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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수련원에서 INEB 방문단과 함께 하루를 보냈습니다.
INEB(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s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 실천을 하기 위해 1989년에 창립된 국제단체입니다. 지난해 스님은 틱낫한 스님에 이어 INEB의 최고 명예직인 패트론(Patron)으로 추대되었습니다.
INEB에서는 매년 6월 정토회 방문단을 구성해 한국으로 보내는데, 스님은 해마다 이 분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동안 정토회 방문 프로그램을 중단했다가 올해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중국, 부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 불교국가에서 19명의 스님과 재가신자들이 정토회를 방문했습니다. INEB 방문단은 어제 문경수련원에 도착해 환영식을 하고 정토연수원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오늘 새벽 4시 30분부터 대웅전에서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저희들은 108배를 합니다. 스님들은 명상을 하셔도 됩니다.”
기도를 마치고 스님은 INEB 방문단과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교식은 아니지만 여러분을 환영하는 의미로 악수를 해도 될까요?”
스님은 한 분 한 분에게 눈을 맞추며 악수를 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잘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견학이 목적이니까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정토회를 그대로 체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국에서는 큰 스님이 오셨는데 다른 분들과 똑같이 대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일주일 동안은 남자냐 여자냐, 재가신자냐 출자가냐, 나이가 많냐 적냐를 떠나서 똑같이 지내봅시다.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온 큰스님도 동의를 해주셨습니다.
“That’s right.” (좋습니다.)
대웅전 밖으로 나오니 날이 밝아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은 희양산이 어우러진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스님은 삼삼오오 모여 있는 참가자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습니다. 지난 동남아 답사에서 만났던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6시 2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백일출가 45기 행자들과 상근자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INEB 바라지, 깨달음의 장 바라지 등 여러 봉사자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대중은 어제 하루 동안 어긴 계율에 대해 참회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발우공양과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발우란 적당한 양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적당한 양이란 건강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양입니다. 원래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셨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에는 걸식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절 안에서 걸식하는 정신으로 먹는 것이 발우공양입니다. 그래서 공양을 하면서 제일 먼저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는 게송을 외웁니다...”
설명을 마치고 문경공동체 행자들이 각자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소개했습니다. INEB 참가자들도 한 명 한 명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INEB 참가자들은 문경수련원을 둘러보았습니다.
행자반장 김선희 님이 수련원의 곳곳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대웅전, 행자들이 생활하는 공간, 해우소, 깨달음의 장 수련장 등을 둘러보고 명상원으로 내려와 툇마루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다음 일정은 한국의 전통사찰인 봉암사 순례입니다. 안내는 유수스님이 하기로 했습니다.
“법륜 스님도 같이 가시지요.”
“봉암사 안내는 유수 스님이 맡은 일이에요. 제가 그 일을 뺏으면 안 돼요.” (모두 웃음)
INEB 참가자들은 차를 타고 봉암사로 이동했습니다. 서암 큰스님의 부도탑과 경내를 차례로 둘러보았습니다. 유수 스님은 법륜 스님의 스승님이셨던 서암 큰스님과의 일화와 봉암사의 역사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경내는 봉암사 주지 스님이 직접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다시 문경수련원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공양은 대전충청지부에서 온 봉사자들이 준비했습니다. 봉사자를 대표해서 한 분이 음식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문경수련원과 두북수련원에서 직접 키운 야채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떡볶이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맛보아 주십시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에게 남방 불교식으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양이 끝날 무렵 스님은 수박화채를 들고 한 바퀴 돌며 참가자들이 더 먹을 수 있도록 권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중국 소림사 주지 쩡 차오 스님에게 다가가 그릇을 치워드리고 대화를 청했습니다. 한국 불교와 참선에 관심이 많은 스님을 위해 한국 불교의 변천사를 설명해 드린 후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곧 다음 프로그램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정토회를 소개하고, 참가자들이 속한 각 단체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가 별로 5분씩 소개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베트남 청년 대안교육 단체, 부탄 여성 출가자 재단, 미얀마 담마 스쿨, 라오스 불자 유대 단체, 캄보디아 바탐방 불교대학교 순서로 발표를 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하고 있는 사회 실천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서 교육, 지속가능성 및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관련된 여러 청소년 단체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브이씨아이엘 커뮤니티(Vcil Community)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법륜 스님과 정토회가 어떻게 불교 교리를 적용하여 사회에 참여하고 인류의 공공 이익을 위해 자원을 동원하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제 이름은 소남 초덴이고, 2018년에 부탄 비구니 재단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나라의 비구니절이 어떻게 운영되고 일상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경험하고 배워서 그것을 제 자신의 일상생활에 접목시키고 싶습니다...”
