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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INEB(참여불교국제연대) 방문단이 정토회를 견학한 지 6일째 되는 날입니다.
새벽 4시 45분에 정토사회문화회관 설법전에서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INEB 방문단 모두 정토회 방식의 예불과 기도가 이제 익숙해졌습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이 정토회 천일결사 기도법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하는데 천일을 합니다. 천일기도가 끝나면 백일을 쉬었다가 다시 천일기도를 합니다.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수행의 관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계정혜 삼학을 닦습니다. 계율을 기준으로 어제 내가 화난 적이 있는지, 짜증을 낸 적이 있는지 돌아보면서 108배를 합니다. 그다음에는 모든 동작과 생각을 멈추고 명상을 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해서 다만 알아차릴 뿐이지 욕망을 따라가거나 참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혜를 닦는 경전독송을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순간에는 내 방이 절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암 큰스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청정한 자가 수행자이고, 수행자가 머무는 곳이 절이다’ 하는 관점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모든 정토회 회원들은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자기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토회가 자원봉사 방식으로 운영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스님의 자세한 설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6시 20분부터는 서울 공동체 대중과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오늘은 발우공양을 하는 도중에 헌식기가 미처 도착하기 전에 대중대표가 죽비를 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늘 깨어 있기 위함입니다. 이와 반대로 카르마(karma)란 습관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발우공양 시간에는 헌식(獻食)을 한 헌식기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게송을 하고 말았습니다. 기존에 공동체 대중끼리 발우공양을 하던 습관대로 죽비를 쳤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죽비를 치는 대중대표가 변화된 상황을 감안하지 못한 것이지요. 발우공양을 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고 발우공양에 서툰 사람이 있으면 속도가 늦어지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중도(中道)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나침반은 위치가 달라지면 자침이 흔들리다가 항상 북쪽을 찾아서 가리킵니다. 나침반이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는 것을 수행자에게 적용하면 수행의 목적인 열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가리키는 방향은 달라집니다. 이것이 중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두 가지의 수행적 관점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첫째, 전체의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둘째, 습관대로만 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발우공양을 하기 위해 앉는 자리가 갑자기 변경되었습니다. 늘 해오던 대로 자리를 배치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테라밧다 불교에서는 자리에 높낮이가 있으면 반드시 높은 쪽에 스님이 앉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은 자리를 보시면 이곳은 높낮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에 오늘이 INEB 방문단이 발우공양을 처음 하는 날이면 옆에서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해진 상황에서 자리에 높고 낮음이 발생했다면 상황을 감안해서 자리 배치에 대해 먼저 문의를 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전체를 파악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세세하게 살피는 분별지(分別智)도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수행은 이렇게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어서 INEB 방문단과 서울 공동체 대중이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공동체 지부장이 INEB 방문단을 환영한 후 스님이 전체 대중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부서별로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INEB 참석자들도 나라별로 소개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은 큰 박수로 INEB 방문단을 환영했습니다.
오전 8시에는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 조계종의 총본산인 조계사를 방문했습니다. 대웅전을 참배한 후 앞마당에 모여 안내 직원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연등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조계사의 경내를 자세히 둘러본 후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접견했습니다. 삼배의 예로 인사를 나눈 후 진우 스님이 INEB 방문단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현재 한국 불교는 침체되는 측면도 있지만, 나눔과 평화의 시대에 불교 명상이 새롭게 조명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비롯하여 4차 혁명이 일어나고 있지만 앞으로 5차 혁명은 정신문화의 혁명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NEB 방문단과 조계종이 모두 협력하여 5차 혁명 시대를 함께 열어 가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조계종 종단 차원에서 국제 활동에 더 많은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한 후 총무원장 스님께서 환영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서로 준비해 온 선물을 전달한 후 조계사를 나왔습니다.
이후 INEB 방문단은 자유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내내 스태프들과 함께 삼삼오오 흩어져서 인사동 주변을 구경하고 선물도 사고 점심 식사도 한 후 다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한편 스님은 조계사 일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하여 홍콩 불교신문 기자인 크레이그 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크레이그 씨는 일주일 동안 스님과 대화를 나눴지만 홍콩 불교신문 독자들을 위해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습니다.
주로 디지털 기술과 AI(인공지능)가 붓다 담마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에는 전체가 모여서 소감문을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6박 7일 동안 무엇을 느꼈는지 종이 위에 빼곡하게 적었습니다.
