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7.21 텃밭 가꾸기, 금요 즉문즉설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은데 계속 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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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텃밭에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국화를 삽목한 화분을 처마 밑에 뒀더니 물이 부족해서 시들시들해졌어요. 햇살도 받고 비도 맞을 수 있도록 위치를 옮깁시다.”

국화 화분 이십여 개를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고 풀을 뽑았습니다.


빈 화분에는 국화를 꺾어 삽목을 했습니다.




1시간 동안 알차게 울력을 하고 6시 50분에 두북수련원으로 내려와 방송실로 갔습니다. 7시부터는 온라인으로 전국 법사단 회의에 참석하여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스님이 화면 속 법사님들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법사님들이 물을 게 뭐가 있어요? 질문할 게 없으면 저는 바로 울력하러 가겠습니다.” (웃음)

법사님들은 얼마 전 자자 수련을 하고 생긴 의문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8시에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작업복을 입고 텃밭으로 갔습니다. 빈 텃밭에 거름을 주고 흙과 뒤섞어주었습니다. 화광법사님이 키운 대파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두 줄을 심고 나니 모종이 다 떨어졌습니다.




스님은 이 텃밭에서 저 텃밭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풀을 뽑았습니다. 딸기밭에 풀을 뽑고, 상추밭에 풀을 뽑았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심은 상추가 조그마한 싹을 틔웠습니다.

“여름 상추는 싹이 잘 안 트는데 이번에는 싹을 많이 틔웠네요.”

선선한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놓기 위해 스님은 계속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는 화단에 자란 풀을 뽑고 가지를 쳤습니다. 지난달에 말끔히 풀을 뽑았지만, 풀은 어김없이 자라 있었습니다.


9시가 넘도록 울력을 하고 오전 10시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해외에 계신 분들과 저녁에 시청을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마련된 즉문즉설 강연입니다.

3,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지난 한 주 동안 스님이 농사일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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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했습니다. 차례대로 한 명씩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술을 공부한 지 20년이 되었고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지만 자꾸 마음이 지친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은데 계속 지칩니다

“저는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미술학원에서 강사가 되어 유치부와 초등부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업 화가이면서 유명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고민이 있습니다. 첫째, 저는 그림을 못 그립니다. 극사실주의 측면에서도 부족하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둘째,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셋째, 완성하고 나면 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지칩니다. 넷째, 미술을 공부한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작품에 대한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30대에는 미술협회에 가입해서 활동하였지만 어느 순간 제가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리려 하는 모습이 보여 그만두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구름은 바람 없이 움직일 수 없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저에게 바람을 불어넣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그린 그림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만족을 못 하는데 그 그림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내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해 아주 흐뭇해해도 다른 사람들은 별로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세상인데, 나부터 인정을 못하는 그림을 남들에게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은 욕심이 지나친 겁니다.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 유명한 화가가 되어 돈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은 욕심을 넘어서서 과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니까 마음이 지치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법륜 스님이 그린 그림과 질문자가 그린 그림을 비교해 보는 겁니다. 질문자는 법륜 스님보다는 그림을 잘 그릴 것 아니에요?”

“제가 더 잘 그릴 것 같아요.”

“그래요.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법륜 스님이 제법 유명한 분인데, 나는 법륜 스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

이 사실 하나만 해도 자랑스럽지 않나요? 다른 건 몰라도 그림은 내가 법륜 스님보다 잘 그린다는 것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그림이 사실적인 그림이든, 추상적인 그림이든, 질문자가 법륜 스님보다는 잘 그리잖아요. ‘나는 법륜 스님보다 인물이 잘 생겼다’, ‘나는 법륜 스님보다 나이가 더 젊다’, ‘나는 법륜 스님보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더 잘 가르친다’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자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욕심을 딱 버리세요. 질문자가 그린 그림이 본인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은 되잖아요?”

“그 정도 수준은 됩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그림 그릴 때 기본 구도를 잡아주거나 색감을 알려주는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도 못해요?”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을 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는 해결할 수 있잖아요. 만약 시간이 남으면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으면 안 그리면 되고요.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돈이 될지 이런 것은 따지지 말고 취미로 그려보세요.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쭉 모아 두는 겁니다. 당장 팔려고 하지 말고요. 스스로 ‘나는 예술가다’ 이런 생각도 하지 마세요.

많은 선생님들이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나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생활하잖아요? 질문자도 미술의 대가가 되겠다는 너무 거창한 생각을 하지 말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내 직업이다’ 하고 생각하면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학원 선생님을 하면 시간적인 여유가 다른 직업보다 좀 더 많을 것 아니에요? 남는 시간에는 여유를 갖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나중에 그렇게 그린 그림들이 쌓여 있으면 누가 그걸 보고 ‘이 그림들은 그냥 두기에 너무 아깝다. 전시 좀 하자’ 하고 제안을 할 수가 있어요. 그때 전시회를 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호응하면 다행이고, 호응이 없어도 그만이에요.