“제 이름은 프라 이트입니다. 태국에서 12년간 스님 생활을 해왔습니다. 정토회의 마음 챙김 수행과 영적 성장을 위한 교육 체계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저는 캄보디아 푸사트에서 온 반다입니다. 저는 프리야 시하누크 라자 불교대학교 바탐방 캠퍼스(SBUBB)에서 교육행정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저는 지구 온난화와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인식을 비롯하여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있습니다...”
발표 시간은 5분이었지만, 열정적으로 소개를 하다 보니 모두 5분을 넘겼습니다. 결국 단체 세 곳은 다음에 발표를 하기로 하고 소개 시간을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 3시 20분부터는 스님과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의 얘기를 잘 들었습니다. INEB 방문단의 목적이 정토회를 견학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교류와 연대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매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의 가장 큰 힘인 자원봉사자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정토회의 가장 큰 힘은 자원봉사 조직입니다. 자원봉사 방식으로 정토회가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자원봉사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해서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래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학교 옆에 있는 절에서 스승님을 만난 인연으로 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불교든 기독교든 종교란 합리적이지 못하고 허황한 얘기를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를 공부해 보니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 문명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학문이 과학과 기술입니다. 과학은 물질이나 어떤 대상이 움직이는 원리와 구성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붓다 담마 역시 사람의 마음과 정신작용이 작동하는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절에서 몇 년 살아보니까 스님들은 복을 빌어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도하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는 허황한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 생각했던 환희심은 사라져 버리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인도의 전통 종교에서는 까르마가 정해진 운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자로 태어나거나 장애를 갖게 되면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신분 계급이 높거나 부자로 태어나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까르마에 대한 이런 해석은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을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을 합리화하는 것이 불교라면 굳이 불교를 믿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불교계를 떠나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 당시에 한국사회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민중들이 여러 가지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독재 권력과 결탁한 승가의 모습은 저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일까?’
더 큰 의문이 생긴 저는 모든 경전을 모아서 부처님의 일생에 관계되는 자료들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붓다의 삶을 전체적으로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불교가 붓다의 원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고 오히려 인도의 전통 종교인 힌두이즘과 더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붓다 담마를 새로 정립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고통이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 아니고, 하느님이 준 벌 때문이 아니고, 사주팔자 때문이 아니고, 우리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우리 무지에 있기 때문에 그 무지를 깨우치면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본래 부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까르마라는 말은 정해진 운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형성된 습관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소멸될 수가 있습니다. 까르마라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라서 되풀이되는 성질이 있지만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소멸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 있어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인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복을 구하거나 죽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괴로움이 없는 삶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살아가신 분이 고타마 붓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고타마 붓다의 삶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붓다는 우리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 붓다 역시 자신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 고뇌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우리들도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왜 왕위를 버렸을까요? 이 부분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불교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분명하게 자각하면 소비주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면한 나의 괴로움과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앞에 놓인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 되기 때문에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불교의 발전은 소비주의를 쫓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큰 절을 짓고, 더 많은 보시를 받고, 더 높은 지위를 얻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과연 불교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 인류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의 발전일까요?
정토 불교대학의 5개월 과정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며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갑니다.”