오후 5시부터 각자 쓴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이 발표하는 내용을 경청하며 필요한 내용을 메모했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자신이 쓴 소감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고, 소감문 발표가 끝날 때마다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법륜 스님이 공유해 준 모든 이론과 관점은 저에게 무척 가치있게 다가왔고,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태국으로 돌아가면 나와 이웃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아쉬운 점은 스케줄이 너무 빡빡했습니다. 느낀 점을 돌아보는 휴식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쁜 스케줄 덕분에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것을 얻어서 돌아갑니다.” (웃음)
“법륜 스님에게서 단순한 삶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제 인생에서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쉴 시간이 없어서 머리가 아플 때도 있었지만, 스님의 법문을 듣고 두통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무척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매 순간 올바른 관점을 알려주었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법륜 스님에게서 배운 내용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정토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도전에 직면했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감명 받은 내용은 자원봉사 시스템이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협력해서 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데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도 많은 일들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요. 어제 스님의 법문에서 그 비결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피곤해하지 않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기쁘게 일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항상 모범을 보여주는 법륜 스님의 리더십을 저도 고향에 돌아가서 적용해 보겠습니다.”
“법륜 스님의 통찰력과 지혜는 타고나신 것은 아닐 겁니다. 스님이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해주신 것처럼 수많은 시간 동안의 수행을 통해 길러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역을 한 덕분에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앞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한 스태프들도 한마디씩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와서 통역, 운전, 식사 준비, 숙소 안내, 사진 촬영 등 많은 역할을 해준 봉사자들의 모습에 INEB 참가자들은 더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소감문 발표가 이어질수록 모두의 눈시울이 점점 붉게 변해갔습니다. 그만큼 6박 7일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INEB 사무국장인 무 씨에게 한마디를 청했습니다. 무 씨는 해마다 정토회를 방문하지만 해마다 많은 감동을 느낀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정토회 견학 프로그램은 INEB 참가자들이 영감을 얻는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설령 실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계속 작용을 할 것입니다. 정토회는 참여불교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소감문 발표를 듣고 나서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프로그램에 너무 여유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늘 시간 계획을 짤 때는 좀 여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짜는데 결과는 늘 이렇게 됩니다. 정토회 활동가들이 빠른 것인지 여러분들이 느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웃음)
어쨌든 좀 더 프로그램을 여유 있게 만들지 못해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여러분들이 힘들었으면 저도 힘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뻤으면 저도 기뻤습니다.
INEB는 아잔 술락 박사님이 중심이 되고, 달라이 라마, 고사한다 스님, 아리아야뜨네 박사, 틱낫한 스님, 이렇게 세계적으로 위대한 스승들이 시작을 했습니다. 그분들 중에 두 분은 돌아가셨고, 두 분은 연세가 많으셔서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스승님들이 하던 일들을 맡아서 해나가야 됩니다. INEB가 중심이 되어서 우리 모두 다 함께 그 뒤를 이어갑시다.
정토회는 세 명의 스승을 모시고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정법을 지금까지 계승해 오신 저의 은사 스님이신 불심도문 큰스님입니다. 둘째, 여러분들이 봉암사에 가서 영정을 뵈었던 서암 큰스님입니다. 그분은 아주 소박하게 사셨고 심플하고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셋째, 재가 여성 수행자인 각해 보살님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고통 하나하나를 상담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즉문즉설은 담마적으로는 선불교의 문답을 계승한 것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헤아려서 그 아픔을 해결해주는 그 자세는 각해 보살님이 가졌던 마음을 계승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누구나 본받을 사람이 있으면 스승으로 모십니다.
또 정토회가 하고 있는 사회실천 활동에는 개신교 목사님이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분은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창립한 강원룡 목사님입니다. 종교 간의 대화를 실천하셨고, 노동 문제, 여성 문제 등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강원룡 목사님의 정신과 유업을 계승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인류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우리 선조들을 비롯하여 그들이 누구든 관계없이 그 경험이 유익하다면 아무런 제한 없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제가 4월과 5월 두 달 동안 아시아 지역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둘러보고 왔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INEB 스터디 투어에 와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현장에 찾아가서 들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토회가 지원을 할 때 여러분의 상황에 맞게끔 맞춤형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정토회를 견학하고 간 스님들은 각 나라의 승단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INEB 스터디 투어를 준비하는 정토회 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분들은 앞으로 10년 후에 각 나라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서 견학을 도와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맞춤형으로 지원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여러분들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첫째, 자원봉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돈을 받지 않고 일하겠습니까? 자원봉사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자원봉사 시스템은 지도자가 자원봉사자와 똑같은 마음으로 일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수입으로 들어오는 재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모두가 평등한 관계로 일해야 합니다. 높고 낮음이 있어서 직원을 다루듯이 해서는 자원봉사 시스템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돈을 받고 일해도 시키는 대로 잘 안 하는데, 돈을 받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시키는 대로 일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평등한 관계가 되어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나라에서 승려라고 하는 권위를 가진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권위를 버리게 된다면 정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승려라는 권위로 사람들을 관리하기보다는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모범이 되어 헌신할 때 자원봉사 운동이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절에서 직원을 고용해서 월급을 줍니다. 그래서 절을 운영하는 것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스님들의 위치가 월급을 주는 사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많은 시종을 거느린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출가해서 부처가 된 이후에는 시종을 둔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나이가 드신 후에는 같은 수행자인 아난 존자가 보좌를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붓다가 가신 길을 항상 염두에 두고 가능한 그 원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둘째, 계율은 구속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계율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속박이 됩니다. 왜 우리가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면 ‘계율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율이 나를 속박하는 게 아닌 계율 안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를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가르침을 펴신 분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속박하도록 가르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도 계율의 정신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계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속박한다면 그 계율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모두가 동의할 만큼 그 계율에 문제가 있다면 변경을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으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율을 변경할 때는 항상 이 점을 충분히 검토해야 합니다.
