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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INEB(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 방문단이 정토회 견학을 시작한 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4시 30분, 대웅전에서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INEB 참가자들에게 예불문과 천일결사 수행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다 듣고 뇌정산의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발우 공양을 하러 대수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발우 공양을 할 때는 음식을 다 먹은 후 발우를 김치 조각으로 깨끗이 닦아 먹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물로 한 차례 헹군 후 물을 퇴수통에 붓습니다.
오늘 퇴수통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조금 떠 있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퇴수통을 보니까 물이 맑지 못했습니다.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발우를 깨끗이 씻어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배고픔에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발우 공양의 정신을 살려서 정토회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제로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했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버리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환경 운동도 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배고픔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사회 운동을 할 때 서양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대 문명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 속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찾아내야 합니다.”
발우 공양을 마치고 8시부터는 명상원에서 INEB 스님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트에 메모를 열심히 하고 있는 스님들을 보며 스님이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여러분 모두 학생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오늘 저녁에는 산책 시간이 있으니까 오후까지는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여유가 좀 있습니다. 원래 이 시간에는 수련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전에 정토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정토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보통 세상에서는 내가 좋으면 다른 사람이 희생되고, 다른 사람을 좋게 하려면 내가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지속 가능합니다.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 결과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고, 나중의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서 지금은 참고 견디며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지속 가능합니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의 관점에서 정토회는 다음의 세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수행을 합니다. 수행이란 무엇보다 내가 괴롭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괴롭지 않아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또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수행적 관점을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정토회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수행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붓다 담마(Buddha Damma)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 입학하면 붓다 담마를 정확히 배울 수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는 근본 교리와 부처님의 일생을 주로 공부하기 때문에 주로 테라밧다 불교를 배우게 되고, 경전대학에서는 대승불교와 선불교 사상을 배우게 됩니다. 이 코스는 70퍼센트 이상 출석을 해야 졸업이 인정되며, 졸업을 하면 정토회의 멤버가 되겠다는 가입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나의 괴로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멤버가 되고 나서 수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수행법회에 매주 참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천일결사 정진을 해야 합니다. 천일결사 정진은 천일 동안 참여하는 프로그램인데 45분간 절을 하고 명상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15분간 그날의 느낀 점을 멤버들과 나누기 하는 시간을 갖는 1시간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곳 문경수련원에 와서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 수련 등 집중 수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와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출가 수행자로 살지는 못하지만 내 삶의 일부는 출가 수행자처럼 살겠다고 마음을 내는 겁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부족하지만, 부족한 개인이 여러 명 모이면 부처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정토회에서는 한 조각 한 조각을 모아서 붓다가 가는 길을 간다는 의미로 ‘모자이크 붓다’라고 표현합니다.
둘째, 전법을 합니다. 이 좋은 법을 만나 나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좋아야 합니다. 붓다 담마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셋째, 사회 실천 활동을 합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수행, 전법, 사회적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의 핵심이 무엇인지 설명한 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의 학사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잠깐 휴식을 한 후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모두 불교에 대해 깊이 공부한 분들이어서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중 캄보디아에서 온 스님은 견해가 서로 다를 때 중도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시고 다섯 비구에게 양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를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견해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고 하지 않고 중도를 실천하며 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단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서로 다를 뿐이지, 누가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다’ 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서로 믿음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관점이 다를 뿐임을 알면 내 마음에서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저렇게 믿는구나’, ‘저런 관점을 갖고 있구나’ 이렇게 상대를 보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길 중에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여러 가지 길 중에서 ‘나는 이 길을 선택하겠다’ 하고 자신의 입장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분노 없이 자신의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어떤 주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일으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할 때 오래 앉아있으면 다리가 아픕니다. 그러면 다리를 펴려는 욕구가 생깁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수련 중에 다리를 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다리를 펴면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고, 다리를 펴지 않으면 아픔을 참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비난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이 두 가지가 극단입니다. 중도란 통증을 다만 통증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통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통증을 다만 통증이라고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싫어하게 된 뒤가 아니라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선(禪)의 여섯 번째 스승인 육조(六祖) 혜능(慧能: 638~713)은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스승으로부터 법을 인계받았습니다. 당시 혜능은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는 일을 하며 공부 중인 행자였고, 아직 스님조차 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스승의 밑에는 위대한 제자들이 700명이나 있었는데도, 스승은 혜능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며 그에게 법을 전해주었습니다. 스승은 법의 징표인 발우를 혜능에게 건네주고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해칠까 우려하여 멀리 남쪽으로 피신을 시켰습니다. 그런 뒤 스승은 며칠 동안 법상에 오르지 않았는데, 제자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스승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지 않자 마침내 스승에게 문의를 합니다. 그러자 스승은 ‘이미 법이 남쪽으로 갔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 아무도 법을 받은 사람이 없으니까, 방앗간 행자가 법의 징표인 발우를 뺏어서 도망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행자를 잡으러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발우를 갖는 이가 스승의 뒤를 이어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징표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중에 군대 출신 승려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제일 빨리 따라가서 결국엔 혜능을 잡게 됩니다. 혜능은 그가 바로 뒤까지 쫓아오자 발우를 바위 위에 두고, 그 바위 뒤에 숨었습니다. 승려는 발우가 자기 앞에 있으니 ‘이제 이것만 가지면 내가 여섯 번째 마스터가 된다’ 하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발우를 탁 집었는데 그만 바닥에서 떨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때 마음이 확 바뀌면서 그 자리에서 딱 엎드려 절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자여, 나는 당신에게서 법을 뺏으러 온 게 아니고 법을 얻으러 왔습니다’
그러자 혜능이 바위 뒤에서 나타나서 승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조금 전 마음은 어떤 마음이고, 조금 후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어떤 마음이 너의 본래 마음인가?’