스님은 정토불교대학의 교과과정과 실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INEB 방문단에게 정토불교대학이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만 드렸지 무엇을 공부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정토회 운영을 어떻게 자원봉사 방식으로 할 수 있느냐고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괴로움이 없어지는 경험이 있어야 이런 보시와 봉사가 가능합니다. 밖에서는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을 신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정토회의 모든 봉사자는 신도가 아니라 수행자입니다.”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중국에서 온 스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불교의 근본적인 목표는 개인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열반에 이르는 것과 다른 사람의 해탈과 열반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해행증(信解行證) 중에서 증(證)이 열반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일반 사람들이 열반을 증득하는 것은 너무 높은 수준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그룹으로 나눠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일반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다른 한 그룹은 소수이지만 명상이나 수행에 전념하여 좀 더 높은 단계의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대승의 가르침이나 선의 가르침과는 어긋납니다. 첫째, 만물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기본 가르침입니다. 둘째, 선불교의 여섯 번째 스승인 혜능 대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의 마음이 깨달으면 부처이고, 부처의 마음이 어리석으면 중생이다.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리석으면 중생이고, 마음이 깨달으면 부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높고 낮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근본 도리에서 벗어납니다. 괴로움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해 괴로운 것이나 남편 때문에 괴로운 것이나 괴로움은 다 같습니다. 그것이 어떤 괴로움이든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열반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절대화시키기 때문에 깨달음이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니르바나를 추구하다가 결국 니르바나에 이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불교의 목적은 지금 깨달아서 괴로움 없이 사는 것이지, 열심히 수행해서 죽기 전에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는 것입니다. 깨어있으면 괴로움이 없고, 깨어있음을 놓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깨어있음을 놓치지 않도록 꾸준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6년 동안이나 고행하신 이유는 누구도 그때에는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자각한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만약 부처님과 같은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불법을 배웁니까? 선불교의 6대 조사들은 이 점을 직시(直視)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 외에도 ‘정토회에 출가자와 재가자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쉽고 자상한 설명에 모두들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공양게송을 하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스님은 미얀마에서 온 스님에게 사이클론 피해 상황이 어떤지, 무엇을 지원하면 좋은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녁 7시에는 대웅전에서 남방불교식으로 함께 예불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7시 30분부터 INEB 방문단은 정토회의 온라인 수행법회를 참관했습니다. 송수신기를 통해 중국어, 방글라데시어, 태국어로 각각 통역을 들으며 스님과 정토회 회원들이 어떻게 온라인 방식으로 법회를 하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4월과 5월에는 해외에 주로 있었는데 지난주에는 두북수련원에 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오랜만에 농사일을 하니까 몸이 힘들었는지 몸살기가 좀 심했습니다. 허리를 구부려서 며칠 일을 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어요. 노동은 매일 해야 괜찮지 이렇게 안 하다가 하면 힘이 많이 듭니다. 행자님들이 모내기를 끝냈다고 해서 살펴봤더니 이앙기를 운전하는 게 서툴러서 모를 삐딱 삐딱하게 심어 놓았어요. 중간에 골을 빼먹고 모를 심은 게 많았습니다. 다시 보충을 하느라 허리가 부러질 뻔했어요.” (웃음)
이어서 스님이 모내기하는 모습과 풀매기를 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국 으뜸절에서 봉사자들이 활동한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오늘 INEB 방문단이 문경수련원과 봉암사를 둘러보고 온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과 스님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말을 길게 하는 사람에게 불편한 마음이 자꾸 일어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저는 말이 많은 사람에 대한 분별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직장에서 부장님이 대화할 때마다 말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 다른 사람과 말할 때도 막 끼어들고 하는 모습에 ‘저 사람이랑 말을 섞고 싶지 않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자꾸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저 사람은 말을 좀 길게 한다’, ‘방금 말한 건데 또 말하네’ 이런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일대일로 대화하는 상황이면 억지로 듣느라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도 건성으로 합니다. 그런 때마다 불쑥불쑥 일어나는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조절하면 좋을까요?”
“마음 불편하다는 것은 이미 일어나 버린 일입니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질문하는 것은 불평을 바깥으로 내놓을 거냐, 참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불과합니다. 손익을 계산해서 불평을 바깥으로 내놓으면 손해가 나겠다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참습니다. 반대로 ‘참으니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라, 모르겠다. 불평을 말하자’ 이럴 수도 있어요. 둘 다 수행이 아닙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이 늘 하는 일에 불과해요. 참았다가 터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수행이란 ‘저 사람이 말이 많다고 해서 왜 내 마음이 불편하지?’ 하고 자기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아나운서가 혼자서 계속 이야기하는 뉴스를 보면 마음이 불편한가요?”
“그때는 불편하지 않습니다.”