요즘 그림 한 점의 가격이 수 천만 달러가 되는 그림들도 당시에는 술 한 잔 얻어먹고 그려준 그림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밥 한 끼 얻어먹고 그려주기도 하고, 하룻밤 머물고 그려준 그림들이 오늘날 명작이 된 거예요. 당시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은 때는 백 년도 더 지난 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의 대부분이 거의 굶주리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림을 그려서 혜택을 본 게 거의 없었어요.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말하면서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에요. 저처럼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 사람도 질문자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게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질문자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욕심을 너무 많이 내다보니 자신에 대해 부족감을 느끼게 된 겁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미술 교사로서는 아주 괜찮은 사람입니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미술 교사로서도 아주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것만 해도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게다가 내가 그림 그리는 재주로 밥을 먹고살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겁니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거예요.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니까 자기 자신이 초라해지는 겁니다. 누군가가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도 아니고, 스스로 헛된 꿈을 가져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그림 실력을 높이지 않더라도 헛된 생각만 버리면 지금 이대로도 질문자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에요. 만약 누군가가 질문자에게 재능이 없다고 하면 이렇게 말하세요.

‘저는 법륜 스님보다 그림을 잘 그립니다.’

이렇게 관점을 갖고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네, 제가 헛된 생각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법륜 스님보다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그 유명한 법륜 스님도 나보다는 그림을 못 그리네’ 하면서 항상 자부심을 가져 보세요.”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12시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후에는 여름 햇살이 아주 강하게 내리쬐었습니다. 일부 지역에는 폭염 특보가 내려질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였습니다. 스님은 오후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5시가 되자 더위가 한풀 꺾였습니다. 스님은 다시 작업복을 입고 울력을 하러 나갔습니다. 대파 모종을 더 구해서 텃밭에 심고 물을 듬뿍 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시청자들을 위해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하자 5,4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일을 언급하며 애도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너무나 빠른 성장을 해왔습니다.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룬 나라라면 이제는 그 위상에 맞게 국가든 개인이든 안전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어려운 시절에 안전을 소홀하게 여겼던 습관이 잘 버려지지 않아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 가운데서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치안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비교적 안전한 편입니다. 그러나 안전사고와 관련해서는 어이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태원 압사 사건은 정말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이번에 일어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역시 조금만 주의를 했으면 막을 수 있는 인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이번 장마 폭우로 인해 50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그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잠시 가졌으면 합니다.

환경 위기를 막는 방법

이런 자연재해는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도 북부 지역에는 폭우가 쏟아져서 야무나 강이 범람할 위기에 놓여 있고, 타지마할이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도 중부 지역에는 모내기철인데도 비가 오지 않아 모내기를 못 하고 있습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한쪽에서는 홍수가 나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이 심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미국에서는 얼마 전에 남부와 서부 지역이 고온 열풍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역사 속에서도 여러 번 일어났지만 요즘은 그 빈도가 더욱 잦아졌다는 점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GNP(국민총생산)와 GDP(국내총생산)를 갖고 잘 사는 기준으로 삼는 물질주의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환경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죠.

환경 위기를 막으려면 소비 수준을 줄여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비가 아닌 검소한 삶에 있습니다. 검소하게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수행’에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내가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갈등도 줄어들어서 나아가 전쟁까지 막을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고, 환경 위기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행복해지고,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 바로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기독교를 모태 신앙으로 하고 있는 사람인데, 법륜 스님의 법문이 너무 좋다며 이래도 괜찮은지 질문했습니다.

기독교가 모태 신앙이지만 스님의 법문이 너무 좋아요, 이래도 될까요?

“저는 기독교 신자이고, 모태 신앙인입니다. 유튜브로 성경 읽기를 하다가 링크를 타고 스님의 강의를 시청하게 되었는데요. 너무나 현명하신 스님의 답변에 저도 모르게 성경 읽기는 뒷전이 되어 버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두 시간씩 중독처럼 시청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래도 되는지 궁금하고,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가끔은 종교를 개종해야 하나 싶은데, 저는 유일신 하느님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이런 저를 어쩌면 좋을까요?”

“제가 질문을 한 번 해볼게요. 저는 불교 승려입니다.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참선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틈만 나면 물리학 책만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불교를 너무나도 좋아해요. 이런 경우 저는 불교라는 저의 종교를 버려야 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질문자는 저에게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계속 불교를 믿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릴 것 같아요.”

“왜죠? 저는 물리학을 너무 좋아하는데요?”

“그래도 스님께서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건 불교일 테니까요.”