그 질문에 승려는 자기 마음을 보게 되었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일화는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라’ 하는 선(禪)의 요지를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테라바다 불교에서도 이와 똑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리가 호흡을 알아차린다고 할 때,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다만 호흡을 알아차릴 뿐이어야 합니다. 명상을 하면 통증이 생깁니다. 그럴 때 ‘좋다’ 혹은 ‘싫다’ 하는 분별심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 다만 통증을 알아차릴 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냥 알아차리는 경지로 갈 수 있습니다. 일단 싫어하는 마음을 내버리고 나면 그때부터는 다리를 펴거나 아니면 참거나, 두 가지 문제에 부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선에서는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개는 흙덩이를 쫓고, 사자는 흙덩이를 던지는 사람을 쫓는다.’
흙덩이만 쫓으면 흙덩이가 계속 날아오잖아요. 이리로 가면 이리로 날아오고, 저리로 가면 저리로 날아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부차적인 것, 즉 생각에 끄달리면 어디로 가든 계속 괴로움에 처한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사자가 흙덩이를 던지는 사람을 쫓는다는 것은 근본을 꿰뚫어 한 번 만에 문제를 결판내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쉬운 얘기이고, 어떻게 보면 정말 어려운 얘기를 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꿰뚫어 직시하는 것은 수행을 오래 했거나, 늦게 했거나, 처음 했거나, 이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정토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깨달음의 장’은 이러한 선의 가르침을 현실화해서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이어서 정토회의 수련 프로그램인 깨달음의 장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 나눔의 장, 명상 수련 등 여러 수련 프로그램을 설명한 후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동남아 스님들을 위해 남방 불교 식으로 점심 식사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남방 불교에서는 음식을 직접 떠서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이 떠줘야 합니다. 스님의 제안을 듣고 태국에서 온 스님이 더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태국 스님의 안내에 따라 배식을 해주는 사람 중 한 명이 대표로 먼저 물을 컵에 따르며 게송을 외웠습니다. 이때 배식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물을 따르는 사람과 연결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게송이 끝나고 컵에 따른 물은 큰 나무에 뿌려주었습니다. 이는 ‘수하항마상’을 기리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수하항마상이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대지의 신이 공덕을 증명해 주어 마왕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일화입니다.
의식을 마치고 바라지들이 반찬을 한 가지씩 스님들의 접시 위에 올려놓아 주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밥을 배분한 후 이어서 바라지들이 반찬을 배분했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스님은 한 번 더 밥을 배분해 주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의 교육 연수를 맡고 있는 무변심 법사님, 수련 진행을 맡고 있는 덕생 법사님, 행자원 운영을 맡고 있는 묘수 법사님, 세 분이 법사단을 대표해서 INEB 방문단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그동안 수행해 온 과정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소개를 마치자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수행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마음이 안정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비구니 스님들을 트레이닝하고 싶은데 정토회에서 하고 있는 수행 방법과 절차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명상이나 수행의 단계를 확인하는 시험이 있나요? 어떻게 깨달았는지 알 수 있나요?
정토불교대학은 70% 이상 출석해야 졸업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출석률 미달일 경우 재입학을 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이 있는지요?
정토회에는 ‘웃으며 부드럽게 말한다’는 계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웃음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가요?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정토회 법사님들도 INEB 방문단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구니 제도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정토회의 경우에도 여성들이 법사가 되어 30년 동안 활동을 해오고 있고요. 부탄에서는 비구니 제도가 얼마 전에 처음 생겼다고 하는데, 이런 한국의 여성들의 활동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부탄에서 온 비구니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부탄의 넌(출가 여성)은 여유 있고 자유롭게 삽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굉장히 바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토회의 여성 법사님들처럼은 절대 못 살 것 같아요. 정토회 법사님들에 대해 정말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웃음)
궁금한 점에 대해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고 오후 3시 30분에는 밖으로 나가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경 새재 앞에 도착하여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문경 새재라는 고갯길입니다. 옛날에 경상도 사람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새재란 말은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걷고 싶은 길을 물어보면 10위 안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좋고, 말없이 걷기만 해도 좋은 길이었습니다. 약간 경사가 진 길을 걷기 시작하자 숨이 가빠지고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옆으로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주막이 있었던 자리인 조령원터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여기는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이 하룻밤을 자고 가는 곳입니다. 여기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말먹이도 주고, 숙박도 하는 그런 곳이에요. 한국말로 ‘주막’이라고 합니다.”