“왜 그건 불편하지 않나요?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말을 적게 해라’ 하면 상대가 말을 적게 하고, ‘말하지 마라’ 하면 말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니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재 근성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때는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괜찮습니다. 즉, 상대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괴로움의 원인이 아닙니다. 상대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에 내가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아, 내가 저런 걸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상대를 보지 말고 나를 봐야 합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들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 사람을 안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된장찌개를 싫어하면 안 먹으면 되잖아요? 그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면 안 만나면 됩니다. 내가 그곳을 싫어하면 안 가면 됩니다. 그것은 질문자의 자유예요.
그러나 그 사람을 안 만날 수 없고, 그곳에 안 갈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마음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안 만나고 안 가는 선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손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싫어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을 많이 하는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싫어하는 내 마음의 문제예요.
누구나 싫어하는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그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싫어할 수 있습니다. 좋아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상대가 나를 안 좋아하는데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계속 따라다니면 성추행이 되잖아요. 그것처럼 질문자의 심리는 성추행과 똑같은 심리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말이 많은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에요. 그 사람이 말을 길게 하는 게 듣기 싫으면 나가면 됩니다. 그 자리에 같이 있어야 하면 ‘저 사람은 말이 좀 많구나’ 하고 들어주면 됩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데도 참으면서 들으면 열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싫어할 뿐 스트레스는 안 받을 수 있습니다. 날씨가 춥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날씨가 추운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주어진 조건입니다. 날씨가 추우면 옷을 따뜻하게 입거나 외출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하면 돼요.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길게 말하는 게 싫다면 자리를 피하거나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듣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것은 본인이 선택할 문제이지 그 사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갖고 시비하는 걸 보면 질문자는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너무 움켜쥐고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너무 움켜쥐고 살면 누가 힘들까요? 본인이 힘듭니다.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으면 내 자유가 그만큼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꽃이 노랗든 파랗든 작든 크든 ‘저렇게 생겼구나’ 하면 아무 꽃이나 있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나는 노란 꽃은 싫어’, ‘나는 작은 꽃은 싫어’ 이러면 돈도 많이 들고 그런 꽃을 구하기도 힘들겠죠. 그만큼 불필요한 일이 많아지는 겁니다. 사람도 골라서 만나려고 하면 만남이 성사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직장 상사인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이 말이 많든 말이 적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소풍을 가려고 했는지 하늘이 어떻게 알겠어요? 기상 상황에 따라서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요. 비가 오면 우산을 쓰든 우비를 입든 소풍을 취소하든 내가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날씨를 욕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의 괴로움은 나의 문제인데 자꾸 상대방의 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자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을 탓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탓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전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선택하고 내 길을 가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비하거나 따질 필요가 없어요.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됩니다. 부처님은 따지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시비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당당하게 말하세요. 그래서 불이익을 주면 불이익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불이익은 받기 싫고, 속으로는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자기만 괴로운 거예요. 이런 것은 세상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자기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좋고 싫음에 너무 사로잡히는구나.’
이것을 자각하는 게 수행의 시작입니다. 앞으로 다른 직장을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뭘 하더라도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드는 경우는 없어요. 그런데도 자기감정에 너무 치중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좋고 싫음에 너무 집착하면 상대를 좋아하다가도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싫은 마음이 일어나면 곧바로 감정으로 연결되는 편인데, 그걸 조금 끊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끊어내기는 어떻게 끊어내요? 질문자가 어떻게 끊어내요? 그냥 ‘내가 싫어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내가 저런 사람을 싫어하는 것을 저 사람의 문제라고 보지 말고 내 문제라고만 보세요. 그렇다고 내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기만 해도 많이 좋아집니다.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감정을 끊어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감정을 끊어내려고 해도 안 끊어지니까 이번에는 자기를 미워하게 될 수 있어요. 그 사람을 미워했다가 이제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남을 미워하거나 나를 미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이 하는 행동이에요. 남도 미워하지 않아야 하지만 나도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도 존중해야 하지만 나도 존중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INEB 스님들은 수행법회를 마치기 전에 1시간 일찍 문경수련원을 출발해 정토연수원에 도착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INEB 스터디 투어 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에 대해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점심에는 공동체 법사단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문경새재를 다녀오고, 저녁에는 다시 스님과 정토회의 사회실천 활동에 대해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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