셋째, 여러분들이 정토회의 운영 원칙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 원칙이 지켜지는 범위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협력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동안 INEB와 협력하는 일을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원칙을 너무 따지게 되면 ‘돈 좀 준다고 목에 힘주네?’ 이렇게 오해할 수가 있고,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NGO처럼 관계를 맺게 되면 정토회의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터키, 시리아, 파키스탄처럼 불교국가가 아닌 경우는 정토회의 원칙에 상대가 동의하면 지원을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지원을 안 하면 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해요. 정토회는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기가 매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돈을 지원하는 일은 유익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돈을 쓰되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점을 서로 이해한다면 INEB의 울타리 안에서 여러분과 무엇이든지 협력할 수 있어요.”
이것으로 6박 7일 동안의 INEB 스터디 투어를 모두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물 증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의 법문을 영어로 번역한 책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풍경을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풍경이 무엇인지 스님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풍경을 처마에 걸어놓으면 바람이 불면서 소리가 납니다. 사람이 종을 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에요. 바람에 의해 나는 자연스러운 소리입니다. 물고기 모양으로 생긴 것은 졸지 말라는 뜻이에요.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스님이 주는 선물을 받자 INEB 참가자 모두 무척 기뻐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도 각자 준비해 온 선물을 가져와서 모든 참가자와 스태프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그동안 서로에게 느꼈던 고마움을 마음껏 표현했습니다. 선물을 나눠주면서 서투른 한국말이지만 한마디씩 했습니다.
“캄솨함니다.”
미소를 띤 얼굴에 눈물이 촉촉하게 고였습니다.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은 후 아쉽지만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스님은 밤 9시부터 나라별로 미팅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전체 모임만 하다 보니 나라별로 고민하고 있는 세세한 내용들에 대해 대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방글라데시, 태국, 베트남 순서로 미팅을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비구니 스님은 자원봉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일과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스님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방글라데시의 현재 사정에 맞게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곧이어 태국에서 온 스님들이 미팅을 했습니다. 각자 태국에서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소개한 후 스님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한 스님은 태국 불교가 정체되어 있다며 어떻게 교육이 변해야 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현재 태국 불교에서는 출가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현대 사회에 맞는 교육도 하지 않고 있고, 발전하려고 하는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된 사람들도 붓다 담마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너무 우울합니다. 승복을 벗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스님들을 가르치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국 불교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부처님의 일생과 근본 교리를 쉽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속에 과학도 들어올 수 있고, 다른 종교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별도로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그래야 다른 학문을 배우는 것도 불교로 수렴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라즈길 영축산에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을 설했던 이야기를 가르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경전을 옛날 얘기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경전 속에 나온 부처님의 일생을 통해서 남녀평등, 계급차별 철폐, 민주주의, 과학의 원리, 평화사상을 가르쳐서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 붓다는 2600년 전 인물이 아니고 지금 이 시대에 출현해도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붓다를 생각할 때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미래로 향한 옛길입니다. 옛날에 설해진 가르침이지만 이미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고 설해진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나타날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지금은 진리의 기준이 과학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 교리도 과학적 원리와 수학적 방법에 의해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반야심경을 제가 해석한 책인데, 이 속에는 화학 공식도 나오고, 수학 공식도 나오고, 천문학도 나오고, 에너지 법칙도 나옵니다. 물리학, 화학, 천문학은 물질에 대한 연구이고, 생물학은 생명에 대한 연구이고, 붓다 담마는 정신에 대한 연구입니다. 불교는 진실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다만 정신 영역일 뿐입니다.”
스님은 반야심경 책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 어떤 과학적 지식이 담겨 있는지 예를 들어 보여 주었습니다. 태국 스님들은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이후에도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밤 10시에는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지난번 스님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청년들의 활동을 자세히 보고 왔는데요.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후 앞으로도 계속 의논을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작은 출발을 한 것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큰일을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역량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베트남의 경제가 점점 성장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함께 성장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면서 지금부터 투자를 해야 합니다. 정토회도 처음 출발할 때는 ‘그런 방식으로는 어렵다’ 하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발전했잖아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또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중국, 미얀마, 라오스, 부탄, 캄보디아에서 온 분들과 미팅을 연달아 하고, 오후에는 INEB 참가자들 모두 각자의 비행기표 시간에 맞춰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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