“세븐일레븐 같은 곳이네요.” (웃음)
웃으며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왔던 길을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더 여유 있게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맨발로 걷기도 하고, 발을 물에 담가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문경수련원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보고 동남아 스님들이 감사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남방식으로 저녁 예불을 한 후 곧바로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며 스님은 정토회의 운영 방식인 삼의제, 대의원 구조, 민주적 구조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토회의 운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정토회는 결과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하는 과정, 즉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도 세상에 모범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래 사회에는 정토회가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한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정토회가 급격하게 확장될 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굉장히 많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 단체처럼 갑자기 사람이 늘어나는 일은 없어요. 대신에 느리게 천천히 가고 있습니다. 빠르진 않지만 굉장히 단단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계속 질문을 받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은 모두 출석을 해야 하나요? 상황에 따라 월반도 할 수 있나요?
정토회는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나요? 그리고 매년 정부에 사업 보고를 하나요?
태국에서는 숲에서 혼자 수행하기도 하는데, 한국 불교에도 그런 것이 있는가요?
마지막 질문은 베트남에서 온 청년이 했습니다. 기존의 전통 불교와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님은 누구를 롤 모델로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한국 불교가 여러모로 도전받고 있다는 것과 한국의 불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출가하는 사람도 많이 줄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륜스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개혁적인 일을 하고 있고, 전통 한국 불교와는 굉장히 다르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법륜스님이 있기 이전에는 롤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스님은 개혁적이며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들을 떠올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첫째,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경전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토회의 의사 결정 방식인 삼의제도 모두 경전에서 발견했습니다.
불교를 이해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안아트만(anatman)’입니다. 이것은 ‘무아(無我)’를 뜻합니다.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핵심적인 내용이 ‘아트만(Atman)’이에요. 브라만(Brahmana) 신의 분신인 아트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죠. ‘브라만과 아트만이 둘이 아니며 하나이다(범아일여)’ 하는 것이 우파니샤드 철학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아트만을 부정했어요. 아트만을 부정하니까 안아트만(anatman)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불교 사상은 아트만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불교 용어를 쓰든 아트만적 개념을 쓰고 있습니다. ‘불성’, ‘부처의 성품’ 하는 용어도 아트만적 개념으로 쓰고 있습니다. ‘참나’ 하는 용어도 사실은 아트만적 개념이에요. 선(善)에서 견성(見性), 즉 자기 성품을 본다고 말할 때도 그 성품이 아트만적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과 다른 점을 한 가지만 말한다면 바로 무아입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 하는 관점에 서면 그 어떤 것도 우월적이지 않고, 열등하지도 않습니다. 무아의 관점에 설 때 성차별이든 계급 차별이든 인종차별이든 모두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스러운 것도 없고, 부정한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불교보다 더 빠르게 직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불교가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대학도 가지 않았고, 유학도 가지 않았으며, 어떤 자격증도 없고, 외국어도 할 줄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머리가 특별하게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통찰력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위대함을 제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웃음)
정토회 회원들이 매일 아침마다 읽는 ‘정토행자의 서원’에는 현대 문명이 안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아이디어를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서 찾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수행을 하고 경전을 공부하라는 것인가요?”
“지식으로 공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의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첫째,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탐구적 자세를 가져야 붓다 담마가 기록된 경전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문제 의식이 없으면 모든 것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얘기를 들어 보니까 문제 의식이 상당히 있어 보여요. 그래서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웃음)
“아직 길을 못 찾았지만 문제 의식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베트남 다낭이라는 지역까지 직접 찾아가 본 겁니다. 지금처럼 활동을 하다가 그만두게 될지, 무엇을 새로 만들어 낼지는 지켜봐야겠죠. 여러분이 힘들게 길을 찾는 모습을 보면 저도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도와주는 것이 때로는 도움이 안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길을 찾아서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큰 박수와 함께 INEB 정토회 방문 2일째 일정을 마쳤습니다. INEB 방문단은 마음 나누기를 한 후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가서 취침을 하고, 스님은 곧바로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밤 12시가 되어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INEB 스터디 투어 3일째 날로 경주 불국사를 둘러보고, 운문사를 참배한 후 비구니 스님들과 간담회를 합니다. 오후에도 스님과 대화 시간을 가지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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