
여유로운 모습이 잘 놀실 줄 알고 스트레스도
스트레칭으로 날려버릴 스님이시라 남북문제도
잘해결되리라 두손모아봅니다.🙏

2023-09-25 21: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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