“불교를 종교로 갖는 것과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스님으로서도 과학 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물리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스님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불교를 믿든지 안 믿든지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과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불교를 믿지 말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처럼 제가 지금 여러분과 대화하는 내용은 종교로써의 불교가 아니에요. 저는 지금 여러분과 수행으로써의 불교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를 믿든, 혹은 무슬림을 믿든, 혹은 아예 종교가 없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수행을 할 수 있어요. 질문자가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이치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수행으로써의 불교를 말하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도 수행을 할 수 있고, 종교가 없어도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불교 신자도 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고, 천주교 신자도 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기독교 신자도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고, 불교 신자도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수행하고는 관계가 없다’ 하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예요. 내가 기독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즉문즉설, 정토불교대학, 행복학교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수행으로써의 불교를 토대로 하고 있어요. 수행을 배우는 곳이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은 그냥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인이 하나님을 믿고 싶으면 계속 믿으면 되고, 수행을 하다 보니 하느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안 믿어도 돼요. 본인의 믿음과 마음공부는 서로 모순되는 관계는 아닙니다. 다만 믿음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물리학도가 명상을 해보니 너무 좋아서 물리학을 포기해 버리고 명상만 한다고 할 때 그것은 명상이 더 좋아서 명상을 하는 것일 뿐 물리학이 잘못 된 학문이라서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과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기독교를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자유입니다. 마음공부의 영향을 받아서 본인의 종교인 기독교를 더 이상 안 믿게 될 수는 있겠지만, 저는 여러분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유일신을 믿든, 다신을 믿든, 호랑이를 믿든, 굿을 하든, 점을 보든, 사주를 보든, 저는 그런 것에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좋다면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됩니다.

저는 스님이지만 무슬림 지역에도 가고, 그 어느 곳이든지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다니며 활동합니다. 믿음, 종교, 신앙, 신념, 사상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어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를 제가 왜 간여하겠습니까? 그러나 기독교 신자든, 불교 신자든,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누구라도 괴로우면 마음공부를 좀 해야 한다는 말은 합니다. 왜냐하면 수행을 하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괴로움에서 좀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이 종교를 바꾸라고 하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마음공부를 해 보니까 내가 굳게 믿었던 종교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안 믿어도 돼요. 어떤 사람은 수행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신앙이나 믿음이 더 견고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개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걸 갖고 너무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면서 수행을 하시면 됩니다. 종교를 바꾸든, 아예 종교를 안 갖든, 그 어떤 선택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제가 굉장히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었는데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괴로움이 많이 사라졌어요. 이 자리를 빌려 스님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스님을 만나고 나서 얼굴이 너무나 밝아졌다며 가족들이 모두 좋아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질문자가 변했다고 하니 저도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그러나 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주위에도 이 좋은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본인처럼 예민하고 까칠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질문자의 경험담을 얘기해서 이 좋은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도록 권유하는 것이 질문자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수행을 해 보니까 도움이 되더라. 너도 한번 해봐라‘ 하고 말이죠. 종교나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괴로움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람이기 때문에 그 일에 여러분도 동참해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고등학생 아들이 가정불화와 아동학대로 인해 3년 전에 보육원에 가게 되어 마음의 상처가 심합니다. 어미인 저에게 죽여 버린다는 욕설을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나일뿐인데 인식의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의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행복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 출산 중 의료사고로 자궁을 적출하고 중환자실에서 죽다 살아났습니다. 아기는 대학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너무 슬픈데 입양해서 아이를 키워야 할까요?

한 명 한 명과 순서대로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아이에게 잘하는 것도 좋고, 남편에게 잘하는 것도 좋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주위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면서 남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결코 남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항상 자신을 잘 가꾸어나가는 마음자세를 여러분들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도 모두 나처럼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도 함께 존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대중을 위한 강연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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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목

삽수를 키울 때

보수성, 통기성이 좋은 사질양토, 마사토를
사용하면 좋습니다.


그리고 삽수가 자라면서
입고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살균제가 처리된 배양토를 쓰는 게 좋습니다.

2024-02-25 18:46:37

삽목

삽수는 보통 20~25도 정도의 온도에서
뿌리가 잘 자라서 나옵니다.

혹시나 삽수를 관리한다면
밤낮으로 3~5도의 온도 차이를 주면
뿌리가 더 빨리 자라서 나옵니다.

가끔 햇빛이 너무 세서
강한 광선이 삽수에게 전달될 때
해가림을 해주면 좋습니다.

2024-02-25 18:37:59

삽목

삽수가 건조해지거나 썩으면 죽겠죠.

그럴 때는 삽수의 밑 부분에
흙떡을 붙여주세요.

황토를 새알 만하게 만들어서
삽수의 아래에 꽂으면 됩니다.


그걸 '흙떡꽂이[earth ball cutting]'라고 하는데
이는 삽수의 건조와 부후 예방에 좋습니다.

2024-02-25 18: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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